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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직업 - 세 편의 에세이와 일곱 편의 단편소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미현 옮김 / 이소노미아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제가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소설 한 편이라도 비평을 쓰다 보면 누구든 반드시 자기 생각이란 게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관계, 도덕성 그리고 성에 대해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지 않고는 비평을 쓸 수 없지요. 집안의 천사에 따르면 이런 사안은 여성이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다룰 수 없는 문제라고 합니다.
모름지기 여성은 매력이 있어야 하고 환심을 사야 하고, 솔직히 말해서 성공만 한다면야 거짓말도 불사해야 한다네요. 사정이 이러하니 나는 그 천사가 드리우는 날개 그림자라든가 원고지에 내리비치는 밝은 후광이라도 느껴질라치면 얼른 잉크병을 집어 들어 천사를 향해 냅다 던졌습니다. 천사는 여간해선 사라지지 않았지요. 그녀는 허상이라는 자신의 속성 덕을 톡톡히 보더군요. 실재하는 존재보다 환영을 죽이기가 몇 곱절 더 어려운 법이니까요. ··· 그 당시에 글을 쓰던 모든 여성 작가에게 닥칠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지요.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것, 그것은 여성 작가가 하는 일의 일부였습니다. ··· 그 천사는 죽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뭐가 남았냐고요? ··· 허위에서 벗어난 그 여자는 오롯이 그녀 자신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인간의 모든 예술과 모든 직업 분야에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한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58-60p)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의 직업>이라는 에세이에서 언급한 내용이네요. '집안의 천사'라는 비유가 흥미로웠네요.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에게 강요된 역할이 여성 자신에게는 내면을 갉아먹는 천사였던 거죠. 이 강연문은 1931년 발표되었고, 이는 <자기만의 방>이 출간된 2년 뒤였다고 하네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여성의 주변에는 맞붙어 싸워야 할 환영과 넘어서야 할 편견들이 넘실대고 있네요. 페미니즘을 단순히 남성 혐오라고 여기는 편협하고 비뚤어진 인식을 가진 이들을 보면 안타깝네요. 차별과 혐오 그 자체를 혐오해야지, 반대로 혐오를 위한 혐오는 정신 건강에 해로워요. 타인에 대한 강한 미움이나 혐오는 자기 내면의 불안과 자기비하가 투사된 결과라고 하잖아요. 시대 상황에 따라 차별과 억압의 대상은 바뀌기 때문에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너와 내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해서도, 차별받아서도 안 된다는 거예요. 버지니아 울프는 억압받는 여성을 대변하며 자유를 외쳤고, 이는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네요. '집안의 천사'는 낡은 관습이 만들어낸 허상이기에, 다소 과격하지만, 그 천사를 죽여야 여성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여성의 직업》은 버지니아 울프가 쓴 세 편의 에세이와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이 담긴 책이네요.
에세이와 단편 소설의 조합은 그동안 본 적 없는 구성이네요. 맨 뒤에 보면 기획과 편집 작업을 함께한 편집자들의 대화가 실려 있는데, 어디에 중점을 뒀는지를 알려주네요. "한 권의 책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그녀의 문학 세계를 모두 담을 수는 없겠지만, 독자들이 이 작가를 알아가는 디딤돌을 정성껏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울프가 강연의 형식으로 전한 이야기, 혹은 개인적인 사유가 담긴 글들은 작가의 스타일과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잖아요? " (171p) 정확하게 기획한 의도대로 느꼈고, 울프가 세상을 향해 더불어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네요.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에세이 <어째서 WHY?>, 제목처럼 끊임없이 질문하고 두들겨야 한다는 것.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고, 정해놓은 것들이 불변의 진리도 아니니까, 뭔가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을 감지했다면 왜 그런지를 묻고, 들여다 봐야 해요. 단편소설 <초상 PORTRAITS> 에서는 화자가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어요. 화자는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네요. "그래, 나는 단순한 사람 축에 들어. 뭐 구닥다리일 수도 있지만 당당하게 인정해. 나 같은 인류를 사랑한다고." (166p) 결국 우리는 제각각 다르지만 똑같은 인류라는 범주에 속해 있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그것 말고 뭐가 더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가르고, 나누고, 분류하는 게 누구를 위한 건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안다면 달라지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