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9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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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와카타케 나나미의 코지 미스터리 하자키 시리즈 대망의 3편. 이번 이야기는 하자키 반도의 끝에 위치한 작은 섬 네코지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구 30명에 고양이는 100마리도 넘는 이곳은 고양이의 천국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물때에 맞춰 모세의 길이 열리는 네코지마 섬은 여름 한철 장사로 사계절을 버티는 곳이기도 하다. 이 섬에 내려오는 전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지금 고양이들이 사람의 세배정도로 많은 이유는 이곳에 고양이를 버리러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고양이를 좋아하기에 고양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고교생 스기우라 교코는 네코지마에 있는 민박집 네코지마 하우스를 운영하는 마쓰코의 손녀이다. 여름방학동안 가게일을 거들고 있는 교코는 별볼일 없는 관광객들을 상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교코의 동급생인 스가노 고테쓰는 예전에는 이곳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하자키시로 이사를 했지만 종종 네코지마에 놀러 온다. 고테쓰는 헌팅을 해서 여자를 꼬셔서 해변으로 내려갔다가 칼에 찔린 고양이 사체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고양이 박제였지만...)

이 사건은 우연히 네코지마에 아내와 놀러온 고마지 반장에게 알려지고 고마지 반장은 이 묘한 사건의 수사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심한 고양이 알레르기 환자인 고마지는 고양이가 바글바글한 네코지마에서 수난의 시대가 열리게 된달까. 게다가 그 고양이 박제 안에는 마약이 있었다는 것이 판명된다. 호오, 마약 알레르기도 있구나. 어쨌거나 고양이털 알레르기에 마약 알레르기까지, 2중고를 견뎌야 하는 고마지 반장님, 화이팅입니다요~~

고양이와 나이프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벼랑에서 떨어진 남자와 마린바이크를 타고 있던 남자가 충돌해 둘 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게다가 일러스트레이터인 아카네의 집 근처 쓰레기 더미에서 사체까지 나온다. 도대체 이 조용하고 한적한 섬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거기에 덧붙여져 18년전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에서 탈취된 돈이 이 섬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까지 도는데... 갑자기 이런저런 사건으로 시끌벅적해진 네코지마. 고마지 반장은 이 기묘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까?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은 전작인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이나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와는 달리 사건 전개가 좀 느린 편이다. 게다가 수수께끼 같은 교묘한 사건도 별로 없는 편이라서 조금은 긴박감이 덜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람들의 등장 횟수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라든지, 작은 섬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많아서 전작에 비해 포근한 느낌이었달까. 특히 태풍이 몰아칠 때 모든 사람이 합심하여 고양이를 구조하고 집을 보수하고 신사로 몸을 피신하는 장면은 전작들에서 볼 수 없는 따스한 인정이 흘러 넘쳤다. 빌라 매그놀리아 같은 경우엔 신축 빌라에 산다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나왔고,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경우 오래된 가문의 음험한 비밀을 둘러싼 사람들의, 어떻게 보면 조금은 차가운 현대인들의 모습이나 폐쇄된 집단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네코지마 이야기는 여전히 따스한 인정이 넘치는 사회를 보여준다. 그런 면이 네코지마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면으로 보자면 조용한 섬에서 일어난 마약 관련 사건과 은행강도 사건과 연루된 돈이 등장해 순박한 사람들을 술렁이게 만든다. 대대손손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왔던 사람들과 달리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나 밖의 일과 관련된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상징한다고 보여진다. 돈과 마약때문에 죽고 죽이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사람의 가치보다는 돈의 가치가 더 컸다. 그런 것이 씁쓸한 여운을 남기게 만든다. 또한 신관의 손녀 미사의 남편인 데쓰야 역시 밖에서 들어온 인물로 돈욕심을 좀 내긴 하지만 결국 순박한 사람들의 행동에 감화해 마음을 고쳐먹는달까. (약간의 위화감은 들지만 나쁘지는 않다)

코지 미스터리답게 이번 이야기 역시 여성들의 파워가 세다. 이번에 활약하는 여성 탐정 2인조는 네코지마 하우스의 교코와 일러스트레이터 아카네이다. 한 사람을 더 추가하자면 에로소설 번역가인 시게코도 들 수 있겠지만 시게코는 단서를 제공하는 인물이라고 보는 게 더 좋을 듯 하다. 그래도 결정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건 고마지 반장이랄까. 더불어 죽을 고생을 한 아키라도 빼놓을 수 없다. 아키라의 경우 수난의 연속이었달까. 시리즈 중 제일 고생을 많이 한 부하로 기억될 듯. 참, 고양이 DC를 빼놓을 뻔 했다. 사건 수사를 위해 섬을 돌아 다니는 고마지 반장과 아키라의 뒤를 따라 다니는 고양이 DC. 고양이 탐점이 등장하는 다른 소설들에 비해 그 존재감이 적은 편이긴 하지만 나중에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큰 활약을 하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기도 한 것이 DC이다.

