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 덕혜옹주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어떤 것을 통해서였는지는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사진에 대해서는 약간 기억이 난다. 호호 백발 할머니의 모습에 약간은 초라한 행색이었달까. 난 공주는 알겠는데, 옹주는 도대체 뭐야, 라고 엄마에게 물었다. 옹주는 왕의 후궁이 낳은 딸을 의미한다. 양반의 아들로 따지면 서자쯤 되는 호칭이다. 철없던 나는 그래도 황족의 마지막 후예란 말에 의미없는 두근거림을 가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로서 덕혜옹주의 삶은 내가 상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가족과 살아남은 공주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는 등 꽤 유명세를 탔지만, 덕혜옹주는 아시아의 작디작은 나라의 마지막 옹주라서 그랬는지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마지막이란 단어는 늘 쓸쓸함과 아쉬움을 함께 가져온다. 덕혜옹주역시 마지막 황녀가 아니라 왕이 실세로 군림하던 시기에 태어났다면 그렇게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그렇게 태어난 그녀의 미래는 이미 모두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랄까.

책 본문은 총 네파트로 나뉘어 스토리가 진행된다. 첫번째 파트는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로 고종황제가 살아 있을 당시의 이야기이고, 두번째 파트는 일본에 건너가 볼모로 살게 된 시절, 세번째 파트는 덕혜옹주의 결혼과 출산 등 가정을 일본인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된 이야기, 마지막 파트는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 가던 때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영민했던 덕혜옹주는 일본의 식민 지배상황과 자신의 처지를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터무니없이 높고 단단한 벽이었을 것이다. 조정대신 중에도 믿을 사람은 없다. 오히려 고관대작들이 일본의 편에 붙어 왕실을 압박하고 유린했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영친왕 역시 일본인 여성과 결혼을 해야 했고, 의친왕은 상해에 잡혀 있었다. 덕혜옹주 마찬가지로 일본에 거의 끌려가다시피해서 살게 되었고, 그곳에서 조센징으로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하면서 학교 생활을 해나갔다. 또한 원치 않는 일본인 남자, 그것도 대마도 번주의 양자와 결혼을 해야 했다.

다행이라면 남편이 차갑고 냉혹한 사람은 아니었단 것이랄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 덕혜옹주는 너무나도 꼿꼿한 사람이었다. 남편의 배려에 마음을 조금 열긴 하지만, 자신이 조선인이란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 아이를 가졌을 때, 일본인과 조선인의 혼혈이 될 아이를 생각하면 눈 앞이 깜깜했으리라. 그렇게 태어난 정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조선인이란 것을 알게 된다. 덕혜옹주는 자신의 딸 정혜에게 조선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끊임없이 각인시켰지만, 그것이 정혜에게 큰 압박이 되고 말았다. 남편과의 사이도 딸과의 사이도 틀어져가는 상황에서 그녀는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된다. 

만약 덕혜옹주가 자신의 운명에 순응했더라면 편하게 살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자신의 조국이 무너져가는 걸 고스란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걸 생각하면 그녀는 결코 일본에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일본인과 한국인의 결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당시는 지금과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오히려 덕혜옹주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더라면 그게 더 이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덕혜옹주는 목련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추운 겨울 꽃봉우리를 맺은 상태로 봄을 기다려 하얀 꽃을 피우지만 금세 시들고 변색되어 종국엔 그 아름다움마저 잊힌채 버림받게 되는...

