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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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목숨을 걸어 본 일이 있는가. 난 이제껏 서른 몇 해를 살아오면서 몇 번의 사랑과 몇 번의 이별을 거쳤지만, 목숨을 걸고 사랑해 본 일은 없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은채 갑작스레 다가온 이별때문에 가슴이 찢어지고, 죽을만치 아파본 적은 있어도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어본 적은 없다. 아니 그 비슷한 일을 해 본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마치 목숨이라도 걸듯 사랑을 하는 사람을 보면 조금 부러워지기도 했고, 때로는 바보같다고 욕하기도 했다. 

3권을 읽으면서 난 복잡미묘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1, 2권을 읽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이들의 엇갈린 인연과 절대로 만나지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리틀 피플과 종교 단체 선구 등의 미스터리적인 요소에 더욱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책의 주인공인 덴고와 아오마메보다는 조연격인 후카에리, 노부인, 다마루같은 캐릭터에 더욱 매료되었다.

2권의 마지막 부분은 아오마메의 자살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난 아오마메가 덴고 앞에 공기번데기 모습으로 나타난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3권은 그런 가설을 가법게 부정해버렸다. 아마도 2권으로 완결되었다면, 아오마메의 희생이란 것으로 끝나버렸을 테지만, 3권이 나옴으로해서 이들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오마메에게 암살당한 선구의 지도자는 아오마메에게 의미심장한 몇 마디를 남겼다. 1Q84의 세상에서는 덴고와 아오마메는 절대로 만나지 못할 것이며, 덴고를 살리기 위해서 아오마메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두 부정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선구의 유언이나 다름없는 그 말은 어쩌면 덴고와 아오마메의 사랑과 인연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였고, 나머지 하나는 후카에리가 이 둘 사이에 개입함으로서 1Q84의 시공간속에서 그렇게 예정되어 있던 운명에 틈을 만들고 비틀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 정도 앞뒤가 맞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아오마메와 덴고는 초등학교 시절 3, 4학년동안 한 반이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후에는 어떤 만남도 없었다. 그들에게 남겨진 건 어느 날 방과후 맞잡은 두 손의 온기에 대한 추억 뿐. 종교단체에 소속된 집안 분위기때문에 외로웠던 아오마메와 NHK수금원으로 일하던 아버지에 끌려 다니던 덴고의 외로움의 파장이 맞았던 단 한 순간. 그 순간이 그후에도 두 사람의 인연을 이어주는 작디 작은 인연의 끈이 되었다. 

하지만 20년이란 세월은 절대로 짧지 않다. 이제 서른이 된 두 사람에게 20년이란 시간은 인생의 2/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두 사람은 그동안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 왔다. 뭉근한 그리움이란 추억이 남겨진 그날의 기억과 함께. 난 이 기억이 이 두 사람에게 있어 그토록 지배적인 기억이란 것에 대해 처음엔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주는 온기의 따스함을 몰랐던 두 아이가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온기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 기억이 무의식중에도 깊게 그들의 삶에 작용했을 거란 납득이 가게 되는 것이다. 단 한번의 온기를 전했을 뿐이지만, 그것이 그토록 긴 시간을 통과해 그들을 연결하게 되는 하나의 선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인연이 아니고 무어겠는가. 

3권에서는 아오마메의 변화가 가장 크게 눈에 보인다. 자살을 결심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않고, 덴고를 만날 날만을 기다려온 아오마메. 이제까지의 그녀는 더이상 없었다. 스스로를 위험속에 방치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리고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그녀를 보면서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덴고는 뭘 한 게 있나 싶을 정도다. 그저 그녀의 공기번데기가 나타났던 곳에서 공기번데기를 기다리는 일만을 할 뿐. 그런 덴고가 답답했다. 아마도 아다치 간호사의 말이 없었다면 그가 앞으로 한 발 내디딜 수나 있었을까. 아오마메는 자신의 사랑과 인연을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 자신이 처한 상황내에서 최대한 - 대처했고, 그에 반해 덴고는 피동적이고 수동적으로 대처했다. 

