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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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리노 나쓰오의 데뷔작이다!
 이제껏 그녀의 소설들을 읽어 오면서 데뷔작은 어떤지 정말 궁금했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어둡고 악독한 악의를 그려낸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섬세하면서도 섬뜩했다. 나의 경우 아임 소리 마마로 기리노 나쓰오를 처음 만났는데, 아직도 그때의 섬뜩한 느낌이 떠오를 정도이다. 그러하기에 큰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데뷔작이란 것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내놓는 작품이며, 작가가 앞으로 진행할 책들의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당연히 내 기대는 클 수 밖에 없었달까.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간단하게 말하면 주인공 무라노 미로가 1억엔이란 돈을 들고 사라진 친구 우사가와 요코의 행방을 쫓는 스토리이다. 그 돈은 야쿠자의 돈. 게다가 요코가 사라진 날 새벽 미로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때문에 의심을 받게 된다. 결국 미로는 요코의 남자친구인 나루세와 협력하여 요코의 행방을 쫓게 된다. 기한은 일주일. 상대가 야쿠자인만큼 거부도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로는 요코의 자취를 더듬어 나가게 된다.

요코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미로는 자신의 친구 요코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원래 자존심 세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던 친구이며, 독특한 주제로 글을 써 성공했지만, 이제는 논픽션 르포 라이터 작가 데뷔를 준비했던 요코. 그 와중에 요코의 독일 취재 여행에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되고 점점 그 거리를 좁혀간다. 하지만, 요코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주인공 무라노 미로보다 친구인 우사가와 요코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녀가 몰랐던 친구의 이면. 그리고 놀라운 사실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단 몇 퍼센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특히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주기 싫은 것의 경계는 너무나도 뚜렷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히 요코의 성격상 자신의 약점은 악착같이 감추고 살아왔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요코의 행방을 쫓다 만나게 되는 여장남자 점쟁이, 암흑야회란 변태적 모임, 독일 취재와 관련된 네오나치즘, 트랜스배스타이트, 시체 사진 애호가 등은 지극히 단순할 수도 있는 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한 권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넣고 싶어했다, 라는 생각도 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마지막 반전이 남아 있다. 무라노 미로는 조사 탐정이었던 아버지 무라노 젠조가 한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정과 왜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상상력'을 동원해 이 사건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문득 요코미조 세이시같은 작가들이 자주 쓰는 '탐정은 마지막에 사건의 모든 진상을 한번에 터뜨린다'는 그런 법칙이 생각났달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책에 비해 무척이나 얌전하다. 하드보일드라고 하기엔 뭐랄까, 좀 약하달까.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아직 탐정이 아니다. 아마도 앞으로 탐정이 되어 활약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다양한 소재를 끌어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난삽하지 않다는 것과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잘 드러내는 섬세한 심리 묘사를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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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학교 - 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5
전성희 지음, 소윤경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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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거짓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아주 줄여야 하거나, 아니면 말다툼같은 싸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거짓말이 필요 없다. 유아기에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우리는 거짓말이란 것을 배우게 된다. 아무리 어른들이 거짓말은 나쁜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해도 경우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법을 배운다. 물론 이 경우에 있어서의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 즉 선의의 거짓말이다. 이 선의의 거짓말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더욱더 많이 하게 된다. 오늘 스타일이 좋은데, 오늘 화장 잘 받았는데 등등등.  

이 책은 거짓말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사회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메티스 스쿨, 일명 거짓말 학교라 불리는 이 학교는 수재들이 모인 곳이다. 이곳에서는 완벽하게 거짓말을 하는 법을 배워 나중에 국가 기관에서 일할 인재를 양성한다. 국가 기관에서 일할 인재라...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이 책이 우리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일단 화자가 되는 두 인물을 살펴보자. 나영이의 부모는 이혼을 한 상태이고, 부모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 것에 대해 큰 상처를 받은 아이이다. 또한 그렇다보니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아이이기도 하다. 그런 나영이의 꿈은 스파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추리소설이나 암호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다. 두번째 화자인 인애의 집은 무척이나 가난하다. 아버지가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집안이 기울자 인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결심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또래보다 조숙한 면이 있으며 차갑고 냉정한 면도 있다. 나영이와 인애는 표면적으로는 친구이지만 이 학교는 치열한 경쟁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곳이다보니 서로에게 감추고 있는 부분이 많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좀 다르다. 특히 인애의 나영이를 보는 시각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인애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믿지 않지만,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것은 거짓말 학교의 진실학 선생이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아이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거짓말 학교의 선생이라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지만 인애는 스스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특수한 학교에 다닌다는 자부심과 이 학교에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혜택 등은 아이들을 더욱더 치열한 경쟁으로 내몬다. 그러던 어느날 도윤이라는 아이가 쓰러지게 되고 밖에서 들어온 의사라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이 학교의 숨겨진 비밀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 의사는 도대체 무엇을 조사하러 거짓말 학교가 있는 섬에 온 것일까. 나영, 인애, 준우, 도윤은 자기들 나름대로 조사에 나서지만 아이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러던 중 진실학 선생님에게 그 일을 들키게 되고, 진실학 선생은 아이들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지만 학교에서 해고당하게 된다. 그리고 교장은 이들 네 명의 아이들에게 밀고자가 있었다면서 밀고자를 찾으라고 하는데...

