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량의 상자 3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시미즈 아키 그림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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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차 세계 대전이후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상황의 일본. 그곳에서 의문의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상자속 토막 살인 시체, 유즈키 카나코의 살인 미수 사건 및 유괴 미수, 그리고 유즈키 카나코 유괴 사건, 아메미야의 실종, 스자키 살인 사건, 그리고 온바코 님의 등장.
고서점 교코쿠도의 추젠지 아키히코, 작가 세키구치 타츠미, 탐정 에노키즈, 형사 키바, 기자 토리구치가 각각 조사한 사건의 진상들이 직소 퍼즐 조각처럼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 들어 간다.

망량의 상자 3권은 심비(深秘)의 온바코님의 정체와 토막 살인 사건의 범인, 그리고 유즈키 카나코의 살인 미수 사건에 대한 진상이 밝혀진다. 사람들의 불행을 상자에 담아 봉인한다는 온바코님, 그리고 그것을 실현에 옮기고 있는 테라다 효에. 과연 테라다 효에는 어디에서 착안해 온바코님을 만들어 내고 축문을 읊는 것인지, 그 배후가 드러나게 되는데, 그 배후에는....

서로가 자신의 내세라 믿던 유즈키 카나코와 쿠스모토 요리코. 쿠스모토 요리코 앞에서 벌어진 유즈키 카나코 살인 미수 사건의 범인은? 과연 쿠스모토 요리코가 증언한대로 검은 색 옷을 입고 장갑을 낀 사람이 범인인 것일까. 아니면... 이 사건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말로 하면 '마가 끼었다'라는 것이다. 자신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뭐에 씌인 듯이 갑작스런 일을 벌이는 것, 그것을 토리이마(혹은 토리이모노)라고 한다. 이것을 재앙을 부르는 귀신의 일종으로 형상화한 것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유즈키 카나코를 떠민 범인은 밝혀지지만, 그 와중에 쿠스모토 요리코가 사라지게 된다. 쿠스모토 요리코의 어머니 역시 온바코님을 믿는 신자였고, 토막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온바코님을 믿는 신자들의 딸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토막 살인 사건은 온바코님과 관련된 것일까? 그렇다면 쿠스모토 요리코 역시 온바코님과 관련한 사건의 희생자가 될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그 배후에 있는 것일까?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다가, 사건들이 각각 일어난듯 보여서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꽤나 힘들다. 소설만큼 복잡하지는 않지만 - 만화란 장르의 특성상 장광설은 많이 줄어들었다 - 여전히 복잡하다. 또한 교코쿠도의 설명은 들어도 들어도 여전히 복잡하기만 하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는 다른 귀신도 아니고 망량이란 것이 등장한다. 다른 요괴나 귀신에 비해 복잡하기 그지없는 망량이란 존재. 과연 교코쿠도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3권까지는 교코쿠도는 안락의자탐정처럼 고서점 교코쿠도 안에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아직 그가 나설 때가 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발품을 팔아 뛰어다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게다가 교코쿠도의 과거사도 밝혀지는데... 지금의 교코쿠도와는 완전히 다른 교코쿠도의 모습을 보는 것도 꽤나 큰 즐거움이었달까. 서서히 막바지를 향해 가는 망량의 상자, 다음권에서의 교코쿠도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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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 고양이 홈즈의 사랑의 도피 삼색 고양이 홈즈 시리즈
아카가와 지로 지음, 한성례 옮김 / 태동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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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높은 곳에서는 덜덜, 피나 시체를 보면 기절, 여자에겐 벌벌, 방향감각 제로의 어리바리 형사 가타야마와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홍차를 좋아하는 우아한 암컷 고양이 탐정 홈즈 콤비의 다섯번째 시리즈인 삼색 고양이 홈즈의 사랑의 도피편은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이다.
책을 펼치고 목차를 보니 프롤로그가 5개나 된다. 무슨 프롤로그가 이렇게 많아. 이래서는 프롤로그의 의미가 없잖아! 라고 항의하고 싶은 마음은 …… 전혀 없다. 이 또한 작가 아카가와 지로의 유머 감각이 담뿍 담겨있는 부분이니까 말이다. 프롤로그 부분은 일단 이 책의 핵심이 되는 사건의 내용을 담고 있다. 12년전 사랑의 도피를 결심한 가타오카 요시타로와 야마나미 하루미와 현재 그들을 찾는 사람들, 가타오카 요시타로의 동생 가타오카 슈지로의 등장, 그리고 가타오카 코자부로, 야마나미 겐조의 죽음의 미스터리 등이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조상대대로 철천지 원수지간으로 지낸 가타오카家와 야마나미家의 장남과 장녀가 사랑의 도피를 한다. 서로의 집안에서 허락받지 못한 그들은 추적자들을 피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12년 후인 현재에는 가타오카家의 코자부로와 야마나미家의 겐조가 서로를 죽인채 발견되었다. 하지만 지문이 없다? 그렇다면 제 3의 인물이 범인이란 말일까? 이 두사람의 죽음으로 두 집안은 자신의 집안을 이을 요시타로와 하루미를 찾아 나서게 된다. 과연 그들은 살아있기나 한 것일까?