네코지마 이야기는 헌책방 어제일리어 사건으로부터 몇년 후, 빌라 매그놀리아 사건으로부터는 약 10년후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발라 매그놀리아에 나왔던 쌍둥이 자매인 마야와 아야가 교코의 고교 친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외 빌라 매그놀리아와 관련된 사람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작가인 쓰노다 고다이, 고다마 부동산의 스킨 헤드 고다마씨가 있다. 2편인 헌책방 어제일리어와 관련된 것으로는 하자키 FM의 와타나베 치아키의 라디오 방송이 여러번 등장하고, 호텔 로열 할리우드 대화재와 관련한 인물이 등장한다. 미스터 솔로몬 팅클스를 키우는 하시구치 이사오가 바로 그 사람. 왠지 이 사람이 나올때면 가제트 형사를 괴롭히는 손이 떠오른달까.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은 전작들에 비해 약간은 밋밋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독특한 캐릭터들의 향연과 시니컬한 유머 감각의 조화가 주는 재미, 따스한 인정이 살아 있는 작은 공동체의 이야기는 그러한 밋밋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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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들의 귀환 - 1636년 고립된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꿈꾸는 역사 팩션클럽 3
허수정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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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우리나라에도 탐정이 있었다는 사실에 - 그것도 조선시대에 - 기뻐서 폴짝폴짝 뛰고 싶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는 에도시대의 오캇피키를 주인공으로 한 탐정소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에도 명탐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어제 이 책을 읽으면서 아뿔사! 하는 미묘한 탄식이. 조선시대의 명탐정 박명준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시리즈가 벌써 세권이 나왔으며 그중 최근에 나온 것이 이『망령들의 귀환』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혼자 있었기에 조금 쑥스러워하고 말았지, 안그랬으면 많이 부끄러울뻔 했다. 누군가에게 "있잖아,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에 명탐정이 있었대. 그 사람이 나오는 책이 망령들의 귀환이야~"라고 했다가 누가 그 시리즈엔『왕의 밀사』와『제국의 역습』도 있어, 라고 했을테니까.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나는 그런 묘한 상황에 적당히 대응하는 요령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시리즈 1, 2권을 뛰어 넘고 바로 이 책을 읽었지만, 내용이 연속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마음 푹 놓고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배경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약 40년이란 시간이 지난 1636년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팔공산 한자락에 자리잡은 까마귀촌이란 곳. 이곳은 철저히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마을이었다. 박명준인 일본인 오카다와 함께 까마귀촌으로 누군가를 찾으러 가게 된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묘하고 충격적인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까마귀촌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깊은 산중의 고립된 마을은 외부인에 대해 철저히 배타적이다. 까마귀촌 역시 그랬다. 외부인이 들어오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는 믿음.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람들의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은 그 자체로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망령이니 귀신이니 하는 말을 하는 노파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신사를 닮은 성황당은 까마귀촌의 음산함을 더욱 배가시킨다. 조선땅에 일본의 신사를 닮은 성황당이 존재한다, 게다가 그곳에 기거하는 것은 무당이 아니라 신관이다, 란 것은 이 소설에 있어 가장 큰 축을 담당한다. 그것이 바로 이 까마귀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며, 모든 사건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가정한 하나의 가설은 정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쟁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이 땅을 침략하러 왔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에 뿌리를 내린 사람도 있을 거란 가설은 전혀 엉뚱하지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이 철저히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어떤 의심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들, 그들에게는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과거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스스로 망령이 되었다. 무참한 살육의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마을, 그곳에서 또다른 살육이 시작되는 현장을 목격하는 나로서는 소설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들은 망령의 지배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조선시대의 명탐정 박명준. 박명준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왜관(倭館)에서 일하는 조선인으로 나오는 그는 여느 탐정과는 좀 달라 보인다. 보통 탐정이란 캐릭터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달리 그는 마음이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자신이 생각한 바에 있어서는 굽히지 않는 꼿꼿함이 있으나, 누군가의 아픔에 동조하고 감응할 수 있는 따스한 마음도 가진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때 검지를 들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법은 어쩌면 박명준만의 트레이드마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고립된 마을에서 벌어졌던 비극적인 살육극과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는 망령들. 그리고 그 망령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망령들의 귀환』은 꽤나 흥미로운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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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 그림 - 트롱프뢰유, 실재를 흉내 내고 관객을 속이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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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달 전에 트릭 아트전이란 전시회가 있었다. 지방에 살다 보니 당시에 열렸던 전시회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봐야 했기 때문에 트릭 아트전은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트릭이 숨어 있는 그림이 도대체 어떤 그림인지 나중에 다른 블로거들의 사진을 보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뒤늦은 아쉬움도 함께.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속임 그림이란 말이 왠지 트릭 아트란 말과 통하는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눈속임 그림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M.C. 에셔다. 물론 에셔의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판화이긴 하지만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어디에서 어디로 연결되는지... 에셔의 판화를 보면 눈이 즐겁기도 하지만 어지럽기도 했다. 그런 그림도 여기에서 소개된 트롱포뢰유에 속하는가 싶었는데, 그런 눈을 어지럽히는 그림은 여기에서 제외되었다. 여기에서 소개된 그림들은 가짜이지만 실제처럼 보이도록 관객의 눈을 속이는 그림이다. 또한 하이퍼리얼리즘 그림처럼 실제를 꼭 빼닯은 그림도 제외된다. 하이퍼리얼리즘 작품들은 사진처럼 보이길 원하는 그림이고, 관객을 속이려는 의도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소개되는 트롱프뢰유는 어떤 그림들일까.