『덕혜옹주』는 덕혜옹주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일제 시대의 시대상은 간간히 언급될 뿐 대부분은 덕혜옹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책이다. 그런 이유로 내용이 좀 심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단 느낌이랄까. 물론 역사 소설이라고 해서 100% 논픽션이 될 수는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덕혜옹주가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큰 틀정도로만 자료가 있지 아주 자세한 것은 없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이 다분히 포함된 것이 역사소설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장면이 100% 픽션이란 것도, 그렇게 결론을 내버리는 것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룡점정에서 정확히 찍혀야 할 점이 너무 크게 찍혀 순정만화에 나오는 용이 되어버린 형국이랄까.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잊혀지고 버려졌던 덕혜옹주의 삶을 재조망하고 현실로 불러내려 했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마지막을 픽션으로 처리함으로 인해 진실성이 많이 훼손된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드라마로 끝나버린 느낌이랄까. 오히려 그후에 덕혜옹주가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독자는 참혹하고 아픈 진실이라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훈이 석이 초승달문고 23
오시은 지음, 박정섭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더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더 여유로워졌는데도 지금은 뭘해도 그렇게 재미있지가 않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조금씩 재미가 없어졌다고나 할까. 어린 시절엔 그저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늘 재미있게 놀 수 있었는데... 가령 할머니댁에 갔을 때는 - 당시엔 케이블 티비도 인터넷도 없었다 -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노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런 것은 비단 나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뭘 하고 놀았는지는 지금 확실하게는 떠오르지 않지만, 어린 시절엔 뭘 해도 재미있었다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훈이 석이도 마찬가지이다. 동네 개구쟁이로 유명한 두 아이는 주변의 모든 것이 놀이터요, 놀잇감이 된다. 훈이네 엄마가 배달하는 요구르트 차량은 전쟁중 보급품을 실어나르는 차가 되고, 동네 개울에서는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다. 이런 놀이는 날씨 좋을 떄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면 종이배를 물에 띄우고 놀기도 한다. 아마도 겨울엔 눈싸움이며 눈사람 만드는 일에 열중할 거다.


무더운 여름날 훈이와 석이는 밖에서 놀다가 더워서 석이 엄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찾아가지만 혼만 나고 쫓겨난다. 둘은 뭐 재미있는 게 없을까 하며 찾아다니다가 동네 개천에서 물고기를 잡기로 한다. 석이는 해오라기 다리가 되어 물고기를 몰고, 훈이는 해오라기의 부리가 되어 물고기를 낚을 계획을 세우지만, 꼬마 두 녀석이 벌이는 일이다 보니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결국 둘은 말다툼을 하다 서로에게 물을 퍼붓기 시작하고 결국 그렇게 헤어지게 된다.


여름의 개천물에 푹 젖어 비린내가 나는 옷때문에 엄마에게 혼이 나게 생긴 훈이와 석이는 서로 상대방의 잘못이라며 서로의 탓을 한다. 게다가 석이와 훈이는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마귀할멈, 삼겹살 귀신을 운운하며 혼나는 것을 피하려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두 엄마마저 사이가 안좋아진다. 그 결과 훈이와 석이가 얻은 것은 심심한 시간뿐이었다. 그러기도 할테지. 만날 둘이서 놀다가 혼자 놀려고 하면 얼마나 심심하겠어.


엄마에게 혼이 나는 건 두렵지만 심심한 건 더 못참겠어서 훈이와 석이는 서로를 찾아 다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서로 엇갈리기만 한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나랑 놀기 싫은 거야? 잔뜩 풀이 죽어 들어온 훈이와 석이에게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둘은 동시에 집밖으로 뛰어 나간다.

싸우고 만나는 것이 쑥스럽긴 해도 금세 다시 아기 고양이 돌보기에 나선 두 아이. 둘은 엄마에게 비밀로 하기로 하고 아기 고양이를 돌본다. 하지만 그날밤 아기 고양이를 몰래 보러 나간 두 아이때문에 엄마들은 아이가 없어졌다고 깜짝 놀라게 되고,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갔다가 서로 마주치게 된다. 마귀할멈, 삼겹살 귀신 사건으로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이웃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화해하게 된다.

이 책은 장난꾸러기 두 아이이의 이야기와 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두 엄마 모두 싱글맘으로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편부모 가정의 아이답지 않게 밝고 명랑하지만 장난끼가 너무 많아 때로는 어른들에게 혼이 나기도 하는 훈이와 석이는 거꾸리와 장다리나 뚱뚱보와 홀쭉이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외모만 차이날 뿐 속알맹이는 똑같다. 그래서 두 녀석 모두 참 귀엽다.

훈이와 석이는 아이이다 보니 싸워도 금세 화해하고 싶어 하고, 또 금세 화해한다. 하지만 훈이와 석이의 거짓말때문에 어색해진 훈이 엄마와 석이 엄마는 아이들이 없어진 사건이 아니었다면 화해하는 데에 시간이 좀 더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아이와 어른의 차이랄까. 그런 걸 봐도 참 재미있다.

