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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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제수용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담은 일명 수용소 문학은 흥미 본위로는 읽기 어려운 책이다. 강제수용소를 소재로 한 영화 중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인생은 아름다워나 쉰들러 리스트를 본 사람들은 강제 수용소의 참혹함에 눈을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영상이라는 시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글로 씌어진 문학이라고 해서 읽기 쉬운 것은 아니다. 요네하리 마리의 올가의 반어법은 러시아 강제 수용소인 라게리에서 생존해 귀환한 두 여성의 삶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씌어진 소설인데, 중간중간 등장하는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는 참담했다. 그러나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직접 러시아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한 남성의 입을 빌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올가의 반어법보다 더 수용소 상황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열일곱살의 동성애자 레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겨 왔지만, 자신이 가진 비밀의 무게가 무거워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이곳만 아니라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러시아 강제 수용소로 가는 열차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전쟁의 책임을 독일에 묻는 러시아 정부는 루마니아 같은 곳의 소수 독일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끌고 갔다. 레오는 그곳에서 혹독한 추위와 엄청난 노동, 그리고 자신들을 숫제 짐승 취급하는 러시아인들 밑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레오에게 있어 가장 가혹했던 것은 바로 배고픔이었다. 멀건 양배추 수프와 딱딱한 빵 한조각. 노동의 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식사 배급이었다.

일일곱살, 한창 잘 먹고 클 나이의 레오에게 있어 배고픔은 가혹한 적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막사는 천막에 불과했고, 지급되는 옷이나 신발 등은 조악하기 그지 없었다. 이와 빈대, 벼룩이 들끓어 머리를 박박 밀어야만 했다. 배고픔만 좀 덜 수 있다면 혹독한 추위도 강도 높은 노동도 참을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고픔은 수시로 찾아왔고 그를 괴롭혔다. 가져간 물건들 중에 팔 수 있는 건 모조리 팔았다. 하지만 늘 배가 고팠다. 배고픈 천사는 늘 그의 곁에 머물며 그의 숨통을 죄어 왔다. 몇년이 지나자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중에 부부였던 사람도 자신이 살아 남기 위해 한 사람을 궁지로 몰고 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침에 배급받은 빵을 아껴 베갯속에 넣어둔 레오는 그곳에서 작은 새끼 쥐들을 발견한다. 레오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 쥐들을 곱게 싸들고가 화장실에 빠뜨리고 만다. 자신도 굶는 처지에 쥐들까지 먹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이 아껴 놓은 음식에 손을 대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마땅했다. 그것은 겨우 빵 몇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혹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게 되어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레오는 너무나도 힘들어 목숨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어느 겨울날 수용소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고 땅을 파라고 시켰을 때, 꼼짝없이 총살당하는 줄 알았던 레오. 그 공포는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에 반발해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운명을 내놓으면 지는 거다. 레오는 할머니의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이 레오에게 부적처럼 작용했다. 또한 석탄을 팔러 나갔을 때 만난 여인이 준 흰색 아마포 손수건을 끝끝내 팔지 않고 간직함으로써 그는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배고픈 천사에게 결코 자신을 완전히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오년간의 수용소 생활. 레오는 어느 정도 그곳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비록 배고픈 천사가 그를 따라다녔을지라도, 죽음이 온화한 미소를 그에게 건넸을지라도 말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나무 가지로 작은 트리를 만들어 초록색 장갑의 실을 풀어 걸고 빵조각을 달아 놓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리 혹독하고 참담한 환경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을 하게 된다. 어쩌면 힘들단 생각만으로는 버틸 수 없으니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발동되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수용소 생활 오년만에 레오는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불안했다. 수용소에서 받은 어머니의 엽서. 그곳에는 자신의 동생이 있었다. 돌아갈 곳이 있을까. 돌아가서 적응할 수 있을까. 부모님은 자신을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바깥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오년이었을지 몰라도 레오에게 그것은 오십년의 세월이나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했고, 그 자신도 변해버렸으니까. 집으로 돌아와 생활을 하면서도 오히려 수용소 생활을 그리워하는 레오를 보면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갑작스런 자유가 주는 어색함이라고 하기엔 지나친 생각일까.