위의 그림을 보자. 이 작품은 얀 판 데르 파르트의「바이올린」이란 작품이다. 난 왼쪽 그림을 봤을 때 저 문을 통해 바이올린이 걸린 문까지 저벅저벅 걸어들어 가고 싶었달까. 왠지 만져질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렇듯 관객의 눈을 현혹시키고 그려진 것이 실재 사물인양 하는 것이 바로 트롱프뢰유이다. 이 책은 총 7개 파트로 나누어 트롱프뢰유의 다양한 수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뭐, 이런 악취미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죽은 동물의 그림을, 그것도 벽에 매달린 죽은 동물의 그림을 그리는 거지,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 왼쪽 그림은 1764년, 오른쪽 그림은 1504년에 그려졌다 - 를 생각해 보면 묘하게 납득이 간다. 요즘 사람들이 자신이 사냥한 동물의 사진을 찍어 보관하듯 이 시대에는 이렇게 그림으로 보관했던 것이다. 또한 요즘처럼 먹을 것이 흔한 시대가 아니였기에 이 그림을 통해 근사한 저녁만찬을 떠올렸을지도 모를일이다.

<산 것과 죽은 것> 장에 소개된 그림들은 저런 사냥물과 구겨진 종이가 특징적이다. 왼쪽 그림은 그림이 다 보이지 않아 구겨진 종이가 어디 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책 중간 부분에 있는 것이 종이이다. 이 구겨진 종이는 재미있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냥물이 그림이라면 구겨진 종이는 실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이걸 보고 실재라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몇 백년전에 그려진 그림이 실재를 대신할 정도가 될 것이란 것은 쉬 짐작이 간다. 막 사냥한 사냥감을 벽에 걸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트롱프뢰유의 두번째 이야기는 레터 택이다. 일명 <편지 꽂이 그림>이라고 하는 이 장르는 사물에 반사된 화가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편지 꽂이 그림은 편지나 문서들이 꽂혀 있는 그림도 있지만, 이 그림의 경우 작가가 사용한 물건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그림은 같은 작가의 그림이다. 사뮈엘 판 호호스트라텐이라는 작가가 그린 이 그림들은 그려진 시기에 2년의 시간적 차이가 있는데, 2년동안 상당히 정교한 그림으로 바뀌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왼쪽 그림은 그림같지만, 오른쪽 그림은 왠지 그림같지 않달까. 무척 흥미롭다.

이런 그림은 언뜻 보기에 작가의 모든 부분을 보여주는 것 같아도, 결국 작가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가방 공개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가방 공개를 해야할 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물건은 다 치워놓은 후에 공개를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호호스트라텐 역시 자신이 보이고 싶은 것만을 그린 게 아닐까.


위의 그림 또한 편지 꽂이 그림의 한 종류이다. 왼쪽 그림은 편지꽂이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을 통해 빠져나간 리본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다. 왠지 뒷면이 있을 것만 같은, 그래서 뒤집어 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다. 오른쪽의 그림은 트롱프뢰유의 제왕이라 불렸던 헤이스브레흐츠의 그림인데, 단순히 편지 꽂이 그림이라고 보기엔 조금 묘한 기분이 든다. 편지 꽂이 중간 부분에 벽감같은 것이 있고 그곳이 움푹 들어간데다 작은 문도 달려있다. 또한 해골까지 놓여 있다. 이는 인간이 갈구하는 물질적 욕망과 호화로움과 쾌락이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언젠가는 결국 쇠락하고 소멸한다는 '바니타스' 주제를 의미한다. 이는 다른 작가들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런 편지 꽂이 트롱프뢰유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재미있는 변화를 보인다. 그것은 편지꽂이 같은 장치가 소멸된다는 것과 사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즉 틀(프레임)이 없어지고, 사진같은 그림대신 사진을 그린 그림이 등장한달까. 왠지 미국의 실리주의를 그림에서도 발견하는 것 같아 무척 재미있다.


편지 꽂이 그림은 무언가를 세워두었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이라면 이번에 볼 그림은 수평의 트롱프뢰유이다. 왼쪽은 전체가 그림이 아니라 테이블 위의 상감이 그림이다. 테이블에 앉아 사무를 볼 때, 실제로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테이블이지만 무엇인가 놓여있다는 느낌을 준다. 무척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같으면 정신 사나워서 저렇게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란 느낌도 들지만.

