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 가족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4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 5회 일본서점대상 3위 수상작, 모리미 토미히코가 가장 쓰고 싶었던 소설이라고 말하는 유정천 가족.
그의 전작들을 읽으며 웃음 폭풍, 망상 작렬의 세계로 빠졌던 난 당연히 유정천 가족에도 그만큼의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난 그 기대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이제까지의 책들이 대부분 대학생을 소재로 하여 그들의 망상적 생활을 써왔다면 이번엔 가족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의 유머 감각은 그대로 살아있다. 의고체(옛말투)로 작성된 그의 글과 코믹함이 만나 그 즐거움은 몇 배로 늘어 난다. 왠지 너구리들이 점잖은 척 하면서 말하는 것 같단 말이지....

여하튼 간에, 이번 책의 주인공은 너구리이다. 아.. 물론 너구리만 나오는 건 아니다. 너구리, 텐구, 그리고 인간의 삼파전이 자못 흥미롭다. 특히 너구리계의 명문가 시모가모家와 시모가모家에서 분가한 에비스가와家의 대립 양상은 인간들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일단 명문 너구리家인 시모가와 家의 가족구성을 살펴 보자.
일찌기 니세에몬으로 교토 너구리들의 추앙을 받았지만, 금요 구락부의 냄비 요리로 사라져버린 아버지 소이치로, 바다와 같은 넒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수수께끼의 미남 청년으로 둔갑하지만 천둥 소리만 나면 변신 효과가 사라지는 어머니.
 
패기있고 과격하지만 마무리가 약한 장남 야이치로는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가 못미덥다. 차남 야지로는 아버지 소이치로의 사후 교토의 밤하늘을 종회무진 누비던 가짜 에이잔 전철로 둔갑하기를 그만두고 우물속 개구리로 둔갑, 현재 칩거중이다.

삼남 야사부로(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가끔은 삭은 대학생으로 가끔은 어여쁜 미소녀 캐릭터로 둔갑하며 지금은 영락해 버린 텐구 아카다마 선생의 수제자로 살아 가지만 재미만 쫓아 빈둥거린다. 막내 야시로는 둔갑을 해도 겁을 집어 먹으면 금방 꼬리가 퐁하고 튀어 나오니, 시모가모 사형제 중 제대로 된 너구리는 하나도 없다.

시모가모家와 적대적인 에비스가와家의 너구리는 그 음흉하기가 어느 곳의 너구리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소운과 멍청이 쌍둥이 아들 금각, 은각, 그리고 입은 거칠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야사부로의 전(前) 약혼녀 가이세이가 있다.

그외의 등장 인물로는 한때 교토를 주름 잡던(???) 텐구였지만, 인간에게 홀랑 빠져 그 능력을 다 전수해 주고 영락을 거듭한 후 데마치야나기에서 고집불통 외곬수 영감 텐구로 전락한 아카다마 선생, 한때는 인간이었지만 아카다마 선생의 수제자로 그의 능력을 모조리 흡수해 반인간 반텐구로 살아가는 미모의 처자 벤텐까지...

대충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만 봐도 입이 떠어억 하고 벌어져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이다. 

너구리, 텐구, 인간이라는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삼파전의 양상속에 판타지와 현실이 뒤섞여 춤춘다, 춤춘다. 
자칫 정신줄을 놓고 읽다가는 어느 것이 너구리이고 어느것이 텐구이며, 어느 것이 인간인지 자못 헷갈리기 쉬우니 정신줄 바짝 잡고 이야기에 집중할 지어다.
그러나, 그닥 그런 노력이 그닥 소용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왜냐구?
전작처럼 초단위로 웃겨주는 통에 제정신 유지하고 읽기가 힘들단 말이렷다.

유정천 가족을 읽다보면 익숙한 것이 나온다.
바로 가짜 덴키브란. (다른 소설에서는 가짜 전기부랑으로 표기 되었다. 아마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일걸??) 하여간, 모리미 소설 속에서는 익숙한 표현들이 툭툭 튀어 나오는데, 그의 전작을 읽으신 분들이면 굉장히 반가울 거다. 나만 그럴지 몰라도.
다다미 네 평반이란 표현이나, 마네키네코, 텐구는 모리미의 소설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다.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잘 찾아 보시길... (숙제?)