밀고자. 네 명의 아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의심한다. 이 학교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누군지를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헤집는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경계한다. 이것이 바로 교장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결국 여자아이들은 밖에서 들어온 의사를, 남자 아이들은 진실학 선생님을 밀고자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런 아이들에게 교장은 한가지 제안을 하는데... 과연 이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이들 중 누구도 교장을 의심하는 아이는 없었다. 교장실에는 학교 곳곳을 감시하는 모니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밀고자라는 말에 당연히 자기들 중에 밀고자가 있거나, 자신들의 조사 내용을 알고 있는 진실학 선생이나 의사 선생이 밀고자라고 당연하게 여긴 것은 아닐까. 또한 자신은 거짓말을 하면 자랑하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교장의 말을 순진하게 믿은 것이 문제가 아닐까. 아이들은 끝까지 교장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은 교장의 뜻대로 굴러가는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은 똑똑하다 여기고 있지만, 결국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선택만이 남겨진 것이다. 

이 책은 곳곳에서 우리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쉰들러가 리스트를 만들어 유태인을 구해낸 선한 거짓말 같은 사례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정치인들이 위기를 모면하는 7단계 전략이라든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조작해서 이익을 취하는 제약회사 이사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악한 거짓말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부정을 감추려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또한 개인적인 것으로는 나영이의 아빠가 이모에게 폐차 직전의 차를 제대로 가격을 받고 팔아 문제가 된 것, 인애의 아버지가 지인에게 사기를 당한 이야기 등도 나온다. 이렇듯 우리는 구조적으로 거짓을 양산하고 거짓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보면 될까. 때로는 진실이 더 거짓말 같고, 거짓이 더 진실같은 현대 사회. 교장의 말처럼 우리는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하며 생존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음이 없다면 이 사회 자체가 유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거짓말 학교』는 어린이 책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SF적 설정과 추리 소설 기법을 등장시켜 거짓말을 권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 놓고 있다. 또한 극중 인물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삽화도 참 좋았다. 거짓말을 배우는 학교에서 거짓말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진실을 추구하고,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이 진짜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찾아가는 아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속이며 살아 가고 있다는 나영이의 말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에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일에는 늘 정당한 이유와 구실을 붙이는 우리들이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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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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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사랑을 믿는가?
어느 정도는.
그대는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가?
아니요,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사랑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는 이 세상에 진실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가?
글쎄요, 때에 따라 진실해지기도 하고 거짓되기도 한 게 사랑이겠죠.

