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을 권리 - 상처 입은 나를 치유하는 심리학 프레임
일레인 N. 아론 지음, 고빛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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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 두 가지가 공존한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은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오만하다거나 거만하단 소리를 듣는 경우도 많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은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감 없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에는 어떨까. 난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며 소극적이다, 라는 말을 학창시절 내내 들으면서 살았다. 특히 내성적이란 단어는 초중고교 시절을 통해 생활기록부에서 빠진 적이 없을 정도다. 이런 내가 싫어서 바꿔 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지만 사람이란 게 그리 쉬 바뀌던가. 그래서 지금은 기를 쓰고 명랑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결국은 소극적이면서 시니컬하고 소심하면서도 까칠한, 아주 이상한 성격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본인은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하고, 사랑이나 연애를 할 때도 아주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난 친구가 거의 없다. 소수의 친구들만 있고, 그들에게만 내 마음을 열어 둔다. 그들을 만나는 시간외의 나머지 시간은 나만의 세계에 틀혀 박혀 사는 편이다. 블로그를 여러개 개설해놓고 사용하고 있지만, 블로그 본연의 의미인 소통이란 것은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혼자 유유자적, 희희낙락하면서 산달까. 물론 아예 바깥 세계와 소통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혼자 즐기고 있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난 왜 이런 걸까. 물론, 이렇게 사는 게 딱히 불편한 것도 없고 힘든 것도 없고... 등등등의 이유를 난 100개도 넘게 댈 수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게 싫어서다. 뭐, 그런 이유가 99%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스스로를 하나의 틀안에 가두고 괴로워 하게 만드는 심리를 이 책에서는 '못난 나'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책 1장에서 3장까지는 '못난 나'를 만드는 요인을 비롯해 인간 관계 속에서 흔히 나타나는 '순위 매기기'와 '관계 맺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순위 매기기는 권력, 관계 맺기는 사랑을 의미하며, 순위 매기기에 집착하는 경우 스스로의 가치평가를 절하한다거나 타인을 대할 때 방어기제를 이용하는 경향이 커진다. 이와 반대로 관계 맺기를 잘 하는 사람은 따스하고 평온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못난 나'를 만드는 요인으로는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려는 선천적인 성향, 과거의 트라우마, 타고난 민감성, 편견과 차별에 시달린 경험, 불안정한 정서의 영향등이 있다. 나의 경우, 선천적으로 그리 밝은 성격이 아니었으니, 선천적인 경향, 과거의 트라우마, 민감성, 불안정한 정서등이 내 마음속에서 '못난 나'가 생긴 요인이 된 듯 하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에서 난 솔직히 좀 놀랐다. 트라우마란 것이 이렇게 광범위 하고 다양한줄은 몰랐달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성인이 되었을 때의 트라우마가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 또한 체크를 하면서 나에게도 다양한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외였다. 스스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겨왔던 것들은 어쩌면 내가 무의식중에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또한 나의 방어기제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이외에도 본문에는 스스로에 대한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 정도를 알아보는 테스트와 방어기제 테스트가 있었는데, 결과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내 생각과 상당히 달랐다. 특히 내가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부풀리기와 투사하기가 높게 나왔다. 물론 다른 것도 하나 둘씩 체크되긴 했지만, 네개나 체크된 것은 그 두가지이다. 부풀리기는 못난 나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자신만의 세계에 가두는 경향이고, 투사하기는 나의 단점을 다른 사람을 통해 비추어 보는 경향을 의미한다. 스스로도 타인을 대할 때는 어느 정도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게 나올줄은 몰랐다. 좀 씁쓸했달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속시원하단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나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으니. 문제를 알아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4장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본격적인 치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단계는 '순위 매기기'로 이루어진 관계를 '관계 맺기'의 시작으로 바꾸는 것이고 두번째 단계는 무의식과의 소통을 통한 과거의 트라우마의 극복이다. 우리는 과거의 일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이것은 과대평가하는 것보다 때로는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온다고 한다. 뭐, 나도 툭하면 과거 일인데, 잊고 살아야지, 언제까지 과거에 집착할거야, 라는 등의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적절한 극복없이 무조건 잊기나 무조건 가두기는 언제 터질지 모를 트라우마 시한 폭탄을 마음속 깊이 저장해 둔 것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자신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제대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필수일 것이다.
 
