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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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妄想) 폭주(爆走), 폭렬(爆裂)!!!

현실 세계와 판타지가 뒤섞인 웃음 폭탄 기관차가 달려간다!!!

이건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감상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자.. 이쯤되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대충 짐작이 가시리라.
그렇다.
새벽 4시에 미친듯이 폭소하게 만들었던 책.
밤은 짦아 걸어 아가씨야.

일단 제목부터 무척이나 상콤발랄하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예전에 모리미 토미히코를 몰랐던 시절 - 사실 이 작가의 책을 읽은 것도, 이 작가에 대해 알게 된것도 일주일 남짓이다 - 에도 책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찜을 해두었던 책이다.

하지만, 근간도서라 할인률이 적어서 책값이 좀 내리면 사야지 했는데, 그만 <달려라 메로스>의 요상한 맛에 중독되어 급기야는 이 책까지 사들이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달려라 메로스>보다 더 즐겁게 읽었다.
뭐랄까, 작가의 톡톡 튀는 어휘 구사력에 시종일관 웃음이 터졌다.

에들 들자면,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애정을 과시하는 신혼부부를 보며 선배가 하는 말.

신도 두려워 하지 않는 그 열기는 순식간에 참석자들을 새까맣게 탄 누룽지로 만들었다

라던가.

도도씨의 잉어들이 회오리 바람에 날려간 순간을 묘사한

도도씨가 가장 사랑하는 비단잉어들이 비늘을 찬란히 빛내며, 마치 '멋진 용이 되어 돌아올게요' 하는 것처럼 저녁 하늘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라던가...

정말이지 어쩌면 이런 어휘를 구사할 수 있을까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표현이 책 구석구석 산재해 있지만, 아직 못보신 분들을 위해 궁금증으로 남겨 놓겠다.  


일단 이 책은 두 화자의 입을 빌어 진행된다.
흑발의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선배와 흑발의 아가씨.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며, 선배는 반말체, 아가씨는 공손체를 쓴다.

총 4개 파트로 나뉘어지는 것은 봄부터 겨울까지의 4계절을 의미하며, 봄~가을에 이르는 사건은 하루에 발생하는 사건이다. 겨울은 며칠에 걸쳐 진행되지만..
하루에 정말이지 많은 사건이 발생한다... 우연히도!

게다가 주인공도 특이하지만, 조연급들이 단연코 우세하다.
이 작품은 조연이 없으면 정말 그렇고 그런 러브 스토리가 되었을테니.

회오리 바람에 양식하던 잉어가 모두 하늘에 날아가 버린 도도씨. 3층 전차를 타고 다니며, 가짜 전기부랑을 만드는 사채업자 이백 옹(翁), 스스로 텐구라 말하는 히구치, 히구치와 함께 다니며 아가씨에게 공짜술을 마실 수 있는 인생의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하누키, 헌책 시장에 강림한 헌책의 신으로 추정되는 꼬마, 학교 축제에서 괴팍왕이란 연극을 쓴 빤쓰총대장, 학원제에 코끼리 엉덩이란 작품을 출전한 노리코... 등등...

수없이 많은 그러나 개성으로 똘똘 뭉친 등장인물과 후배와의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선배, 그러나 정작 후배인 흑발의 아가씨는 선배의 마음을 모른다. 주위 사람은 다 눈치채고 있었는데도....

가을 축제편까지는 폭주하던 기관차가 겨울편 나쁜 감기 사랑 감기에서는 그 힘을 조금씩 잃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재미없어진다는 뜻은 아니고, 봄부터 가을까지 폭풍처럼 눈보라처럼 해일처럼 밀어닥치던 그 절묘하고 기묘한 순간이.. 봄바람처럼 바뀐다는 것이다.

대충 결말은 짐작이 가시리라 믿지만,  굳이 언급은 하지 않겠다.

교토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그녀와 그녀를 쫓아 우연을 가장하고 포진하고 있는 선배의 발걸음을 쫓아다니다 보면, 마치 내가 교토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특히 좋아한 파트는 심해어들편으로 교토의 여름 헌책 시장이야기이다.
심해어들이란 표현과 여름 헌책 시장이 왜 관련 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테니 구체적 언급은 피하겠다.   