누군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다면 내 대답은 위와 같을 것이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고 산다고 해서 사랑이나 연애 한 번 안해봤다는 건 아무도 믿지 않을 일이고, 실제로는 제법 많은 사랑과 연애를 해봤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사랑의 감미로움에 연애의 달콤함에 빠져 산적도 있었고, 그 감미로움이 씁쓸함으로, 달콤함이 차가움으로 돌아서는 것도 많이 경험해봤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이란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면 난 바보일까?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사랑의 종류는 ○○가지다, 라고 정의해 놓은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건 통계적 분류에 속하는 것일 뿐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정형화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사랑일테니까. 비슷해 보여도 속사정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사랑을 하다보면 누구나 이런 고민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처음엔 함께 있는 것으로도 행복했는데 그다음엔 손을 잡고 싶어지고, 입을 맞추고 싶어지고, 안고 싶어지고, 그리고 육체적 결합을 원하게 된다. 요즘은 우리 사회도 보수적 성향에서 벗어나 티비 드라마만 봐도 꽤 진한 러브신들이 나오는 것을 자주 보게 되고, 영화는 한 술 더 떠서 섹스장면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성(性)이란 문제에 민감하게 굴기 보다는 자유롭게 연애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랑의 궁극적 완성은 두 사람의 육체적 결합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물론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섹스란 두 사람만의 내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란 것이며 마음이 열렸을 때만 허락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귀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육체적 결합이 없으면 완벽한 사랑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은 마리아란 한 여성을 등장시켜 그녀의 삶을 조망함으로써 사랑과 성(性)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마리아는 브라질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여느 소녀처럼 사랑, 연애, 결혼, 출산, 예쁜 집 등의 평범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어린 시절 첫사랑은 시작도 해보지 못한채 끝나버렸고, 그후의 연애란 것도 그녀에게 좋은 감정을 남기지 않았다. 마리아는 자신과 사랑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단정해 버리고, 그냥 시집이나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휴가차 떠난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스위스인을 만나 스위스로 건너가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삶은 그녀가 제안받은 것처럼 화려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마리아는 다시 브라질로 돌아갈까 어쩔까 하다가 결국 스위스에서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일상회화조차 할 수 없는 그녀가 돈을 벌 직장을 구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녀는 일단 스위스인에게 받은 돈으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며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모델 에이전시에 사진을 넣고 모델 제안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그녀에게 온 연락. 아랍인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대신 큰 돈을 손에 넣게 된다. 마리아는 자신이 이곳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창녀가 되는 것뿐이라 생각하고 창녀가 된다. 마리아는 오직 돈을 벌 생각을 하고, 브라질에 농장을 살 돈만 생긴다면 그곳으로 꼭 돌아가겠다고 결심한다. 그녀의 창녀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점점 그 일에 익숙해져갔고, 절대 마음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녀는 제법 돈을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한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랄프라는 한 미술가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게 되었던 것이다.

랄프는 스물 아홉에 이혼 경력 두 번의 잘나가는 화가. 마리아는 스물 세살의 창녀. 어떻게 보면 삼류 신데렐라 스토리가 나올 설정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랄프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던 삶을 살았던 탓에 사랑이나 섹스에 흥미를 잃어버린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마리아는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몸은 팔아도 마음에는 굳건히 빗장을 치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자,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이 두사람의 관계 변화에 다 담겨 있다고 보여진다. 사랑이란 것을 믿지 않거나 혹은 거부하는 사람이 마음을 열고, 사랑을 하고, 서로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하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진지한 과정을 거친다. 어쩌면 둘 다 사랑의 이면에 감춰진 쓰라림과 아픔을 알기에 그리고 진실함이 없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육체적 결합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두 사람이 결합을 원했을 때는 완벽하게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이 된 것이 아닐까. 소유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소유할 수 있는 사랑을 하게 되었다, 랄까. 

난 사랑이란 것의 속성은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의 속마음이 진짜 어떨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군가를 소유하고 싶어지고, 그 정점에 육체적 관계란 것을 위치시킨다. 하지만 때로 그런 관계에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에 생기는 허탈함이랄까. 그건 아마도 두 사람의 마음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일수도 있다. 

마리아와 랄프는 어떻게 보면 아주 특수한 커플이다. 그들의 사랑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지리한 시간을 들여 사랑을 완성해나가는 것도 어쩌면 그런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을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봐도 문제는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마리아와 랄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이 소설을 완벽하게 소화시키기에 문제가 좀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언어와 철학적 문장, 사랑과 성(性)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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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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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이란 제목을 보니 드라큘라 백작의 성같은 그런 기괴하고 섬뜩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게다가 표지에 등장하는 남자의 모습 또한 기괴하기 짝이 없다. 옷깃으로 보이는 손가락들. 한 사람만의 손이 아닌듯한 모습과 머리와 몸이 각각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닐까 싶은 부조화스러움은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책을 받기 전에는 장편소설인줄 알았는데, 목차를 훑어보니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이었다. 총 8개의 소제목이 있지만, 제일 마지막의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 ……>는 나머지 단편 일곱편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시작점이자 도착점이라 봐도 좋을 듯 싶다. 일곱개의 단편이 모두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흥미를 유발했다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정말 앗! 소리가 나오게 만들기 충분했달까.