세번째는 내면의 비판자와의 대화이다. 내면의 비판자란 내 마음 속에 있는 또다른 나인데, 비판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듯이 부정적이긴 하지만 악의적이지는 않은 또다른 나를 의미한다. 내면의 비판자와의 대화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심리를 조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방어기제로 작용하는 내면의 보호자 - 학대자 또한 심리의 저변에 위치하고 있다. 보호자의 경우 내 마음 속 고치안에 나의 마음을 가두고 무조건 보호하려는 것을 의미하고, 학대자는 스스로에 대해 악의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못난 나'의 부분이 큰 사람일수록 내면의 비판자보다 내면의 보호자 - 학대자 영역이 크다는 것은 더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이 부분을 보면서 내가 나 자신과의 대화를 나눈 적이 몇 번이나 있나, 하고 헤아려 봤다. 뭐, 굳이 헤아려 보지 않아도 손에 꼽을 수 만큼 적다고 할까. 물론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많지만, 적극적인 대화는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나 자신과의 대화가 이토록 크게 작용한다는 것도 잘 몰랐고, 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 방법 또한 몰랐으니, 이제까지 그런 경향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나 자신과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달까.

또다른 방법으로는 꿈을 통한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가 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며, 우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어떤 것들이 드러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통해 자신의 심리를 추정하고 그에 대해 자신의 마음과 대화를 하는 과정이다. 난 꿈을 자주 꾸는 편인데, 거의 기억을 못한다. 기분 좋게 꾸는 꿈보다 기분 나쁜 꿈이 많아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꿈은 인간의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기억이 잘 안나서 그냥 기분 나빠하고 말아 버린 적이 많다. 하지만 앞으로는 꿈에 대해서도 조금은 신경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기분 나쁜 꿈이란 것은 내가 마음 속에 어떤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도 되니까.

이렇듯 내면의 비판자니, 내면의 보호자 - 학대자니 하는 용어와 꿈을 통한 나와의 대화란 것 때문에 좀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이는 결국 내안에 있는 또다른 나와의 대화라고 보면 무방할 듯 하다. 앞서 나온 트라우마의 극복과 이런 치유 과정은 내적인 치유과정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외부적인 치유과정은 어떤 것일까. 첫째로는 순위 매기기의 관계를 관계 맺기로 전환하고, 둘때로는 그 관계 맺기를 강화하며, 세번째로는 그 관계를 유지하고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난 일단은 치유 과정보다는 '못난 나'를 만드는 요인이라든지 원인에 집중해서 이 책을 읽었다. 책을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치유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문제가 뭔지 알아야 해결이 되는 법이니, 처음 이 책을 읽는 나로서는 이게 바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객관적으로 살펴 보게 되니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명히 알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권력 위주의 '순위 매기기'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이라는 구조의 '관계 맺기'를 통해 더 원만하고 따스한 인간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순위 매기기'를 우리 삶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순위 매기기'는 개인의 영역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긍정적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위 매기기'와 '관계 맺기'의 적절한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 '못난 나'를 극복하고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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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고양이 - 고양이에게 배우는 라이프 테크닉
이주희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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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보고, '이기적'이란 말에 눈길이 확 갔다. 고양이가 이기적이라고? 이건 아니지, 고양이는 이기적으로 보일 뿐, 실은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물인데, 라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진짜 이기적인건 인간이라고, 도. 그래서 얼른 책을 펼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고양이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다. 고양이 찬양론자의 고양이 찬양론일뿐. 그것도 아주 유쾌한.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