어쨌거나, 헌책 시장을 방문한 선배는 제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다고, 그녀가 그곳에 출현할거라는 믿을만한 정보통에게 들은 정보로 그곳을 방문한다. 그곳에 쌓여 있는 수많은 책. 그리고 그곳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가장할 각오인 선배.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어릴적 좋아했던 그림책을 찾아 다니고 있다.

헌책 시장에서 히구치와 만난 그녀.
스스로 텐구라 말하는 히구치씨는 왠일인지 그날따라 감동적인 말을 그녀에게 해준다.

"출판된 책은 누군가에게 팔림으로써 한 생을 마감했다가 그의 손을 떠나 다음 사람 손으로 건너갈 때 다시 살아나는 거야. 책은 그런 식으로 몇 번이고 다시 소생하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가지. 신은 나쁜 수집가의 손에 갇혀 있던 책을 세상에 풀어 줌으로써  다시 생명을 갖게 해주는 거야."

히구치의 말을 듣고 나도 괜시리 마음 한구석이 찔렸다.
한 번 읽고 책장에 모셔둔 책이 책장 몇 개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이제까지는 책을 판다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는데, 다른 누군가의 손에서 새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 책을 세상에 해방시켜야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책장속의 책들아.. 미안. 헌책 신님 죄송하여요...) 

상콤 발랄 유쾌 통쾌 이상 야릇한 이야기가 한세트로 나왔다.
기발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현실과 판타지가 적당히 버무려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망상 폭주 기관차에 동승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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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메로스 - 모리미 도미히코의 미도리의 책장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는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하여 나카지마 아쓰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사카구치 안고, 모리 오가이의 소설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재해석에서 끝나지 않고 또다른 하나의 소설로 창조한 것이란 표현이 더욱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일단 일본 원서의 제목을 살펴 보면, 확실히 잘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 나온 두 권의 책은 제목이 <달려라 메로스>로 똑같지만..
일본 원서 제목은 新釈 走れメロス 他四篇인데, 이걸 우리말로 옮겨 보자면 새로운 해석, 달려라 메로스 외 4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제목에서부터 아 이 소설의 원작이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와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 두 권을 동시에 구입했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구입했으므로, 책 제목만 보고는 아,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만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외에도 4명의 원작 소설이 따로 있었다.
(본인 1 : 그러게, 책 정보쯤은 확인하지 그랬니?)
(본인 2 : 뭐, 아무런 정보 없이 사서 의외의 것을 발견하는 수확도 하나의 기쁨이지)

하여간, 일단 원작인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를 먼저 읽고,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를 읽었다. 모리미 도미히코가 쓴 다른 4편의 소설의 원작은 아직 읽어 본 적이 없어서 좀 아쉽다. <달려라 메로스>의 경우 원작의 어떤 부분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했는지를 비교해 볼 수 있었으나 다른 4편의 경우 아무런 지식이 없어서... (苦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사카구치 안고의 경우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이 만들어 졌으니 두 말 하면 잔소리. 사카구치 안고는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사막에서 잠시 언급이 된다. 

어쨌거나, 일본 문학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해왔던 작가들의 작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해낸다. 이런 방식은 <겐지와 겐이치로 A, B>와 비슷하다. 겐지와 겐이치로 같은 경우는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재해석해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로 만든 것이지만...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는 시종일관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특히.. 분홍색 팬티에선 완전히 자지러지게 웃고 말았다.
원작은 메로스가 돌아오지 않으면 세리눈티우스를 처형한다는 것인데, 이게 현재의 교토로 무대가 바뀌고 대학 캠퍼스로 무대가 바뀌면서 그 설정이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이다.
처형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반주에 맞춰 분홍색 팬티를 입고 춤을 춘다라는 설정으로.

물론 가장 중요한 우정에 대해 역설하는 부분은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우정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쾌하게 뒤집는다.
다자이 오자무의 달려라 메로스는 메로스가 세리눈티우스의 처형을 막기 위해 성으로 돌아오지만, 모리미 도미히코의 달려라 메로스는 우정을 위해 도망을 간다. 잡히지 않고 무사히 도망을 치는 게 두 사람의 우정의 증거인 것이다.

"약속을 지키고 지키지 아니하고는 문제가 아니다. 신뢰하고 하지 아니하고도 문제가 아니야. 누를 끼쳐도 돼. 배신해도 상관없다. 서로 돕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같은 것을 목표로 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둘도 없는 벗인 것이다."