오른쪽 그림은 수평의 트롱프뢰유에 깨진 유리 효과를 덧입힌 것이다. 뒤에 있는 건 그림이 확실한데, 앞의 유리가 실제인지 아닌지 무척 헷갈린다. 바로 이것이 깨진 유리 그림이 주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재미있게도 스페인 - 프랑스 평화 조약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화조약 전에 그려진 그림이었으니까.

그림위의 유리는 더욱 발전해 판화를 가장한 유화, 판화를 가장한 유화위의 깨진 유리로도 발전한다. 깔끔한 판화처럼 보이는데, 프레임부분까지 그림으로 처리한 그림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느낌까지 든달까. (笑)

 

그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그림 위의 그림>이란 것이다. 그림 위의 그림은 그림 위에 그려진 파리로 시작한다. 독일에서는 초상화에 파리가 붙은 그림이 많았는데, 이 형식이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 종교화에까지 적용된다. 위에 보이는 그림 역시 종교화의 일종으로 왼쪽 그림은 하단부분에 오른쪽 그림은 예수의 가슴 부근에 파리가 붙어 있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설마 화가들이 성모자나 예수의 그림에 파리를 그렸을 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당황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파리를 쫓기 위해 손을 휘휘 내젓는 관객의 모습,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이 다음으로 소개되는 것은 <그림위의 쪽지>인 카르텔리노와 관련한 것들이다. 이는 그림의 안팎을 교란하기 위해 그려진 장치로 뒤에 그려진 그림은 그림인데, 앞에 있는 것은 그림인가 진짜 쪽지인가를 관객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왠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을 떠올랐달까.

그외에도 찢겨진 캔버스 그림도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찢겨진 캔버스 그림은 일본 작가의 작품으로 일본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 밑에서 개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다. 신화라 함은 신성한 것인데, 개가 캔버스를 찢고 고개를 내민 것에서 웃음이 터져버린다. 물론 이 그림이 실재처럼 보일리는 없지만, 개가 머리를 내민 것으로 조금은 다른 유쾌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달까.


위 그림은 앞에도 소개된 헤이스브레흐츠의 그림으로 다양한 트롱프뢰유 기법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벽에 걸린 그림은 벽감안에 있는 해골과 구겨진 종이를 묘사하고 있다. 해골은 바니타스를 의미하고, 밑에 있는 쪽지는 카르텔리노라고 봐야 할까. 해골이 들어 있는 것은 벽감이다. 만약 이 그림의 배경이 없다면 또한 캔버스에서 종이가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면 왠지 벽감이라고 착각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캔버스에서 그림이 떨어져 나옴으로 인해 캔버스를 포함한 것은 그림이라 여겨지지만, 그외의 것은 실제 벽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이랄까.

캔버스에서 떨어져 나오는 그림은 이처럼 나무틀이 보이는 그림도 있지만, 다른 그림이 보이는 그림도 있다. 또한 캔버스 전체를 감싼 천이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림도 있다. 캔버스 하나로 다양한 그림을 선보이는 것, 이는 화가들의 상상력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트롱프뢰유 다음 이야기는 <공간의 재해석>이란 주제다. 위 그림을 언뜻 보았을 때 실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감이 살아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앞에 걸린 수건은 선반 뒷면과의 거리감을 보여주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사물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터치, 얕은 공간이지만 공간감을 충분히 살린 표현, 그리고 바니타스를 의미하는 양초까지. 무척이나 흥미로운 그림이다. 이런 선반 그림은 비단 선반 뿐만 아니라, 책장, 장식장, 그리고 앞서 나온 벽감까지 그 범위를 넓힌다.


트롱프뢰유 작가들의 공간 지배 능력은 집안의 작은 장소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프레스코화(벽화)의 경우 공간을 극대화하고 실재화하는 수완을 톡톡히 발휘한다. 이는 원근법을 이용해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천장화에서 더욱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 성당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 봤을 때 저런 그림을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정말 성당의 천장이 다른 세계까지 연결되는 느낌을 받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건물을 바탕으로 그려진 트롱프뢰유는 콰트라투라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트롱프뢰유 수법은 <화면의 경계 무너뜨리기>이다. 이런 기법으로는 볼록 거울을 사용한 듯한 그림, 초상화의 손이 프레임에 걸쳐 있는 그림들이 먼저 소개된다. 위에 나온 왼쪽 그림은 가부키 공연중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모습으로 밑을 자세히 보면 화면 테두리에 걸쳐 앉은 사람과 화면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이 보인다. 프레임 밖으로 나와서 어쩌게? 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재미있는 그림이랄까. 오른쪽 그림은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그림이라면 절대 없어야할 그림 속 인물의 그림자가 보인다. 근데 손의 그림자가 저렇게 비치나? 그림 속의 손의 손가락은 오무리고 있는데 그림자 속의 손은 손가락을 펼치고 있으니...