아차차! 그전에 여기에 등장하는 네마리 고양이들의 소개가 먼저 필요할 듯. 왼쪽 위에 있는 아이가 셋째 번개탄. 묘종은 봄베이로 막내 아톰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막내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면 살았다. 특기는 두루마리 휴지 살해하기. 별명은 탄 더 리퍼라나? 오른쪽 위에 있는 아이의 이름은 씨씨, 유일한 암컷이다. 네마리 고양이중 첫째. 성격은 조금 예민한 편. 그러나 아톰을 물고 빨고 하는 걸 보면 모성본능이 꽤 강한 모양. 묘종은 터키시 앙고라. 왼쪽 아래의 턱시도가 아톰. 막내이지만 벌써 중년 아저씨의 포스를 풀풀 풍긴다고. 묘종은 코숏. 오른쪽 아래에 있는 이티(?)처럼 보이는 녀석은 메. 겁이 많은 아이로 번개탄과 친하게 지낸다. 가끔 꽃을 뜯어먹고 루꼴라를 아주 좋아하는 채식주의자(?). 묘종은 샴으로 이 집 고양이 중 둘째.

고양이를 보면 사람들은 참 우아하다고 말한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초연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아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저 게을러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게으른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건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물론, 앞다리를 쭉 뻗은 아톰의 모습에선 우아함보다는 뭔가 고양이스럽지 않은 그런 편안함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게으름도 멋지게 보일 수 있는 것. 사람도 그럴 순 없을까. 고양이가 참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고양이건 사람이건, 어쩔 수 없이 솔직한 얼굴근육을, 어쩔 수 없이 가진 것들이 나는 어쩔 수 없이 편하다. (29p)

사람들은 고양이가 늘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고양이의 표정은 실로 다양하다. 울음소리가 다양한 것처럼 표정도 다양하다. 아주 느긋한 시간을 보낼 때의 평온한 표정부터 못마땅한 표정까지. 고양이의 표정은 숨겨지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포커 페이스란 것을 사용한다. 억지로 웃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가 요상한 꼬투리를 잡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웃는다. 나중에 길길이 뛰면서 화를 낼지언정. 그게 사회 생활의 제 1 포인트다. 바깥에서의 그런 삶이 때로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럴 때 고양이의 감정을 감추지 않는 표정을 보면 마음이 스르륵 풀리기도 한다. 고양이의 다양한 표정은... 솔직함을 대변한다. 이러니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다.

고양이의 사랑은 숨김이 없다. 평소에는 생까고 지나가던 수컷 고양이었을지라도, 진짜 사랑을 해야 할 때면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평소에 칠렐레팔렐레 사랑을 흘리고 다니는 것 보다는 그 편이 훨씬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에 늘 난 당신만을 사랑해, 당신만을 원해~~라고 노래를 부르면 그게 아무리 좋은 말일지라도 듣는 사람은 금세 질릴지도 모른다. 평소엔 좀 냉정해도 필요한 순간에는 그 사랑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 그것이 사랑을 오래 지키는 비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와 고양이. 고양이와 남자. 누가 더 나을까. 고양이와 남자를 비교해 놓은 것을 읽으면서 한참을 웃게 되었다. 고양이가 남자보다 좋은 점은 수도 없이 많다. 고양이가 남자와 비슷한 점도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남자가 고양이보다 나은 점은? 그런 게 있을리가 … 번개탄의 표정이 정답이다. 문득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리 여사의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래, 인간 수컷보다는 고양이가 더 좋을 때가 많긴 하지. 이는 고양이 마니아들의 공통적인 생각일지도.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 음,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은 먹고, 자고, 놀고... 대부분 그렇게 생활한다. 이 책은 개와 고양이의 팔자를 비교해 놓고 있는데, 개도 역시 상팔자이지만, 고양이가 더 그렇다고 말한다. 개는 여러모로 사람에게 맞춰 주고 살아야 하니 좀 피곤할거란 결론이랄까. 우리집 개들은... 그렇지, 내가 궁뎅이만 떼면 쪼르르 쪼르르 쫓아온다. 그게 미안해서라도 난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길 고수하는데 말이지. 하여간 행복하게 사는 동물은 개나 고양이나 상팔자다. 그것을 지켜주는 건 인간이란 걸 잊으면 안되겠지?