레오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그는 그곳에 존재할 수 없었다. 밤의 어둠은 수용소 생활 시기로 그를 되돌려놨고, 때로는 악몽처럼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리워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이랄까. 결국 결혼생활에도 안정을 찾지 못한 레오는 또다시 길을 떠난다. 중간중간 레오의 현재 이야기가 나오는데 반세기가 지나도록 레오는 수용소 생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뼈와가죽의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배고픈 천사는 여전히 그의 곁에 존재했다. 육체적인 배고픔보다는 정신적 허기가 그를 굶주리게 만들었달까. 그토록 힘겨운 일을 겪었으니 그것을 잊지 못하는 것도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수용소 생활에서 자신의 온 에너지를 끌어 썼기 때문에 삶의 에너지가 바닥까지 고갈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르타 뮐러의 지인인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수용소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어진『숨그네』는 실제로 참혹한 수용소 생활을 겪은 생존자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큰 사실성을 부가한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수용소 생활에 대해 무척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수용소 생활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보고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씌어져 있다. 헤르타 뮐러 특유의 시적 문체와 비유와 은유는 그 참담함을 배가시킨다. 아름다운 언어가 그려내는 참혹한 진실은 그 충격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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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멈출 때 풀빛 그림 아이 32
샬롯 졸로토 지음, 스테파노 비탈레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1월
구판절판


바람이 멈추면, 어떻게 될까.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여름날엔 더위가 한층 더할 것이고, 추운 겨울날에는 조금은 덜 추울거야. 봄날엔 바람에 맞춰 살랑거리던 새싹들의 춤이 잠시 멈출 것이고, 가을엔 또르르르 굴러가는 낙엽들의 행진이 다음 행진을 준비하며 멈추겠지.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하루종일 대지를 비추던 해가 지고 있어. 하늘은 노란색에서 붉은 색으로 그리고 보랏빛으로 점점 어두워져 가. 아이는 저무는 해를 보면 문득 슬퍼졌지. 해는 지면 어디로 갈까?

아이는 오늘 하루종일 친구와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즐겁게 뛰놀았어. 놀다 지치면 초록빛 잔디 위에서 낮잠을 한숨 자기도 하고, 배나무 밑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도 했지. 자기전엔 아빠가 책을 읽어주시기도 했지.

잘 자란 인사를 하러 온 엄마에게 아이는 물었지. 왜 낮은 끝나야 하는 거죠?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지. 밤이 별과 달과 함께 너에게 좋은 꿈을 선사하려고 그런단다.

아이는 낮이 끝나 해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 엄마는 아이에게 말했어. 낮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어딘가에서 다른 낮을 준비하는 거라고. 그리고 세상에는 영원히 끝나는 건 없다는 말도 덧붙였지.

아이는 또 물었어. 바람이 그치면 어디로 가냐고. 엄마는 어딘가 다른 곳으로 불어가 다른 나무들을 춤추게 한다고 대답했어.

아이는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려 어디로 가냐고 물었어. 엄마는 어느 집 잔디밭으로 날아가 새로운 민들레를 피운다고 말했지.

아이는 여전히 궁금한게 많았어. 그다음으로는 산이 봉우리를 넘으면 무엇이 되냐고 물었지. 엄마는 산이 밑으로 내려가면 골짜기가 된다고 말했지.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가게 되어있으니까.

그럼 모래에 부서진 파도는 어떻게 되나요? 아이가 물었지. 파도는 바다에 스며들어 새로운 파도를 만든다고 엄마가 대답했어. 아마도 그 파도는 물고기들에게 신선한 공기도 날라주겠지.

폭풍이 끝나면 비는 어디로 가나요? 폭풍은 구름이 되어 다른 폭풍을 만들러 간단다. 폭풍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으니까. 또한 폭풍이 끝나면 눈부신 햇살이 비추지.