하여간, 시종일관 점잔 빼는 듯한 의고체 문장이 너구리를 만나 더욱더 큰 웃음을 준다. 그러나 그 웃음 뒷면에는 가족간의 유대감과 사랑, 그리고 너구리로 살아가는 너구리들의 긍지와 인간 세상과는 다름없는 권력을 둘러싼 암투등도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간과 너구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요소를 보며, 결국 제일 잘못하는 것은 인간이란 생각에 씁쓸한 생각도 들기도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칭하며,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까지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안보이나, 오히려 피해자쪽인 너구리들은 그 사실을 싫어하면서도 받아들이려 한다.

앞으로 진행될 너구리 시리즈 3부작의 첫 포문을 힘차게 연 <유정천 가족>!
지금 2부가 연재중이라니 내년쯤이면 모리미의 너구리 시리즈 2부를 만나볼 수 있을까?
가이세이를 좋아하는 차남 야지로의 사랑은 이루어질 것인지, 그리고 벤텐을 두려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야사부로의 짝사랑의 행방은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교토의 너구리 일족은 또 어떤 모험과 맞딱드리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하는 바가 크다.

왠지 교토의 다다스노모리에 가면 너구리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한 책.
판타지와 현실의 절묘한 결합과 시종일관 웃음과 재미와 따뜻한을 전해준 유정천 가족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서평을 마친다.


덧> 읽다보니 몇 가지 오자와 너구리들의 이름이 뒤바뀐 것을 찾게 되었다.

223P.  밑에서 일곱번째 줄 : 훈토시 → 훈도시
272P.  아홉번째 줄 : 시모가모 소타로 → 시모가모 소이치로
281P.  밑에서 여덟번째 줄 : 야시로 → 야사부로
314P.  첫번째 줄 : 야사부로 → 야시로

이렇게 바꿔야 맞지 않은가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이름은 빨강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1권을 읽고난 후, 독특한 서술 방식과 전개 구조, 그리고 1500년대 말의 오스만 제국의 예술 문화에 관한 이야기와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에 내 마음은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2권을 펼쳤다.

2권은 1권에서 살해된 엘레강스와 에니시테의 살해범을 찾는 일과 카라와 셰큐레의 사랑이야기가 주로 전개된다.

카라는 셰큐레와의 결혼 약속이었던 에니시테의 살해범을 찾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또한 에니시테의 죽음 후 바로 진행된 자신들의 결혼에 대한 의혹, 그리고 셰큐레의 전남편의 동생 하산의 질투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2권 역시 모든 장은 1인칭으로 서술된다.
그리고 역시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까지도 1인칭 서술을 한다.
이는 나중에 나오지만, 이야기꾼의 입을 빈 그림속 등장 인물이다.
1편에서는 개, 나무, 금화, 빨강등이었다면, 2편에서 등장하는 것은 말, 악마, 두명의 수도승, 여자이며, 이 모든 것은 카페의 이야기꾼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또한 1편에서 엘레강스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것은 에니시테였지만, 에니시테가 살해당한후 카라는 화원장 오스만과 함께 엘레강스와 에니시테의 살해범을 조사한다. 화원장과 함께 엘레강스가 쥐고 있던 말그림을 그린 사람을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술탄의 소장품 그림을 뒤지면서 오스만은 오스만 제국의 예술과 서양화풍이 들어오기 시작하던 그 시기의 화풍의 충돌에 대해 생각한다. 이는 작은 범위로 화풍의 충돌이지만, 크게 보면 예술 문화전반의 변화의 바람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 시대 이슬람 문화를 주도했던 세밀화와 서양에서 도입된 원근화법은 사물의 인식부터 차이가 난다. 세밀화가 신의 눈으로 그린 그림이라면, 서양화는 사람의 눈으로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서양문물의 도입으로 이슬람 예술의 뿌리가 흔들리고, 세대가 교체되어 가는 시기의 사상적 문화적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슬람 문화, 그리고 1500년대의 오스만 제국의 역사나 문화 예술 사회 정치적인 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어려웠다. 어느 시대나 예술인들의 고뇌는 있어 왔고, 그것이 세대를 교체할 무렵에는 반드시 충돌이 있어 왔다. 특히 종교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수용이 더욱더 어려웠으리란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런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떠나 두 사람의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적 구성 요소라든지, 카라와 셰큐레, 하산 혹은 카라와 세큐레, 그리고 딸을 너무나도 사랑한 에니시테라는 각각의 삼각 관계적 요소와 결합한 사랑 이야기 역시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서 굉장히 놀랐던 것은 이 이야기를 쓴 사람에 대한 언급이다. 셰큐레의 둘째 아들로 나온 오르한(저자의 이름과 같다)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그 후에 글을 쓴 것처럼 언급이 되어 있다. 이 역시 매우 재미있는 부분중의 하나다.