이들은 서로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서도 직접 찾아볼 생각을 왜 하지 않았지? 흥신소 사람이라도 고용해 봤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재회의 시간까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이들을 그리 쉬 그들을 만나게 할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만약 진짜로 만나게 되었을 때 실망하게 될까 봐서 일지도 모른다. 원래 추억이란 것은, 기억이란 것은 그것을 담고 있는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아름답게 포장되고 부풀려지게 마련이니까.    

어쨌거나, 그들은 재회에 성공했다. 그리고 달이 두 개인 1Q84의 세계에서 달이 하나인 세계로 건너가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곳이 1984의 세계인지 아니면 다른 세계인지는 둘 다 모른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1Q84의 세계에서 탈출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음이 되어 다른 건 상관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앞으로 행복해질까? 지금까지 이 두사람을 지배해 왔던 만나고 싶다는 소망은 충족되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지켜온 마음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이외에도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리틀 피플이 왜 죽은 우시카와의 입에서 나와 또다른 공기번데기를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노부인에게서 나온 리틀 피플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덴고와 아오마메 두 사람이 1Q84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감으로 인해 이것들은 더이상 이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리틀피플은 1Q84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니까. 더이상 덴고와 아오마메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이들이 건너온 세계에 다른 위협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지?  

여.전.히.이.야.기.는.끝.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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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3권 사서 읽는 거 자꾸 미루고 이었는데..
이제 슬슬 읽어야 될까요.
너무 1Q84만 잘 팔리는 것 같아서 어차피 다른 사람이 사서 읽겠지, 그럼 난 나중에 베스트셀러에서 내리면 3권 사서 읽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궁금하네요. 1,2권은 읽은지 오래되서 가물가물, 책장에 꽂혀있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3권도 읽게 될까봐 주저하게 되네요. 리뷰 읽으니 더 읽고 싶어졌어요. :)

스즈야 2010-12-18 22:01   좋아요 0 | URL
저도 3권 사놓고 한참만에 읽었어요. 역시 좋더라구요. ㅎㅎㅎ 저도 1년도 넘게 지나서 읽으려니 1, 2권 내용이 가물가물 하긴 했는데, 그래도 금세 기억나더라구요.

집요정 2010-12-26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셨나 보네요. 저도 최근에 모두 읽었네요^^
정말 의문이 남는 결말이었어요. 사실 리틀피플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장 궁금했는데
상징적인 기법을 제가 풀어내지 못한 것인지...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따온듯한 제목과 1984년이란 시공간은 1Q84는 그 이전 시대에 꿈꿔왔던 사회주의, 또는 집단주의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하루키식의 다른 세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사실 전 좀 지루한 느낌이었어요. 한권 정도 분량이면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구요. ㅋㅋ

스즈야 2010-12-26 12:21   좋아요 0 | URL
전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 0순위거든요. 근데 이번엔 좀 늦게 읽었어요. 작년에 읽었던 1, 2권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좀 있었거든요. 그치만 3권을 읽으니 그 걱정 괜히 했나 싶더라구요. ㅎㅎㅎ

그쵸. 리틀 피플이 정말 뭔지 잘 모르겠다는.
아마도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위치한 어떤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는 강압적인 외부자적 존재자 빅 브라더였다면 하루키의 리틀 피플은 내부자적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죠.

전 혹시 4권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사실 덴고와 아오마메가 다시 나간 세상이 또다른 1Q84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이... ^^;
 
하드보일드 고양이 나츠 2
OOTAKE Tomo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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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엔 전혀 귀엽지 않은 고양이들이 총출동하지만, 요모조모 곰곰히 뜯어보면 그 귀여움에 쓰러지게 된다, 하드보일드 하게 살고 싶은 사나이 나츠의 이야기 그 두번째.

