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권윤덕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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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호오, 고양이가 사람을 따라한다고? 보통 고양이라면 그렇지 않을텐데, 이 고양이는 특별한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소녀와 고양이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볼까?

어느 날 소녀를 찾아온 고양이는 아주 예쁜 삼색 고양이였어. 학교에 다녀오면 늘 혼자 있어야만 했던 소녀는 무척이나 기뻤지. 소녀는 고양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지만 이 고양이는 안아주려 하면 도망을 가버리고, 불러도 오지 않는 녀석이었어. 하지만 소녀가 모른척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다가 오기도 하고, 소녀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하는 이른바 청개구리파 고양이라고나 할까.


소녀가 신문지 밑에 숨으면 덩달아 고양이도 신문지 밑에 숨고, 소녀가 문 뒤에 숨으면 고양이도 문뒤에 숨었어.


소녀가 책상 뒤에 숨어 손을 살짝 내밀면, 고양이도 책상뒤에 숨어서 앞발을 살짝 내밀고, 소녀가 옷장 속에 숨으면 고양이도 옷장 속에 숨었어.


소녀가 빨래를 널 때면 빨래를 물고 가고, 파리를 잡으려고 하면 똑같이 파리를 잡겠다고 나섰지.


꽃향기를 맡을 때도 소녀를 따라하고, 벌레가 지나가는 걸 보고 있을 때도 소녀와 함께 벌레를 빤히 쳐다 봤어.


사실 소녀에게는 친구가 없어. 유일한 친구는 이 삼색 고양이. 다른 친구들이 밖에서 놀고 있는 걸 똑같이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는 삼색 고양이뿐. 물론 집에만 있는 삼색 고양이도 소녀만이 유일한 친구였지.

어느 날 소녀는 고양이를 따라 하기로 했지. 그래, 이젠 고양이가 되어 보는 거야!


예전에는 무서워서 깜깜한 밖은 내다보지도 못했는데, 이젠 고양이를 따라 밖을 내다보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늘 키높이로만 세상을 바라 보다가 고양이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니 세상이 달라 보였지.


고양이가 털을 세우며 몸을 부풀리는 것처럼 소녀는 마음을 크게크게 부풀렸지. 어떤 것도 무섭지 않도록 말이야. 그렇게 소녀는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


그리고나서 어떻게 되었냐구? 소녀는 고양이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

표지를 보면서도 상당히 기대했지만 그림이 정말 아름다운 동화책이다.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중국에서 공필화와 산수화를 배웠고, 다음에는 불화를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구나 하고 납득이 간다. 소녀와 고양이의 모습을 보면 옛그림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이지만 배경을 자세히 보면 현대란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작가는 두 가지 사이의 위화감이 전혀 없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모든 것을 표현해 놓았다. 그림만 한참 들여다 보고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는달까.

책 내용은 소녀와 고양이 이야기이다. 소녀가 하는 행동을 모두 따라하는 고양이. 사실 고양이의 행동 방식을 잘 생각해 보면 소녀를 따라한다, 라고만은 이야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신문지 밑이나 책상 밑같이 구석진 곳, 옷장 속처럼 어둡고 자신을 잘 감출 수 있는 곳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빨래가 펄럭거리면 본능적으로 잡으려고 하고, 파리가 날아가거나 벌레가 기어가면 사냥 본능으로 잡으려하거나 자세히 관찰하기도 한다. 어쩌면 고양이가 없을 때 소녀가 혼자 집에서 그렇게 놀았던 것이 우연히 고양이의 행동과 잘 맞아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인 소녀와 고양이.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부터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자 노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그런 것이 고양이의 놀이 방식과 비슷해졌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집에서 놀때는 놀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부터이다. 만날 자신을 따라하는 고양이를 보고 있다가 소녀는 자신이 고양이를 따라해 보기로 한 것이다. 고양이는 밤눈이 밝기 때문에 밤에도 바깥을 잘 내다 본다. 소녀에게는 어둠이 무섭기만 했지만, 이젠 고양이가 곁에 있으니 두렵지 않다. 또한 늘 자기 키높이에서만 사물을 바라보다가 고양이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도 보이고, 보아 왔던 것들도 새삼 달라 보임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소녀는 두려움도 떨치고 시야도 넓어지고 마음도 넓어진다. 고양이 친구 덕분에 마음이 쑥쑥 성장했달까. 그렇게 소녀는 보이지 않는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간다. 예전에는 창문을 통해서 봤던 것들이 이젠 바로 눈 앞에 펼쳐졌다. 예전에는 또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부러워만 했지만, 이젠 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줄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삼색 고양이를 행운의 고양이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복고양이라 불리는 마네키네코도 삼색고양이이다. 원래는 수컷 삼색 고양이를 행운의 고양이라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암컷인지 수컷인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녀의 세상을 집안에서 좀더 넓은 바깥 세상으로 넓혀준 것만으로도 행운의 삼색 고양이라 부를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본문에는 페이지 표기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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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김재영 지음 / 더팩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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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표현에 미친 년 널뛰기 하듯 한다, 라는 말이 있다. 2000년대 우리 나라의 수도권 집값의 동향이 그에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재건축 규제가 풀리면서 재건축이 예상되는 아파트의 가격은 미친듯이 뛰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파트로 한몫 잡아 보겠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신축 아파트 청약광풍 사태는 물론이거니와 이미 지어진 집들이 있는 버블 세븐 지역의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었다.
 