딱 잘라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각자 결혼해서 다른 사람과 살고 있었다. 가타오카 요시타로는 레이코란 아내와 마사코란 딸을 두었고, 하루미는 미우라 마코토와 결혼해서 아들 마사야를 두고 있다. 12년전의 사랑의 도피는 어쩌고?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모든 것이 사람의 생각대로 되는 법은 아니지 않은가. 어?거나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니 뭐 그걸로 다행일지도.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낙이 온 다음 또다시 불행이 찾아온다. 요시타로의 아내 레이코가 가스 중독으로 죽다 살아 나고, 하루미의 남편 미우라 마코토는 누군가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게다가 가타오카 요시타로의 동생 슈지로 역시 심장마비로 죽은 채 발견된다. 거기에다 이제는 미우라 하루미마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과연 이 사건들에 공통점은 존재하는 것일까.

일단 결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씁쓸했다. 범인에게 인간성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욕망과 욕심이 사람의 목숨보다 더 앞서는 것일까, 인간의 악의는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왜 자기가 중간에 껴들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든 건지... 게다가 진짜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있었다니! 이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게다가 이시즈는... 어휴. 난 정말 이런 근육 바보가 정말 싫다. 가타오카 요시타로와 야마나미 하루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타야마 남매를 의심하다니. 가타오카 + 야마나미 = 가타야마의 공식이란 것은 이시즈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그런 답이 아닐까?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이시즈를 보니 하루미와 가타야마가 나누는 대화에 백 번 공감한다. '정신착란'이라든지, '가타야마는 이시즈를 쏘아 죽여 버리고 싶어졌다.' (103p)는 말은 꼭 내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았달까.(笑) 게다가 그놈의 식탐, 어쩔 수 없겠니!!! 근데도 하루미는 이시즈가 그다지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루미도 남자 취향이 참 독특하달까.

이렇다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홈즈가 제일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홈즈는 이번에도 상당히 많은 활약을 한다. 공포관(시리즈 6권)에서 미약한 활동을 보상하려는 듯 상당히 많은 단서를 제공하며, 수사에 많은 도움을 준다.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아기의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가타야마의 부탁(?) 때문이었지만, 두번째는 스스로 몸을 날려 목숨을 걸고 아기의 목숨을 구하기 때문이다. 자궁 수술로 인해 아기를 가질 수 없는 홈즈의 모성 본능인 것일까. 괜시리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거나 홈즈가 없으면 사건의 단서조차 잡을 수 없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으니...
홈즈의 문제(?)라면 자신이 의욕이 생길 때나 협조해 주지 그렇지 않을 때는 방관하는 것이랄까. 물론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헛다리 짚고 있다거나, 삽질할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笑) 이렇다 보니 가타야마의 상관 구리하라가 "너는 어찌 됐든 상관없는데, 고양이는 반드시 와야 해." (138p) 라고 하는 말에도 백 번 공감이다. 가타야마 입장에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겠지만 어쩔 수 없지. 홈즈가 더 유능한 걸. 또한 이번에도 가타야마의 여난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슈지로의 애인이 가타야마를 덮치려하는데, 거참 가타야마도 참 이상한 여자만 걸린단 말야. 불쌍하게스리. (이럴 때만 불쌍하다)
 
참! 이번에는 다른 지방의 경찰도 등장하는데 그 사람에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처음 나왔을 때는 엄청 재수없고 구리구리한 캐릭터인데, 그 사람의 끈기와 이상한(?) 발상으로 범인을 검거했으니 말이다.