전혀 의도하지 않은 가출 + 납치(?) 사건으로 다나카네 집에서 한동안 살다 본가(?)인 토네家로 돌아온 나츠. 2권에서는 안타깝게도 1권에 등장한 길치냥이 푸상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미용실에 가기 싫어서 등의 이유로 집을 나오긴 해도 늘 길을 못찾고 헤매는 푸상의 귀어운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좀 아쉽기는 해도 나츠와 벌레 덕후 아깽이인 꼬맹이와 할아방네 집으로 입양된 영감이 여전히 그 포스를 풀풀 풍기며 등장하고, 새로운 얼굴로는 강아지의 얼굴을 한 폰타, 꽃집 마스코트(?) 쿠로, 옆집 강아지 팀, 그리고 꼬맹이의 모친이자 나츠의 여자친구인 미케코등이 있다. 새로운 사람으로는 토네家 아들의 친구들이 있다. 그중 이노우에란 녀석은 고양이 마니아다.

나츠는 결코 잘생겼다고 말할 수 없는 외모에 무뚝뚝한 성격, 때로는 나사 하나쯤 빠진 듯한 행동으로 날 웃겨주긴 하지만, 동네 고양이들 사이에선 대장 노릇을 톡톡히 한다. 똘마니도 거느리고 있을 정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 사실 하드 보일드하게 살고 싶어함에도 불구하고 - 나츠의 성격은 다정다감 그 자체다. 어디선가 꼬맹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람처럼 나타나 꼬맹이를 구해주는 나츠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또한 할아방에게 입양되어 늘그막에 완전 팔자 펴진 영감이 - 미짱이란 이름을 획득했다 - 꼬맹이의 염장을 지를 때도 나츠는 언제나 꼬맹이 편이다. 그런 나츠가 무척 강해보이긴 하지만, 입으로 나츠의 행동을 조종(?)하는 꼬맹이는 나츠의 머리꼭대기에 올라 앉았는지도... (笑)

나츠와 관련된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지만, 골라서 말하자면 - 추운 겨울 동네 고양이나 개들과 날씨에 관한 인사를 하면서 지나던 나츠가 공터에서 추위에 벌벌 떠는 영감과 꼬맹이에게 천연 난로(?) 역할을 해주는 에피소드와 동네 꼬맹이들이 지나가면서 나츠에게 "이따 봐"란 말을 남겼다고 그 자리에서 꼬맹이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무척이나 따스한 에피소드였다. 또한 나츠의 반려인인 토네家 아줌마가 감기로 아파 누워있을 때, 그 옆을 계속 지켜준 것 역시 나츠의 몫이었다. 이런 걸 보면 사람 가족이라고 다 좋은게 아니란 말이지. 가끔 무심한 토네家 가족의 두 남자 때문에 속상해 하는 토네家 아줌마를 보면서 우리 엄마들이 이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는 나츠와 다른 고양이들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토네家 가족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는데, 토네家 아줌마는 정말.. 최고다. 우리네 엄마의 일상을 고스란히 옮겼다고나 할까. 그래서 무척이나 공감되기도 하고, 괜시리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달까. 

4컷 만화 - 실제로 이 책 속의 이야기는 보통 8컷으로 마무리된다 - 인 특성으로 수많은 에피소드가 이 한 권에 들어 있다. 단편 만화라 해도 깔끔한 완결성을 가지기 힘든데, 4컷 만화가 이렇게 깔끔한 완결성을 가지고, 독자를 웃게도 만들고, 가슴 짠하게도 만드는 건 작가의 특별한 능력이라 생각한다. 

고양이의 특성을 잘 살린 만화이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주는 만화, 그리고 진짜 사나이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레알 고양이 나츠의 이야기. 다음권도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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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1 세계문학의 숲 1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안인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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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인간의 탄생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다. 신이 그렇게 정해 놓았든 자연의 섭리에 따라 태어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부모의 보살핌으로 자라고, 그후에 세상이 자신에게 어떤 것인지를 조금씩 깨달아 가면서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든 역행하든 하면서 살아 간다. 대개의 사람들은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쨌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채 열심히 바르작대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모두 크든 작든 시련을 거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개중에는 세상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프란츠 비버코프란 한 남자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독일 베를린. 그는 4년형의 징역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의 죄목은 상해치사였다. 4년동안 종소리에 맞춰 규칙적인 생활을 해오던 그는 세상밖으로 나왔을 때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고작 4년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자면 감옥에서의 4년은 40년과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쩔줄 몰라하던 프란츠는 무작정 돌아다니다가 어느 집의 마당에서 앞으로는 제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했으니...