2000년대 중반 난 분당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분당 파크뷰 30평 정도가 10억.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도대체 그런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 거지?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다 우리와 같은 생김새의 사람들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주 부자란 것. 사실 나같이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의 경우 집값이 몇 억의 억 소리만 나도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은 '특별한' 종족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고, 나와는 아예 상관없는 나라의 이야기로만 여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비싼 집에서 사는 것일까. 연세 지긋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내 또래의 사람들도 그런 집에서 살았다. 자조적인 심정으로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지는 않았다. 부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자연스레 면역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난 지방에 있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가 사는 곳은 중소 도시. 최근 도청 이전이 확정되면서 일시적으로 땅값이 좀 뛰긴 했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같은 청약 광풍 사태같은 건 없었다. 하긴 도청 이전에 20년이 걸린다니 지금 새 아파트를 사면 그때가 되면 이미 낡은 아파트니 별로 투자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방의 그런 현싦과 비교해 볼 때 수도권은 정상이 아니었다. 개포동 13평짜리 아파트가 13억, 14억이라니, 평당 1억? 그게 집이냐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집값이 뛰었을 때 산 사람들은 그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라는 궁금증도 생겼다. 뭐, 하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내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라 그후의 동향에도 주시했다. 하지만 최고점을 찍고는 재건축 아파트 시세가 마구 하락했다. 게다가 재건축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집값이 오를때 들어온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내가 만약 원입주자였다면 난 10억쯤 할 때 그 집을 팔고 다른 데로 이사갔을 텐데, 하는 그런 생각도 했다.

하우스 푸어는 이렇듯 재건축이 예정된 아파트나 신축 아파트를 투자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 중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 중 집값 하락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결국 집까지 잃게 될지 모를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재건축 예정 아파트는 은마, 개포동 주공, 가락 시영,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이다. 그곳에 입주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얼마만큼의 은행빚을 지고 있는지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재건축만 되면 금방석 아니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 아파트를 사기 위해 은행 돈을 빌린 사람들은 최고 8억에 가까운 빚을 지고 있었고, 대부분 3, 4억 정도의 은행대출을 받고 있었다. 어휴. 그돈의 이자가 도대체 얼마야? 요즘 시중 금리를 생각해보면 이자만 해도 일반 가정 한달 수입과 맞먹거나 그걸 뛰어 넘는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 투자한 보람이 있을까? 속된 말로 뽕을 뽑는다고 하는데, 정말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한 뽕을 뽑을 수 있을까. 물론 이들은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다. 자신이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차익을 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0억 주고 산 아파트가 도대체 얼마나 올라야 이득일까. 게다가 지금은 집값이 대폭 하락하는 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 나처럼 이런 거 잘 모르는 사람도 - 마이너스란 계산이 나온다. 대출금 이자에 생활비, 아파트 유지 보수비 등을 생각하면 절대 이윤이 남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재건축 아파트를 사려고 안간힘을 썼고, 결국 지금은 하우스 푸어가 될 위기에 몰렸다. 지금 부동산 시장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탐욕이란 연료를 사용하는 막장으로 가는 전차를 탄 끝물 투자자들은 부동산의 신이 아니라 부동산의 신의 할아비가 와도 마이너스가 될 수 밖에 없다. 앉아서 고스란히 몇 억을 날려먹는 것이다. 