위 그림은 테두리 밖으로 튀어나오다 못해 테두리를 들고 걷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오른쪽에 있다. 테두리를 들고 걷는 사람의 뒤에 보이는 그림속 인물이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테두리안에 있는 건 똑같지만, 누구는 나가서 걸어다니고 누구는 그속에 갇혀 있으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테두리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이나 튀어나오려는 사람을 보면 왠지 티비 밖으로 나오려는 혹은 나오고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링의 사다코를 생각나게 한달까. 윽. 갑자기 소름이...(汗)


이번에 만나볼 트롱프뢰유 작품들은 <입체감을 갖는 그림>이다. 위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이거 조각아니야? 라고 생각했다면 작가의 의도가 훌륭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나 역시 이건 벽 선반에 조각을 올려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프레임도 조각처럼 보이는 것도 모두 그림이다. 이 작품은 1435년경의 작품인데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이런 조각처럼 보이는 작품은 조각인 양하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조각을 대신한 그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조각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만, 조각처럼 보이는 그림은 조각을 대신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일지도. 옛날 사람들도 효율성을 추구했다는 생각을 많이 들게 한 그림이 이런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보고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면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배경에 비해 사람이 흐릿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이나 벽은 실제처럼 보이는데, 사람은 왠지 붕 뜬 느낌이랄까. 이는 트롱프뢰유 수법중 샹투르네(컷 아웃)이란 것이다. 이 그림의 경우 여성을 그린 나무판을 잘라 그림에 붙였다고 한다. 이렇듯 배경에 그림을 붙이는 것, 이것을 샹투르네라고 하는데, 이런 그림은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만든다. 밤에는 절대 보고 싶지 않달까.


마지막으로 살펴 볼 트롱프뢰유 작품은 <커튼을 이용한 눈속임> 작품들이다. 위의 그림은 꽃을 잘 그리는 작가와 직물을 잘 그리는 작가의 합작품이다. 커튼이 진짜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꽃이 그림이란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반대로 꽃이 그림이란 것을 강조함으로써 커튼이 진짜가 아닐까 하게 만드는 그림이기도 한다. 만약 이 그림이 내 눈앞에 있다면 커튼을 완전히 열어젖히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커튼이란 것은 가리는 수단이다. 그러하기에 커튼이 쳐져 있는 뒷부분에 뭔가가 존재한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실제로는 아무리해도 뒤를 볼 수 없는 커튼인데도 말이다.

이런 커튼은 뒤에 다른 그림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인가 비밀을 엿보게 하는 느낌도 갖게 만든다. 또한 커튼은 훌륭한 무대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커튼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웅장해 보이고, 더욱 성스러운 느낌도 준달까. (종교화의 경우)


위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다. 이젤의 다리가 보인다. 그런데 보이는 건 풍경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뒤로 보이는 풍경 사이에 캔버스의 모습과 캔버스에 종이를 고정해 놓은 클립도 보인다. 이렇다 보니 어디가 그림이고 어디가 실제인지 헷갈린다. 게다가 커튼까지 쳐져 있으니 커튼을 젖히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이 그림이 실제와 그림의 교란이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그림은 그런 목적면에서 아주 성공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트롱프뢰유 그림들을 보면서 내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상을 빼꼼히 들여다 본 기분이다. 책에 실린 도판이라 눈 앞으로 확 다가오는 느낌은 없지만,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해 본다. 오래전에 그려진 그림이라 사실적인 면이 떨어지는 그림이라도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을 충분히 속이고 놀래켰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림은 딱딱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관객과 화가가 즐겁게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을 벌이기도 하는 이런 작품들이 있으니까. 어떤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인지, 좋은 그림인지 나는 딱잘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그림을 보고 즐거워진다면 좋은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 봐도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는 그림을 보는 것보다는 깜짝 놀라게 하거나 미소를 머금게 하거나 때로는 큰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그림이 잘 그려진 좋은 그림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18~19p, 50~51p, 66+69p, 71~73p, 82~83p, 98~99p, 114~115p, 126~127p, 136~137p, 152~153p, 158p, 175p, 182~183p, 194p, 208~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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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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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시스템 속에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태고적 우리 선조들의 살아온 방식도 그러했다. 자연의 힘앞에, 자신보다 더 강한 동물들 앞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뭉쳐서 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점차 형태를 갖춰 거대한 시스템이 되었다. 그 시스템은 요즘 말로 하면 국가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 있는 또다른 수많은 하부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물론 국가가 늘 내 입맛에 맛도록 정책을 꾸리는 것도 아니요, 때로는 원수도 저보단 낫겠다고 생각할 만큼 내 숨통을 죄어올 때도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안주하며 살아간다. 윤리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크게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커다란 장애없이 시스템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내가 보는 시스템이 나를 둘러싼 시스템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속한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이지만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각과 같은 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소설『설계자들』이 그려내는 세상이다.