책 본문에서 발췌한 부분을 보면 이 둘의 우정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두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우정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새로운 우정에 대한 해석이다.

<덤불속>의 경우는 유지니아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아! 그렇다고 이게 미스터리물은 아니다. 접근 방식이 유지니아와 비슷하다는 것이지.
어떤 영화에 대해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인터뷰하는 형식이 유지니아의 사건 인터뷰 방식과 닮았단 말이다. (온다 리쿠의 유지니아를 읽으신 분이면 공감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영화를 두고 이야기되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각.
어떤 사실에 대한 입장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다. 사실은 하나지만, 그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각기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만을 진실이라 생각하는 것이니까.

<산월기>도 읽으면서 계속 키득키득 거린 작품중 하나이다. 사이토 슈타로라는 정말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의 궤변에 미친듯이 웃을수 밖에 없었다. 사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 중 시노 메로(달려라 메로스)와 세리나(달려라 메로스)도 정말이지 괴상한 캐릭터이다. 괴상한 캐릭터들이 늘어놓는 궤변이 마음에 와닿는 건, 비록 그것이 궤변일지라도 진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보여도,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
그건 아마도 진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배척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배척을 하기도 하고 배척을 당하기도 하지만, 늘 한결같이 꿋꿋한 모습이다. 세상은 큰 무리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것만도 아니란 것을 보여 준다.

<벚나무 숲 만발한 벚꽃아래>와 <햐쿠모노가타리>는 왠지 원작이 공포소설일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벚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잠들어 있어. 벚나무는 그 시체를 양분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라는 괴담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아마도 그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벚나무에 대해 사람들은 경외심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햐쿠모노가타리>의 경우, 일종의 이야기 놀이인데, 마지막 100번째 촛불을 끄기 전에 이야기는 끝난다. 100번째 촛불이 꺼지면 마물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는 세상사람들 눈에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인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인물이 실제로 있는지는 결국 모르고 끝났지만... 한여름밤에 왠지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이야기였다.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원작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원작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난다는 것은 책이 꽤나 잘 쓰여졌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재해석하고 재창조된 글이 재미없다면 당연히 원작에 대해 관심이 가지 않게 되므로.

유쾌 발랄 상쾌 통쾌한 명작 다시 읽기.
이 책은 나처럼 <달려라 메로스> 딱 한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도, 원작을 모두 읽어본 사람이라도,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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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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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르한 파묵.
그는 아직 내게 낯선 작가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오르한 파묵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아직 그의 책은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빨강은 1500년대 오스만 투르크 제국, 즉 현재 터키의 전신인 나라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다민족 제국을 시대적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낯선 나라, 낯선 시대라는 것이 설레임도 주었지만 걱정이 앞선 것 또한 사실이다.

일단 작가 소개와 뒷표지를 읽으며 이 책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를 혼자서 상상해보고, 또한 목차를 쭉 훑어보았다. 그러나 목차를 본 순간 난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무엇 이다(입니다)로 1권에는 총 33개의 번호가 붙은 목차가 보였다.
사람 이름, 사물, 동물, 그리고 살인자라는 단어가 들어간 33개의 목차는 내 궁금증을 한껏 끌어 올렸다.

심호흡을 하고, 난 첫장부터 조심스레 펼쳤다.
마치 선물 상자를 개봉하듯.

처음부터 충격적이다. 엘레강스라는 한 세밀화가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각 장마다 그 이름을 내세운 사람 혹은 사물이 1인칭으로 서술한다.
좀 특이한 것은 개, 나무, 금화, 죽음, 빨강 등의 이름을 가진 것들 역시 1인칭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개, 나무, 죽음의 경우는 그림의 소재로 쓰인 것들이고, 금화는 말그대로 그 당시 화폐, 빨강은 물감을 의미한다.
각 장에서 이름이 등장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물까지도 각각 그 장에서 1인칭 화자가 되는 책은 처음으로 읽어본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가지는 특징은 각각의 화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모든 것은 주관적인 입장에서 설명된다. 또한 화자들이 우리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그 시대의 모습과 세밀화가들의 활동, 그리고 베네치아나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화풍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온 고유한 화풍의 충돌, 또는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발생하는 세밀화가들 사이의 견제와 암투등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또한 카라와 셰큐레 사이의 밀고 당기는 사랑 놀음도 볼 만하다. 셰큐레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카라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솔직히 의문스럽기도 하고, 둘 사이의 관계가 불안불안하기도 하다.