난 이런 걸 보면서 도박과 비슷하단 생각을 한다. 무조건 로또 1등 당첨일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치않다. 일단 투자한 돈때문에 은행 빚에 허덕여야 하고, 재건축 승인이 나지 않으면 애간장이 녹아 내리고 똥줄이 탈 것이다. 승인이 난다 해도 집값이 폭등하는 일이 없는 이상은 이득이 남지 않는다. 게다가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율을 높인다고 해서 그 이득이 집 소유자에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두껍아 두꺼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도 아니고 13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30평대 40평대 아파트를 달라는 건 얼굴이 두꺼워도 너무 두껍다. 어느 정도 늘어난 평수에 대한 금액은 지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재건축 예정 단지에 있는 주민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다 보니 재건축 허가가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주민들의 잘못이라 할 생각은 없다. 건설사가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고 주민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 하나에 모두 건 사람들에게 돈을 몇 억씩 더 내라고 하니 그게 도둑놈 심보가 아니고 뭐냔 말이다.

이건 뉴타운도 마찬가지이다. 낡고 허름한 집을 없애고 아파트를 세운다고 해서 원주민들이 그곳에 입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 몇 억씩을 더 내야 입주가 가능하다. 이런 사람들은 집이 투자의 목적도 아니요, 다만 집의 목적에 딱 부합하는 실거주자들인데 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집을 뺏기는 것이다. 솔직히 나같은 경우에는 빚을 내서 재건축 아파트에 목숨 걸었다가 피를 본 이들은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고 실제로 제일 안타까운 하우스 푸어들은 바로 뉴타운 개발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민들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며 연세도 많다.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몇 억을 공수해온다는 말인가.

내가 오래전에 읽었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집과 자동차는 자산일 수 없다고. 왜냐하면 집은 실거주를 목적으로 할 때 현물화 될 수 없는 것이며, 자동차의 경우 사는 순간부터 가치가 떨어지고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돈을 공급해야 하는 돈까먹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워낙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나라의 하우스 푸어는 건설회사만 배불리고 중산층에 그 몫을 감당하라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정경 유착, 언론과의 야합의 더러운 고리에서 파생한 문제이다. 은행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도록 부추기는 정책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아파트 가격만 천정부지로 솟았다. 도대체 몇 억씩 하는 집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퍼센트나 될까. 그것도 순 현금으로 구매할 경우에 말이다. 물론 쓰는 돈의 규모는 대한민국 상위 몇 퍼센트가 사용하는 돈이 막대할지는 몰라도 결국 나라가 유지되게 하고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는 것은 우리 서민들이다. 이들이 이렇게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다면 개인의 파산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에 핵폭탄을 투하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금리는 높아지고, 언제 명퇴당할지 모르고, 물가는 미친듯이 오르고... 이런 상황에서 답이 있을까.

은행빚을 빌려 재건축 아파트를 사거나 신규분양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정말 로또 1등에라도 당첨되면 모를까, 그 큰 빚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집값은 한 번 떨어지면 잘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부동산에서 호가를 실거래가보다 높게 부를 수 밖에 없다. 또한 건설사들은 집을 팔아야만 이득이 생기기 때문에 무조건 개발호재만을 강조하고, 선분양 후시공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최대한 청약자에게 돈을 긁어내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가 없는 아파트도 만들고 있다. 이는 아무나 살 수 없는 아파트란 점을 강조해서 청약자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는게 아닐까.   

발로 뛰어 조사한 자료와 재건축, 신규 분양 아파트로 인해 고통받고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 사람들의 인터뷰 및 경제전문가들과의 인터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것들은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큼 알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집없는 중산층이라며 한 가족을 소개해 놓은 점이 굉장히 거슬리고 불쾌하다. 부부 합쳐서 연봉 1억에 40평대에 전세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없이 행복한 사람들의 사례라고 떡 올려 놓은 것이라니. 솔직히 말해 부부 연봉이 1억이 될 가정이 얼마나 되겠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또한 전세란 것은 2년마다 재계약때 대부분 전세금을 올려달란 이야기를 듣게 마련이다. 이 가정보다 연봉이 반밖에 안되는 가정이 재계약때마다 전세금을 올려줄 형편은 되겠으며, 이 가족들이 하듯이 잦은 가족 여행과 여름에는 스킨스쿠버, 겨울엔 스키라는 취미를 즐길 수 있겠는가? 