수녀원 앞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래생(來生)은 전문 킬러, 즉 암살자이다. 그는 너구리 영감이 운영하는 도서관에 소속되어 있다. 너구리 영감의 도서관은 겉모습은 도서관이지만, 실제로는 설계자들이 설계한 일을 실행하는 실행원들이 있는 곳이다. 즉 너구리 영감은 일종의 브로커이다. 설계자들이 설계한 일을 의뢰받고 암살자들을 풀어 사람을 제거하는. 이런 곳은 도서관외에도 여러군데에 존재하며 고급 설계를 맡는 곳과 저급 설계를 맡는 곳 등으로 다양화되어 암살자들의 수준도 그들의 소속된 곳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그렇다면 설계자들이란 누구인가. 설계자들의 정체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 대부분이 권력과 부에 있어서 자유로운 자들이란 것들은 쉬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브로커들 역시 - 너구리 영감이나 한자 - 우리 사회의 엘리트 층이며, 부를 거머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설계자들의 시간적 배경은 80년대 말쯤으로 추측된다. 군부 독재가 무너지고 겉으로는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시스템안에서 방해되는 인물은 몰래 처리하는 그런 정치적 상황이었으니까. 독재정권하에서는 숙청이란 명목으로 사람들의 목을 날리기는 쉬웠지만, 적어도 민주화란 명분을 가진 시스템아래에서는 그런 것이 통할리 없으니까. 그러하기에 커다란 시스템안에서 그들의 정치적 목적에 위배되는 인간에게는 죽음이 설계되고 그것이 몰래 실행된다.

그렇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마법사나 마법사의 지팡이, 마법사의 검, 마법사의 망또, 마법사의 가루 등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그려지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수만권의 장서를 소유한 암살자 브로커 너구리 영감의 도서관, 칼잡이 이발사, 겉모습은 애완동물 화장장이지만 다른 일로는 사람 사체를 태워 없애는 털보네 화장장은 내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욱더 현실성이 가미되는 것은 역시 래생이란 인물의 캐릭터이다. 학교라곤 초등학교 근처도 가보지 못한 래생은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동서양 고전을 읽어 왔다. 또한 설계자들의 명령에 따라 암살을 하러 갔다가 망설이기도 하고, 실수때문에 한동안 숨어 살때는 평범한 공장직원으로 그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지금은 스탠드와 독서대라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저런 암살자가 - 우리가 아는 암살자를 떠올려 보자 -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그가 설계자들이 준 일을 완벽히 수행하지 못할 거란 것은,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란 것은 여기에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설계자들도 우리 같은 하수인들일 뿐이야. 의뢰가 들어오면 설계를 하지. 그 위에는 설계자를 설계하는 놈이 있겠지. 그위에는 그놈을 설계하는 또다른 설계자가 있을 거고. 그렇게 끝까지 올라가면 결국 뭐가 남을까? 아무것도 없어. 맨 위에 있는 것은 그냥 텅 빈 의자일 뿐이야. (93p)

이렇게 말하는 래생을 보면 래생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에게 일을 의뢰하는 설계자들에게, 그리고 그 위에 존재하는 시스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결국, 래생이 자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책 전반을 통해 추측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책 전반부의 노인과의 만남은 어쩌면 그를 흔들어놓은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을지 몰라도. 노인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노인은 래생이 누군지도 알았을 것이다.

래생은 결국 방아쇠를 당기고, 그후 노인의 정체가 드러나지만 왠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그 노인이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인간이란 것보다 꽃에 말을 걸고 자신의 개를 사랑하고, 처음 보는 젊은이에게 따스한 차와 밥을 대접하는 노인의 모습을 먼저 보았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노인은 우리의 인식과는 다른 차원에서 살해된 표적이다. 시스템안에 두긴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르고, 시스템안에서 보기에 더이상 쓸모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제거되었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입장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래생의 일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한 편의 거대한 코미디다. 그러니 경찰은 총을 쏜 자만 찾아내면 되고, 설계자들은 총을 쏜 자만 제거하면 된다. (130p)

래생은 이러한 시스템에 환멸만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에 환멸을 느낄 뿐만 아니라 이 시스템을 뒤집으려는 자도 이 책에서 분명히 존재한다. 한 설계자의 조수였던 미토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녀의 부모는 설계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미토가 시스템을 뒤집고자하는 것은 단순히 원수를 갚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사회의 썩어 들어가는 부분과 정치의 그늘을 폭로하고자 한 것이었다. 어찌보면 한 사람의 힘은 그 시스템을 통째로 뒤집기에 미약할지도 모른다. 분명 미토도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시스템을 전복시킬 방법을 찾아 왔고, 그 이용 대상이 래생이 된다.
 
