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차는 아이들
김훈 글, 안웅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 축구 열풍이 불었다. 물론 그 전에도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전국민적으로 축구에 열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취미로 축구를 하는 사람이든, 축구경기를 관전하는 사람이든 모두 작은 공하나에 환호성을 지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축구란 것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다. 물론 팀을 짜서 경기를 할 수도 있지만 둘이라도 가능하고, 혼자서도 공을 차면서 놀 수 있다. 그래서 그럴까, 책 표지에 나온 한 꼬마 아이는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혼자서 놀면 외로워 보일만도 하지만 공 하나가 그런 느낌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공차는 아이들에 나오는 사진들은 모두 공과 관련한 사진들이다. 그렇다고 아이들 사진만 있는 것도 아니요, 공을 차는 사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사진이고, 공을 차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공 하나로 즐거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달까.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이든, 학교 운동장이든, 골목길이든, 바닷가 모래사장이든. 공과 사람만 있으면 어디나 놀이터가 된다. 이는 놀이로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스포츠라면 정식 구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규칙에 맞춰 플레이를 해야하리라. 하지만 그런 공간이 아닌 곳에서 그저 공을 차는 것은 더이상 스포츠가 아니라 놀이이다.

스포츠는 인간들의 싸움이나 전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편을 갈라 서로를 공격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인 것이다. 하지만 놀이에서는 이기든 지든 그건 그렇게 상관이 없다. 그저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보다는 즐거운 빛이 먼저 떠오른다.

또한 스포츠와 달리 놀이란 개념에서는 나이도 상관이 없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부터 희끗희끗하게 세어가는 머리카락을 가진 노년의 사람들까지 모두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놀이이다. 어른이 되서 아이들 놀이를 하면 나잇값을 못한다고 하지만 공을 차고 노는 것은 나잇값과 하등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지구를 닮은 동그란 공. 그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군대 시절의 추억도,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찼던 서울 광장의 추억도. 그저 하나의 공일뿐인데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또한 공은 그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큰 존재감을 가진다. 공을 찬다는 것은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공을 차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면 그 공간은 가득차 보인다. 물론 혼자 차는 공놀이 역시 마찬가지로 공간을 꽉 채운다. 혼자 가만히 서있었다면 휑하니 비었을 공간이 공을 차는 사람들로 인해 꽉 찬 공간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생각해낸다는 것은 분명 또하나의 창작이다. 나도 가끔 사진을 찍지만 수많은 사진을 골라내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들기란 힘들다. 게다가 자신이 찍은 사진도 아닌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의도가 담뿍 담겨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혀 위화감없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사실 김훈 작가의 소설은 너무 어려워서 달랑 한 권만 읽고 다른 책은 읽을 엄두도 못냈었다. 난 쉬운 말로 씌어진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도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으면 읽은 느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이 포토 에세이는 작가의 다른 점을 발견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아직도 난 작가의 소설에 도전할 엄두는 못내지만 에세이정도는 도전해 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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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고도 1
호시노 릴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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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껏 여성향 만화를 주로 그려오던 호시노 릴리가 순정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을때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반신반의하며『소녀요괴 자쿠로』를 읽기 시작했는데,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을 했다. 메이지 시대라는 배경도 마음에 들었고, 요괴와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를 그려내고자 하는 설정도 꽤 마음에 들었다. 그에 비해『꿈꾸는 고도』는 완벽한 판타지물이다. 마법이 존재하는 고에티메아라는 왕국을 배경으로 그리고 있는 만화이기 때문이다.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꽤나 마음에 들어서 일단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다.

고메티메아 왕국의 제 1왕녀 올가는 마법을 좋아하는 공주님이다. 혼기가 찬 지금 구혼자들중에서 남편을 골라야만 하는 올가는 일부러 어려운 주문을 해서 혼례를 미루고 있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건 어릴 때부터 올가를 지켜온 친위대장 지오토이다. 올가의 다섯번째 요구에 구혼자들이 가져온 마법의 보물 중에 있는 서클릿. 그것은 올가를 이국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곳에서 만난 복면의 남자와 그곳의 공주 아베드. 올가와 아베드는 생김새만 다르지 많이 닮아 있다. 억지스런 혼례를 치뤄야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올가가 가진 마법의 보물과 똑같은 것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도 꼭 닮았다.