앞에서는 문제 제기와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에 대해 분석해놓고서는 뒤에서는 이런 황당한 결론을 내고 있다. 그래서 도대체 어쩌라고? 라고 되묻고 싶다. 연봉 1억 정도는 되어야 집없는 행복한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라도 낼 참인가? 입맛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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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1 - 죽음을 부르는 독극물의 화학사
존 엠슬리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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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르는 독극물의 화학사라는 부제나 띠지의 비겁한 살인자를 위한 죽음의 원소 가이드, 무서운 화학 이야기라 적힌 글귀를 보고 한숨을 포옥하고 내쉬었다. 일단 흥미로울 듯 해서 구입을 하긴 했지만, 난 화학같은 자연 과학 과목에는 젬병이었던 고교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거꾸로 봐도 인문계. 즉 난 국어나 영어같은 어학 과목에는 흥미가 많았지만 수학이나 물리 화학 같은 과학 시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수학능력시험을 볼 때도 수리능력이나 과탐은 거의 포기했을 정도니까.

그런 이유로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책을 펼쳐 들었다. 화학식이 줄줄 딸려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의 두려움과 걱정은 서서히 사라졌고, 결국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이 책을 다 읽어 버렸다. 물론 처음에 나오는 연금술의 위험한 원소들에서는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학자들의 이름이 줄줄 나와서 살짝 겁먹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연금술의 역사에서 이 책에서 언급되는 첫번째 독극물인 수은의 역할이라든지 연금술이 화학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것은 과학 수업을 받는다기 보다는 역사 수업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문과니까 아무래도 역사라고 생각하는 편이 수월하달까)