그럼 구름은 흘러 어디로 가나요? 어딘가 그늘이 필요한 곳에 그늘을 만들러 간단다. 사막을 지나는 사람에겐 그 구름이 만들어준 그늘 덕분에 덜 힘들거야.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어 떨어진 나뭇잎은 어떻게 되나요? 땅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나무와 새로운 잎, 새로운 풀들이 나도록 도와준단다. 다음에 나올 새로운 나무, 새로운 잎, 새로운 풀들에 밥을 주는 거란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끝나는 건데, 그럼 끝나는 게 있잖아요, 라고 아이가 물었지. 엄마는 가을이 끝나면 겨울이 시작되니,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니라고 대답했어.

겨울이 끝나면요? 눈이 녹고 새들이 돌아오고,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그렇게 봄이 시작되지.

정말 이 세상에 끝나는 건 없네요. 아이는 창밖의 하늘을 쳐다 봤어. 어느새 완전한 밤이 되어 있었어. 하늘은 깜깜해져서 보랏빛이 도는 까만색이 되었지.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별들도 달도 빛나는 밤이었어.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어. 이제 잘 시간이야. 네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달은 다른 곳에서 밤을 시작하러 멀리 떠나고, 해는 새로운 낮을 시작하러 이곳으로 돌아올 거란다, 라고. 아이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어. 새로운 내일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무척 철학적인 동화라고 생각했다.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니까. 아이들은 궁금한 게 참 많다. 난 어린 시절에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라고 집요하게 뭔가를 부모님께 여쭤 봤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부모님은 잘 대답을 해주셨지만, 만약 내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내 성격에 잘 대답해줄 자신이 있을까, 싶다. (笑)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 것은 얼핏 간단해 보이는 것이지만 대답하기 꽤 어려운 질문들이다. 나도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지 한참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끝과 시작은 맞닿아 있다. 그것은 아마 평행선을 달린다거나 극과 극의 개념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얼핏 보기엔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도 근본적으로는 연결되어 있달까. 왠지 이 책을 읽으니 세상 이치가 손에 잡히는 듯 하다. 그리고 희망이 퐁퐁 솟아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뭔가 벽에 부딪히고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여도 어딘가 또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잘 찾아 보면, 잘 생각해 본다면.

『바람이 멈출 때』는 내용도 참 좋지만, 그림도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판화같은 느낌이랄까. 색감은 선명한 편이지만 각각의 그림이 서로 잘 어우러진다. 특히 무언가가 끝나는 느낌의 그림과 시작되는 느낌의 연결이 무척 좋았다고 할까.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 꽃을 피우고, 낙엽이 떨어지면 눈이 내리고. 이런 연결부분이 어색하지 않고 참 자연스럽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작게 그려진 것들 역시 계절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할로윈 호박이나 마녀가 왼쪽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오른쪽에 있는 식으로.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넘기지 않고 유심히 살펴본다면 이 책을 더욱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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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가 없는 월요일 작가의 발견 5
아카가와 지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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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일하고 싶어서 일하는 사람들은 몇 퍼센트나 될까. 워커 홀릭들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사람들은 돈 문제만 없다면 백수 한량으로 살기를 꿈꾼다. 내 회사나 내 가게라도 일하기 싫을 날은 분명히 있을테지만, 남 밑에서 일한다는 건 정말 일하기 싫은 날들의 연속이 아닐까.

외벌이 봉급쟁이 남편들은 아내에게 "돈 벌어다 주면 고마운 줄 알아. 회사 생활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집에서 팽팽 놀면서.." 라는 레파토리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아이들에겐 "아빠는 너희를 위해 돈을 버는 거야" 라는 레파토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러나 어떨 때는 너희들을 위해 일에 올인하다가 막상 뒤돌아 보면 아무도 없는 그런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아뿔사!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벌써 가족은 해체되었다.

맞벌이의 경우 돈을 두 배 정도 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엄마들은 회사에서 죽도록 일하고, 집에서도 죽도록 일해야 하니까, 그 힘듦은 2배가 아니라 5배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 엄마도 직장 생활을 꽤 오래 하셨던 분이라 나도 그걸 잘 알고 있다. 다행한 것은 우리 아부지는 권위적인 분이 아니라 돈 벌어다 주면~~ 등등등의 말씀은 평생 한 번도 안하셨다.