역사와 절묘히 결합된 추리 영역, 예술과 철학적 요소, 그리고 사람 이야기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까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나에게 생소한 터키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해 준 책이며, 우리가 잘 모르는 오스만 제국의 역사나 예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해 준 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피터 게더스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책 제목만으로도 책 내용이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아마도...
난..
또다시 눈시울을 붉히겠지.
아니, 엉엉 울어버릴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그러나 사랑스런 노튼의 삶을 좋아했던 난, 노튼의 마지막 여정도 함께 하고 싶었다.
내 손은 반사적으로 책을 펼쳤고, 난 노튼과 함께 그의 마지막 여행에 동참했다.

이 책은 피터 게더스라고하는 한 남자와 그의 고양이 노튼의 이야기이며, 그것은 파리로 간 고양이, 프로방스로 간 고양이, 그리고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로 나뉘어진 총 3부작 이야기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던 남자가 노튼이라는 고양이를 만나게 되고, 함께 지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 3부작의 주된 내용이다. 노튼과 함께 한 생활, 여행, 그리고 만난 사람들.
노튼은 저자 피터 게더스 보다 더 유명 인사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튼의 사랑스러움에 반했고, 노튼을 사랑했다.
나역시 실제로 노튼을 만난 적은 없지만, 책에 묘사되어 있는 노튼의 여러가지 모습에 사랑스러움을 느꼈고, 노튼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노튼은 피터에게 삶의 기쁨, 행복, 인생의 의미, 사랑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노튼의 몸짓과 야옹거림, 그리고 눈의 표정등은 우리가 말로 배우는 것들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의 가르침을 주었다.

반려 동물을 키워 본 사람들은 자신의 반려 동물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우며, 또한 가장 특별하다고 느낀다. 물론 그 말은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노튼의 특별함은 조금 다르다.
저자인 피터 게더스에게도 제일 특별한 고양이가 노튼이었겠지만, 노튼은 여러 곳의 여행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긍정적인 영향이었다. 이런 것이 노튼을 더 특별한 고양이로 만들지 않았을까?

나도 반려 동물을 키우지만, 제일 힘든 건 역시 이별의 순간이다.
인간보다 몇 배나 수명이 짧은 그들.
이 책에 나오는 수의사의 말처럼, 그들의 유일한 단점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반려 동물들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비록 말은 할 수 없지만, 그들은 온몸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을 표시한다.
그런 유대감은 사실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 보면, 피터와 노튼 사이에 오고가는 신뢰와 사랑의 유대감을 느낄수 있다.
그것은 긍정적이며, 행복을 함께 가져왔다.

노튼이 암 선고를 받고도 2년 넘게 피터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렸던 것은, 노튼이 현재를 중시하고 쓸데 없는 걱정을 하지 않는 동물이란 점도 한 몫 작용한다. 동물은 현재를 힘껏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처럼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순간 순간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 가는 존재이다. 그러하기에 눈을 감는 그날까지,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그날까지 반려인과 함께 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다가 고통 없이 빨리 죽는 것.
그것이 인간과 동물에겐 참 중요한 일이다.
노튼은 거의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지내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나에게도 지난 5월 무지개 다리를 건넌 녀석이 있다. 
그녀석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그 전날 저녁까지 맛있게 먹었던 녀석이다.
열여덟살의 나이에 그토록 건강하게 있다가, 떠나버린 녀석.
그 상실감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이 컸지만, 떠나기 전까지 너무나도 건강하게 지냈다는 사실에 대해 난 감사했다.

노튼은 열여섯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저자인 피터 게더스는 암 선고를 받은 노튼에게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까지 행복을 선사했다. 노튼 역시 피터와 함께 했던 마지막 여행의 추억을 가슴에 품고, 피터의 품에서 떠나갔다. 