어리바리 형사와 똑똑한 고양이 홈즈의 대활약. 다음편인 삼색 고양이 홈즈의 기사도는 독일의 고성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다른 홈즈의 활약, 기대하겠어! (사람은... 별로 기대 안한다) (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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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의 탄생 - 일본 서스펜스 단편집
사카치 안고 외 지음, 이진의.임상민 옮김 / 시간여행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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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나오는 스릴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마음을 졸이는 느낌이며, 한글로는 긴장감이나 전율이란 단어로 바꿀수 있다고 나온다. 그렇다면 작게 씌어진 서스펜스의 뜻은 뭘까. 서스펜스는 불안감과 긴박감이란 뜻을 가지는데, 어찌 보면 두 가지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스릴과 서스펜스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해서 무척이나 많은 기대를 안고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내게 어떤 전율과 긴장감을 안겨줄까?

총 7편의 작품은 국내에서는 잘 만나볼 수 없는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작가는 도구라 마구라의 작가인 유메노 큐사큐, 그리고 불연속살인의 사카구치 안고 두 명 뿐이다. 사카구치 안고의 작품은 불연속살인사건을 읽은 적이 있지만, 아직 유메노 큐사큐의 도구라 마구라는 아직 읽지 못했기에 쇠망치를 통해 그의 작품의 경향이 어떠한지 살짝 엿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야마 요시키의 시체를 먹는 남자와 히사오 주란의 곤충도는 아주 짧은 단편이며, 괴담이나 기담으로 봐도 좋을 듯 하다. 다이쇼 시대 초반, 한 중학교에서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에 관한 이야기로 제목이 작품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그런지 긴장감은 좀 없었던 편이랄까. 곤충도의 경우에는 인간이 사망한 뒤에 찾아드는 벌레들의 순서를 소재로 해서 만든 단편이다. 지금은 법의학이란 것이 잘 발달되어 이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일반인이 그 순서를 읊어준다. 왠지 그게 더 섬뜩하달까. 두 편의 작품을 읽어보면 요즘의 괴담과는 좀 다른 맛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좀 약하다 싶은 생각이랄까. 하지만 시체를 먹는 남자가 1927년, 곤충도가 1939년에 씌어진 작품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당시 사람들에겐 꽤나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유메노 큐사큐의 쇠망치는 아버지가 악마라 부르던 남자인 숙부와 함께 살게 된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의미에서 보면 숙부같은 정도의 남자는 악마 축에도 못끼겠지만, 1920년대에 씌어진 작품이란 걸 감안한다면 숙부는 악마에 버금가는 존재였으리라. 한 집안을 파멸로 몰고 갔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소년은 숙부밑에서 얌전하게 자라난다. 이 소년의 성장담이 주된 내용인데, 어떤 사람이 진정한 악마인지를 되짚어 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진정한 악마란, 자신을 악마라고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일컫는 것이다. 스스로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 채, 사람들의 행복과 생명을 갖가지 방법으로 잔인하게 부정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백주 대로를 활보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악마다.
그러니까 진정한 악마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존재하는 것이다.
(46p) 

작품의 결말을 보면서 나는 앞에 나온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연 이 조건에 합당한 사람은 진정 누구였는지....

고가 사부로의 함정에 빠진 인간은 어찌 생각해보면 잔혹 코믹극같다. 빚에 시달리던 부부의 각각의 행동,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 과연 진짜 함정에 빠진 인간은 누구일까.

운명이란 놈은 언제든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어. 그게 인생이야. (138p)

와타나베 온의 승부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둔 형제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싸움이라고 해도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같은 것이랄까.