어쨌거나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회사가 잘 굴러가 준다면, 상사와 마찰이 없다면,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잘릴 위험이 없다면 그래도 할 만하다. 하지만 봉급쟁이의 인생이 그리 순탄하기만 하더냐. 언제 태클이 들어올지 모르고, 언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 사회생활이란 것이니...『상사가 없는 월요일』은 총 다섯편의 단편이 실린 봉급쟁이생활백서 단편집이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만세, 땡잡았다! - 상사가 없는 월요일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요일은 신이 만들었고, 월요일은 사장님이 만들었다고. 월요병이나 블루 먼데이라는 말도 있을 만큼 봉급쟁이들에겐 월요일은 괴로운 요일이다. 그나마 화요일부터는 좀 낫지만 쉬고 난 다음 날이 더 피곤하듯 직장인들에겐 월요일이 정말 괴롭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사가 출근을 하지 않은 월요일이 있다고 한다면? 만세라도 부르고 싶지 않을까. 상사 눈치보랴 일하랴, 밥먹을 때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바쁜 나날들 속에 상사없는 하루는 꿀맛같은 하루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것은 평범한 직장인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곘다. 하지만, 그 꿀맛을 즐기기도 전에 사건사고가 무더기로 터져나온다. 평소같으면 자신의 상사가 처리했을 일인데, 이제는 평사원들이 모조리 해결해야 한다. 이런, 좋다가 말았다. 이거 평소같으면 한 건이 터질까 말까 한 일이 하필이면 상사가 아무도 없는 날에 마구 터져나온다. 직원들은 종종거리며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이 작품에는 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M문구회사의 평직원들, 돈이 없어 강도로 변신한 청년, 회사에 시위하러 온 엄마들에 납품된 문구가 엉망이라고 항의하는 거래처 사람에. 근데 자세히 뜯어 보면 사장은 여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과장 한 사람은 도박빚 때문에 회사 공금 횡령에 이제는 회사를 폭파하려 하고, 시위하러 온 엄마중 대장격인 엄마는 다른 회사에서도 이런 문제로 돈을 뜯어낸 전적이 있고, 거래처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문구 회사에 딴지를 건다. 이런 사람들땜에 평사원들이 이런 개고생을!? 분노가 솟아오를 무렵, 작가는 천재적으로 이 상황을 한번에 말끔하게 정리한다. 우와앗. 이렇게 속시원할 수가!

술 끊으려 했는데... - 금주를 결심한 날

세키구치는 승진같은 것에는 신경쓰지 않으며 살아가는 회사원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사장이 영업부 부장 자리가 비었다며 두 사람의 후보 중 어떤 사람이 좋을까, 라고 의견을 타진해 온다. 갑작스런 사장의 요구에 놀란 가슴 진정시킬 새도 없이, 이번엔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 불륜 상대가 부장 후보 중 한 사람이다. 세키구치는 어떤 사람을 부장으로 선택할까.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는 것이 확실한 누군가가 있다. 그런데 자신의 손으로 그 사람의 출세길을 막을 수도 있는 수단이 생긴다면? 나 같으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이 작품의 묘미는 남편과 아내의 게임같은 두뇌싸움이다. 자, 과연 누구에게 승리가 돌아갈까. 하지만, 또 하나의 비장의 반격이 기다릴 줄이야! 

세상에 이런 일이 - 꽃다발이 없는 환송회

럭셔리한(?) 출장을 다녀왔는데, 회사내에서 내 자리가 없어졌다면? 하야마는 일주일간의 출장에서 돌아온 후 회사에 나갔더니 퇴사되어 있었다. 사직서를 낸 기억도 없는데? 도대체 이건 무슨 음모인가. 하야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다녀도 모두들 대답을 회피한다. 부장은 사직서를 썼다며 사직서를 보여주고, 애인인 가네코는 얼마 전부터 하야마가 기억을 잘 못하고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증언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작품은 읽으면서 정말 씁쓸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아니 자신이 제정신이긴 한 걸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하야마를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열심히 일한 당신, (직장을) 떠나라, 도 아니고 말이지. 하야마를 둘러싼 음모, 음모, 음모, 그리고 안타까운 반전.   