그렇게 연금술의 역사와 현대 화학의 역사와 중요한 학자들의 이야기로 첫번째 이야기가 끝나고, 드디어 수은과 관련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수은이라고 하면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유일한 금속이며, 우리 실생활에도 많이 사용되어 왔지만 지금은 유해한 금속으로 분류되어 그 쓰임이 많이 줄어 들었다. 난 수은이 들어간 제품이라고 하면 일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빨간 약(정식 명칭은 머큐로크롬)이다. 어린 시절 생채기라도 났던 날이면 어김없이 팔이며 무릎에 발랐던 빨간 약. 그땐 모르고 발랐지만 그때는 빨간 약이 만병통치약처럼 쓰였다. 나중에는 이 약에 수은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시판이 중지되었다. 또한 수은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는 건전지, 형광등, 온도계, 체온계 같은 실생활 용품도 많았다. 하지만 수은은 중금속으로 인체에 들어가면 배출이 잘 되지 않으며 중독을 일으킬 경우 심각한 지경까지 가게 되므로 지금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고 있다. 특히 수은 중독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의 미나마타현의 미나마타병은 초등학교 다닐때도 배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좀 충격을 받았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충치를 때우는데 쓰이는 아말감에 수은이 들어가 있다는 것. 나 역시 충치를 몇 개 때운지라 내 입안에는 수은이 사용된 아말감이 들어있다. 수은의 해로운 점을 생각하면 솔직히 섬뜩하다. 하지만 일단 충치를 때우는 데에는 아말감만 한 것이 없고, 그 정도로는 큰 해가 없다니 일단 안심하자 쪽으로 기울긴 하지만, 수은이란 것이 첫 발견되고는 해로운 물질이란 것으로 판명나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많이 쓰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다지 안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좋은 점이 먼저 부각되고 나중에 뒷통수 치듯이 해로운 점이 부각되는 게 이런 양면성을 가진 물질들의 속성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수은 이야기는 그 이후 수은 중독과 관련한 사례로 넘어간다. 유화물감에도 사용되었고, 벽지 인쇄 물감으로도 사용된 수은의 쓰임새를 비롯해 독살용으로 수은을 사용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 독살이란 게 끔찍하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인 누군가가 그렇게 당했다라고 하면 흥미가 동하는 게 인간인지라, 나 역시 이 부분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앨리스에 나오는 미친 모자 장수가 괜히 미친 게 아니라 수은 중독 때문이었고, 헬레네 섬에 유배된 나폴레옹 역시 벽지에 사용된 수은이 기체화되어 그것으로 인한 중독 증세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수은이란 것은 정말 만만히 보면 안되는 물질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무색무취라 자신도 모르게 수은에 중독될 수 있다는 부분이 정말 소름이 끼쳤달까. 현대에 이르러 수은 사용량이 줄어들고 수은대신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 없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원소는 비소이다. 비소라고 하면 드라마나 영화, 책을 통해 천천히 누군가를 중독시켜 죽이는 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 내가 읽었던 책 중에도 - 워낙 오래되어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 비소를 사용해서 누군가를 독살하는 책이 있었다. 지금이야 과학수사란 것이 잘 발달되어 사인이 불분명할 때는 부검을 통해 독살 여부를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과학수사가 발달되기 전까지는 비소로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비소는 쥐약에 쓰인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쥐를 잡기 위해 쥐약을 많이 놓았는데, 그게 바로 비소였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정도지만 그외에도 파리 끈끈이나 살충제, 방부목 처리에도 비소가 쓰인다고 한다. 비소편 앞부분은 수은편과 마찬가지로 옛날 사람들은 비소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그리고 비소가 생활용품에 얼마만큼 이용되었는지를 설명하고, 비소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과 비소때문에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았던 사람들의 사례가 나온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역시 비소를 이용한 독살 사건일 것이다. 이 독살 사건들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점은 독살이란 방법을 택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성이란 것이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불륜 상대와 결혼하기 위해 남편을 서서히 독살시켰던 여자들. 얼핏 생각하면 마녀들 아냐? 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지만, 물리적인 힘으로는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여성들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표시나지 않는 방법으로 죽게 만드는, 즉 자연사처럼 보일 수 있는 독살을 선택했다고 보여진다. 비소 중독은 대부분 구토와 설사를 동반하기 때문에 장염이나 위염같은 질병처럼 보이고, 그래서 그런 치료에만 집중하면 점점더 중독되어 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정말 끔찍하다. 한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고, 한 사람은 서서히 죽여 가는 것이라니. 보통 심장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 말에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란 말이 있다. 수은과 비소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수은과 비소는 인체에 해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인간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잘못된 사용으로 혹은 악의적인 사용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분류되었지만, 그 쓰임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수은과 비소를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힌다. 비록 여기에서는 인간에게 유해한 점이 부각되었고, 또 그것을 오용하거나 악용한 사례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 이런 것으로 보아 해로운 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 이는 양날의 검이라 생각한다. 2권에서는 안티모니, 납, 탈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작가는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놀래킬지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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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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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 드라마때문에 주변이 시끌시끌했었다. 꽃미남 도령들이 바글바글하게 나오는데 누가 혹하지 않으리요. 물론 그건 대부분이 여자들이고, 그 주위에 있는 남자들은 입을 삐죽였을게 분명하다. (笑) 예전부터 이 책이 참 재미있다 소리는 들어왔지만, 읽을까 말까 고민만 했었지만, 나중에 나도 늦바람이 들어 드라마 시청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 봤자 중반부 이후이고, 본방 사수는 커녕 재방 사수도 겨우겨우 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허구인데도 참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은 통칭 잘금 4인방이라 불리는 꽃도령들의 캐릭터가 살아 있는 듯한 것, 조선시대 특히 정조시대의 당파 싸움을 빼놓지 않은 것도 큰 몫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원작 소설은 어떨까. 드라마 앞부부을 보지 않아서 앞부분에 대한 비교는 힘들지만, 그래도 비교를 해보자면 이선준의 캐릭터가 드라마와는 좀 다른 점이 느껴졌다. 그리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미워할 수 없는 악역 하인수가 원작에는 안나온다는 것과 초선의 캐릭터가 드라와와 소설이 좀 달랐단 점일까. 하인수가 없으니 하인수를 금붕어 똥 마냥 따라다니는 덤 앤 더머 2인조도 없고, 효은이 병조판서의 딸이긴 하지만 하인수란 오빠는 없다란 것도 다르다. 오히려 소설은 거의 잘금 4인방의 이야기로만 스토리가 진행된다. 아참,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는 정박사(정약용)가 등장하지만 소설은 장박사가 등장하는 것도 다른가?