고양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는 건 고양이 마니아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근데, 따뜻하지 않은 종이 위에 올라 앉는 아유는 뭘까? 맨바닥에는 절대 앉지 않겠다는 귀족적인 우아함? 고양이 입장에선 멋대로 생각하는 건 당신 마음이지만, 난 그저 당신이 나만 바라보길 원했을 뿐이라구요, 일지도. 신문을 펴 놓으면 그 위에 달랑 올라 앉고, 빨래를 개려고 하면 그 위에 달랑 올라 앉고,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 먼저 앉아 있고. 그런데, 종이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안쓰러워 방석을 깔아주면 용케 피해서 앉는 그 심보는 뭐지?? 고양이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도통 알 수 없다. 이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지도.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자기의 반려묘가 접대냥이거나 무릎냥이였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만을 바라봐 주는 고양이였으면 싶을 때도 있다. 사람들이 올 때마다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갑게 맞이하는 고양이보다는 내가 왔을 때만 마중나오는 그런 경우가 바른(?) 고양이였으면 할 때도 있다. 또한 무릎냥이도 마찬가지이다. 고양이가 무릎에 올라와서 자면... 한참을 잔다. 사람은 고양이가 깰까 싶어 꼼짝도 못하고 내 집안이 감옥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주변냥이가 있다면? 손이 닿을듯 말듯한 위치에서 늘 자신을 지켜봐주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참고로 우리집 개들은 주변멍멍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우리집 고양이 중 한 녀석은 무릎냥이고, 한녀석은 변두리냥이이다. 변두리냥이라고 함은 녀석이 불러서 방에 들어가면 멀찍이 떨어져서 앉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만 있으면 만사형통!?

사람을 향합니다.

자신의 고양이가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것에 상처받지 마시라. 이런 행동은 사람이 등 뒤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느끼고 전방만을 경계하는 것이니. 그래도 귀는 사람을 향해 있다. 뒤로 쫑긋 세운 귀. 사람의 움직임을 언제든 파악할 수 있도록 귀를 열어 놓고 있는 모습, 이러니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향해 늘 귀를 열어 놓으면 좋으련만. 분명히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선과 귀는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몹시 심란해진다.

아아아. 아깽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무장해제시키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어떤 아이돌이 와도 아깽이들의 사랑스러움에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은 얼마 가지않는다. 5~6개월이면 중고양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아쉽고, 더 사랑스러운지도.

고양이들은 의외로 겁이 많은 녀석들이 많다. 특히 누군가 집에 오면 몇시간은 숨어서 꼼짝도 안하는 투명고양이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도 많다. 메가 그런 편이라고. 자신의 꼬리에도 놀라 붕붕꼬리를 할 정도라니, 그만하면 말 다했지. 작명의 문제인가. 양처럼 겁이 많은 메. 하긴 우리 티거도, 겁 많기로는 한자리 할 것 같다. 고등어무늬라서 티거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푸우 친구인 티거처럼 아주 겁많은 녀석이다. 투명증후군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예전엔 5분 정도 낯선 사람이 왔다고 5시간 이상을 숨어있기도 했다. 작명에 신경씁시다!