참, 역자는 이 작품의 마지막 반전에 쾌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난 하야마가 안타깝기만 했다. 그런 그를 보고 쾌감을 느낄 악취미는 내게 없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 보이지 않는 손의 살인

호오, 이 단편은 제목부터 추리소설 분위기가 퐁퐁 솟아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 직장인의 슬픈 운명을 그리고 있달까. 사에키는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한다. 그의 여자 친구는 공교롭게도 예전에 사에키의 직장에 참관하러 왔다가 사고를 당했던 남자의 딸이다. 그렇다 보니 여자 친구인 나오코의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나오코의 아버지가 찾아와 말다툼을 하게 되고, 가벼운 몸싸움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일로 나오코의 아버지가 죽어버렸다. 살짝 밀기만 했는데?

갑자기 살인 용의자가 되어 쫓기는 사에키, 그리고 그를 보호해 주고 싶은 나오코.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제목과는 달리 너무나도 안타깝고 너무나도 슬펐던 단편.

걸어서 15분이라고 했는데... - 도보 15분

오카다는 최근 집을 장만하고 이사를 했다. 짐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회사를 쉴 수 없어서 - 쉴 수는 있지만 쉬지 않았다 - 출근한 오카다는 퇴근후 역에서 내려 걸으면서 자신의 집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한다. 다 똑같아 보이는 건물들. 게다가 집 주소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핸드폰도 없고, 집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고. 정말 미아가 될 판이다. 걸어서 걸어서 집으로 가던 중 그는 두 가족을 만나게 된다.

한 가족은 남편이 출장갈 때마다 아내가 젊은 남자를 끌어들였고, 한 가족의 가장은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회사에서 젊은 사람에게 밀려난 사람이다. 그들을 보면서 오카다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직장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함부로 그만 둘 수도 쉴 수도 없다.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뒷감당이 힘들다) 게다가 남자들은 묘하게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회사에 안나가는 날은 큰 일이라도 터질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없으면 일이 안돼, 랄까.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회사는 한 사람 정도 없어도 잘만 돌아간다. 그 빈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회사 생활에 올인했다가 나이 먹고 아무것도 없이 쫓겨나는 허망한 일을 겪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은 특히나 회사 인간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회사에 올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단편들에 나오는 인물들도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보답을 받긴 커녕 고장날 때까지 부려먹히다가 고장나면 내쳐진다. 이 단편집은 그러한 평범한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뭐, 때로는 작가의 특기인 잔혹 코믹극 분위기로 흘러가긴 하지만. 오히려 너무 잔혹해서 코믹하달까, 그런 느낌도 받는다. 쓴웃음이 나온단 말이다. 깔깔깔 웃을 수는 없단 말이다. 분명히 유쾌하고 경쾌한 문체로 씌어졌는데도, 직장인들의 비애를 곳곳에서 실감하게 된다.

당신의 봉급쟁이 생활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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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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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20일 아침, 도쿄의 지하철 안에서 일어난 사린 가스 살포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해 12명의 사망자와 5,000명이 넘는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몇 분만 노출되어도 사망에 이를수 있고, 조금만 흡입해도 호흡곤란, 시야협착, 구토와 발열, 두통과 악몽 등의 증상과 후유증을 남기는 사린. 옴진리교는 왜 사린을 지하철 역에 살포하게 된 것일까. 1권인『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그날 있었던 일을 비롯해 그 사건으로 변한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면, 2권인『약속된 장소에서』는 피해자 측이 아닌 가해자 측으로 분류될 옴진리교 신자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이 책과『언더그라운드』의 비슷한 점이라면, 일단 각각의 인물에 대한 작가가 받은 인상을 적은 글이 먼저 나온다는 것이고, 그후에 인터뷰 내용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게 다른 점을 꼽자면『언더그라운드』에서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면,『약속된 장소에서』는 옴진리교 신자와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질문을, 때로는 논리적인 반박을.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그들의 사고는 아무래도 우리들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표현을 쓴다고 해서 그들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보면 분명히 이들의 사고방식이 사회에 통용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쓰게 되었다)

신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특이한 것을 하나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그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시도는 거의 없다. 때로는 그것이 아무 소용없다고 느낀다. 스스로의 세상에서 외부를 차단하고 살았던 그들. 그것은 비단 가정 외의 세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인터뷰이 대부분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또한 오래전부터 종교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도 많았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을 구원해줄 무언가를 찾는 듯한 사람이 많아 보였다.