하여간 이러다가 드라마 이야기만 할 것 같다. 소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김윤희. 방년 19세. 남인 집안의 딸로 태어나 병약한 남동생과 어머니와 사는 소녀 가장이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 곡기가 끊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사를 해왔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동생의 약값 대기도 빠듯하다. 사수 노릇이나 거벽 노릇도 생원시 합격자에게 더 유리한 법. 거벽 자리 일감을 받기 위해 윤희는 동생 윤식의 이름으로 과거 시험에 응시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이 이선준이란 도령이었다. 잘생긴 용모에 다정한 성격, 그리고 높은 학식. 윤희는 선준에게 마음이 흔들리지만 지금 자신은 남자로 살고 있고, 또한 생원시에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그저 마음만 아플 뿐이다.

그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원시에 합격한 것은 물론, 임금의 명으로 성균관에서 수학할 것을 명받는데... 여자의 몸으로 남자들이 바글바글한 성균관에서 먹고 자고 공부를 해야하니 이거 참 낭패로다. 하지만 임금의 명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요, 울며 겨자 먹기로 성균관에 들어가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선준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성균관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건 미친 말(걸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고, 윤희가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여림 구용하도 만만찮게 신경쓰인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권은 윤희의 어린 시절과 가정 형편, 생원시 합격, 성균관 입학 등과 더불어 좌의정의 아들 이선준과의 만남, 걸오와 여림의 등장과 그들과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이선준이 노론이라고 질색팔색을 하던 걸오도 점점 이선준에 대해 조금씩 태도가 달라지고, 여림 역시 어떻게든 윤희의 정체를 밝히려던 것도 관두고 점점 윤희의 인간적인 모습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나중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상관없다, 오히려 남자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여림을 보면서, 참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싶었다. 물론 드라마에서도 화려한 차림새로 등장을 하는데다가, 입만 떼면 음담패설이요, 걸오 문재신에 대해서는 우정 이상의 감정을 보이기도 하는 캐릭터인지라 제일 눈에 띄는 캐릭터랄까. 하지만 겉모습이 그렇다고 해서 속까지 그런 타입은 아니다. 미소짓고 있지만 통찰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물이랄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역시 걸오 문재신이다. 말본새도 그렇고 차림새도 그렇고 거칠기 짝이 없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스하달까. 특히 윤희의 초라한 유건을 보고 필요도 없는 갓을 사오면서 얻어 왔다고 하지를 않나, 윤희가 다른 유생들과의 싸움에서 얻어 맞은 걸 보고 분노하지 않나... 이런 오빠가 있었으면 남부러울 게 없겠다 싶은 생각도 들 만큼 멋진 캐릭터가 걸오였다. 또한 그의 문장은 천하일품이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으리오. 조금 걱정되는 게 있다면 스스로를 잘 돌보지 않는다 함이겠다.

이선준은 분명 매력있는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둘에 비해 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역시 눈치가 없어서? 윤희 입장에서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눈치가 빨랐더라면 윤희가 남자가 아니란 건 진즉에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똑똑하고 예의바르며 걸오의 시비에도 유들하게 넘어가는 면이 있는 것에 비해 연애나 사랑 이런 쪽으로는 아예 감감인 순수도령일지도. 하여간 윤희는 그것때문에 애간장이 녹기도 하고, 애가 타기도 한다나 뭐라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면 일단 딱딱하다, 어려울 것이다라는 편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남장여인으로 성균관에서 수학하는 여성의 캐릭터를 만들어 냄으로써 한층 더 재미있어졌다. 또한 네 명의 캐릭터 역시 살아 있는 듯 생생하여 그 재미가 더해진다. 남장여자 대물 김윤식, 수재를 넘어 천재급인 가랑 이선준, 도성의 여성은 모두 내 손안에 있소이다, 라는 여림 구용하, 비밀이 많은 듯한 거친 남자 걸오 문재신까지 이 네 명 중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란 없다. 또한 이들의 스승인 장박사와 유박사의 만담같은 대화도 재미를 더해준다. 아직은 당파 싸움이라고 해도 소소한 것 - 성균관 내부에서의 - 밖에 없지만 2권에서는 홍벽서 사건과 관련해서 더욱더 불거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신분차별, 남존여비, 당파싸움 등 조선 정조시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성균관 유생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엮어가는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걸오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대물에 대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버럭쟁이, 여림은 이제 대물이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다는 현실론자, 선준은 자꾸만 대물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자신이 남색이 아닐까 고민하고 있다. 대물 역시 남장여자인 것이 탄로나지 않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이선준에게 자신이 여자인 것을 밝히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다. 동생의 병이 아니면, 자신의 집이 가난한 남인의 후손이 아니었다면 이선준이나 여림 구용하, 걸오 문재신을 만날 수나 있었을까. 역시 인생은 살아 봐야 아는 거다. 