또한 『훈이 석이』의 문장 속에는 훈이와 석이, 훈이 엄마와 석이 엄마의 말이라든가, 행동을 나타내는 문장에서 댓구표현이 무척이나 많다. 그게 또하나의 읽는 재미를 준다. 또한 아이들의 상상에서 바로 튀어나온듯한 그림도 무척이나 멋지다. 특히 내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세번째 그림인 서로를 찾아다니는 훈이와 석이를 표현한 그림이다. 두 아이를 고양이로 표현해 놓은 것이 참 재미있달까.

우리 주변에 꼭 있는 장난꾸러기들인 훈이, 석이의 즐거운 여름 이야기. 기분 좋게, 와하하하 하고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26~27p, 40~41p, 48~4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고양이들 봄나무 문학선
어슐러 K. 르귄 지음, S.D. 쉰들러 그림, 김정아 옮김 / 봄나무 / 2009년 4월
구판절판


표지에 보이는 네마리의 날개 달린 고양이들. 나뭇가지에 앉아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을 바라본다. 이들의 황금색 눈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가 이들에게 관찰당하는 느낌이랄까. 조금은 호기심 어린 표정의 고양이도 있고, 빙그레 미소 짓는 고양이도 있고, 약간은 경계하듯 쳐다 보는 고양이도 있다.

그건 뒷표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날개 없는 고양이는 물을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고, 한 고양이는 물고기를 잡으려는듯 앞발을 내밀고 있다. 하나는 야옹거리면서 위에 있는 고양이에 말을 거는 듯 하고, 두 녀석은 경계하듯 이쪽을 쳐다 보고 있다. 왠지 이 그림만으로도 이 고양이들의 각각의 성격이 다 나타나는 것 같달까.

얘들아,괜찮아. 난 그저 너희들의 모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 뿐이니까!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고양이들의 첫번째 모험

어미 고양이 제인에게는 네마리의 귀여운 아들딸 고양이가 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이 고양이 가족은 날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주변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 가고 있었다. 아기 고양이들은 엄마의 젖을 배불리 먹어 통통했다. 엄마에게 고양이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던 고양이들에게 드디어 때가 왔다. 이 네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은 도시를 떠나 독립을 해야한다. 도시는 고양이들에게 살기 힘든 곳이다. 그러니 날개 달린 고양이는 오죽할까.

셀마, 로저, 제임스, 해리엇은 엄마품을 떠나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 아직은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채 그들은 열심히 열심히 날아간다.

그렇게 며칠을 날아 이들은 드디어 나무가 보이는 숲에 도착했다. 힘겨운 날개짓에 지쳐 잠들었지만, 교대로 깨어나 망을 보고 서로를 보호했다. 날개를 접고 편안히 잠든 고양이들 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고양이의 눈이 모험에 대한 흥분과 미묘한 두려움으로 가득해 보인다. 얘들아 힘내렴. 너희에게 꼭 맞는 장소가 있을 거야.

처음 숲에 도착했을 때는 주변에 사는 동물들이 이 고양이 사남매를 환영한 것은 아니다. 새도 아닌데 날아다닌다면서 겁을 먹고 두려워했다. 그러던중 제임스가 올빼미에게 잡혀 날개를 다치는 일도 발생한다. 하지만, 이들에겐 사랑을 나눠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행크와 수잔 남매는 날고양이들을 보고 두려워하지도 재미있다고 잡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맛있는 음식과 따스한 마음을 전해주었을 뿐.

세상에는 고양이를 괴롭히는 나쁜 손도 있지만, 고양이를 사랑해주는 좋은 손도 있다. 일반 고양이건 날고양이건 상관하지 않는... 그 손안에서 눈을 감고 골골거리는 제임스의 표정이 너무나도 편안해 보인다.

숲속 생활과 행크와 수잔 남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어느 날, 고양이 사남매는 도시로 돌아가 엄마를 만나고 싶어졌다. 사남매중 그 역할을 맡은 것은 제임스와 해리엇이었다. 제임스는 날개가 다친 후라 여전히 불편하지만, 해리엇은 제일 막내지만 열심히 열심히 날아 자신들이 태어난 도시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엄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도시를 날아다니던 제임스와 해리엇은 길을 잃어버린듯한 아기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럴수가. 그 아기 고양이 역시 날개가 있었던 것이다.