내용은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달까. 앞이 너무 빤히 보이는 설정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올가와 아베드는 서로 다른 세계에 공존하는 같은 인물, 지오토와 복면 남자 역시 같은 인물이 아닐까 짐작된다. 아베드는 자신의 운명을 거역하지 못했지만, 올가는 자신의 운명을 거역할 것이란 것도 대충 짐작이 된다. 안그럼 이야기가 안되니까. 그리고 올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해질거다...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잔혹동화같은 설정이 있긴 해도 결국엔 동화로 끝날 것 같단 소리다. 더군다나 난 올가의 캐릭터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자기중심의 어리광쟁이에 불과하니까. 즉, 스스로의 잔혹함이 어떤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다. 아이는 천진난만해서 잔혹하다, 뭐 그것과 비슷한데 올가는 천진난만은 아니고 세상물정을 몰라서 잔혹하다고 할까. 하여간 조금은 식상한 분위기로 흘러가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  

역시 판타지는 함부로 그릴 게 못되는 건지도. 게다가 이 책이 일본에서는 2008년에 처음 단행본화되었는데, 아직도 2권이 안나왔다. 잡지 연재중인데, 격월로 연재를 하는지... 하여간 처음부터 마음을 휘어잡는 매력이 없는데, 이 작품을 기다릴 사람이 있을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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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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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클로즈드 서클 트릭을 사용한『인사이트밀』과 코지 미스터리인『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등으로 잘 알려진 요네자와 호노부의『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각 작품이 미묘하게 연결점이 존재하는 연작단편집이다. 처음에는 소제목들을 보면서 단편이라 생각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이 완벽한 연작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달까. 게다가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은 정말 상상을 뛰어 넘었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는 무라사토 유우히의 수기와 탄잔 후키코의 회상으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유우히는 탄잔家의 하녀로 후키코의 몸종이다. 집안의 후계자인 후키코를 보호하기 위한 유우히의 노력과 유우히와 후키코 사이에만 존재하는 비밀, 그리고 유우히는 모르고 후키코만 아는 어떤 것이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후키코의 오빠 소타의 죽음과 할머니, 고모로 이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 과연 그 범인은 누군인가. 이 단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후키코가 유우히에게 말해주는 수많은 책들의 제목이다. 이 책중에 이즈미 교카의 책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더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여기에서 그만!)

<북관의 죄인>은 무츠나 가문의 전 당주인 쿄이치로가 밖에서 낳은 딸 아마리가 무츠나 가문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리는 북관이라 불리는 곳에서 장남 소타로를 감시하게 된다. 소타로는 아마리에게 이런 저런 부탁을 하는데, 과연 그의 의도는? 그리고 소타로가 남긴 그림에 얽힌 비밀은?

<산장비문>은 타츠노家의 별장에서 일하는 야시마라는 별장지기의 이야기이다. 일년 내내 그곳에서 머무르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야시마. 하지만 왠일인지 손님이 오지 않는다. 별장지기로서의 그녀의 임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날 뜻하지 않는 손님이 찾아오게 되는데...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는 오구리 가문의 영애 스미카와 스미카의 몸종 타마노 이스즈의 이야기이다. 스미카와 이스즈는 동갑내기로 스미카는 이스즈를 친구처럼 대했다. 하지만, 스미카의 아버지가 오구리家에서 쫓겨나고, 스미카의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생긴 아이가 오구리 가문의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스미카는 남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되는데...

<덧없는 양들의 만찬>은 오데라 가문의 딸 마리에가 남긴 일기를 누군가가 읽게 되면서 시작된다. 오데라 가문의 음험한 비밀과 새로 들어온 최고의 요리사 츄냥, 마리에가 츄냥에게 만들라고 한 아밀스탄 양요리. 과연 아밀스탄 양요리는 어떤 맛이었을까.

각 단편의 내용을 놓고 봤을 때는 이게 무슨 연작이야? 하는 생각도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단편들 속에는 한가지 공통된 것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부잣집 아가씨들의 독서 모임인 '바벨의 모임'이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바벨의 모임'이 완벽하게 내부까지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에 의문이 생겨난다. 하지만 마지막 단편에서 '바벨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가 밖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 모임의 멤버가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떤 운명의 길을 걸었는지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오 마이 갓, 이라고 하면 호들갑스러울려나? 하지만 한편 한편의 완결부분을 볼 때도 그렇지만, 마지막 단편에서 그것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이는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작품들의 또다른 공통점으로는 오래된 가문, 즉 구가(舊家)가 등장한다는 것이 있다. 모두 재벌가로 지역 유지로서 활약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집안이지만, 모두 음험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후계자 문제와 관련한 끔찍한 비밀들이다. <산장비문>을 제외하고는 죄다 후계자 문제와 관련한 다툼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후계자 문제와 집안의 체면을 위해 피붙이에게도 냉혹한 인간군상들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그런 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인간들의 집착과 욕망이 만들어낸 악의가 이들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하지만, 이런 악의는 작품을 끝까지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지막 한 줄에 모든 판도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의 내용이 시시하다는 것은 아니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음험한 기운이 책전반에 안개처럼 떠돌기 때문이다. 그 기운이 마지막에 집중된 것이라고 보면 될까?