성균관 사군자, 잘금 4인방의 그 후의 나날들은 어찌 전개될 것인지, 2권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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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정 2010-11-0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로코롬 달달한 이야기를 이제서야 접하시다니..^^
드라마와 책은 좀 다르죠? 드라마는 그야말로 '스캔들'로 결말이 나버리고 말았죠.
그래도 그동안 아주 즐겁게 보았답니다.
성균관이 가볍고, 아으~ 소리가 난다면 규장각은 좀 더 하드한 느낌!
 
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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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그리고 통칭 갈릴레오라 불리는 물리학자 유가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오컬트란 것일 것이다. 유가와 교수도 그렇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공학도 출신이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신비주의적인 것과 거리가 상당히 있다. 물론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해서 그런 신비주의적인 설정이 들어가지 말란 법은 없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그런 것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진상을 드러내게 한다. 그리고 그런 결말은 보통 인간의 무서울정도로 집요한 악의에서 나온 것이란 것으로 귀결된다.

이 책의 제목 예지몽 역시 신비주의적인 어감을 띤 단어다. 그러니 다른 작가가 쓴 책이라면 뭔가 상당히 신비로운 무언가가 나올 것을 기대하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인만큼 그 이며에 숨겨진 진실을 어떻게 파헤치느냐에 관심이 더 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신비로운 이야기인만큼 나중에 그 진상이 밝혀졌을 때 더욱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점도 있고, 신비로움이 사그라들어 아쉬운 면이 생길수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유가와가 등장한다고 할 때 기대되는 것은 역시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일 것이다.

총 다섯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예지몽, 사령, 폴터가이스트, 도깨비불, 또다시 예지몽이라는 재미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 단편인 <꿈에서 본 소녀>는 십칠년전 모리사키 레이미란 소녀를 만나게 될 것이란 예지몽을 꾼 사카기란 남자의 이야기이다. 십칠년전이라면 레이미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인데, 사카기는 어떻게 정확히 모리사키 레이미란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 사건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그 진상이 밝혀진다. 도대체 사카기의 어린 시절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을 보다>는 호소다니라는 남자가 창문을 통해 애인 기요미의 모습을 보았을 때, 기요미가 살해당했다고 한다. 절묘한 시간의 일치이다. 그렇다면 기요미의 모습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령일까, 아니면 죽은 영혼인 사령이었을까.

<떠드는 영혼>은 심령현상으로 잘 알려진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일을 하러나갔다가 실종된 남편.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들렀을 거라 추측되는 집에서 발생하는 기묘한 현상. 이 두 가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녀의 알리바이>는 한 남자의 교살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제일 의심가는 건 그 남자의 아내. 그녀의 알리바이에 숨겨진 진상과 그의 딸이 보았다는 도깨비 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예지몽>은 가장 씁쓸했던 단편이다. 완전히 망가져버린 한 가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을 피는 남편. 그리고 남편의 상대는 그가 이혼절차를 빨리 밟게 하기 위해 자살 연극을 벌이다 죽고 만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꿈에서 봤다고 하는 소녀가 나타난 것이다. 여자의 자살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인가?
이 단편의 재미는 마지막 한문장에 있다. 뒷통수를 치시는군. 그래도 유쾌했달까.

유가와는 구사나기와 함께 이 사건의 수수께끼를 과학적인 접근방식으로 하나씩 풀어나간다. 단편이기 때문에 복잡한 트릭은 없는 대신 사건의 뒤에 감춰진 진실 혹은 인간들의 악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 세상에 진짜 신비한 것은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 단편의 결말부를 보면서 혹시 이거 나중에 쓸 다잉 아이의 포석이 아닌가 싶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다잉 아이는 갈릴레오 시리즈는 아니지만 오컬트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답지 않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으면 참 여러가지 세상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세상에는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별 것 아닌 것같은 것으로도 사람들은 범죄를 일으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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