아직 엘레강스와 에니시테를 살해한 살인범은 윤곽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살인자는 분명 나비, 올리브, 황새라는 예명을 가진 세밀화가 중의 한사람이지만, 살인범, 나비, 올리브, 황새의 입을 빌어 진행되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어 봐도 여전히 그 살인범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일단 난 나비, 올리브, 황새 중 한사람을 지목하고 있지만, 과연 그 사람이 맞을지에 대한 것은 2권을 읽어 봐야 확실해질 듯 하다.
재능에 대한 질투, 외부로 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경외와 자신들의 고유의 것을 지켜야한다는 보수적 입장의 충돌, 이슬람교와 술탄이 지배하는 오스만 투르크의 사회상 등등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한 내 이름은 빨강 1권.

2권에서는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기대감을 안고 서평을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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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 제10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5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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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와라 히로시의 데뷔작이자 제 10회 소설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1956년생인데 1997년에 데뷔를 했으니 꽤나 늦게 데뷔한 셈이다.

근데 이게 데뷔작 맞아?
하는 감탄이 나오는 소설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읽는 내내 키득키득, 쿡쿡, 우와하하핫 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억지로 웃기는 것도 아니요, 블랙 유머도 아니다.
지극히 순수한 웃음을 준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은 이제껏 <네 번째 빙하기>와 <벽장 속의 치요>을 읽은 게 다이지만, 읽을때 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적절한 타이밍에 주는 웃음. 그게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이다.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는 일본 도호쿠에 있는 시골중의 시골, 속된 말로 깡촌 우시아나라는 마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곳의 인구는 총 300명, 주요 농산물은 당근, 박고지 그리고 오로로콩.
이렇다 보니 마을 청년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마을은 점점 몰락해간다.

그래서 마을 청년들이 하나로 뭉쳤다.
오직 하나의 목표, 우시아나를 부흥시키기 위해.

마을 청년회 회장인 신이치는 그래도 이 시골 마을에서는 도쿄물 먹은 엘리트다.
그리하여 신이치와 사토루는 도쿄로 가서 광고회사를 알아보다가 파산 직전의 유니버설 광고대행사에 수주를 하게된다.

유니버셜 광고대행사의 이시이, 스기야마, 무라사키는 우시아나 마을로 향해 그곳의 컨셉을 잡으려 하지만.... 이건 완전 맨땅에 헤딩하기다. 광고 아이템으로 쓸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

그리하여, 우시아나호에 우시아나사우루스를 출현시키기로 하는데.....

사실 우리나라도 정말 시골이 많다. 그러한 곳의 대부분은 우시아나 마을처럼 낙후되어 있고, 인구는 점점 줄며, 특히 젊은 층은 대부분 대도시로 나가버리는 형편이다. 사실 관광자원조차 없어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마을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우시아나 마을을 보며 그 마을을 기사회생시키겠다는 의도는 좋았으나, 이게 사기가 아닌 사기가 되고 일본 전역에 큰 파동이 일고... 한때 공룡의 후예가 나타났다고 해서 몰려 오던 관광객도 그 사건의 진실을 보고는 발을 딱 끊어 버린다.

이런 일은 곳곳에서 수도 없이 일어난다.
매스컴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사람들, 그런 모습에 쓴웃음이 난다.
하지만, 우시아나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은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도호쿠 지방의 사투리로 표기되어서 그런지 우리말 번역은 충청도 사투리처럼 해놓았다. 충청도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 역시 처음엔 갸우뚱하면서 읽었지만, 익숙해지니 술술 읽혔다. 일본 사람들도 알아듣기 힘들다는 우시아나 방언. 우리 나라로 치면 제주 방언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 소설에서 웃음을 주는 건 사건만이 아니다. 등장 인물도 굉장히 특색 있는데, 내게 제일 웃음을 많이 준 건 역시 광고 대행사의 무라사키였다. 오타쿠 기질이 가득한 그의 행동, 그리고 그의 언사, 그리고 그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땐 난 웃음이 그냥 터졌다. 왠지 옆에만 있어도 즐거워질 것 같은 사람이 무라사키였다.

