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축안경 : 카츠야×미도우 편 - 러쉬노벨 로맨스 286
타마미 지음, 미사사기 후리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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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난 귀축안경 게임에 푹 빠져 거의 일주일을 매달려 31개의 엔딩을 모두 봤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루트는 역시 미도우가 등장하는 루트로, 노말 카츠야와 귀축 카츠야 루트를 모두 좋아했다. 이 소설은 귀축 카츠야 X 미도우 루트 중에서 베스트 엔드 루트를 소설화한 것이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엔딩이란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처음 이 게임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일본인 친구들과 채팅을 하면서 계속 귀축안경 게임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공통의 화제에 동참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원래의 목적을 잊은 나는 채팅은 뒷전으로 하고 계속 이 게임에 매달려 있었다. 의외로 하나의 엔딩을 보는 데에 끈기와 근성이 필요했었던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인터넷에서는 공략본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난 그런 것 필요 없어, 라고 고집을 피우며 묵묵하게 게임에 임했다. 그 결과 몇 개의 엔딩이 계속 같은 것으로 나온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남들은 베스트 엔딩을 보기 쉽다고 했는데, 난 의외로 배드 엔딩이 더 잘 나왔다. 내가 음험한 캐릭터라서 그런가? 하여간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난 베스트 엔딩을 보게 되었고, 조그맣게 환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후로는 어떻게 되었냐구? 귀축안경 R의 엔딩을 모조리 보는 것을 완수하고 게임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게임을 하면서 거의 폐인처럼 살았던 게 그 이유였다.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너무나 소모가 심했다고나 할까.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이 지나 난 이 게임을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물론 작년 여름에 게임을 다 끝내고 난 후 노말 카츠야와 미도우 편의 소설을 만나긴 했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건 역시 귀축 카츠야였으니 반가울 수 밖에.

'이것은 단순한 안경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당신에게 있어 행운의 아이템같은 것이죠. 이것을 몸에 지닌 순간부터 당신의 인생은 크게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당신은 자신의 본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8p)

사에키 카츠야는 작은 회사에 다니는 소심한 샐러리맨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밤, 수수께끼의 남자를 만난다. 그가 건넨 건 안경 하나.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그 안경을 착용한 후 사에키 카츠야는 유능한 이미지의 샐러리맨이 된다. 미도우 타카노리는 사에키 카츠야의 거래처에서 일하는 유능한 엘리트 부장이다. 처음부터 그의 유능함과 오만함에 반발심을 가진 카츠야는 미도우를 서서히 압박해 가며 자신의 손아귀속으로 그를 몰아 넣는다. 프라이드 높은 미도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항을 한다. 그게 오히려 카츠야에게 있어서 더욱 더 그를 궁지로 몰아넣고 싶은 감정을 부추겼을 것은 뻔하다.하지만  유능한 엘리트 사원이었던 미도우는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당신은 내 품으로 추락하는 수 밖에 없어. 돌아갈 장도소, 도와줄 사람도 없는 처지로 오로지 내게 매달리는 수 밖에 없게 될 거야…." (126p)  

귀축 카츠야가 미도우를 상대로 벌이는 일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정말이지 미도우의 목숨만 붙여 놓은 상태로 그를 희롱한달까. 결국 감금하고 학대하는 것까지 나오게 되니 더는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결국 미도우는 이 일로 직장을 잃고 삶의 의지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유능하면서도 도도한 미도우 타카노리의 모습은 더이상 찾을 수가 없어지게 되자, 카츠야는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결코 당신을 이런 식으로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닌데…. 난 단지 당신이… 갖고 싶었던 것 뿐이야…. (…) 미도우 타카노리…. 난… 당신의 마음이 갖고 싶었어. … 좀 더 빨리,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어야 하는데." (136~137p)

비뚤어진 애정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렇게 끝나버리면 베스트 엔딩이 아니다. 따라서 이 뒤에 또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건 비밀, 책으로 확인하시길) 하여간에 귀축 카츠야가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이 장면을 난 정말 좋아했다. 책으로는 볼 수 없지만, 카츠야의 품안에서 텅빈 눈을 하고 있던 미도우의 눈빛이 변하는 절묘한 순간. 캬~~ 지금 생각해도 명장면이다. 비록 미도우의 모습은 엉망이었긴 해도 말이다.