고양이들은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아주 좋아한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박스. 우리 고양이들고 박스만 보면 서로 들어가려고 난리를 친다. 그래서 똑같은 박스를 마련해주면...? 그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나의 박스를 서로 차지하려 애쓴다. 그런 걸 보면 단지 박스에 들어가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서로의 서열을 한 번씩 확인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뭐 어쨌거나 큰 싸움만 나지 않으면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무척 즐거운 순간이다. 특히 저렇게 구멍을 뚫어놓은 박스 틈 사이로 발이 쑥쑥 나오는 걸 보면 그 말랑한 젤리를 꼭 잡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할퀴는 건.... 뭐 능력껏 피하시길.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해볼 것이다. 우리 개나 고양이가 말을 하면 좋을텐데...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람의 말을 하지 않으니까 더 좋을 수도 있다. 말은 행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는 법이 더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 티거처럼 수다쟁이가 사람말을 한다면...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떠들 것 같은데, 그건 좀 고려해 봐야겠다. 고양이는 야옹야옹하니까 사랑스러운 것이다. 야옹 소리만 해도 그 패턴이 수십가지는 될 듯. 잘 들어보면 구별되어 들린다. 어떻게? 사랑하니까. 내가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하는 것만큼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으면서부터였다. 다른 이름도 없이 그냥 고양이라 불린 고양이는 사람들의 웃긴 꼴을 보면서 마음껏 비웃어준다. 세상에나, 우리 고양이가 말을 안하는게 다행이지.. 랄까.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고양이와 보낸 수많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수많은 사건에 대해서도. 어느 페이지를 펼쳐 봐도 고양이 찬양이 그치지를 않는다. 이는 단지 겉모습이 사랑스럽기 때문은 아니다. 각기 다른 고양이들의 성격, 행동. 그것을 통해 느끼는 일상의 행복과 기쁨. 그리고 고양이의 행동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까지, 실려 있는 이야기들은 때론 완전 동의합니다,의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고, 때로는 우리 고양이와 비교해 보면 똑같아를 연발하게 만들고, 때로는 우리 고양이는 이런 점이 더 나은 것 같아, 역시 우리 고양이가 최고야를 외치게 만든다. 어차피 내 눈앞에 있는 녀석이 최고니까. 세상의 고양이가 모두 사랑스러워도, 내 고양이가 가장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사진 출처 : 책 표지, 187p, 23p, 29p, 72p, 95p, 100p, 107p, 145p, 147p, 170~171p, 175p, 210p, 246~2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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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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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장르라고 하면 난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토탈리콜, 우주전쟁 같은 것들이, 책은 필립 K. 딕의 유빅이나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유령 여단,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같은 음울한 분위기의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가져온 혜택보다는 그로 인한 파괴와 멸망으로 가는 암울함이 내가 떠올리는 SF장르란 것이다. 물론 아직은 SF라는 장르에 대해 내공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1人인지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만을 가지고 있던 내가 『민들레 소녀』를 읽었을 때 깜짝 놀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총 15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SF장르이면서도 SF같지 않고, 따스하면서도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경이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나 안드로이드를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성이 짙은 작품들은 나에게 색다른 경험을 해주게 만들었다.

