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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울어져 걷지 ㅣ 창비청소년시선 53
김물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아이들을 위한 동시는 들어봤는데,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 시가 있다는 건 몰랐네요.
가만 생각해보니, 엊그제까지 초등학생이다가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는 자신이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고 했어요. 말이 씨가 된다고 몇 달 사이에 쭈욱 늘여놓은 듯, 어느새 어른 못지 않게 커버렸네요. 어느 날 저녁에 까무룩 잠들었다가 흐느끼며 깨더니 악몽을 꿨다고, 너무 무섭다면서 품에 안기더라고요. 커져버린 몸과 아직 덜 자란 마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성장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시집이 나왔네요.
《나는 기울어져 걷지》는 김물 시인의 첫 청소년 시집이라고 하네요.
시집 제목을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네요. 이 시집 속의 화자는 청소년이고, 책장을 넘기면 그 안에 숨겨둔 마음을 볼 수 있네요. 부모와 자녀 사이, 늘 열려 있던 방문이 닫히면서 도저히 그 마음을 알 수 없는 때가 오더라고요. 일부로 감춘 게 아니라 본인도 자기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걸... 어쩌면 이 시들이 그런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청소년들이 즐겨 찾는 코인 노래방,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교실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네요.
<코인 노래방> 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세상'이라는 문장이 와닿았네요.
"오늘은 내가 부족한 날 / 방에 들어간다 / 코인은 넉넉히 / 리모컨에는 아직 알지 못하는 / 노래들이 가득하고 그 속에서 / 내 이야기를 꺼낸다 / 한 키를 낮추고 / 박자는 조금 빠르게 / 이곳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세상 / 무지갯빛이 켜지고 / 바닥에 닿지 않는 춤을 춰 / 우리를 닳게 하는 것들은 / 이 안에 없지 / 점점 / 세계가 사라져 간다 / 친구야, / 우리를 좀 더 충전할까? / 빛을 가득 받고 / 밖을 나설 때 / 콧속에서 허밍이 / 동글, 굴러 나온다" (46-47p)
<싹 난 감자>라는 시는 감자와 싹 그리고 반짝이는 잎까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네요.
"보지 못한 사이 / 베란다 구석에서 싹 난 감자 / 톡톡 떼어 낸 싹 아래서 /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 싹 / 그런 앤 이미 글렀다는 / 말 /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 말 / 독이 든 말 아래서 / 자꾸 올라오는 / 싹 / 싹 난 감자에 / 물을 부어 주면 여리고 / 반짝이는 잎이 돋는다 / 보지 못한 사이" (70-71p)
땅에서 캐어 밖으로 나온 감자는 여전히 살아있는 생명체라서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다시 자라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싹을 틔운다고 해요. 감자 싹에 독이 있는 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적인 방어 기제인 것이고, 싹 난 감자는 다음해에 씨감자로 심을 수 있으니, 감자는 어느 곳에서건 힘껏 살아낼 힘을 가지고 있네요. 뿔처럼 돋아난 감자 싹이 왠지 귀엽고, 기특해보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