작디작은 아기 고양이는 철거 예정 건물에 숨어있었다. 아기 고양이의 엄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 고양이를 달래고 먹이를 먹이고, 어느새 성장한 제임스와 해리엇은 작은 생명에게 자신들의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있던 건물이 철거에 들어가게 되고, 이들은 그곳에서 나와 피신한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그들은 기적적으로 엄마와 재회하게 되고, 이 아기 고양이가 자신들의 동생이란 걸 알게 된다. 이 아기 고양이도 이제 독립할 때. 제임스와 해리엇은 아기 고양이를 등에 태우고 다시 숲으로 날아가게 된다.

아기 고양이를 본 행크와 수잔 남매는 아기 고양이에게 우유를 대접한다. 우유를 입가장자리털에 가득 묻히고 야옹~~하고 우는 아기 고양이. 그 행복한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러나 이 아기 고양이 제인은 혼자 있을 때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꼬맹이 제인, 도대체 혼자 있을 때 넌 무슨 일을 겪은 거야?

고양이 오남매의 즐거운 숲속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숲바깥 도로 건너편에 사는 털뭉치씨의 아들 알렉산더가 모험을 떠났다가 숲에서 길을 잃는다. 개들에게 쫓겨 나무위로 올라갔지만 내려올 방법을 모르는 알렉산더 앞에 나타난 건 제인이었다. 제인의 도움으로 나무에서 내려와 날고양이들과 만나게 된 알렉산더. 행크와 수잔 역시 알렉산더를 반갑게 맞이한다.

알렉산더에겐 날개가 없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제인과 그 남매들과 친구가 된다. 알렉산더는 제인이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며 제인이 말을 되찾을 방법을 생각해낸다. 제인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믿음, 그리고 제인의 상처를 치유해주려는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드디어 제인은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알렉산더, 넌 정말 멋진 고양이야!


언니오빠들, 그리고 알렉산더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제인. 드디어 제인에게도 때가 도래했다. 드디어 제인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제인은 이제 아주 잘 날았고, 말도 잘했다. 떠날 때가 되면 누구나 떠나야 하는 법. 먼저 온 사남매는 이곳에 정착했지만, 제인은 더 큰 세상이 보고 싶었다.

도시로 날아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게 된 제인. 그곳에 있는 아저씨는 제인을 무척 좋아했다. 예쁜 리본도 달아주고, 맛있는 음식도 주고, 외출할 때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지만 제인은 그곳이 너무도 답답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절대로 창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제인이 날아가버릴 것을 안다는 듯이.

아저씨와 살면서 몸은 편했지만, 제인은 답답했다. 푸른 하늘을 날고 싶었다. 공기를 가르며 날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찾아 오는 사람들 앞에서 재주나 부리고 사진이 찍히는 게 점점 싫어졌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자신때문에 다른 날고양이도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제인은 결국 그곳을 탈출했다.


제인의 엄마는 한 할머니에게 구조되어 함께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제인을 아주 부드럽게 대했고, 창문을 닫지도 않았다. 게다가 제인의 목에 묶여진 리본도 풀어주었다. 그모습 그대로가 제일 예쁘다면서. 그후 제인은 도시와 숲을 왔다갔다하며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만약 할머니가 제인이 도시로 나와 처음 만났던 아저씨처럼 제인을 가둬두려고 했다면, 구경거리로 만들었다면 제인은 더이상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형제들 역시 안전하게 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 인간은 자신과 다른 모습을 가진 존재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 말로는 괜찮다, 이상하지 않다고 하면서 속마음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전에는 서커스단에서 그런 사람들을 구경거리로 전시하기도 했다. 같은 사람에게도 그런데 동물에겐 오죽할까.