아직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느낌의 작품을 써내는 요네자와 호노부. 그의 다른 작품인 인사이트밀은 두껍다는 이유로 여지껏 미뤄놓고 읽지 않았는데, 다른 번역서가 나오기 전에 미리 읽어 두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의 '고전부 시리즈'를 만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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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민츠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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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란 것은 사람에게 있어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며, 상대가 수많은 타인과 나를 구별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이란 것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즉 생판 남인 사람인데, 이름이 같은 경우도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 이름도 조금은 흔한 편이라서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종종 만나곤 한다. 하지만 아직 현실에서 만나본 적은 없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누군가를 티비에서는 본 적은 더러 있다. 그런 경우엔 난 그 사람을 보면서 - 물론 한자는 다르게 쓰겠지만 - 이름의 발음이 같다는 것만으로 묘한 느낌을 받는다.

이치카와 미치오(壱河光夫)와 이치카와 미치오(市川光央)는 똑같은 이름을 가졌다. 물론 한자로는 뜻이 다르기 때문에 완벽하게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발음이 같기 때문에 서로를 처음 만났을 때 묘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치카와 미치오(壱河光夫 : 책에서는 밝은색 머리카락)은 고교시절 이치카와 미치오(市川光央 : 검은색 머리)를 만난 후, 인생이 크게 바뀌어 버렸다. 잦은 괴롭힘에 돈을 갈취당하고, 여자친구마저 빼앗겼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런 관계는 변치않았다.

어느 날, 미치오(光夫)에게 미치오(光央)가 전화를 걸어 온다. 자신이 여자를 죽였다고 하면서. 미치오(光夫)는 미치오(光央)와 함께 여자를 땅에 묻어서 유기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날 이후, 잔뜩 겁에 질린 미치오(光央)는 자신이 여자를 죽였다고 자수하지만, 여자의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난 처음엔 미치오(光夫)가 이제껏 자신이 당한 일을 미치오(光央)에게 복수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고교시절 이야기는 뭔가 묘한 것을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치오(光夫)는 미치오(光央)를 절대로 떠날 수 없다. 그건 역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둘은 어떤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었다. 여성과 남성, 그리고 또하나의 존재.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존재였던가. 이제껏 지배자와 피지배자처럼 보이던 이들의 관계는 생각과 다른 것이었다.

난 다시 태어날 거라고 말하며 자신의 몸에 자해를 하는 미치오(光夫)와 미치오(光央)를 보면서 섬뜩하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배를 타고 가면서 미치오(光央)가 미치오(光夫)에게 말한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미치오(光夫)의 대답에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제껏 일방통행적인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관계가 마침내 같은 곳을 마주보게 되는 것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더블 민츠 다음에 실려있는 단편인 온실의 과실은 조금은 독특한 느낌의 단편이었다. 더블 민츠는 음울하고 우울한 기운이 많았다면, 온실의 과실은 따스하면서도 밝았다. 좀 이상한 관계이긴 해도 말이지.

나카무라 아스미코의 작품은 처음에 읽었던 것들은 따스하고 유머러스한 작품이 많았는데, 최근에 번역되어 나오는 것은 음울한 작품들이 많다. J의 모든 것도 그렇고 더블 민츠도 그렇고. 똑같은 작가가 그린 것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다니 하는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난 역시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 좋다. 다음에는 밝은 느낌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데, 그건 나의 바람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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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호텔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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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가득 보이는 건 고양이. 그래서 난 책 제목처럼 고양이 호텔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맞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좀 다르다.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책 뒷표지를 보면 <섬세한 꽃미남 인터뷰어 '강인한'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 인터뷰이 '고요다'의 가슴 설레도록 아찔하고 짜릿한 밀고 당기기>란 글이 나온다. 이 글만 읽으면 연애소설인가 싶다. 흐음, 연애소설이야? 책 잘못 샀군, 이란 씁쓸한 한숨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책 내용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그래서 이 책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3억원의 상금이 걸려 있는 문학상 현상 공모에 당선된 고요다. 그녀는 11개의 방을 가진, 마치 성처럼 보이는 집에서 고양이 200여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함께 돌아가셨기에 지금은 완전히 혼자다. 그런 그녀는 출판사 인터뷰도 거절한 채 두문불출한 채 살아 간다. 가끔 외출을 하고, 한 주에 한 번 섹스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그녀의 일과의 전부이다.  