프란츠 비버코프란 남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다지 모범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감옥에 다녀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성격이 급한 편이고, 여자를 좀 우습게 보는 경향도 있다. 또한 상황이 상황인만큼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물론 반사회적인 일은 하지 않으려 마음먹긴 하지만, 감옥까지 갔다온 그에게 사회가 친절할리는 없었다. 그가 가장 처음으로 맞딱뜨린 사회의 싸늘함은 그가 범죄자란 이유로 추방 가능성이 있는 도시에 관한 전언이었다. 수많은 도시들은 그를 허락하려 들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베를린에서 일을 했던 프란츠가 감옥에서 석방된 후 돌아간 베를린은 그에게 냉담했다. 하지만 요즘의 보호관찰 시스템과 비슷한 것을 통해 그는 베를린에 재정착할 수 있게 된다. 

원래는 고급 가구 운반같은 일을 했던 프란츠는 이제 신발끈을 팔거나 나치주의자들의 신문을 팔기도 한다. 당시의 독일은 아직 나치주의자들과 공산당원들이 공존하고 있었던 시기로, 이전에 프란츠를 알던 사람들은 나치주의자들의 신문을 파는 프란츠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란츠 입장에서는 당장 입에 풀칠할 일도 막막한 판에 나치신문을 팔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지금의 프란츠에게 혁명같은 이상보다는 당장의 삶이 더 현실적인 문제였을테니까.

혁명이라고? 깃대를 해체하고 깃발을 방수포 봉투 안에 챙겨서 옷 궤짝에 집어넣어라. 여자들한테 실내화를 갖다 달리하고 새빨간 넥타이를 매라. 니들은 만날 혁명을 주둥이로 하지, 니들 공화국은             작업 사고다! (135p)

프란츠는 처음의 적대적인 도시의 분위기를 극복하고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외로 세상은 만만하지가 않았다. 당시에 함께 지내던 여자의 삼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과일 장사'라는 것의 이면에 감춰진 어둠을 모른채 경비를 서는 일을 맡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기도 한다. 바르게 살자, 착실하게 살자, 라고 맹세를 했건만, 그에게 있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물론 그의 곁을 굳건히 지켜줄 친구와 여자가 있긴 했지만, 그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을 안겨준 사람이 더 많았다. 그의 앞에는 희망과 절망, 어떤 것이 대기하고 있을까. 

 이 책은 프란츠 비버코프란 남자의 삶을 그리면서 당시 베를린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후의 인플레이션과 공산주의자와 나치주의자의 대립, 유대인에 대한 압박같은 정치적인 것에 대한 묘사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 신문 기사, 책 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를 비롯해 희곡이나 성경같은 곳에서 따온 인용문도 상당히 많은데, 이는 프란츠 비버코프의 상황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문장을 읽어내려가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난해함을 많이 느꼈으나 큰 줄거리를 잡고 나서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서술문이 대화문같다거나 전체적으로 서사시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그것도 익숙해지니 재미있게 읽혔달까.

암담하고 암울한 시절의 베를린.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인물이었고 때로는 편법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자 한 프란츠 비버코프.
그는 그의 앞에 가까이 다가온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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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여우 초승달문고 22
김옥 지음, 김병호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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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다. 연년생인데, 실제로는 20개월 가까이 차이가 나서 2살 차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자매나 형제, 남매가 있는 집은 모두들 그렇듯이 나도 어린 시절엔 동생이랑 참 많이 싸웠다. 게다가 연년생이다 보니 난 동생에게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언니란 소리는 제대로 들어 보지도 못했다. 또한 늘 맏이보다는 바로 밑의 동생이 더 영악한 면이 있기에 내 동생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내 책을 읽고, 내 받아쓰기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동생과 나, 둘 뿐이라 늘 복작대고 싸우기도 했고, 사이좋게 노는 일도 많았지만 아주 어릴적에는 나와 동생은 한동안 떨어져 지내야했다. 동생을 낳은 후 엄마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난 외갓집에 잠시 맡겨졌었고, 그후엔 내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또 내 동생과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그러니 내가 동생과 마음껏 싸우고 놀고 했던 것은 결국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나서였다.