그들이 말하는 옴진리교는 처음부터 폭력적인 종교단체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요가와 수행을 주로 하는 작은 신흥 종교 집단이었지만, 그 세력이 확대되어 가면서 조금씩 삐걱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수행에 신경을 쓰면서 살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달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또한 지하철 사린 사건에 대해서도 금세 알지 못하고,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알게 된 경우도 많았고, 진짜 자신들의 교주와 교단 멤버가 그 일을 저질렀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교단에 남아 스스로의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들의 교단이 그토록 무참한 사건을 저질렀는데 왜 교단을 떠나지 않지?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이들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이해가 된다. 이들은 원래부터 바깥 세상 - 자신의 외부 - 에 관심이 가지고 살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이들은 타인의 아픔에 동감하지 못한달까. 자신만의 세계에 틀혀 박혀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공감 능력 또한 사라진 듯 했다. 물론 이들 인터뷰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단에 남아 여전히 수행에 힘쓰는 사람들의 경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옴진리교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한 교주와 실행원들이 나쁘다는 입장일 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러나 수용은 할 수 없는 - 범위는 이 정도가 한계이다.

또하나 특이한 점은 이들은 옴진리교에 들어간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옴진리교를 탈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들 중에는 성상납 요구를 받고, 전기 충격에 의해 약 2년간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여성도 있었고, 독방에 감금되어 실험체로 이용되다 죽기전에 탈출에 성공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옴진리교에 들어간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이런 일이 없었다면 여전히 옴진리교 내에서 수행을 하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 외부의 세상은 그들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옴진리교에 스스로를 의탁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이들에게 약속된 구원의 장소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가해자 측에 있으나 실질적인 가해자는 아니다. 어쩌면 이들도 옴진리교 내부에서 볼 때 피해자들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옴진리교에서 탈퇴했을지라도 옴진리교 신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배척을 받는다. 외부인들(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초록은 동색이니 말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옴진리교 사람들은 모두 극단적인 폭력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동정이나 공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랄까.

이들이 말하는 아사하라 쇼코는 어떤 사람일까.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정도의 신자를 포섭하고 종교단체를 끌어간다는 것은 그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카리스마만 가지고 종교단체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사하라 쇼코의 얕은 점이 점차 드러나고 신자들은 조금씩 동요했다. 아사하라 쇼코는 결국 철옹성같았던 자신의 성에 조금씩 균열이 가게 만든 내부적인 압력이 한계점에 도달했기에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라 보여진다. 이런 이야기와 비슷할까. 미국이 경제 문제나 정치 문제로 국민들의 여론이 거세지고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면 그 시선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물론 국가와 종교단체는 그 규모나 실행력이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내 눈에는 비슷해 보인다. 내부적으로 터져나오는 균열을 해소하기 위해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어쩄거나 범인(凡人)들은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고, 그것(죽음)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그들(교주와 실행원들) 입장에서는 정당성을 주장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 이 사건은 결국 범죄이며 무차별 테러일 뿐이었다. 

이 책이 옴진리교 신자였던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만 실려 있었다면 뭔가 께름칙한 기분만이 남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책 뒷편에 실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와 심리 치료사 가와이 하야오의 대담을 읽으면 그런 기분이 많이 해소가 된다. 이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랄까, 그런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인터뷰도 흥미로웠지만, 이 대담이 이 책의 묘미를 한껏 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무거워진 점은, 이런 종교단체는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란 생각이다. 현대 사회의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무언가에 자신을 의탁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이였던 옴진리교 신자들은 미친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포용할 곳은 이런 종교단체밖에 없는 것일까. 종교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가 변질되어 폭력을 양산하는 것은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 속에서 떠도는 섬같은 존재들, 이들을 포용하고 수용할 곳이 없는 한 이런 일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이 우리 사회의 그늘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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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모든 것 3 - 완결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손희정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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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즈버그 학원을 떠나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J. 여장남자 가수 레이디 J로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살았지만,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J의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게다가 J가 동경하던 마릴린 먼로가 자살하는 일까지. 그후  J는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다. 도대체 J는 어디로 가버린걸까.