사카구치 안고의 가면의 비밀과 오사카 케이키치의 등대귀는 탐정이 등장하거나 탐정과 비슷한 인물이 등장해서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추리 소설이다. 살인 방화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맹인안마사라는 설정을 가진 가면의 비밀은 목격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고 든다. 물론 맹인이라는 것 때문은 아니고, 사람들이 흔히들 착각하는 자신의 감각에 대한 반박이랄까. 등대귀는 한적한 등대에서 일어난 사망 사고를 다루는데 처음에는 괴담분위기로 나가지만, 후반부로 접어 들면서 추리가 중심이 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괴담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서 밍밍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1920~30년대에 나온 작품이란 것을 감안해 본다면, 그리고 이 작품들이 일본 추리 소설 역사의 시발점에 있는 작품이란 것을 감안해 본다면 그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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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가시연꽃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진 동화집 3
신응섭 글.사진 / 여우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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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보면 우포늪 가시연꽃이란 제목이 크게 적혀 있다. 그 위를 보면 대한민국 구석구석 포토 동화집이라는 말이 있다. 포토 에세이가 아니고 동화? 으음, 포토 동화란 도대체 어떤 것이지, 라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이 책은 경남 창녕에 있는 국내 최대 내륙 습지 우포늪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약 1억 4천만년 전에 생성되었다고 추정되는 우포늪은 현재 람사르 협약에 따른 보존 습지로 지정되어 있고 멸종되었던 따오기 복원사업도 진행중이다. 멸종보호 식물인 가시연꽃을 비롯해 수많은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우포늪,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가시연꽃 이야기 - 포토 동화


우포늪에는 수많은 식물들이 살고 있다. 그중에 가시연꽃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한다. 잎이 워낙 많이 크게 자라기 때문에 자라풀이나 생이가래 같은 식물에게 너희들때문에 자리가 비좁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거기에 덧붙여 사람들은 자신을 보러 우포늪에 오기 때문에 너희같은 잡초는 쓸모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이젠 가시연꽃과 친구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편하다고 좋아했는데, 서로 잘 어울리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가시연꽃은 슬며시 외로워진다. 예전에는 예쁜 꽃을 피우면 모두들 가시연꽃을 칭찬해 줬는데, 이젠 아무도 가시연꽃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지도 않았다.

"우리가 친구들에게 너무 심했나봐."
제일 먼저 꽃을 피운 가시 연꽃이 말했습니다.
"그래, 친구들과 같이 장난도 치고 싶은데 ……. 즐겁고 힘들 때 서로 힘이 되었다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48p)

하지만 가시연꽃은 좀처럼 친구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순간을 잡지 못하고 속으로만 고민하고 있다.

<가시연꽃은 멸종보호식물로 지정되어 보호받는 종이다. 봄이 되면 가시연꽃잎은 하나둘씩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그후 7~8월에 자줏빛 꽃을 피운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우포늪에는 축하할 일이 생겼다. 쇠물닭이 낳은 알이 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씩 알을 깨고 나오는 작은 쇠물닭 아기들.


하지만, 그때 쇠물닭 둥지로 침입자가 다가왔다. 그건 바로 외래종인 뉴트리아. 남아메리카가 원산으로 설치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우포늪에 있는 수생 식물의 줄기와 잎을 갉아 먹고, 빠른 번식으로 우포늪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동물이다.

이런 뉴트리아가 다가오자 쇠물닭 부부는 새끼들이 무사하길 바라며 그 자리를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몸집이 훨씬 큰 뉴트리아에게 맞서기엔 쇠물닭 부부의 몸집은 너무나도 작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시연꽃이 용기를 내어 뉴트리아를 자신의 가시로 공격한다.

