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으로 들어가기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네요.

행복로 37번지에 살았던 이다는 행복했던 적이 없어요. 이다의 엄마도 그랬던 걸까요.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의 비극이네요.

카롤리네 발의 장편소설 《폭풍으로 들어가기》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주인공 이다의 이야기네요. 엄마의 죽음으로 이다는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어요. 언니 틸다는 이다가 열한 살 때 베를린으로 떠나 지금은 함부르크에서 빅토르와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어요. 언니 틸다가 엄마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이다는 꼼짝할 수 없었어요. 알코올 중독자였던 엄마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는데, 이다는 그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언니 틸다는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지만 이다는 도저히 언니를 볼 수 없어서 도망쳤어요. 발트해에 위치한 뤼겐 섬에서 이다는 뱃사람처럼 생긴 일흔 살가량의 노인 크누트를 만났어요.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쩐지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쓰러진 이다를 순수한 마음으로 돌봐주는 크누트와 마리안네를 보면서 감사했네요. 좋은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살만하다고,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하는 이다에게 그들은 기적이었네요. 낯선 이들의 조건 없는 호의가 이다의 마음을 열게 만들었고, 자기 내면에 자리한 슬픔과 상처의 근원을 마주하게 된 거예요. 미친 사람처럼 폭풍우 치는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이다에게 진짜 폭풍은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분노였네요. 엄마와 자신을 두고 떠난 언니에 대한 애증, 술 취한 엄마와 살면서 홀로 버텨야 했던 상처들,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선택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고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네요. 왜 그토록 바다로 뛰어드는지, 그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더라면 어땠을까요. 겨우 열한 살 소녀에겐 너무 가혹한 운명이었네요. 든든하게 보호해줄 어른들이 곁에 없었고, 설익은 과일처럼 철이 들어서 스스로 강하다고 착각했던 거죠. 그러다가 엄마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폭발해버린 거예요. 크누트와 마리안네 부부는 이다에게 따뜻한 가족의 품이 무언가를 느끼게 해줬고, 라이프는 얼었던 마음을 녹여줬네요. 특히 라이프가 이다에게 했던 "나는 너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라는 말이 폭풍의 근원을 찾는 단서가 되었네요. 서로 사랑하면서도 함께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 이제 뭔지 알았으니 바꿀 수 있어요. 사랑 때문이라고, 각자 다르게 표현했을 뿐, 결국 사랑으로 치유하며 살아낼 수 있네요.


"바다는 세상 무엇보다 나를 매혹했다. 엄청나게 아름답고 거대한 바다는 보잘것없는 내가 아주 작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 해일이 닥치면 파도가 엄마와 나를 휩쓸어갈 거야. 해변에 앉아 있는 다른 엄마와 아이들도 쓸어가겠지. 해변의 모든 사람을 쓸어갈 거야. 바다는 엄마가 알코올중독자인지 아닌지, 나쁜 엄마인지 훌륭한 엄마인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점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바다에게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모든 사람이 똑같았다. 바다는 엄청나게 아름답고 거대한데, 사람들이 바다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건 본인들 잘못이었다. ··· 바다에서 수영할 때면 나는 매번 바다에게 나를 휩쓸어가서 죽일 기회를 주지만, 바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을 높이 평가한다. 날씨가 어떻든 상관없이 언제나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눈앞에 있고, 가끔 거칠게 춤을 추고, 내가 무례하게 굴어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바다가 나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가장 아름다운 느낌이다." (152-153p)