표제작인 <민들레 소녀>는 먼 미래에서 온 소녀와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실 소녀라기 보다는 아가씨란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이 남자가 처음엔 소녀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240년 후의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는 게 쉬 믿길 일은 아니잖는가. 소녀를 만나면서 첫사랑의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느끼면서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그. 사랑은 20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었다. 사랑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작품 속에서 소녀가 했던 말인 "그제는 토끼를 보았어요, 어제는 사슴, 오늘은 당신을" 이란 말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올 만큼 행복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아, 넌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구나.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는 물질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자신의 본 모습으로는 부끄러워 차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 차를 입는다는 것은 옷으로 자신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듯 차를 이용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의미한다. 원래의 본모습으로는 더이상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그에 비해 나체주의자들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다. 차란 것은 겉모습일 뿐이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본연의 모습보다 겉모습에 더욱 치중해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프라이팬 조종사>는 읽으면서 쿡쿡하고 자꾸만 웃게 된 작품이다. 모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한 일종의 쇼였지만, 그 마음이 기특하고 갸륵하다. 이런 남자라면 나도 넘어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팝콘 튀기는 TV>는 손해 보는 장사는 없다는 교훈을 강하게 남긴 작품이었고, <별들이 부른다>는 지금 사는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한 남자와 화성에서 온 새인 키츠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둘 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이들은 여행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는 안드로이드로 만들어진 모형시인들이 전시된 박물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와 같은 문학은 과거의 전유물로 취급되고 시인들이 있던 자리는 클래식 차들로 채워진다. 이것에 분노를 느낀 큐레이터가 내린 조치는? 눈앞에서 그 광경이 그려지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지는 기분이다.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는 안드로이드 이야기이다. 인간의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안드로이드에게 프로그래밍한 것때문에 결국 파탄을 맞게 되는 남자. 어찌보면 우리는 안드로이드같은 인간이 만들 피조물에 대해 너무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거와 미래의 술>은 읽으면서 무척이나 공감하게 된 작품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처구니 없이 큰 실수를 저질러 자신의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자신의 실수로 미래를 바꿔버리게 된 것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란 의외로 자신을 잘 바꾸지 못하니까.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남자와 대비되는 인물은 방랑자이다. 그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그리고 그가 수없이 되풀이한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것을 보았을 때... 만약 그때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른 길을 걸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테니, 그는 어쩌면 영원한 방랑자로 남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외의 작품들 모두 흥미로웠다. 지구 멸망이후 화성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파란 모래의 지구>는 화성인들의 삶이나 지구인들의 삶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하늘에 새겨진 글자>는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별자리가 달라 보이는 것때문에 외계인과 지구인들 사이에 생긴 오해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에 푸흡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달까. 뒤로 갈수록 깜짝 반전들이 튀어나와 무척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호시 신이치의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촌철살인의 마지막 한 문장같은 것) 물론 로버트 F. 영의 작품들은 그의 작품처럼 작품 내용이 섬뜩하고 무섭고 반전이 헉소리가 나올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반전은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현실성을 띠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현대 문학과 문학을 창출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인을 사랑한 큐레이터>라든가 <화강암의 여인>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더이상 예전의 신비로운 것들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사람을 위해 등장시켜야 했던 것이 우주선과 외계인일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프라이팬 조종사>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거론하면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애니메이션 클라나드이다. 난 이 작품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 애니메이션 중에『민들레 소녀』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헌데, 난 다른 소설에서 이 작품의 이름을 만나게 되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자키 시리즈 중 헌책방을 소재로 한 작품 속에서 헌책방 주인인 베니코 여사가 읽고 있는 것이 바로『민들레 아가씨』란 책이다. 일본에서는 슈에이사(집영사)에서 1980년에 나온 책으로 『たんぽぽ娘 海外ロマンチック SF 傑作選 2』(민들레 아가씨 해외 로맨틱 SF걸작선 2)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되었다. 이 たんぽぽ娘이 바로 로버트 F. 영의 작품 민들레 소녀이다. 가끔 책을 읽다가 이런 것을 발견하면 무척이나 재미있달까. 뭐, 그렇단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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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모든 것 2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손희정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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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즈버그 학원의 김나지움에서 생활하던 J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뉴욕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폴과도 어느새인가 가까워졌지만, 폴은 카렌즈버그 학원의 이사장인 이모의 말때문에 J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것이 J가 폴과 카렌즈버그를 떠나게 한 이유가 되었다. 뉴욕에서 남장 여자로 레이디 J라는 이름을 얻으며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는 J였지만, 여전히 그를 둘러싼 환경은 그를 자유롭게 해주지 못했다.