소설은 게임과는 달리 미도우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물론 두어 부분에서 카츠야의 시점이 드러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미도우의 시점이다. 카츠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게임을 생각하다가 미도우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설을 읽으니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미도우의 감정 변화를 더 잘 알 수 있어서 이쪽도 꽤 만족스러웠달까.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중간중간 생략된 내용이 꽤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카츠야와 미도우의 이야기가 극단적인 것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좀 아쉬운 부분이랄까. 소설에서 추가된 것은 엔딩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요건 게임에는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인데, 왠지 게임에서 생략된 부분을 약간 변형해서 만든 이야기같단 말이지. 미도우가 카츠야의 상사인 카타기리와 통화할 때.. 뭐 그런거. 그래도 이제 와서 다시 게임을 해 볼 엄두도 못내는 나에게 있어 이 책은 가뭄에 단 비같은 존재가 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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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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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뱀파이어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릴때 - 초등학교 시절 -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읽으며 뱀파이어 이야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후로 고전으로 취급받는 뱀파이어 이야기들을 읽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이형의 존재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뱀파이어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했었다. 인간과 가장 닮은 모습을 가진 불멸의 존재들. 하지만 요즘 들어 읽어본 뱀파이어 이야기는 독자에게 어필하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로망을 담은 소설들이 많았다. 고전적인 뱀파이어 이야기와는 달리 너무 가벼웠달까. 특히 하이틴을 주인공으로 하는 뱀파이어 이야기는 작가의 로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반복되는 스토리에 넌덜머리가 났고,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에 짜증이 났었다. 그 뒤에 읽었던 시리즈물은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여주인공의 개차반같은 성격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읽는 것을 관둬버렸다. 그나마 요즘 나온 뱀파이어 시리즈물 중에서 성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물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뱀파이어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가 등장하는 소설이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존재들이 등장하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요소중의 하나였다.

그렇다 보니 렛미인을 선택할 때 무척이나 망설이게 된 것도 당연하다. 이미 하이틴들이 나오는 뱀파이어물에는 신물이 났던지라, 성인들이 나오는 뱀파이어물을 선호하게 되었던 나. 그러나 렛미인은 하이틴도 아니고 오히려 로우틴들이 등장하다 보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연령이 그렇다 보니 판타지 성향이 더욱 강하지 않을까 하는 것도 망설여지는 이유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성향의 책을 좋아하는 지인의 추천 - 하이틴들이 나오는 그런 뱀파이어 이야기와는 다르다 -도 있었고, 오히려 아이들이 주인공이기에 더욱 순수한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도 작용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엄마와 단 둘이서 사는 열두살 소년 오스카르는 외톨이이다. 학교에서는 자신보다 힘센 아이들에게 늘 시달림을 당한다. 그것은 말로 인한 폭력을 넘어 육체적인 고통까지도 가한다. 왜 오스카르가 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아이들은 괴롭힐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오스카르는 그런 일을 엄마에게 절대 이야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여린 엄마는 그 일에 대해 상처받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아픔은 오스카르의 마음에 고스란히 축적되고 있었다.

오스카르가 사는 곳은 스톡홀름의 교외 블라케베리란 곳으로 한적한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이다. 오스카르보다 약간 더 나이 많은 아이들은 본드를 흡입하고 물건을 훔쳐 장물로 팔아 넘긴다. 술주정뱅이 남자 어른들은 변두리 술집을 전전한다. 어딜 봐도 음침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숲속에서 온몸의 피가 몽땅 사라진 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오스카르는 혹시 자신의 초능력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그 전날 그 숲 근처에서 썩은 나무를 나이프로 찍어댔기 때문이다. 그정도로 오스카르의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여전히 외롭고 힘겨운 열두살의 나날을 보내는 오스카르는 한밤 중의 텅빈 놀이터에서 엘리라는 이름을 가진 또래 소녀를 만난다. 엘리는 오스카르의 이웃집에 사는 소녀로 낮에는 한발짝도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엘리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또래보다 작고 여린 몸집의 엘리. 오스카르와 엘리는 서로가 가진 외로움에 반응한다. 그렇게 외로움이 외로움을 불렀던 것일지도... 엘리와 오스카르는 밤에만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루빅스 큐브를 맞추기도 하고, 모스 부호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기도 한다.