지금은 둘 다 삼십대의 나이가 되다 보니 싸울 일도 없지만, 만날 기회는 더 없다. 나는 지방에 동생은 서울에 살기 때문이다. 그치만 원체 둘 다 무뚝뚝한 성격이라 일년에 두어번 정도 만나도 데면데면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솥밥을 먹고 자란 가족이라 그런지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불편하기는 커녕,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내 동생, 여우』라는 제목을 보니 어린 시절의 내동생이 떠올랐달까. 언니보다 더 영악한 둘째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 가슴은 무언가 묵직한 것으로 답답해져 오기 시작했다.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는 위화감이랄까. 책의 결말부로 넘어가면서 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먹먹한 슬픔에 가슴이 저려왔다.

연오와 연이는 연년생의 남매이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숲에서 동물을 사냥해서 그걸로 집안 생계를 꾸려갔지만 작년부터 그 일을 그만두고 약초나 산나물을 캐는 것으로 돈을 벌었다. 연오네는 이제 시골에서의 삶을 접고 도시로 이사를 갈 계획이다. 오늘은 연오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는 날. 동생 연이는 오빠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연오와 함께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을 잘 보낸다. 방과후, 아버지가 데리러 온다고 했지만 연이는 그새를 못참고 밖으로 나가서 놀잔다. 연오는 사랑하는 동생 연이가 자꾸 졸라서 결국 밖으로 나가긴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그런 연이가 걸어서 집으로 가자면서 연오를 끌고 숲으로 들어가는데....

이 책은 사이좋은 오누이의 가슴 아픈 사연과 사람과 자연이라는 이야기를 동시에 담고 있다. 자신이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가진 연오 앞에 나타난 연이는 작년 이맘때의 기억속으로 연오를 데려간다. 연이가 동생이지만 오빠인 연오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고나 할까. 연오의 부모님은 연이가 당한 사고의 아픔이 연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길 바라면서 도시로의 이사를 준비했지만, 슬픔이란 것은 잊는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죄책감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연이는 연오앞에 나타남으로서 연오의 죄책감과 슬픔을 한번에 덜어 주었다. 그리고 예쁜 기억으로 연이를 기억함으로서 연오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연오의 아빠는 산에 사는 동물들을 사냥해 그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저 연이나 연오를 위해 맛있는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사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이가 그런 사고를 당한 이후, 연오의 아빠는 사냥을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도시로 떠나는 날 아침, 올무에 걸린 하얀 여우를 구출해 풀어주게 된다. 자신의 딸인 연이가 그렇게 나타났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빠가 여우를 풀어준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또한 한편으로는 자신이 잡았던 동물들때문에 자신의 딸이 그런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연이가 영원한 잠을 자게 된 장소인 자연을 더이상 해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아빠의 이유가 어찌되었든, 아빠의 이야기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연년생 남매의 귀엽고 풋풋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내 동생, 여우』는 작년 이맘때 남매 사이에 있었던 아픈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적지 않은 아픔과 슬픔을 남긴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언제까지나 오빠 마음속에서 살 거야. 오빠가 나를 잊지 않는다면 말이야."
연오도 가만히 중얼거렸어요.
"나는 죽을 때까지 너 잊지 않을 거야. 절대로 잊지 않을거야."
(66p)

