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그라운드, 완투에서 불펜까지 - 야구광 철학자의 한국 야구 50년 관전기
탁석산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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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철학책을 통해 알게 된 탁석산 철학자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본 느낌이네요.

한국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이토록 열정적일 줄이야, 그 덕분에 한국 야구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네요.

《낭만의 그라운드, 완투에서 불펜까지》는 50년 구력의 철학자 탁석산 님의 '한국 야구 관전기'라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중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 한밤중에 홀로 야구를 보며 야구장의 매력을 느낀 소년이 어떻게 야구와 함께 하는 세월을 보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어요. 저자는 고교 야구부터 현대 프로 야구까지 한국 야구사의 변천사를 낭만과 향수, 철학적 성찰로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네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완투형 투수가 사라진 시대에 어떻게 야구가 변화해왔는지,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와 기억이 무엇인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네요. 요근래 야구팬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네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 정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였는데, 프로야구가 등장하면서 프로야구는 지역과 기업의 결합으로, 개인의 정체성이 기업에 있던 시대였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개인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네요. 과거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규정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이 직업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면서 직업이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못하게 되었네요.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 야구의 등장하면서 고향 팀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좋아하는 기업의 팀이라서 좋아하는 팬들이 생겨난 거죠. 지금은 야구 자체가 좋고, 야구장이 좋고, 야구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좋고, 기타 등등 자신만의 이유로 야구팬이 되는 경우가 많아진 거네요. 저자는 전설적인 선수들과 인상적인 경기 장면들을 소개하면서 철학자 특유의 관점에서 과거의 기억을 단순한 추억이 아닌 현재의 의미로 재해석해주네요. 야구광, 찐팬의 마음을 듬뿍 느낄 수 있어서 야구팬들에게는 공감을, 일반 독자들에게는 감동를 선사하는 한국 야구 이야기였네요.

"노력은 때때로, 아니 자주 우리를 배신합니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노력도 남보다 더 하니 당할 재주가 없습니다. 야구를 보면 위안받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만 그런 처지가 아니란 사실을 선수를 보며 새삼 실감합니다. 애쓰는 선수의 모습에서 자신을 봅니다. 응원하게 됩니다. 힘내라! 선수가 어느 날 시원하게 한 방 날려 팀을 승리로 이끕니다. 이것은 자신의 승리이기도 하기에 마음껏 축하해 줍니다. 하지만 병살타를 두 번이나 치는 날에는 함께 울어 줍니다. 그 또한 자기 모습이기에. 시합이 안 풀리는 날이면 불운을 떨치라고 평소보다 더 큰 소리로 등장 응원가를 부릅니다. 악귀를 쫓듯이 온 힘을 기울여 부르고 또 부릅니다. 마침내 역전에 성공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불운을 쫓아냈으니, 앞으로는 행운이 찾아올 거라 믿습니다. 노력과 재능, 행운과 불운이 혼재하는 야구장은 인생과 많이 닮았습니다." (2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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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행성 - 여섯 개의 다리로 이룩한 위대한 제국
주잔네 포이트지크.올라프 프리체 지음, 남기철 옮김 / 북스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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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살면서 개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슬금슬금 다리 위로 기어오르는 개미를 발견했을 때, 그보다는 책을 통해서였네요. 작은 곤충이라는 사실 외에 더 엄청난 것들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개미들의 행성》는 독일의 진화생물학자인 주잔네 포이트지크와 과학 저널리스트인 올라프 프리체의 책이네요.

우선 개미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작지만 정말 강하다!"라고 할 수 있어요. 저자들은 개미와 인간의 공통점과 다른 점, 이 두 가지를 결합해 보면 개미가 우리 인간에게 그토록 매력적인 이유를 알 수 있다고 설명하네요. '여섯 개의 다리로 이룩한 위대한 제국'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은 실제로 이 지구상에서 개체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동물이 개미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 한 종만 존재하지만 개미 세상에는 상당히 많은 종이 있고, 전 세계적으로 열대우림, 사바나 등 다양한 환경에서 인간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개체 수가 서식하고 있네요. 개미들이 이토록 엄청난 개체 수를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은 삶에 대한 태도라고, 각각의 개미는 무리에서 이탈하면 곤경에 처하겠지만 언제든 동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고, 개미 한 마리는 작은 모래알을 옮기는 정도지만, 그들이 모이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네요. 개미들의 습성은 더디게 발전했고, 생태계와 보조를 맞춰 자연의 구성요소로써 대자연의 순환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핵심이네요.