저자 피터 게더스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이 가져오는 상실감과 고통, 그리고 그 뒤에 남는 상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다가오는 영원한 이별,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가올 죽음에 지레 겁먹고 슬퍼하기보다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를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노튼은 비록 10여년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마지막 여행을 떠났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한마디>
고양이와 관계를 맺는 것이 놀라운 이유는, 아니 고양이와 관계를 맺을때 생기는 수많은 놀라운 일 가운데 하나는, 그로 인해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지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2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우 이야기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여우.. 라고 하면 어떤 것이 생각나는가.
우리는 여우라고 하면 보통 구미호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일본은 구미호는 아니지만, 여우불이나 여우 요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 역시 여우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여우는 꾀가 많은 동물이고, 사람이 사는 곳 근처에 사는 동물이라 더욱더 기담이나 요괴이야기의 소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여우 이야기>는 내가 읽었던 그의 전작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다.
제일 처음으로 읽었던 <달려라, 메로스>를 비롯해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나 <태양의 탑>은 망상과 청산유수같은 달변으로 나에게 쉼없이 웃음을 터뜨리게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책들과 너무나도 느낌이 달라 깜짝 놀랄 정도였다.

차분하게 진행되면서도 섬뜩한 공포와 전율을 전해주는 이 책은 1,000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교토라고 하면 왠지 일본의 옛역사를 떠올리게 해주는 곳이라 이런 기담이란 소재와 딱 어울려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 책에는 표제작 여우 이야기 이외에 3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다. 어찌 보면 다 다른 이야기로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연작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 소설집은, 교토에 있는 한 골동품 가게 방련당과 여우탈을 쓴 남자, 그리고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몸뚱아리는 길고 긴 요괴같은 존재가 겹치며 등장한다.

모든 이야기의 시기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 소설속에 나오는 모든 등장 인물들의 관계는 묘하게 겹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집 속에 나오는 일들이 시간상으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뒤죽박죽 섞여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제일 불분명한 것은 이 일들의 배후에 있는 존재와 그 결말이다.

환등속에 등장한 그 요사스러운 생김새의 존재는 요괴로도 불리고, 마(魔)라고도 불리지만 확실한 언급은 피하고 있다. 또한 여우탈을 쓴 남자의 존재와 그가 불쑥 나타나는 마츠리와의 관계도 솔직히 말해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는 불분명하다. 방련당의 주인의 정체도, 마지막 이야기에 나온 할아버지의 존재와 성대한 연회의 비밀도 마찬가지이다.

읽으면서 궁금증은 더욱더 증폭되고, 그 결말이 궁금해지지만, 저자는 결말 또한 확실하게 내어 주지 않는다. 어찌보면 그게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 확실한 결말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모든 기담의 소재가 되는 것은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존재나 사건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것은 결말을 확실하게 내지 않으면서, 독자의 상상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게 하는 작가의 배려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내가 책에 더 몰두하게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 실제로 교토의 옛길을 따라 걷고 있는 자신이 느껴진다.
어슴푸레한 달빛, 고즈넉한 풍경, 그리고 조용한 거리에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이 들려온다.
그러나, 왠지 누군가 저 어둠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고, 누군가 나를 살며시 따라오는 것 같다.
그 느낌은 점점 구체화되어 내 몸을 둘러싼 공기가 끈적끈적하고 축축하고 비릿해져 간다.

처음엔 가벼운 기담이야기로 생각하며 읽었다가 점점 책의 내용에 몰입할 수록 그 모든 이야기는 내 마음 속에서 실체화 되어 간다.
이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은채 지금도 교토의 어느 곳에서인가 계속 이어질듯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양의 탑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태양의 탑>은제 15회 일본판타지노벨상대상 수상작이자 모리미 도미히코의 데뷔작.
그리고 내가 세번째로 읽은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이다.

이 전에 읽은 책 두 권인, 일본 유명작가들의 오마주 작품 <달려라 메로스>를 읽으며, 난 그 책속에 수록된 작품들의 원작을 모조리 찾아서 읽고 싶어졌고,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으면서 새벽 4시 만물이 잠든 밤 혼자서 미친듯이 웃었다.

단숨에 나를 사로잡고 휘어잡은 모리미 도미히코.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중에서 손에 꼽는 작가 중의 한명인 그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기대감을 갖게 된다. <태양의 탑>도 마찬가지. 그의 데뷔작인 <태양의 탑>을 손에 든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때 까지 난 한순간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망상 작렬, 포복 절도!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나는 단 이 두가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리미 도미히코가 교토대 재학중에 벌어진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쓰여진 작품으로, 괴짜 남자 대학생들의 숫컷 냄새 풀풀 풍기는 망상과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다. 제일 앞장에서 자신의 수기라고 시작하는데, 이는 이 소설속에 묘사된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임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리라.