"사실, 내가 부끄러워한다는 점이 가장 끔찍하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아서 부끄럽고, 그저 집과 가정이 있고 자기 삶을 잘 통제한다는 이유로 언니에게 너무나 끔찍한 말을 마구 퍼부은 게 부끄럽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니에게 집과 가정이 있고 자기 삶을 잘 통제한다고 해서 내 처지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는 분노 덩어리가 내면에 존재해서 부끄럽지 않다. 나에게 있는 거라고는 오로지 이 분노 덩어리와 부끄러움과 죽은 엄마와 온갖 빌어먹을 일들뿐인데, 이건 너무 부당한 일이라 이 분노 덩어리를 내 배에서 잘라내 버리고 싶다. 배에 이런 분노 덩어리를 품고 도대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마라의 엄마가 만든 아랍 특식이 담긴 짝퉁 타파웨어를 생각한다. 그게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굶어 죽었겠지. 행복로에 살던, 짧은 기간에 연거푸 사망한 모녀. 폭발 직전, 심근경색이라고 착각한 공황 발작, 언니가 왓츠앱으로 보낸 함부르르크행 플렉스 티켓, 뤼겐으로 향했던 도주를 생각한다." (167-16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치라이트와 유인등 에리사와 센 시리즈 1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스며든다, 스며들어...

공원에서, 숲에서, 산에서 곤충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 30대 중반의 남성을 봤다면 잠시 눈길이 머물렀을지도, 하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고 말았을 거예요. 조금 특이해 보일 순 있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으니까, 개인의 취미활동은 존중하니까요. 에리사와 센, 처음엔 이 소설의 주인공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자칭 사립 탐정이라고 소개하는 인물도 있어서, 에리사와는 조연이구나 싶었죠. 아무래도 순한 인상에 어리버리한 태도가 상대방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면서, 위험한 사람은 아니겠다는 판단을 하게 만드네요. 설마, 고도의 전략? 이라고 하기엔, 그 엉성함이 너무 완벽해서 속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네요. 초면에도 전혀 이질감 없이 스며드는 에리사와 센을 보면서 저 역시도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네요.

《서치라이트와 유인등》은 사쿠라다 도모야 작가의 미스터리 연작 단편집이라고 하네요.

대표작이라고 알려진 <매미 돌아오다>, <잃어버린 얼굴>을 아직 읽어보질 않아서 어떤 분위기의 작품인지 몰랐는데, 이 한 권으로 확실히 사쿠라다 도모야 풍이 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곤충 생태에 빠져 어디든지 달려가는 에리사와 센이 특유의 관찰력으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흥미롭네요. 우리 일상과 밀접한 장소들, 이를 테면 밤의 공원이나 한낮의 등산로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질 때는 섬뜩한 공포를 느끼기 마련인데, 사진 배경처럼 어슬렁거리던 에리사와 센이 슬그머니 나타나서 핵심을 짚어낼 때는 감탄이 절로 나오면서 몰입하게 되네요. 잔인한 장면 없이 미스터리 장르를 개척하다니, 마치 에리사와 센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곧 새로운 장르가 된 것 같네요. '서치라이트와 유인등'이라는 제목처럼 빛에 이끌리는 것이 곤충인지 인간인지, 진짜 에리사와 센이 쫓는 것이 곤충인지 사건인지 묘하네요. 일본 미스터리 랭킹 3관왕을 차지한 작가의 필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확인하는 계기였네요. 아참, 곤충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많아졌다는 것도 에리사와 센의 영향이랄까요.

"··· 저에게 '횃대'라는 단어는 새장 안에 가로질러 놓인 한 줄기의 막대를 떠오르게 합니다.

카운터가 새장의 횃대라면, 가게는 곧 새장이겠죠. 손님들은 회사든, 가족이든 어떤 조직이든······ 크게 보면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그곳을 벗어나 마음을 달래러 찾아온 이곳마저 새장 안이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가게 이름을 '나나후시'라 지음으로써 이 횃대를 숲속의 한 그루 나무에 비유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렇군. '나나후시'라는 이름은 이 횃대에 모여든 우리를 말하는 거였어."

"에리사와 씨 덕분에 좋은 이야기를 들었네요. 대벌레에도 흥미가 생겼습니다."

"대벌레 같은 묘한 곤충을 보면 진화에는 역시 무언가 의지가 작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지가 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이 없었다면 그런 모습에 도달할 수 없었겠죠. 저는 언젠가 대벌레가 진짜 나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자, 다시 한번 건배하시죠!"