사람들은 죄책감을 덜기 위해, 미안함을 덜기 위해, 아픔과 슬픔을 덜기 위해 애써 누군가를, 무언가를 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잊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할 아픔과 슬픔도 있는 것이며, 그 아픔과 슬픔을 진정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것들의 극복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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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o Natsume Tesoro 테조로 - 오노 나츠메 초기 단편집 1998 - 2008
오노 나츠메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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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초기 작품이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처음 읽었던 오노 나츠메의 작품이 가진 따스함과 유머러스함에 푹 빠진 나는 그녀의 작품을 하나씩 찾아서 읽게 되었다. 처음엔 사실 뭘 먼저 읽어야할지 모른채 그냥 무작정 읽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작가인지 어떤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노 나츠메 초기 단편집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작정하고 읽은 책이다. 몇 권의 단행본을 읽으면서 점점 좋아하게 되었고, 초기 작품은 어땠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나오는 만화의 작화를 봐도 섬세하다거나 아름답다고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할 수 없지만, 단순한 그림 속에는 따스함과 정겨움이 가득하다. 물론 그림만 그런게 아니다. 스토리도 무척이나 따스해서 때로는 달콤하고 따스한 핫초코를 마시는 기분이 든달까. 

<뒤집어 입기>는 유학중인 딸을 만나러간 부인이 집을 비운 사이 쓸쓸해하는 남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남자들은 아내가 집에 있으면 잔소리한다고 싫어하다가도 막상 집을 비운다고 하면 정색을 하고 반대한다. 어쩔수 없이 아내가 집을 비우면 그 빈자리를 역력하게 실감한달까. 우리말에도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그만큼 평소에는 늘 익숙해서 소중한줄 모르던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없어지면 그제서야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안다는 소리일거다. 아내가 여행을 떠났다고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지만, 혼자 쓸쓸해 하며 집에 있는 아키씨의 모습과 아내가 일찍 돌아온다는 전화에 슬며시 미소를 짓는 모습은 우리 아버지랑 꼭 닮았다. 그래서 나도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을지도...

<콩나물 부부>는 한 노부부의 이야기이다. 부부는 살면서 점점 닮는다고 했던가. 삐쩍마른 몸매가 꼭 닮았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고 금실이 안좋다고 오해를 하자 남편이 마음을 먹고 사람들 앞에 나선다. 그 추운날, 파르페를 실외에서 먹는 부부의 모습. 그림 엽서에 적힌 것처럼 날씨는 쌀쌀했을지언정, 마음만은 훈훈하지 않았을까. 이 부부의 이야기는 도시락과 관련한 단편에도 또 나온다. 아내의 외출에 마음이 불편한지 묵묵히 일하던 남편이 아내가 준비해놓은 도시락을 보고, 마당에 나와 도시락을 먹는데, 그 모습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어쩌면 이 분은 아내의 도시락을 자랑하고 싶었던건지도 모르겠다. 고마운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이렇게 행동했다고 할까나?

도시락 단편중에 유난히 마음을 찡하게 만든 단편이 하나 있다. 아내의 죽음으로 아들과 둘이서만 사는 싱글대디의 이야기였는데, 아들이 엄마 얼굴을 꼭 닮은 도시락을 먹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내 배에 대고 이야기를 하면 된다는 말에 가슴이 짠해지면서도 따스한 기운이 퍼져나갔달까. 어린아이는 어른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이 가장 잘 살려진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이바의 기억>도 무척이나 마음에 든 작품 중 하나이다. 어릴때 시설로 들어온 이바는 기억을 조작하며 산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사망했지만, 이바는 누군가를 보면 꼭 자신의 엄마, 아버지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에 묶여 사는 그녀를 해방시켜준 말은... 단 한마디였다.

그외에도 오랜기간동안 할아버지와 만나지 않은 부자가 나누는 이야기, 감옥에서 나갔을때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아들의 죽음을 앞두고 슬퍼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등 수록된 모든 단편들은 각각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때로는 가슴 아프게 스며들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따스함을 가지고 있달까. 또한 초기의 동인지 활동 시절의 만화나 잡지 수록 만화등을 보면 그동안의 그림 변천사가 눈에 들어온다. 초기작들은 선이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라면 뒤로 갈 수록 선이 정돈되고 깔끔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림에 있어서는 약간의 변화가 눈에 띄긴하지만, 그래도 변치않는 것은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따스함이란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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