겉모습이 다른 것이 차별의 이유가 될까? 동물들은 겉모습을 가지고 차별하지 않는다. 배척하지도 않는다. 생존의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 더이상 신경쓰지도 않는다. 날고양이들이 만났던 숲속 동물들 역시 날고양이가 자신들에게 해를 입힐까봐 무서워하고 두려워했을 뿐, 그들을 차별한 것은 아니었다. 오직 인간만이 그랬다고 할까. 하지만 인간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제인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돈을 벌려는 아저씨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제인의 생김새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다거나 흥미로운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그리고 제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은 할머니같은 사람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들은 오랜 기간을 통해 점점 진화해간다. 언젠가는 정말 이런 날개 달린 고양이들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들이 네 발로 살아가기엔 이 세상이 너무 위험하니까. 그때가 되면 고양이들에게 날개가 달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어 이 고양이들이 더이상 외톨이로 지내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 책 표지, 9p, 10p, 20~21p, 48~49p, 51p, 103p, 105p, 133p, 153p, 156p, 177p, 19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티비 프로그램 중에서 인생극장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결심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확 달라지는 이야기였는데, 코미디 프로그램이었음도 불구하고 묘하게 진실처럼 다가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기네스 펠트로가 나온 영화 중에 도어스란 영화가 있는데, 전철을 타느냐 못타느냐로 그녀의 앞으로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앞에 나온 인생극장은 스스로가 결심하고 자의에 의해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다면, 도어스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 즉 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보자면 책의 제목에 나오는 못 가본 길은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환경같은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그쪽으로 갈 수 없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안갔다와 못갔다는 비슷하게 들려도 그 속내는 아주 극과 극이라 생각한다. 안간 것은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고, 못간 것은 나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서른 몇 해의 시간을 살아 오면서 스스로 결정해 안가본 길도 많지만,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갈 수 없었던, 그래서 못 갔던 길도 많은 듯 하다. 원래 인생이란 게 자기 할 대로 하고만 살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정해서 안가기로 한 길에 대해서도 미련이 생기는데, 못 가본 길에 대해서는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 제목만으로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으니, 가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그런 것일까.

이 책은 작가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 파트와 책에 관한 짤막한 글을 담은 파트, 그리고 이미 떠나버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파트로 나뉘어진다. 첫번째 파트는 작가의 소소하고도 담담한 일상을 적어내려가고 있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전쟁으로 남쪽으로 피난 오던 시절의 힘겨웠던 이야기며, 대학에 입학했는데 바로 얼마 후에 전쟁이 터져 학교에 가지도 못한 이야기며... 떠올리면 가슴아프고 쓰라릴 기억이지만 담담하게 풀어 놓는 이야기 한 구절, 한 구절이 오히려 더 가슴 깊이 스며들어 온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가슴 아픈 기억에 대한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최신 영화를 보러 갔다가 떠오른 고교 시절의 추억이며, 축구란 것에는 관심도 없다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팬이 된 이야기를 읽어 내려 갈 때는 내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리기도 했다. 또한 손수 집 마당을 가꾸는 이야기를 보면서, 지인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던 이야기를 보면 여전히 세상은 아직 내가 모르는 일이 가득하고, 그래서 즐겁다, 라는 감정이 전해져 온다. 

나는 어떨까. 작가의 반도 안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삶에, 사람에 염증을 내고 넌더리를 낸 적이 수도 없이 많지 않았던가. 따져 보면 하루하루가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대충대충 보내고 있지는 아니한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80순의 나이에도 붓을 꺾지 않고 열심히 집필 활동을 하는 작가의 뒤에는 이런 활기참과 세상에 대한 고마움, 사랑스러움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두번째 파트의 책 이야기는 정확히 따지면 서평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느낌들, 그리고 그 느낌들이 가져다 주는 추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나 역시 오래전에 읽은 책을 꺼내들 때, 혹은 새 책이지만 문득 내가 겪어 왔던 일과 비슷한 일이 나오는 부분을 읽을 때 그런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난 책을 읽으면서 좀 분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는 나도 이렇듯 편하게 책을 읽으면서 책이 보여주는 다른 길을 찾아 산책할 수 있게 될까.