래생의 마지막은 사실 헐리웃 액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블록버스터급은 아니고 그냥 액션. 도대체 서울 한복판 백화점에서 총격이라니. (어쩌면 이건 내 생각일지는 몰라도, 래생의 죽음은 간첩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질지도 모른다 - 단지 상상, 그러나 우리나라 권력자들을 생각해보면 래생의 죽음을 덮는 것에 그보다 좋은 명분은 없을지도 모르니까) 내 상상이 아니라 이 책이 보여 주는 래생의 죽음에 대한 명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래생은 어차피 암살자로 살아 봤자 오래 살지 못하니, 그렇게 삶을 끝내고 싶었을 뿐일까.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죽여온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놓은 적이 없는 사람의 마지막 선택은 미묘한 위화감을 가져다 주기는 한다. 하지만 래생이 뻔뻔한 인간으로 그려졌다면 이 책의 명분이 없으니,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사회의 엘리트 층이라 불리는 부와 권력을 소유한 자들의 마리오네트 인형극에 이리 춤추고 저리 춤춰 왔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 그 실을 쥐고 있고, 누군가는 그 실에 맞춰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깨끗한 권력이란 없다. 어딘가에는 느슨한 부분이 있고, 어딘가에는 구멍 뚫린 부분이 있어 그곳을 통해 불법적인 일을 몰래 저지르는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미토같은 사람이 있어서, 래생같은 사람이 있어서 끝을 모르는 암흑에 작은 빛이 비추는 일도 끊임없이 생길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너무 낙천적인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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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꺼내 쓰는 일본어 경어
슈후노토모샤 엮음, 가라사와 아키라 감수 / 시사일본어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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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2월이면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지 꼭 6년이 된다. 고등학교때는 제 2외국어가 프랑스어였으니, 서른이 다 되어서야 히라가나부터 시작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셈이다. 시작 동기는 별거 아니었다. 아는 동생이 일본어 스터디를 같이 하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재미를 붙여서 이날까지 오게 되었달까. 시작하고 나서 일본인 친구가 생겼고, 그 사람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 メール友達 -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서투른 일본어로 메일을 보내면 교정까지 해서 답장을 해주는 아주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어떻게 된건지 세달쯤 지나 갑자기 연락이 뚝 끊어졌다. 조금 속상했고, 이건 경우가 아니다 싶긴 했다. (이날 이때까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나도 참 뒤끝있다, 그래도 康夫さん 그땐 고마웠어요) 그후엔 일본인 선생님과 일대일 스터디를 6개월가량 했다. (直樹さん, 그땐 고마웠어요) 그리고 나선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저 일본어 잘해요' 란 말은 죽어도 못하겠다. (笑)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첫고비가 찾아온 것은 동사변형을 공부하면서였다. 그 고비를 넘기니 사역형과 사역수동형에 움찔했다. 특히 사역수동형은 일본어가 가진 특수한 표현방법인지라 쓰는 것도 그렇도 해석도 그렇고 참 곤란하게 느껴진 적이 많았다. 왜 이렇게 비비 꼬아서 말을 하냐구!! 라고 항의하고 싶었달까. 그렇다고 외국어를 공부함에 있어 모국어와 다르다고 항의할 수는 없는 일, 그냥 꾹 참고 공부했다. 그 다음에 나온 고비는, 그렇다. 바로 경어다. 일본어는 경어 규칙이 꽤 복잡하다. 상대를 높이는 존경어와 정중어, 나를 낮추는 겸양어가 경어의 기본이다. 하긴 따져보면 우리말도 경어규칙이 꽤 복잡하지만 일본어도 꽤 만만치 않달까. 일종의 경어 공식을 외면서 공부했었다. 그래도 쓸 일이 잘 없다 보니 입에 잘 붙지 않는달까.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첫번째 장은 기본적인 경어 사용법에 대해 나와 있다. 올바른 인사방법과 주의해야할 인사법, 자기 소개, 명함을 주고 받을 때, 감사와 사과, 맞장구치기, 수긍의 표현, 사회 생활에 있어서의 여러 상황에서의 경어 표현등이 이 장에서 주로 설명되어 있다.


모든 페이지에 그림이 나온다고 얘기해도 과장이 아닐만큼 상황을 설명하는 그림과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이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또한 좋은 표현과 더불어 잘못된 표현도 함께 수록해 놓은 것도 좋은 점이다. 대화를 할 때는 좋은 표현만 하도록 하는 것이 좋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된 표현도 캐치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그것을 상대에게 일일이 지적하면 안되겠지만, 그런 말을 들었을때는 (속으로) 스스로 그런 표현을 자제하도록 하기로 마음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러가지 경어 표현방법에 대해 나열해 놓은 페이지를 지나면 존경어, 겸양어, 정중어에 대한 일괄적인 설명이 따라온다. 존경어, 겸양어, 정중어를 만드는 법칙이 따로 있으므로 일단 외워두는 것이 좋다. 단어에 따라 お와 ご가 붙는 단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보통 히라가나로 쓰는 일본 고유 명사의 경우 대부분 お가 붙고 한자어일 경우 ご가 붙긴 하지만 늘 변수는 있다. 그러하기에 변칙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아예 외우는 게 편하다.