그런 그녀를 찾아온 것은 잡지사 기자인 강인한. 그는 그녀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왔지만, 고요다는 그런 그가 침입자로만 느껴진다. 자신의 성에 무단으로 침입한 침입자. 하지만, 강인한은 갖은 술수를 써 그녀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또한 갖은 술수를 써 그곳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갖은 술수를 쓴다. 하지만 굳게 닫힌 성문처럼 그녀의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런 설정만을 본다면 그저그런 연애소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좀 달랐다. 고요다는 자신의 마음을 쉽사리 열지도 않을 뿐더러 침입자인 강인한을 몰아 내기 위해 온갖 힘을 기울인다. 너는 이곳에 발을 들여 놓으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이. 그런 고요다에게 유일하게 위안을 주는 것은 200마리에 가까운 고양이들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고요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녀가 강인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해도 그건 그것으로 끝난다. 그이상의 마음은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난 강인한이란 캐릭터가 참 싫었다. 기자들이란 원래 그런 사람들이지, 라는 한숨이 나왔다. 처음엔 땡볕에서 코피를 흘리며 우연히 쓰러졌지만, 그것을 기회로 그는 고요다의 집으로의 침입에 성공했다. 그후엔 물을 달라, 배고프니까 밥 좀 먹겠다, 밥먹고 나서는 설사가 나서 못나가겠다, 약 좀 가져다 달라면서 트렁크를 가져오도록 부탁한다. 고요다는 당황해서 일단은 그의 말대로 해준다. 그런 고요다를 보면서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자전거를 망가뜨리고, 계단에서 떨어져서 일부로 다치기까지 한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 그녀의 동정을 사려하고, 그녀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려 한다. 멀쩡한 형을 죽이고, 가족을 팔아 먹다니, 기자란 원래 이런가 싶은 생각에 씁쓸한 한숨만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그는 고요다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그녀는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간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부터 빗나가기 시작한다. 그건 고양이들 이야기로 시작된다. 200여마리의 고양이 중 빨간 목줄을 하고 있는 고양이의 정체. 그녀는 그 고양이들이 이 부근에서 실종된 사람들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강인한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자신도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으니 그녀도 그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다음 소설의 틀을 잡는 게 아니냐고 묻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는 서울로 돌아가 고요다 인터뷰 기사를 내놓는다. 그 기사는 창작된 기사였다. 이 기사를 보고 난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강인한이란 사람의 인생은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구나 싶은 생각에. 그러니 진실을 말해도 거짓으로 알아 듣고, 제멋대로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고요다와 강인한은 이 소설속에서 계속 입장이 바뀌어 간다. 처음에는 수호자와 침입자,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였지만, 나중에는 누가 누구를 인터뷰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관찰자가 되었다가 피관찰자가 되었다가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 고요다가 이야기하는 고양이 이야기를 강인한은 아예 믿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강인한 자신이 이야기한 강인한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거짓이었기에 고요다는 강인한에 대해 알면서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또다른 재미있는 설정은 뻔한 설정을 가져와도 색다르게 바꿔 버린다는 것이다. 고요다와 강인한이 집에 있을 때 나타난 한 여자. 그녀는 그들을 지하에 가둬 버린다. 갇힌 시간 동안 - 보통의 이야기라면 -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껴야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으르렁댄다. 이 부분이 참 재미있다. 만약 그런 사이가 되어버려서 그후 강인한이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녀와 인터뷰한 것을 전부 오프 더 레코드로 만들었다면 이 소설은 그저그런 소설이 되었을 테지만, 작가는 그런 일반적인 통념을 간단히 제거해버렸다. 강인한은 끝까지 비열했고, 그녀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후 그녀는 데뷔작을 마지막으로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고양이로 변한 사람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을 쓸 결심을 한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성을 훌륭히 잘 지켜냈는지도 모른다. 강인한이 들어와 휘저었지만, 그건 별 영향력이 없었다고 보여 진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서른 명에 가까운 실종자들,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정말 고요다의 말대로 고양이로 변한 것일까? 소설의 결말은 여전히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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