J의 모든 것 2권은 J의 뉴욕 생활과 그가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견뎌내어야만 했던 시련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아들어갔던 J. 스폰서이자 클럽의 오너인 아더는 J를 돌봐주는 사람이자, 애인정도로 봐도 될 것 같다. J에 대한 그의 태도는 클럽의 최고급 상품으로 여기는 듯 하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많이 아끼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J는 시인 지망생인 리타를 거리에서 구해준다. 순진한 시골 아가씨가 뉴욕의 나쁜 사람에게 속아 짐도 털리고 갈곳도 없게 된 것이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남자인 리타와 겉모습은 영락없이 여자인 J. 둘의 조합은 미묘하면서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사이에 사랑이란 것이 끼어들면서 이들의 운명 역시 꼬이게 된다.

J를 좋아하는 리타, 그런 리타를 좋아하게 된 아더. 서로 향하는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으니 이를 어쩌누. 그러던 중 J는 거물급 의원에게 불려가 학대와 모욕을 받게 된다. 마음도 몸도 큰 상처를 입은 J. 여린 소년은 어른이 되어가지만, 그 과정은 아프기만 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J는 사라져버렸다. 마릴린 먼로의 자살 소식과 함께...

여전히 분위기는 어둡다. 물론 J의 겉모습은 화려하기 그지 없지만, 그 이면은 상처투성이 소년일 뿐이다. 스스로가 원해서 여장남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호기심과 욕망으로 가득할 뿐이다. 그런 J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온 것은 리타였지만, J는 남자만을 사랑할 수 있을 뿐. 리타에게 고백한 아더의 마음도 공중으로 산산히 흩어졌다. J에게 고백한 리타의 마음도 갈갈이 찢어졌다. 그들을 남기고 J는 도대체 어디론 간 것일까.

1권 마지막 부분을 보면 폴과 J가 함께 살고, 모건이 찾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다면 3권에서는 다시 폴과 J의 재회가 이루어진단 말이렷다. 그렇다면 3권의 내용은 이들의 재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겠지. 결말을 알고 싶어 얼른 읽고 싶지만 아껴 읽느라고 최대한 텀을 두고 읽고 있다. 마치 커다란 사탕을 선물받은 꼬마처럼.

참, 2권을 이야기하는데에 있어서 표지 일러스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J의 모습인데, 묶여있는 방식이 좀 그렇긴 해서 좀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운명에 묶이고, 자신의 성(性)과 겉모습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에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는 J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긴 한다. J는 자신을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든 어둠을 지나 다시 빛 속으로 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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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밋빛 때문에 이것도 안 읽고 있는데, 자꾸만 끌리네요 킁.

스즈야 2010-12-18 21:58   좋아요 0 | URL
음... 좀 음울하긴 하지만 3권이 해피엔드로 끝나서 한시름 놨지요. 만족할만한 엔딩이었어요.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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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고베 대지진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본의 수도 도쿄의 지하철역에서 사린 가스 살포사건이 발생했다. 12명 사망, 5,000 여명의 중경상자들이 발생한 그 사건이 일어난 날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일요일과 춘분 사이에 낀 월요일 아침. 출근객들로 붐비는 지하철안에서 옴진리교 신자 5명이 비닐봉지에 넣은 사린을 터뜨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 오늘 하루쯤은 쉬어도 되지만 일을 하러 나섰던 사람들. 그들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지요다 선, 마루노우치 선(오키쿠보 행), 마루노우치 선(이케부쿠로 행), 히비야선(나카메구로 발), 히비야 선(기타센주 발, 나카메구로 행) 열차에서 사린 중독으로 중경상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다. 총 62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1년에 걸쳐 인터뷰를 실시했다. 인터뷰 내용은 각 인터뷰이들의 간략한 삶과 그들의 인품에 대해 설명한 뒤, 그들이 이야기해 준 그날 벌어진 일들을 수록하고 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날 쉬어도 되었지만 출근을 한 경우가 많았고, 우연찮게 안개같은 외부적인 요소때문에, 혹은 조금 늦어져서 그 지하철을 타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습관의 동물인지라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같은 시각에 오는 같은 번호를 단 지하철을 탄다. 또한 타는 차량 역시 환승이 쉽거나 출구가 가까운 쪽, 그러니까 그들이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곳에 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평소의 그런 습관때문에 이 끔찍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이른 봄날 아침. 그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일정을 시작했지만, 그날만은 무언가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감지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사린 냄새를 불쾌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만약 그것이 불쾌한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람들은 그곳을 피했을 것이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다른 차량을 이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끈적이는 액체, 그리고 약간은 달큰한 냄새가 났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것이 차량내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후에는 눈앞이 흐릿해지며 잘 안보이게 되는 시야협착, 오한과 구토 증상 등이 나타났다. 