"건배라니, 무엇을 위해서?"

"물론 우리 '인간 대벌레과科'를 위해서죠." (124-12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리스, 이건 사랑 이야기야 I LOVE 스토리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적에 막연했던 죽음이 현실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무서웠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가 생겼던 거죠. 그러다가 차차 깨닫게 되었네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걸 말이죠.

《페리스, 이건 사랑 이야기야》는 케이트 디카밀로의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주인공인 10살 소녀 페리스는 지구상에서 셰리스 할머니를 가장 좋아해요. 할머니는 페리스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 처음으로 페리스를 받아 준 사람이고, "이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 아가야." (11p)라는 다정한 말을 건넸다고 해요. 페리스는 맹세코 그때 일을 기억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만큼 할머니의 애정이 크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페리스의 엄마는 당사자인 자신도 가물가물한 기억을 갓난 아기가 기억할 리가 없다고 얘기하죠. 음, 대부분의 어른들은 비슷한 반응일 텐데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아요. 냉정한 엄마와 대비되는 다정한 할머니, 당연히 할머니가 더 좋을 수밖에 없죠. 셰리스 할머니는 페리스가 태어난 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건 사랑 이야기야. 그런데 어떻게 보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지. 아니,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야." (11p) 라고 하셨죠.

10살이 된 페리스는 열 살이라는 나이가 왠지 큰 의미가 있다고, 비로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유령을 보았다고 했을 때 단순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고 할머니의 두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네요. 엉뚱하고 제각각처럼 보였던 가족들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뭉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사랑이란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꼈네요. 문득 어린 시절에 할머니와의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 죽음과 이별에 대한 위로를 받았네요. 제목처럼 이건 사랑 이야기였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리스, 이건 사랑 이야기야 I LOVE 스토리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적에 막연했던 죽음이 현실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무서웠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가 생겼던 거죠. 그러다가 차차 깨닫게 되었네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걸 말이죠.

《페리스, 이건 사랑 이야기야》는 케이트 디카밀로의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주인공인 10살 소녀 페리스는 할머니가 유령을 보았다고 했을 때 단순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고 할머니의 두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가족들도 서로 깊이 사랑하며 뭉치는 모습에서 감동을 줬네요. 사랑이란 함께 하는 것, 곁에서 믿어주고 지켜주는 마음이라는 것.

제목처럼 이건 사랑 이야기였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금술
요시무라 마사카즈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동전이 비둘기나 꽃으로 바뀌는 마술을 보면 진짜가 아닌 줄 알면서도 신기해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보이는 현상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마술의 비밀에는 과학의 기술이 숨겨져 있고, 그걸 모를 뿐이죠.

과거의 연금술은 어땠을까요, 막연하게 궁금증을 품고 있었던 연금술에 대한 책이라서 흥미로웠네요.

요시무라 마사카즈의 《연금술》은 중세 유럽의 연금술 역사, 기초 기술, 이론과 실천을 풍부한 일러스트와 함께 다룬 책이에요.

서양 신비 사상사 전문가인 저자는 연금술을 단순한 미신이 아닌 근대 과학과 산업, 문화의 원동력이 된 지적 탐구의 영역으로 조명하며, 변성과 추출 등 연금술의 핵심 기술과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네요. 연금술은 고대부터 근대과학이 확립되기 전까지 흔한 금속을 변환하여 황금을 만들고, 영생불사의 약을 만들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과 기술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어요. 16세기말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 연금술이 크게 유행한 배경에는 황금을 식민지에서 약탈하지 않고도 쉽게 얻고 싶은 심리, 황금에 대한 시대적인 열망이 있었던 것으로 보네요. 그 과정에서 연금술이 사기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물질의 변환을 다루는 실험을 통해 근대 화학의 기초가 되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문학과 예술로도 발전하게 된 거예요. 저자는 연금술을 문명과 문화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흥미로운 지적 모험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단순히 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닌, 인간이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고자 했던 지적 욕망의 기록으로서 연금술의 역사를 바라보게 됐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