일단 표제작이자 첫번째 단편인 <퀴르발 남작의 성>은 1967년에서 2006년까지 약 300년동안 변해온 퀴르발 남작 이야기에 대한 변천사라고 해도 무방할듯 하다. 시대에 따라 퀴르발 남작이 어떻게 해석되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 단순한 두려움의 대상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관점으로, 반대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관점으로 변화하는 대비적 구성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이는 당시 시대상을 극명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잡아먹었다는 퀴르발 남작, 그의 성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고, 그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은 말그대로 셜록 홈즈가 등장한다. 셜록 홈즈가 요양차 내려가 있는 곳에서 발생한 사건, 그 사건의 피해자는 바로 아서 코넌 도일 경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셜록 홈즈와 코넌 도일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 셜록 홈즈는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코넌 도일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깨닫게 되는데... 실제로 창조자와 피조물의 사이지만, 오히려 나중에는 코넌 도일보다 더 유명해진 피조물 셜록 홈즈. 여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코넌 도일의 작가로서의 고뇌와 고민이란 부분이다.

사람들은 허구 속 탐정에 열광하지만 자신은 그의 창조자로서 존재할 뿐, 실존적 자아는 희미해진다고 느꼈겠지. 질투와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켰을테고, 급기야 그 탐정이 자신의 등에 달라붙어 상상력과 에너지를 빨아먹는 흡혈귀처럼 보였을 걸세. (…) 피조물이 점점 현실의 신화가 되어갈수록 창조주는 모든 가능성을 거세당한 채 신전 한구석의 석상으로 굳어간다. 참을 수 없었겠지. 결국 도일 경은 자신의 무기인 펜을 들고 창조주로서 남은 유일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 아니었을까. (72p)

실제로 셜록 홈즈는 실존 인물처럼 생각되어진 창조의 소산이다. 코넌 도일 경 역시 자신의 창작물과 현실에 괴리를 느껴 당분간 절필을 했지만, 사람들의 요구에 다시 펜을 들기도 했다. 자신의 피조물이 자신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기분은 어땠을까. 나 역시 홈즈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홈즈에 열광했지 코넌 도일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녀의 매듭>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차단하고 조작해서 다른 기억을 만들어 내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나쁜 기억은 어떻게든 잊고 싶어하고, 좋은 기억은 살을 덧붙여 더욱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라고 하는. 여기에 등장하는 화연 역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물론 그런 경우 힘든 일은 결코 극복하지 못한다는 부작용이 따르지만...

<그림자 박제>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기억나지 않는 기억과 기억하고 있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기억나지 않는 기억이란 말자체가 말이 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대형마트 화장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하지만 범인은 자신이 그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정신을 사로 잡고 있는 것은 강철수 본인과 괴팍한 성격의 톰, 수줍음 많은 제리, 그리고 대인기피증이 있는 강우빈이이다. 조실부모하고 혼자 힘으로 회계사가 되어 결혼까지 했지만 기러기 아빠 생활에 힘겨워진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다른 인격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과연 그의 마음 속에는 정말 다른 인격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찰 - 휘뚜루마뚜루 세계사 1>은 제목이 꽤 길다. 이 단편은 소설이란 느낌보다는 보고서같은 느낌이랄까. 마녀의 문화사같은 느낌도 들지만, 신화를 접목시켜 이야기를 더욱 방대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서슴지 않는다. 짧은 글에 비해서는 내용이 너무 많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지도 모르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이게 전부 진짜 보고서처럼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이 글을 휘뚜루마뚜루 쓴 게 아니라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썼기 때문이리라.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는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중 가장 밝고 가볍다. 이혼한 남자와 결혼을 앞둔 여자(둘은 대학 선후배 사이이다)가 만나 나누는 이야기에 관한 것인데, 서로 공통점이 없고 결혼이란 주제는 피하다 보니 이야기의 공통점을 가지기 위해 '마리아'라는 사람을 창조해내게 된다. 물론 마리아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다. 대학 후배이자 결혼을 앞둔 여자인 수연의 롤플레잉 게임속 아바타라고 보면 더 정확할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것이 마리아인 것이다. 우리도 아바타 게임을 즐겨 한다. 현실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때문에 말이다. 아마도 수연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삶을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괴물을 위한 변명>은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원작 소설과는 달리 무자비하고 냉혹한 괴물로만 그려진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피조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체를 꿰맨 괴물의 이름은 원래부터 없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괴물영화가 되어버린 프랑켄슈타인에 감춰진 뒷 이야기, 그것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동생의 이야기를 통해 재창조된다. 그러고 보니 난 프랑켄슈타인 원작 소설을 읽은 적이 있던가...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 기존의 이야기는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재창조되고 있으며, 결말은 상당 부분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문학이란 것의 원래 목적이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재해석하도록 하고 있던 게 아니던가. 물론 장르에 따라 분명한 결말을 내는 작품들도 있지만, 이렇게 재해석의 가능성과 상상의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퀴르발 남작의 성은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 제일 마지막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즐거운 마무리이자 시작은 정말 '최고'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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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헤도로 Dorohedoro 3
하야시다 규 지음 / 시공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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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때문에 퐌타스틱하게 암울한 도시 홀. 그곳에는 마법사의 마법때문에 머리가 도마뱀으로 변한 인간 카이만과 원래는 마법사이지만 홀에서 살고 있는 만두 가게 아가씨 니카이도가 살고 있다. 베프이자 싸움 파트너인 카이만과 니카이도는 카이만을 그렇게 만든 마법사를 찾아다니며 무의미한(?) 살생을 거듭하고 있다. 마법사의 마법이 먹히지도 않고, 머리가 잘려도 머리가 되살아나는 카이만, 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길래 이렇듯 보는 사람 애를 태우는 것일까. 결국 카이만과 니카이도는 직접 마법사의 세계로 잠입을 시도한다!