만약 불이라든지 폭탄이었다면 사람들은 금세 눈치를 챘겠지만, 사린이 공기와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가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불쾌감을 느끼다가 갑작스러운 증세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실 그많은 유동인구가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 12명의 사망자라면 그다지 많은 수가 아니잖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린에 중독된 사람들의 후유증은 길고 오래 갔다. 시야협착 증상은 점점 좋아졌지만, 중독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의 소실, 건망증, 악몽, 두통과 더불어 쉽게 피로해짐을 느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상처나 흉터가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에 대한 배려를 잊었다고 했다. 여전히 중독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외견상 아무 이상도 없어 보이니 그 일을 직접 겪지 않은 주변인들로서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개중에는 그런 이유로 직장을 그만 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들이 기억하는 그날의 광경은 각 역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침하는 사람들이 늘고, 사람들이 갑자기 쓰러지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간질이나 발작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사실 아침에 사람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데 그것이 독가스라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다 보니 대응이 늦어지게 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무원들은 직접 사린이 든 비닐 봉지를 치웠고, 접촉 시간이 길어져 사망에 까지 이르렀다. 또한 사린 봉지가 터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있거나 서있던 사람들도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히비야 선의 고덴마초 역에서는 총 세개의 사린 봉지가 터뜨려졌고, 그중 하나를 승객이 발로 차내 역내 플랫폼에 떨어짐으로 인해 가장 많은 사상사자 나왔다. 고덴마초 역에서 총 네 대의 차량이 멈춰섰고, 그래서 피해자가 더욱더 많아진 것이다. 사린 중독은 맑은 공기를 빨리 마셔야 그 피해가 덜하지만 사린 중독인지도 모르고, 그저 지하철 역 바닥에 눕히고 손수건을 물려주고 팔다리를 주물러주며 그 사람이 깨어나길 바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냥 지나가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다행한 일이지만, 그들 역시 중증 중독 현상을 보였다.

경증 중독인 사람들은 감기인가 하는 생각으로 회사에 갔고, 옷이나 머리카락에 묻은 사린때문에 2차 피해자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감기때문에 쉬는 회사원들은 거의 없다. 특히 일본처럼 회사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경우에라도 회사에 가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초동대응이 늦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달까. 구급차는 오지도 않고, 경찰도 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이렇게 진술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차를 세우거나 차를 타고 가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을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병원측에서는 아직 사린 가스에 대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늑장 대응을 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희생자 수가 더 줄지도 몰랐을텐데. 사린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마쓰모토 사린 사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더 큰 희생을 냈다.

인터뷰이들의 옴진리교와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생각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들에게 사린을 뒤집어 씌워야 한다고 하는 주장을 할 만큼 분노했고, 재판도 소용없다 바로 사형시켜라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들의 종교에 대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에 대해 분노하지만, 희생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아사하라 쇼코, 본명 마쓰모토 치즈오. 그는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언더그라운드는 그날 있었던 사건에 대해 실행범과 운전수의 행동을 간략하게 언급할 뿐 더이상의 언급은 없다. 희생자들의 인터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였든 그들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건으로부터 15년이 흘렀다. 피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중독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지 않을까. 후유증이 없어졌다 해도 그들이 겪었던 그 끔찍하고 참혹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그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무차별 범죄의 대상이 되었던 그들의 앞날이 평안하기만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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