이 책에서는 개미들의 놀라운 생태와 그들의 거대한 제국에 대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네요. 여왕개미와 일개미 등 완벽한 분업과 효율성, 사회적 뇌와 협동은 그들이 군체 단위로 소통하며 거대한 과업을 완수해가는 비결이네요. 개미들의 기발하고 치열한 생존 전략을 보고 있노라니,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개미이며, 지구는 개미의 행성이었음을 깨닫게 되네요. 개미는 단순한 곤충을 넘어 고도로 발달한 사회 구조와 생존 전략을 가진 존재임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계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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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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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낀 음식물 같은, 삼키려다가 딱 걸려버린...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이동원 님의 첫 소설집이라고 하네요.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이미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있지만 저자의 이력이 한몫을 했네요.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연출했다고 하네요. 종종 챙겨보는 프로그램인데, 방송 콘텐츠를 통해 '제61회 백상예술대상 교양작품상', '제11회 서재필 언론문화상' 등 다수 수상했고, 경희대학교 문화엔터테인먼트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법무부에서 교정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전국의 수많은 교도소를 방문하고 있다네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각종 범죄 사건들을 심층 취재하여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 프로그램이라서, 특정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해도 가끔 시청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어요. 그러니 이 모든 내용을 직접 취재하고 목격한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소설집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건들, 그 실화를 기반으로 타인의 불행을 목격하거나 소비하면서 자신의 욕망, 죄책감, 또는 위로를 얻는 인간 군상을 10개의 단편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방송으로 다 보여줄 수 없었던 것들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네요.

와이프가 실종된 상태인 40대 회사원, 아동학대 의심 환자를 진찰한 소아과 의사, 사주에 금이 없어서 진급 못한 경찰, 무대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유튜버이자 인디 뮤지션, 비밀을 가진 프로파일러, 정규직 전환을 목전에 둔 인턴 기자, 재심 재판을 맡은 변호사, 국정원 문지기 박계장, 입시 비리를 목격한 고등학생, 인플루언서와 동거 중인 30대 우체부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불편하고 잔혹한 진실을 마주하면서 불쑥 사레가 걸린 듯 컥컥 내뱉다가 가슴 한 켠이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거예요.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겉은 다 똑같은 인간이지만 속은, 누구도 알 수 없네요. 남을 속일 순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그 말도 옛말이 된 것 같아요. 스스로를 속이며 인륜을 저버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에요.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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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뇌과학 - 늙지 않는 뇌를 만드는
문제일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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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지만 반대로 가장 소홀히 하는 감각은 후각인 것 같아요. 시각과 청각에 비해 덜 신경쓰는 건 후각 상실이 사소한 불편만을 가져오기 때문일 거예요. 시각이나 청각이 상실되면 즉시 인지하게 되고, 당장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에 비하면 냄새를 못 맡는 건 경미한 수준인 거죠. 시각, 청각, 미각, 촉각에 대한 인간의 감각 과정은 비교적 많이 알려진 반면에 후각은 미지의 영역이기도 해요. 그래서 후각이 얼마나 중요한 감각 기관인지를 놓치고 있었네요. 어느 하나라도 감각 기관에 이상이 생기면 뇌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네요.

《늙지 않는 뇌를 만드는 감각의 뇌과학》은 알츠하이머 발병 기전을 연구해 온 뇌과학자 문제일 교수의 항노화 뇌 사용설명서라고 하네요.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감각 기관도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되는데, 50세 이후에는 코 점막이 얇아지고 건조해져서 신경이 덜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냄새를 맡는 능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이때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갑작스러운 후각 상실인데, 이는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뇌 질환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는 거예요.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거의 100%, 파킨스병 환자의 90%가 후각 상실을 겪었고, 치매 초기에는 모든 냄새를 못 맡는 것이 아니라 특정 냄새, 즉 '땅콩버터 냄새'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치매 조기 발견의 단서로 활용되는 '땅콩버터 테스트'는 30cm 자와 땅콩버터만 있으면 누구든지 바로 실행할 수 있어요. 피험자의 눈을 감긴 후, 한쪽 콧구멍을 막고 땅콩버터를 10cm, 20cm, 30cm 거리에서 차례로 가까이 대며 냄새를 맡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데, 특히 왼쪽 콧구멍에서 땅콩버터 냄새를 맡지 못하거나 오른쪽보다 현저히 약하게 맡는 경우에는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알츠하이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알츠하이머 초기에는 후각을 담당하는 뇌 부분이 먼저 손상되어, 순수 방향 물질인 땅콩버터 냄새를 감지하는 기능이 떨어진다고 하네요. 제 경우는 미세한 냄새 변화도 금세 알아차릴 정도로 후각 능력은 양호해서 다행이지만 시각이나 후각 능력은 감퇴되고 있어서 관리가 필요하네요. 평소에 익숙하던 커피 향, 김치 냄새, 과일 향이 잘 느껴지지 않거나 그 냄새가 무엇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면, 정확한 진단을 위해 병원 방문하여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뇌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온몸의 감각이 어떻게 우리 뇌를 깨우고 학습시키는지 살펴보고, 오감을 활성화하여 뇌의 기능을 최적화하는 원리와 일상 속 감각 훈련법을 알려주네요. 우리 뇌는 신경 가소성이라는 특성 덕분에 학습, 훈련을 통해 계속 성장할 수 있고, 감정이라는 필터를 통해 정보를 요약하고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뇌가 가진 창의적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핵심이라고 하네요. 마음이 평온하고 즐거우면 우리 몸은 최적의 균형을 유지하고,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이 지속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여 뇌의 해마를 훼손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전신 염증 반응을 일으켜 면역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뇌 건강을 위해서는 유산소 운동과 식단 관리, 감정을 긍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여기에 하나 더, 향기를 활용하면 단숨에 즉각적인 감정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하네요. 가볍게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며 운동하고, 조용히 눈을 감아 호흡을 가다듬는 명상을 하며, 기분 좋은 향기로 공간을 채우는 것이 뇌를 긍정적인 감정으로 만들 수 있어요. 코로 맡는 향기가 진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일 줄이야! 일상의 감각을 깨워 뇌에 신선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 늙지 않는 뇌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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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 - 문학과 예술이 태어난 곳으로 떠나다
김경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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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삶에 지칠 때, 사람들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하죠.