휴우, 다행히 뉴트리아는 가시에 찔려 놀라 도망을 가고 쇠물닭 가족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모두 가시연꽃의 덕분이다. 우포늪의 다른 친구들은 가시연꽃의 용기를 칭찬한다. 평소같으면 잘난 척 했을 가시연꽃은 별 것 아니라면서 겸손해한다. 가시연꽃은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우포늪은 자신만이 살아 가는 곳이 아니라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 그래야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포토 동화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왔구나. 사진작가 신응섭씨가 수많은 사진을 찍고 그중에서 사진을 골라 이야기로 만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을까. 동물이나 식물은 작가가 원하는대로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사진을 찍어 그중에서 고를 수 밖에 없다. 또한 찍은 사진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일테지만, 이렇게 근사한 동화가 탄생했다는 것은 우포늪에 대해 잘 알고 우포늪의 동식물에 대해 2년이라는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관찰을 했는가를 방증한다.

생태계의 보고, 우포늪 - 사진 이야기


이 책은 가시연꽃과 그 주변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우포늪의 풍경을 찍은 사진을 보면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해서 해가 뜨고 질 때의 다른 풍경을 멋지게 담아내고 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물안개, 해가 뜨고 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나는 우포늪 곳곳의 모습들은 이게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인가 싶을 정도로 신비롭다.


또한 동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수생 식물, 곤충이나 동물에 관한 것들도 이렇게 따로 올려 두었다. 호랑거미며, 줄점팔랑나비, 부전나비, 메뚜기, 풀무치, 네발나비, 꼬리명주나비들의 사진은 생생해서 마치 곤충도감을 보는 듯 하다. 특히 내가 메뚜기라 착각하던 것이 풀무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냥 나비로 알던 부전나비나 네발나비의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있어 좋았다. 나도 가끔 나비 사진을 찍곤 하는데, 늘 이름을 몰라 나비들이란 제목을 붙여 사진을 정리하곤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와 있는 건 노랑어리 연꽃, 자라풀, 마름, 왕부들. 부들말고는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식물이었다. 가시연꽃이 잘난 척을 했던 것도 우리들이 가시연꽃밖에 보지 않았고, 가시연꽃 이름밖에 몰라서 그랬던가 아닌가 싶어 괜시리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동식물들을 그냥 지나치다니!


우포늪은 여름에는 수면 위에 수생식물들로 가득 덮히지만 겨울이 되면 수생식물들의 대부분은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쓸쓸하지 않다. 왜냐하면 온갖 철새들이 날아오는 곳이 우포늪이기 때문이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160여종의 철새가 겨울을 이곳에서 난다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까 싶다.

우포늪은 이렇게 계절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인간이 살기도 전부터 존재해 왔고, 지금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동식물의 집이 되어 주는 우포늪. 한때는 이런 습지가 쓸모 없는 것이라 해서 메꿔져 없어진 내륙 습지도 많다. 다행히 우포늪은 람사르 협약으로 보호 습지가 되었지만 지금은 뉴트리아라는 외래종이 들어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뉴트리아는 식용으로 수입되었다. 하지만 설치류라는 것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기를 거부했고, 그렇게 해서 방사되거나 우리를 탈출한 뉴트리아는 엄청난 번식속도로 우포늪을 점령했다. 뉴트리아가 먹는 것은 수생식물의 줄기와 잎. 먹는 양이 엄청나 우포늪의 식물에 둥지를 틀고 살거나 우포늪의 식물위를 걸어 다니며 사냥을 하는 새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 이건 모두 우리 인간의 잘못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우포늪 가시연꽃은 사진으로 만들어진 동화를 통해 공존의 의미와 자연 보호에 대해 이야기한다. 딱딱한 어투로 우리는 우포늪을 보호해야 합니다, 라는 것보다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다. 습지는 생태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자연을 파괴해왔지만, 반대로 보호하고 보존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우포늪은 멋진 풍경을 가진 습지 혹은 철새 도래지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동식물을 품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우포늪에 사는 동식물은 이미 공존의 의미를 알고 있다. 우리들도 자연을 단순히 이용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공존하는 것이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48p, 62p, 73p, 16~17p, 36~37p, 42~43p, 86~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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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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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교양과목 수강 중에 광고에 대해 그룹 발표를 할 일이 있었다. 아마도 사회대학에서 들었던 강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만 해도 광고란 굉장히 직설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때 주제로 잡은 것은 광고 속에 숨겨진 성적 메세지 같은 것이었는데, 조사를 하면서 헉! 하고 놀랄 정도로 은근한 메시지가 들어가 있는 것이 많았다. 그 외에도 내가 기억하는 광고에서는 전자 제품이라면 기능을 강조하고, 먹거리라면 그 맛을 강조하는 등의 광고랄까. 또한 외국 배우나 가수를 데리고 와서 찍은 광고도 한때의 붐이었다. 그때는 무척이나 멋진 광고였다고 생각하던 광고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뭐랄까 참 촌스럽고 애매했다. 어떻게 보면 광고란 상품을 팔기 위한 선전의 목적으로 쓰였던 것이니 기능이나 맛을 강조한 광고가 많았다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광고가 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표현이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지 광고랄까. 기업의 이름같은 것을 전면으로 내세운 광고가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극대화 하는 광고들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광고란 것은 시쳇말로 그 나물에 그 밥이었기에 별로 관심도 두지 않고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리기 일쑤였지만 그 광고들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광고가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박웅현 ECD가 만든 광고였다. 와우, 그랬구나.