3권에서는 다시 모건과 폴이 등장한다. 2권에선 아더와 리타와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면 3권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돌아간단 느낌이랄까. 사실 2권에서 폴과 모건을 볼 수 없어 무척 서운했다. 리타와 아더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래도 폴과 모건을 따라갈 수가 없지. 암만 그렇고 말고.

3권에서는 폴과 모건 모두 20대의 청년이 되어 나타난다. 카렌즈버그 시절의 앳된 모습을 담은 장밋빛 두 빰의 추억, 조금은 성장한 듯한 J의 모든 것에서의 폴과 모건이 갑자기 어른이 되어 나타났을때, 뭐랄까 약간의 위화감도 느껴졌지만, 아이들은 금세 자라는 법이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어쨌거나 상당히 바르게 자라난 폴은 변호사 수업을 받고 있었고, 모건은 아버지에 대항하다 감옥에 들어간 처지이다. 그럼, J는? J는 마릴린 먼로의 자살 이후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떠돌다가 부랑자로 없는 죄가 씌워져 모건이 있는 감옥에 수감된다. 어쩌면 모건이 있는 곳으로 가서 다행일지도, 안그랬으면 J는 더이상 망가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지도 모르겠다.

리타는 J의 행방을 수소문하다가 폴을 찾아오게 된다. J의 아이를 낳았다는 리타의 말에 모건은 파랗게 질린다. 그토록 찾았건만... 그러나 그들의 재회는 이렇게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찰들의 실적 올리기 사건 수사때문에 죄없는 부랑자들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 감옥에 넣는 것에 대항해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나서게 된 폴이 그렇게 J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 그곳에서 폴과 모건 또한 재회하게 된다. 삐딱한 노선을 걷게 된 두사람과 바른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이 만날 장소로 이만큼 잘 어울리는 곳도 없다는 모건의 말에 난 푸흡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역시 모건이 있어야 분위기가 밝아진단 말야. 게다가 J의 일이라면 포커 페이스고 뭐고 다 사라지고 순수한 소년 시절의 모습이 드러나는 폴의 모습을 보는 것도 분명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J는 여전히 폴을 사랑하면서도 그때 받았던 상처때문에 폴을 밀어내기에 급급하다. 거기에 신입간수와의 스캔들이 터지기까지. 여전히 위태위태한 외줄타기를 하는 J와 그를 바라보는 모건과 폴의 시선에는 안타까움과 따스함이 함께 스며들어 있달까. 비록 수감자 신세이긴 하지만 온 힘을 다해 J를 보호해주려는 모건과 J에 대한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폴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슴 절절히 다가왔던 3권.

해피엔드로 끝나서 다행이야,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서 느꼈던 점이 바로 그것이다.
폴은 자신의 성향을 자신의 이모에게 밝히고, J와 새 삶을 꾸려간다. 의외로 선선히 폴과 J를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가 기억하고 말하는 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면, 그녀는 폴이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다 용서해줄 것 같긴 하다. 이사장이란 모습이 아닌 이모지만 엄마같은 모습을 보여줬달까. 특히 코끼리 인형은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또한 리타와 J의 아이인 진과의 일도, J의 어머니와의 일도 다 잘 해결되어 정말 다행이다. 특히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서 가슴이 얼마나 따스해 왔던지. 리타의 딸을 자신의 딸로 받아들이는 폴도, 자신에게는 엄마가 둘이라는 진도,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리타도 모두 행복해져서 다행이야. 또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모건도. 비록 그는 폴에 대한 사랑을 우정이란 이름으로 바꿔야만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건의 모습에 내가 홀딱 반했달까. 역시 난 모건이, 젤로 좋다.

장밋빛 부터 시작해서 총 4권으로 완결된 J의 이야기. J가 세상의 편견과 멸시를 딛고 행복한 삶을 살게 까지는 시련이 필요했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했겠지만 시련이 닥칠 때마다 의지가 되어줬던 사람들, J를 겉모습만으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줬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는 강해졌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하길, 이란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지,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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