마치 그곳에 해답이 있는 것처럼... 여행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신기하게도 고생한 만큼 얻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건 어쩜 단순한 고생이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대단한 뭔가를 이룬 건 아니지만 조금 성장한 느낌이랄까요.

《인문 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는 문학과 예술, 역사의 현장을 걸으며, '사라진 시간'에 대한 인문학적 답을 찾아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자는 오랫동안 현장을 누빈 언론인이자 청년기부터 인문학점 관점의 스토리와 역사 속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여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하네요. 전작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에서는 도시라는 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그 장소에 깃든 역사와 인문학적 사색을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사라진 시간'을 읽어내며, 삶의 이유를 고민했던 거장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인문학적 깊이를 더해주고 있네요. 많은 도시를 방문하고 걸으면서 시간의 겹 속에 남겨진 흔적들을 보았다면서, '문학, 건축, 음악, 미술, 음식, 자연'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시간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렇게 과거의 장면들을 지금의 시선으로 돌아보며 사유하는 것이 바로 사라진 시간을 걷는 방법이었네요. 저자에게 있어서 여행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네요.

"까마득한 절벽 틈 사이로 석청이 매달려 있는 몬조를 지나, 히말라야 등반 코스의 체크포인트인 조살레 마을 근처의 계곡을 오르며 줄곧 생각에 잠겼다. '나는 자유인인가?' 현실의 사슬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를 의도적으로 떠올리며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했다. 그러나 자유가 어떤 의미인지, 나 자신에게 얼른 와닿지 않았다. ··· 이번 여행에서 내심 히말라야 여신이 지배하는 이 영산에서 마음의 치유를 얻고 싶었다. 진정한 치료는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새로운 것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눈을 뜬 새벽, 나는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이들의 체취가 묻은 낡은 침대 위에 생선구이처럼 구겨져 냄새나는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우리의 삶이란 꾸벅꾸벅 졸다가 깜빡 깨어나고 다시 꾸벅꾸벅 조는 것이다.' 프랑스의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진단서다. 인간은 현실이 견딜 수 없어 꿈을 꾼다. ··· 라캉의 진단처럼 그날 아침 히말라야의 남은 길을 재촉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67-69p)

일주일 동안 매일 여덟 시간씩 무념으로 걸어 올라간 히말라야에서 저자는 처음 출발할 때의 마음처럼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저 경이로운 산의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네요. 히말라야 높은 봉우리들을 올라간 사람들은 다시 내려와야 하고, 산은 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치인 거죠. 좁은 산길을 힘들게 올라간 이들에게 주는 히말라야의 교훈은 삶의 고행인지도 모르겠네요. 알람브라 궁전은 신비롭고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궁전을 한 바퀴 돌아 성채 출구로 나올 때는 해가 기울었다고 하네요. 멸망한 왕조의 화려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어둠이 내린 뒤에는 아스라이 사라져버린 환상으로 남는다는 것이 인생무상, 어쩐지 씁쓸하고 서글프면서도 현재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만드네요.

"인생은 매순간 출구를 찾으면서도 영원히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미로와도 같다.

알 수 없는 막다른 길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방황할 때마다 바다는 나에게 적절한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해답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줄거리를 알 수 없는 연극과도 같고, 막연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것만이 허용된 부조리극이다. 지쳐 헤맬 때마다 바다는 나를 포근하게 감싸는 무엇이 되어주었다. ··· 드뷔시의 음악이 적절한 중재자가 되어 나를 따라다녔다.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말처럼 그가 만들어낸 예술은 희미하고 창백한 달빛이었다. ··· 현실이 태양이라면 드뷔시의 음악은 그 태양에서 달이 훔쳐온 창백한 불꽃이었을 것이다. ··· 예술을 향한 치열한 긍정의 세계가 위대한 작곡가 드뷔시의 그림자처럼 해협의 물결 위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196-197p)

런던 남쪽의 스톤헨지와 솔즈베리를 지나 도착한 이스트본의 바다에서 교향시 <바다>를 들으며 걷는 느낌은, 말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드뷔시의 생애와 음악을 들으며 상상해보았네요. 넘실대는 파도와 드뷔시의 음표들, 예술적인 감동으로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네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새로운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는 인문학 여행 이야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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