오스카르는 엘리와의 만남이후 조금씩 변해간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괴롭힘도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을 뿐이지만, 이제는 반격에 나선다. 하지만 이런 오스카르에 변화와는 달리 엘리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다. 자신을 위해 일해주던 호칸이 그 일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엘리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사냥에 나서지만 열두 살 난 아이의 몸을 가지고 있는 엘리에게 어른들을 사냥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뱀파이어들은 대부분 인간보다 강한 존재라고 여겨진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안개나 박쥐로 변신하기도 하며, 보통의 인간보다는 몇 배나 힘이 세기 때문에 인간에 비해 강자로 여겨진다. 하지만 엘리는 포식자의 입장에 있어도 약자이다. 낮에는 나오지도 못하고, 어른을 사냥할 때는 힘에 부치기도 한다. 결국 엘리는 호칸의 도움을 받아 이제까지 생명을 연장해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을 사냥하지만 인간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연장해 온 엘리의 존재는 안쓰러움을 안겨준다.

오스카르와 엘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 간다. 하지만 오스카르는 어떤 일을 계기로 엘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불현듯 깨닫게 된다. 엘리의 정체를 알아버린 오스카르는 앞으로 엘리를 어떻게 대할까. 그리고 친구의 죽음에 관한 진실과 사랑하는 여인을 습격한 존재의 정체를 쫓는 라케는 앞으로 엘리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이젠 뱀파이어의 인간 사냥이 아니라, 인간의 뱀파이어 사냥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엘리와 오스카르는 친구로 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엘리는 인간들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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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4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시미즈 아키 그림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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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의 일본. 전후의 복구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무사시노 연쇄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유즈키 카나코의 살인 미수 사건 및 유괴 미수 사건, 스자키 살인 사건, 유즈키 카나코 유괴 사건, 그리고 이번에는 쿠스모토 요리코마저 토막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작가 세키구치, 탐정 에노키즈, 형사 키바, 기자 토리구치의 조사 내용를 바탕으로 추론하던 고서점 주인 교코쿠도는 마침내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미묘하게 어긋나 있으면서도 미묘하게 겹쳐지고 있었다.

망량의 상자 4권은 온바코님을 모시는 교주와의 결전, 그리고 미마사카 근대의학연구소와 관련한 진실이 밝혀진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이 결전이었달까. 추젠지 아키히코는 교코쿠도라는 고서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가업을 이어 신관으로 일하기도 하고, 요괴 퇴치도 하는 인물이다. 그러하기에 그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이렇게 '무언가'를 퇴치하기 위해 나서는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럴때 역시 세키구치의 말처럼 그의 이야기를 따라잡기도 벅차긴 하지만, 그래도 차분히 읽다보면 가닥은 잡힌다. 이번에 온바코님의 교주와의 결전에서 망량에 대한 설명과 모든 사건의 근간이 되는 온바코님의 탄생, 그리고 그 배후에 대한 이야기는 막힘없이 터져나왔다. 귀신보다 훨씬 더 오래된 존재인 망량. 그것은 정의하기 힘든 만큼 퇴치하기도 힘든 존재. 역시 ' 망량'은 인간이 감히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일단 온바코님과의 결전이 끝나면, 그후에는 무사시노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검거가 우선이다. 그러나, 형사 아오키는 눈앞에서 그를 놓쳐버리게 된다. 범인의 집에서 발견한 것들. 그것은 그가 연쇄살인범이란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의 상자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리고 잃어버린 '어떤'것을 되찾고 싶어하는 욕망. 그것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범인 역시 팔다리가 절단된채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키바, 에노키즈, 세키구치, 토리구치 등은 미마사카 근대의학연구소로 달려가게 된다. 뒤이어 도착한 교코쿠도. 이제 어둠에 감춰진 비밀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교코쿠도가 드디어 안락의자탐정에서 벗어나 몸소 나서기 시작했다. 이 사람의 특징은 일단 자기 집에서 모든 정보를 통합해서 추론한 뒤 직접 나서는 것. 따라서 교코쿠도가 나선다는 것은 사건의 진상을 확실하게 꿰뚫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때로는 발품 팔아 돌아다니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이 남자. 그의 박식함과 혜안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볼 때마다 놀란달까.  