2권은 대부분 마법사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물론 평범한 인간들이 사는 도시 홀의 이야기도 잠시 나오는데, 첫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잠시 소개를... 카이만이 알바를 뛰는 병원 의사의 친구인 카스카베 박사는 마법사의 마법에 걸려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인물. (실제 나이는 예순쯤 된다고 한다) 카스카베 박사는 홀에서 수거한 마법사들의 시체를 가지고 마법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 인물로 니카이도와 카이만이 마법사의 세계로 갈 때 사용할 문과 마법사들의 마스크를 마련해준다. 홀에서는 민낯이 허용되지만 마법사의 세계에서 마법사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이다. 뚜둥~~ 카이만과 니카이도 쓸 마스크는!? 푸핫.... 또 한번 빵 터지게 만드는군. 니카이도는 몰라도 카이만에게 토끼귀가 달린 마스크라니! 그래도 잘 어울리는군. 

한편 마법사의 세계에서는 고급 마법사들을 위한 파티가 열린다. 바로 살아있는 시체를 되살리는 '생명의 마법사'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마법사의 핵심이 밝혀지는 순간! 아, 마법사는 완전히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로구나. 그러나 저러나 참 설정이 재미있다. 하여간, 이 파티에 참석한 건 엔, 신, 노이, 에비스. 엔의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마법사' 두 명 중 남자를 처치하고 여자를 자신의 파트너로 맞기 위해 신과 노이를 투입시킨다. 한편 에비스는 그곳에서 자신을 알아 보는 남자를 만나는데.. 도대체 이 어리바리 귀여운 에비스의 정체는 뭐야?

하여간 엔의 시도는 성공했으나, 나온 것은 재미있는 것이었다!? 이후로 엔의 육아일기 시작! 험악한 외모나 무자비한 성격과는 달리 이런 다정한 면도 있구나, 엔에게는.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신과 노이는 여전히 멋지고, 에비스는 여전히 어리바리 귀엽다. 한편 마법사의 세계에 온 카이만은 정신을 잠시 잃으면서 자신의 입속에 있는 남자의 이름을 알아내게 된다. 그리고 엔이 키우는 마법사가 그 남자의 머리를 되살리면서 그가 부활하게 되는데...

마법사의 세계에 잠입 성공한 니카이도와 카이만. 그들의 목적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일단 '그 남자'의 이름을 알아낸 것만 해도 일단은 성공인 것일까. 하지만, 그 남자의 정체는 여전히 암흑속에 가려져 있다. 십자눈 조직의 보스는 과연 누구이고, 그 남자를 죽인건 누구일까. 여전히 몇가지를 새로 알려주고 새로운 수수께끼를 내는 잔혹 코믹 블랙 판타지 도로헤도로 3권. 카이만과 니카이도는 마법사의 세계에서 무사히 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도로헤도로 3권의 캐릭터 팝업은 엔 패밀리의 신이다. 일명 장도리 신이라 불리는 남자. 노이의 파트너로 마스크는 좀 거식하지만 실제 얼굴은 꽤 귀여운 편. 말랑하게 생겼다고 얕보면... 장도리가 날아오니 조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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