그리고 이 소설의 각 장은 광고 카피라이터를 직업으로 삼았던 오기와라 히로시의 감각을 보여준다. 그것은 광고 캠페인 제작 프로세스에 따른 제목으로 이 제목과 내용을 연관시켜 보면 그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도시와 시골. 그 대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우리는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자연의 고마움을 잊고 산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해관계로만 얽혀있는 경우도 많고.
적절한 풍자와 재치있는 유머로 잔잔한 웃음을 주는 이 소설은 우리가 당연시 여기면서 잊고 살아갔던 것에 대한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었다.

이 소설의 속편 <사이좋은 비둘기파>은 또 어떤 식의 재치있는 웃음을 던져줄지에 대한 기대감을 품으며 이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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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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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츠 이치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제 6회 점프소설 논픽션 대상 수상작으로 17살이란 나이에 쓴 그의 데뷔작이다.
<너밖에 들리지 않아>라는 작품은 나와 오츠 이치의 첫만남이었고, 그후에 읽은 <ZOO>는 나를 경악시켰다. <너밖에 들리지 않아>는 오츠 이치의 퓨어계 소설이고, <ZOO>는 그의 다크계 소설이라 같은 사람이 쓴 것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굳이 말하자면 다크와 퓨어가 적절히 섞여 있는 소설이다. 공포스럽고 잔인하기만 한게 아니라 그 저변에는 숨겨진 슬픔과 아픔이 공존하기 때문에이다.
이 소설집에는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외 유코라는 작품이 있는데, 두 작품 다 마지막 반전이 나를 경악시켰다. 

아홉살 소녀가 본 자신의 죽음,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이 단편의 화자는 아홉살난 소녀 사쓰키이다. 사쓰키는 같은 반 친구 야요이에게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야요이의 오빠 켄은 야요이의 말을 그대로 믿고 사쓰키의 사체를 유기할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오빠 켄을 좋아하는 사쓰키에 대한 질투와 원망으로 어이없이 사쓰키를 죽음이란 곳으로 내몬 야요이. 그리고 사쓰키의 죽음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사체유기를 즐기는 듯한 켄.

아홉살, 열한살의 어린아이들이 저지른 짓, 그리고 그들이 사쓰키의 사체를 유기하기 위해 4일동안 머리를 짜내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또한 그것을 도와주기까지 하는 한 인물이다. 어린 소년들의 실종 사고와 관련되어 있는 그 인물이 마지막에 드러나면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난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소설은 보통 범인이 화자가 되거나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되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이미 죽은 소녀가 화자가 된다. 아홉살 소녀의 관점에서 바라본 자신의 죽음, 그리고 야요이와 켄이 자신의 사체를 유기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감정,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보이는 감정들은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답게 천진난만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욱더 가슴 아프다.

특히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카고메 카고메 놀이를 하는 모습은 공포감보다는 오히려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자신이 본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함정에 빠진다, 유코 

이 소설은 도리고에家에서 일하는 하녀 키요네와 그 집의 사람들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일을 그리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키요네가 보는 것이 진실인 것 같기도 하고 마사요시가 보는 것이 진실이기도 하다. 그런 의문은 맨마지막에서 일거에 해소되며, 그 반전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잘못된 믿음과 판단의 근거,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이 현실이고 진실이라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엄청난 사건.

무섭고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움이 많이 느껴지던 작품이다.

데뷔작의 풋풋함을 느끼는 동시에 오츠 이치의 천재성을 동시에 느끼다

열일곱살이란 나이에 데뷔. 그러다 보니 문장의 흐름이나 전체 스토리의 흐름, 그리고 세부 묘사라든지 하는 것이 좀 매끄럽지 못한 면이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데뷔작이란 사실을, 그리고 그것도 17살이란 나이를 감안한다면 이런 상상력으로 이런 충격적인 작품을 써낸 작가가 다시 보일 것이다.

독특한 스토리와 설정, 그리고 반전.
공포와 안타까움의 절묘한 결합.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딱 두개의 작품만을 읽은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작가로 착각하게 만든 오츠 이치.
그의 작품은 호러 혹은 미스터리 장르에서 또다른 지평을 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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