4권은 무사시노 연쇄 토막살인 사건의 모든 진실이 밝혀졌지만, 아직 남은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미마사카 근대의학연구소의 진실이란 것이다. 무대는 준비되었다. 배우도 모두 갖춰졌다. 교코쿠도가 최종적으로 정의할 망량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는 이 모든 망량을 퇴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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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파 3 - 신장판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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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멀수도 있고 아주 가까울 수도 있는 미래. 축제같았던 시끌벅적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훗날 저녁뜸의 시대라 불릴 시대를 살아가는 알파와 살아 남은 소수의 사람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이미 옛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해버렸다. 도로와 건물이 있던 곳은 물에 잠겨 버렸고, 물의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조용히 그 시간을를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형 로봇 알파는 서쪽 언덕에 있는 카페 알파에 살고 있다. 카페의 오너는 오랜기간 여행을 떠난 상태이며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그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없겠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알파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로봇이기에 그런 기다림도 즐겁다. 오랜 기간을 살면 무료해질듯도 하고, 더이상 할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알파에게 하루하루의 시간은 무척이나 소중하다. 알파 자신은 변하지 않겠지만, 알파를 둘러싼 사람들과 환경은 자꾸만 변해가기 때문이다.

카페 알파 3권의 내용은 인간형 로봇 알파와 코코네의 교감이 주를 이룬다. 자꾸만 물에 잠겨 이제 얼마남지 않은 모래 사장위를 걷는 알파와 코코네, 그리고 처음으로 해보는 수영.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던가. 어쩌면 오랜 기간을 살아온, 그리고 오랜 기간을 살아갈 알파에게도 여전히 할 일이라든지, 하고 싶은 일은 끊이지 않은 모양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 인간들은 알파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에 권태감을 느끼거나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에 무료함을 느낀다. 그것은 쏜살같이 지나가 언젠가는 아득한 과거가 될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알파는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알파와 코코네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 떨어진 원두를 보충하기 위해 알파는 요코하마를 거쳐 무사시노까지 가게 된다. 알파가 있는 바닷가 마을과는 다른 무사시노의 냄새, 풍경. 그런 사소한 차이를 감동으로 받아들이는 알파의 감수성에는 늘 놀라게 된다. 알파가 사는 곳에서의 밤은 바다 냄새가, 코코네가 사는 무사시노의 밤에는 산의 향기가 풍겨온다는 말에 지그시 눈을 감고 내가 사는 곳의 밤의 냄새가 어떤지 맡아보고 싶어졌달까.

알파의 이야기는 주로 '지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선생님과 주유소 아저씨의 이야기는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황혼기에 접어든 세대이기 때문일까. 그들이 추억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떠나보내는 과거의 추억은 애잔하기만 하다. 한편으로 타카히로와 마키야는 미래를 상징하는 세대가 아닐까. 그 아이들은 미래에 어떤 것을 보게 될까.

카페 알파가 그려내는 마을의 풍경과 도시의 풍경, 그리고 변화한 자연의 모습은 현재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물에 잠겨버린 도시라든지, 비스듬하게 깎여버린 후지산의 모습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짐작을 가능케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예전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모습에도 만족하는 알파의 모습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이미 변해버린 것, 사라진 것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에 지나간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겨야 아름다운 기억이 될 것이다.