일단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

작품의 화자인 <나>는 교토대학 5학년 휴학생으로 미즈오라는 여대생에게 차인 후, 그녀에 대한 연구 보고서라는 명목으로 그녀를 스토킹(?)한다. 사실 연구는 그녀를 사귈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시카마 다이키는 남자들만의 망상과 사색으로 한층 더 높은 곳을 지향하며 나날이 정진을 거듭하는 절망의 댄스 선두에서 기운차게 내달리고 있고, 다카야부 도모나오는 강철같은 수염과 머리털로 온통 뒤덮였지만 마음씨만은 고운 초대형 거인 오타쿠이다.

그리고 이도 고헤이는 지구상에 꿈틀거리는 모든 인간들에 대해 숙명적인 분노를 느끼며 가능한 한 그들이 불행하지기를 바라는 분노의 화신이다.

이들 네명이 이 소설의 중심축이 되는 현실 10% 망상 90%의 삶을 살아가는 교토대 '사천왕'이다.

이외에도 <나>의 연인이었다가 크리스마스날 태양열로 움직이는 마네키네코를 선물 받고, "난 방에 쓸데없는 물건이 늘어나는 게 싫어요."란 한마디로 주인공을 얼어 붙게 만든, 미즈오 씨. 그녀는 이상하게 태양의 탑에 집착하는 면도 보인다.

그리고 미즈오씨를 스토킹하는 <나>와 미즈오씨를 동시에 스토킹하는 엔도. 그는 미즈오씨를 좋아하면서도 소심해서 고백 한번 못하는 소인배이다.

그외에도 사안을 가진 우에무라 양, 동아리 유령회원이면서도 동아리 빚을 걷으러 다니며 망상적 빚쟁이로 변신해버린 유시마, 대학생활을 이상한 논리로 점철했다가 송별회 회비를 떼먹고 도망간 에비즈카 선배가 지금은 멀쩡한 얼굴로 수입상품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충 봐도 평범치 않은 인물들의 퍼레이드이다. 그러나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조용한 밤 시간, 조용히 책을 읽으려 했던 나의 결심의 산산히 무너뜨리고, 나를 포복절도, 자지러지게 웃게 만들었다.

그외에도 교토대학 사냥꾼들과 마주친 사건이라든지, 에에자나이카 사건은 끝까지 나를 웃도록 만들었다. 특히 교토대학 사냥꾼들과 마주쳤을때 나의 대응 수단이었던 오른손의 귤껍질과 왼손의 개똥은 나를 미친듯이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엔도에게 보낸 선물이 <나>에게 돌아왔을때 벌어진 사태는..... 생각만 해도 어깨가 부들부들 떨린다...(웃음을 참느라고)

옛말투 문장에서 나오는 해학적인 웃음과 적절한 유머가 담긴 어휘들의 변주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천재성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이 소설은 순문학 장르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읽고 나서 뭔가 깨달음을 주는 그런 의도로 쓰여진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이 말만은 할 수 있다.
미친듯이 웃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라고.
한참 웃다보면 우울한 기분이여 안녕, 꿀꿀한 기분도 안녕~~~ 을 외치면서 손을 살포시 흔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이 책의 계절적 배경이 되었던 교토의 겨울.
지금 대한민국도 겨울이다.
즉, 이 소설에 등장한 '사천왕'들이 부들부들 떨며 제발 오지 않기를 바랬던 '크리스마스 파시즘'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나 역시 점차 다가오는 연말의 '크리스마스 파시즘'의 광풍속에서 생존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입장이다.

크리스마스 파시즘의 광풍이 절정에 달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도 온 세상이 들썩들썩하겠지만, 사실상 12월초부터 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넘쳐난다.
이 '크리스마스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나역시 ええじゃないか를 함께 외쳐줄 동지들을 규합해서 거리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조금, 아주 조금, 새끼손톱의 1/10의 크기만큼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사는 소도시는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다 나오는, 얼굴만 봐도 뉘집 자식이라는 정보가 나오는 이런 소도시에서는 그런 일을 하면 부모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되는 일이니....

'크리스마스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는 그 날만은 조용히 집에서 우리 다섯마리 강아지들을 조직원으로 내가 '에에자나이카'의 선봉이 되어 '에에자나이카'를 한번 외쳐볼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