우리는 영화를 보면 영화 감독을 떠올리지만, 광고를 보면서 광고를 만든 사람을 알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몇 십초에 휘리릭 지나가는 광고는 그때그때의 감탄을 자아낼 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처럼 골라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인상에 남았을지라도 금세 잊게 되지만 그래도 좋은 광고였다는 여운만이 약간 남는 정도랄까. 광고란 것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여운을 남기는 것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광고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광고란 것은 창의성이나 창조성이 필요한 일이란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예전에 카피라이터를 등장인물로 내세운 영화를 봤을 때, 나도 저런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동경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면에서 창의성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냥 동경으로 끝내버렸다. 그럼, 창의성이란 것이 광고를 만드는 사람에게만 필요할까? 물론 그것은 아닐 것이다. 창의성이 필요한 것은 문화 예술 전반을 아우른다. 과학이나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답을 요구하는 쪽이 아닌 감성을 자극하는 분야는 창의성이 기본이라 생각한다. 문학 작품, 그림, 음악 등은 모두 창의성을 요구한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창의성이란 특정 분야의 사람들이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 관점을 좀 달리해서 보자면, 창의성이란 문화 예술적인 분야에서만 발휘되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생활에서도 창의성이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를 남들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깨끗하게 하는 법도 창의성이 필요할 것이고, 그릇을 예쁘게 쌓는 방법이라든지, 똑같은 물건을 가지고 더 예쁘게 집을 꾸미는 법이라든지 하는 것에서도 필요한 것은 창의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창의성이란 우리의 삶의 전반을 지배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범위가 너무 넓어지니 이 책은 범위를 한정해서 광고를 중심으로, 박웅현 ECD의 창의성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게 최고로 발현된 것이 박웅현 ECD가 만든 광고들이다.

그럼 박웅현 ECD는 타고난 광고쟁이일까?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창의성이란 것을 발현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련을 쌓았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가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한다. 창의성의 원천은 인문학적 소양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그 지향점은 지켜야 할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적이라는 말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가치지향적이라는 뜻이 된다. (153P)

광고를 비롯해 예술적 활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향하는 것이다. 예술가 혼자 좋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작품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공감하고 즐기고 좋다고 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 대해 잘 아는 것이 필수이다. 사람에 대해 잘 알려면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는 것에는 나도 공감한다. 긴 시간의 역사가, 수많은 사람의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 있는 것이 책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박웅현 ECD가 만들어 내는 광고는 사람을 알고 사람을 위해 만든 광고이다. 그가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사람과의 소통의 기술 역시 중요한 것이라 한다. 이 역시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시대를 잘 읽는 것, 그러면서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창의성과 관련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시대를 잘 읽는 것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 낸다는 것이고,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다른 가치를 끌어낸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박웅현 ECD가 만든 광고를 예로 들면서 박웅현 ECD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광고라는 것을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니 좁게 보자면 광고를 만드는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도 들수 있을지 몰라도, 넓게 보자면 창의성을 키우고 창의성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소양이 무엇인지, 창의성을 어떤 식으로 뱔현할 수 있을지 그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것은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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