3권을 읽다가 문득 궁금한게 생겨났다. 그건 비행선과 알파 실장이란 인물.
그녀는 도대체 누구지? 혹시 미래의 알파, 아니면...? 지금으로서는 단서가 적어 누구라고 확정할 수는 없을 듯 하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되겠지.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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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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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으로는 그 내용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온다 리쿠의 책들이 바로 그러하다. 왠지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책 제목들은 판타지 소설이나 환상 소설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밑도 끝도 없는 미궁을 보는 듯하다. 이번에 나온 여름의 마지막 장미 역시 이 제목 자체로는 그 어떤 상상도 불허한다. 일단 제목에서 떠올려지는 이미지는 마지막으로 남은 장미의 서글픔, 안쓰러움, 쓸쓸함과 마지막이기에 아름다운, 그런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떨까. 

매년 가을 산중의 호텔에서는 재벌가인 사와타리家에서 주최하는 파티가 열린다. 주최자는 이치코, 니카코, 미즈코란 이름을 가진 세 자매. 이들은 손님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그게 이야기의 특징이다. 또한 사와타리家 세자매의 이야기 방식 역시 무척이나 독특하다. 마치 세사람이 만담을 하듯 서로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올해는 미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건 왜일까. 참석자들은 그런 위화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내지는 못한다. 그런 와중에 변사사건이 발생한다.

이 책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프롤로그 부분인 주제, 그리고 나머지인 제 1변주에서 제 6변주까지 화자가 바뀌어가면서 스토리가 진행된다. 제 1변주를 읽을 때만 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하지만 제 2변주부터 위화감이 들기 시작한다. 물론 그것은 화자가 바뀌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묘하게 뭔가가 어긋난 느낌이랄까. 그것은 제 3변주에 들어가면서 확실성을 띄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제 6변주에 이르러 폭발하듯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참석자들은 서로에게 뭔가를 감추고 있었다. 그것은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이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와타리家와 관련한 비밀이면서 동시에 각 화자들과 관련한 비밀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은폐되어 왔지만, 결국 압력을 이기기 못하고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것이랄까.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폭탄이 터지듯이 그렇게 터져나오는 진실은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것이며, 바닥을 알수 없는 어둠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비밀이란 것은 감추려 하면 감출수록 드러내보이고 싶기도 한 속성을 가진다. 그 비밀과 진실은 허구로 가장된 이야기 속에 감춰져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 왔다. 그러던 것이 한 번에 터져나온 것이었다.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은 온다 리쿠가 자주 쓰는 '기억'이란 것과 맞물려 있다. 사실 인간의 기억이란 것은 무조건 사실이나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도 각각의 화자가 기억하는 것은 때로는 진실일 수도 있고, 때로는 각색되고 윤색된 기억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혹은 날조된.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기억은 근사하게 치장하고 싶어하고, 좋지 않은 기억은 머릿속 깊은 곳에 봉인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하기에 각각의 화자가 기억하는 것들의 속성은 애매모호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과연 이들이 기억하는 것 중에 진짜 일어났던 일들은 무엇이고,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일까.

산속에 위치한 호텔의 음울함을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해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그곳은 일종의 클로즈드 서클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밀폐된 공간도 아니요, 누군가 그들을 속박하고 가두는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그곳을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또한 그 공간이 악의에 가득찬 곳이라고 하면서도, 세자매가 가진 악의를 꿰뚫어보면서도 자신이 가진 악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자들. 누가 더 악한 자들일까. 제 6변주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의 스토리는 알랭 로브그리예가 쓴『지난해 마리앙드바드에서 ㅣ 불멸의 여인』이라는 책의 본문을 중간중간 삽입해 진행된다. 이 삽입구들은 책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어떨어져 기억의 애매모호함이나 환상적인 속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또한 이 내용 역시 조작된 혹은 날조된 기억과 관련한 내용이기에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기본으로 깔고 있지만, 날조된 기억과 기억의 애매모호함이라는 환상성이 가미된 소설이 탄생했다. 일본에서는 2004년에 초판 발행된 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가 우리나라에서 인기 작가에 꼽히는 작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 의외인 부분이다. 아마도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부적절한 관계, 부적절한 마음, 그리고 서로에 대한 애증의 소산인 악의가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에 조금은 충격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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