두번째 장에서는 상황에 따른 테마별 경어가 나온다. 경어란 것은 대부분 집이 아니라 - 물론 집에서도 사용하지만 -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용하게 되므로 주로 사회생활과 관련된 상황에서 사용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회의라든지 프레젠테이션, 타사를 방문했을 때의 여러가지 상황에서의 경어 사용, 바로 대응하기 힘든 경우에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대처하는 법, 접대시 사용하는 경어, 고객 불만 처리, 상담등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모든 상황은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법과 올바른 경어 사용법으로 표현된다.


이 페이지는 접객에 관한 아이우에오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밝게, 착실하게, 긍정적으로, 웃으며, 큰 목소리로 손님을 맞이하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음, 예전에 일본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 점원이 웅얼웅얼 거리면서 말하던데... 그 직원은 교육을 제대로 못받았어나? 하는 생각이 이 페이지를 보면서 문득 들었다. 어쩌면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런 모습은 손님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교육을 받는 것 같던데, 사람 사는 곳은 대부분 비슷하니까, 라는 생각이 든다.


쿠션 언어. 뭔가 폭신한 느낌이 드는 표현이다. 쿠션 언어란 이야기를 꺼낼때 부드럽게 들리도록 하는 말을 뜻한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두로 하는 한마디가 나의 인상을 바꿀 수도 있으니 꼭 익혀 두자.


두번째장의 마지막은 계절경어 표현이다. 일본인들은 설같은 명절뿐만 아니라 계절이 바뀔때도 문안 편지같은 것을 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는 편지 형식이 아니라 인사 표현을 주로 소개한다. 계절 표현은 무난한 인사로 익혀두면 쓸 때가 많을 듯 싶다. 하긴 나도 일본인 친구들과 채팅을 할 때 날씨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계절이 바뀔 때는 물론이고 날씨에 관한 표현도 잘 익혀두면 쓸 데가 많다.


세번째 장은 TPO에 맞는 경어 사용법이다. 사회 생활을 하면 좋든 싫든 참석해야할 자리가 꼭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때 잘 어울리는 경어를 쓸 줄 알면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미팅이라고 나오긴 하는데, 일본어에서 미팅은 회의를 의미한다. 이 상황을 보자면 合コン(소개팅, 여기 상황은 단체미팅?) 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 이렇게 가벼운 자리에서 사용하는 경어를 비롯해 조심해야할 자리에서 쓰는 표현, 송별회, 레스토랑같은 곳에 갔을 때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표현들이 나온다.


결혼식과 장례식은 격식을 갖추어야 할 자리이다. 우물우물하는 것보다는 상황에 맞는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장소가 바로 이런 장소이기도. 일본의 결혼식의 경우 특이한 점은 청첩장을 받은 사람만 참석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장례식의 경우 고인의 얼굴을 보는 순서도 있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을 듯.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다. 그외에 향을 피우는 법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은 아름답지 않은 일본어라는 파트인데, 이걸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웃겨서 웃은 것은 아니고, 내가 일본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이런 표현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이나, 줄임말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하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조어가 많아서 사실 나도 따라가기 벅차다. (汗) 이런 말은 친구들 사이에선 편하게 통용되지만 역시 어른들 앞이나 어려운 자리에서는 쓰지 않는게 좋다. 나같은 경우 반말과 남자말을 섞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처음에 친구가 그거 남자말이야, 라고 하면서 고쳐준 적도 있다. 내가 주로 쓰는 남자말은 わるい(미안), さあな(글쎄), いいな(좋은데) ,マジかよ?(진짜?) 등등등. 아, 그래도 난 1인칭 대명사를 私(わたし나 わたくし)라고 쓰지 俺, 僕란 표현은 안쓴다. 가끔 중년남자 말투를 쓸 때도 있긴 하다. 예를 들어, 分からない를 分からん이라고 쓰는 경우. 줄임말을 쓰는 이유는 단지 채팅할 때 편하니까, 라고 변명을 해두고 싶다. 직접 대화할 때는 남자말이나 줄임말을 잘 쓰지 않는다. (믿어주시려나?) (笑)

 
마지막으로, 킷캣 사진? (笑) 우리가 킷캣이라 부르는 이 초코과자는 일본에서 킷캇이라 부른다. 킷캇은 수험생에게 부적처럼 주기도 하는 과자이다. 그 이유는 킷캇의 발음이 きっと勝つ(キットカッ, 반드시 승리하다)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 나도 일본어 경어와의 싸움에서 이기겠다? - 킷캣을 준비했다, 랄까? (笑)

나의 결심 : きっと勝ってやる!!!
앗, 경어책이니까, 一所懸命に頑張ります! (푸하하~~) (공부는 재미있게, 즐겁게!)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11p, 26~27p, 44~45p, 47p, 48~49p, 66~67p, 82~83p, 88~89p, 93p, 94~95p, 102+104p, 120p, 1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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