마지막 파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박수근 화백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1951년 겨울, 미군 PX에서 일하던 작가는 영화관 간판을 그리던 박수근 화백과 만나게 되었다. 당시의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거리낌없이 보여주다니, 깜짝 놀라게 되었다. 나도 스스로가 부끄럽게 여겼던 일을 작가의 연세쯤 되면 그렇게 다 드러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난 절대로, 죽을 때까지의 비밀로 그것을 안고 가게 될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저지른 부끄러운 행동을 스스로 남에게 드러내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는 작가의 연륜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놓는 이야기는 무척 매력적이다. 마치 우리 할머니가 할머니 어릴 적에는 말야~~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또한 요즘 할머니는 말야~~ 이렇게 이렇게 지내고 있어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젊은 작가들이 써내려간 일상의 이야기와는 확실히 다른 푸근함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후의 초상
혼마 아키라 지음, 손해정 옮김 / 인디고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상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어쩔줄 모를 지경일 때는 "왜 우린 이제서야 만나게 된 걸까. 너없이 지내온 시간이 너무 아까워"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이런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경우는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하고 있을 때다. 만약 결혼식전날, 꿈꿔 왔던 이상형을 만난다거나,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는 상태에서 이상형과 만나게 된다면 이런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아무리 시간을 원망해 봤자,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냥 마음속에 연정을 품고 그저 포기해야할까, 아니면...

누나의 약혼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는 야마토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고지식한 아버지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아들이 그림나부랭이에 빠져있는 것에 대해 크게 질책한다. 야마토는 어쩔 수 없이 화가의 꿈을 접고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카구치는 누나의 약혼자이다. 야마토는 어느샌가 사카구치에 대해 사랑을 품게 되는데...

사실 누나의 약혼자라는 설정은 좀 구태의연하다. 그런 설정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최후의 초상은 의외로 깔끔하게 진행되었다고나 할까. 결혼식전날 사카구치에게 고백을 하고, 야마토와 사카구치는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다거나 그럼 그렇지, 라는 약간은 야유섞인 말도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야마토의 감정을 너무 강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야마토가 만날 사카구치에 대한 감정에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면, 아~~ 짜증나, 또 이래? 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도 조용하게 품은 감정이라 그런지 오히려 그날의 고백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달까. 따지고 보면 사카구치의 반응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거 뭐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사랑하나만으로 보자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달까.

그에게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FBI요원으로 일하는 나루미는 최고의 훈련을 받은 요원임에도 불구하고 늘 잡무담당이다. 숫기 없는 성격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에게 주어지는 건 데스크잡뿐, 현장 실무는 늘 다른 요원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수께끼의 게임 디스크가 FBI로 날아오게 된다. 그 수수께끼를 풀게 된 것은 전직 FBI요원이었지만 기밀정보를 팔아넘기고 동료를 사살한 죄로 수감된 사형수 키스였다. 키스의 감시역으로 일주일동안 키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나루미는 키스와 함께 외부에 나갔다가 마약조직의 밀수업자를 보게 되고, 키스의 도움으로 그를 체포하는데에 성공하게 된다. 키스와 지낸 며칠동안 나루미는 키스는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고, 재조사에 착수하게 되는데...

목숨이 단 7일밖에 남지 않은 사형수라와 FBI요원의 이야기는 흥미진진 두근두근이었달까. 숫기없는 요원인 나루미가 키스를 만남으로해서 변해가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또한 IQ가 무려 200이상이라는 천재인 키스의 활약 역시 흥미로웠달까. 어려움을 같이 겪음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설정 역시 다소 재미없는 설정일지는 몰라도, 이게 혼마 아키라의 힘인 것일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키스 사건과 관련된 뒷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등장인물들의 담담한 감정 변화도 난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너우 오버스럽게 감정이 변화하면, 혹은 갑작스럽게 감정이 변하면 난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이런 경우는 좀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달까. 그러면서도 달콤해. (푸힛)

세상에 절대로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랑해서 문제가 생길 사람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순수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그 사랑이 허락받지 못할 사랑이 될 수도 있다. 두편 모두 어찌 보면 사랑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 남자들의 이야기지만, 스토리 전개가 매끄러워서 이 사람들이 사랑해선 안될 이유는 없어! 라고 생각하게 되었달까.  

적당히 담담하고, 적당히 달콤해서 좋았던 두 편의 사랑 이야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2-1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마 아키라님 작품은 전체적으로 괜찮았다는 기억이 나네요.
최근에 읽은 게, 토끼남자 호랑이 남자였는데 이건 무척이나 달달해서 :)
이 작품은 처음보는데, 리뷰보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ㅎㅎ

스즈야 2010-12-18 22:00   좋아요 0 | URL
전 이번에 혼마 아키라를 처음 만났어요. 기대 이상이라서 다른 책도 주문하려고 생각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