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드라이버의 자동차 아는 여자
정은란 지음 / 지식너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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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운전면허를 땄더라? 햇수를 헤아리다가 깜짝 놀랐다. 벌써 20년이 다 됐네.

학교공부도 10년이 지나면 가물가물한데 자동차라고 해서 다를 게 있겠나. 운전이야 할수록 실력이 늘겠지만 운전 경력과 자동차 관련지식은 완전 별개 문제다. 다행히 자동차에 특별한 고장이 없고, 무사고 운전자라면 굳이 자동차에 대해 더 배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건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여기는 대다수 운전자의 생각이 아닐까.

사람들 중에는 여성 운전자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여자가 자동차에 대해 뭘 알아?"

"여자가 집에서 빨래나 하지, 뭐하러 차 끌고 나와!"

오죽하면 '김여사'라는 유행어가 생겨났을까. 그만큼 여성운전자를 비하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런데 실제 도로에서 보면 남성운전자 중에도 무개념운전으로 주변 사람의 혈압을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동 켜고 악셀만 밟는다고 운전이 아니라 기본적인 운전 매너를 지킬 줄 아는 베스트 드라이버는 남녀를 구분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운전을 하다보면 부득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아무리 여성운전자를 무시하는 상대를 만나도 제대로 된 지식만 있다면 절대로 기죽을 필요가 없다. 여성운전자가 아니더라도 모르면 '도로 위의 약자'가 되는 것이다.

<자동차 아는 여자>는 여성운전자뿐 아니라 초보 운전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 상식의 필요성을 느껴서 스스로 자동차 공부를 했다고 한다. 누군가 이렇다더라는 식의 동냥식 정보가 아니라 제대로 정리된 자동차 정보라는 점에서 운전자 필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운전면허만 따고 나면 더이상 공부하기 싫다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모르면 어렵게 느끼듯이 자동차도 관심이 없으면 어렵다는 편견때문에 아예 손을 놔 버리는 경우가 있다. 한꺼번에 전부 배우겠다고 생각하면 어렵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간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 될 것 같다. 책 자체도 가볍고 부담없는 사이즈라서 좋은 것 같다.

자동차 내부와 외부구조뿐 아니라 정비상식까지 그동안 몰랐던 내용들이 많다. 모르는 상태에서 정비를 맡기는 것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알고 맡기는 것이 훨씬 좋다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어렵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책 한 권을 읽는 노력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운전 이외에도 알아야 할 자동차 상식이 이렇게 많았구나 새삼 느낀 것 같다. 또 생각만큼 어려운 게 아니란 것도 알게 됐다. 앞으로 자동차 구입을 하게 되더라도 구체적으로 내게 맞는 차를 구입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긴 것 같다. 솔직히 한 권의 책으로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자처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는 만큼 더 당당하게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만족스럽다.

무조건 여성운전자라고 무시하는 인간말종은 제외하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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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2013 - 2 - 우리가 가장 아프게 빛나던 시절 학교 2013 2
안재경 지음, 이현주.고정원 극본 / 북하우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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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2013>에는 결말이 없다. 굳이 결말을 원한다면 2학년 2반 아이들의 꿈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을 맺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저 다양한 꿈들이 "진행 중"이다.

햇병아리 교사 인재가 담임을 맡는다고 뭐가 대단히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인재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처럼 될 수는 없으니까. 현실적으로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스승의 모습을 찾기란 너무나 힘드니까. 그나마 인재의 노력은 가상했다. 부모도 힘들고 지치면 자신의 아이들을 포기하는 세상인데 자신이 담임을 맡았다고 해서 그 손을 놓지 않는다는 건 대단한 어려운 일이다. 요즘은 교권 추락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선생 노릇하기 힘든 세상이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반항하고 선생을 우습게 여긴다. 어쩌다가 학교와 선생의 위치가 이렇게 추락한 것인지 개탄스러울 때가 있다.

학원의 유명강사였던 세찬이 인재로 인해 변하는 모습은 다소 드라마적인 면이 강하다. 원래 드라마에서 원하는 해피엔딩을 위해 필수요소처럼 느껴진다. 냉철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더 현실적이니까. 세찬이 교사를 그만두고 강사가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고, 그것이 세찬의 변화를 납득하게 만든다.

과거의 학교에도 분명 약간의 학교폭력이나 왕따 문제는 있었다.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학생들도 있었다. 현재의 학교가 더 절망적이라거나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이 발전하는 시대에 왜 학교만은 제자리 걸음, 아니 퇴행하느냐 것이다. 근래 더욱 심각한 것은 자살이 유행처럼 번진다는 것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쉽게 삶을 포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없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민기엄마가 보여준 지독한 사랑을 누가 탓할 것인가. 성적을 위해 불법적인 일도 서슴치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당당한 부모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 자신이 대단한 양심을 지녀서가 아니다.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단 한가지라고 주장하는 이 사회가 싫을 뿐이다.

올바르게 사는 법을 알려주기 보다는 남들보다 앞서는 법을 알려주는 부모.

부모의 말만 잘 들으면 행복한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모.

그 부모에게 현실은 어떤 모습이기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가.

청소년을 위한 <학교2013>이 정작 그들에게는 위로와 도움이 되었을까.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라는 말 한마디 정도의 위로, '너만의 꿈을 찾아봐!'라는 정도의 조언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청소년 드라마는 청소년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가 꼭 봐야 할 내용인지도 모른다. '내 아이는 내가 잘 안다.'고 자만할 것이 아니라, '이 길만이 최고다.'라고 단정지을 게 아니라 내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바라봐야 할 것이다.

네 마음은 어떠니?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이니?

부모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팍팍한 세상에 내 아이를 위해서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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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2013 - 1 - 우리가 가장 아프게 빛나던 시절 학교 2013 1
안재경 지음, 이현주.고정원 극본 / 북하우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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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학교 2013>가 방영될 때는 한 번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책으로 만나려고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청소년드라마, 아이들이 주인공인데 어쩐지 읽는 내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책 표지에 보이는 두 남학생은 고남순과 박흥수다.

기간제 교사로 2학년 2반 담임을 맡게 된 정인재는 의욕적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지만 돌아오는 건 아이들의 콧방귀다.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고, 시를 읽게 하는 인재의 문학수업은 시험에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 반면 2반 공동담임을 맡은 강세찬은 유명 인기강사답게 시험에 필요한 핵심만 알려주고, 절대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승리고 2학년 2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볍고 즐거운 내용을 기대했다면 대단히 실망할 만한 이야기다. 정말 현실에 존재할만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벌어질 만한 일들을 보여주니까. 학교폭력, 왕따, 성적지상주의, 꿈이 없는 아이들. 솔직히 현실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나는 모른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내 아이의 모습이라고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라고 강력하게 말할 수도 없다. 정말 모르기 때문에.

드라마로 봤다면 멋진 주인공들 때문에 <학교2013>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잠시 잊었을 것 같다. 오히려 책으로 만나니까 그 아이들의 고민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서울대를 가기 위해 공부하는 하경이와 엄마를 위해 공부하는 민기, 공부에는 전혀 관심없지만 그냥 학교를 다니는 남순이와 친구들을 괴롭히는 정호와 이경, 지훈까지 각자의 짐을 떠안고 있다.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공부 잘하는 아이와 노는 아이로 구분지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쉽게 아이들을 포기하고 아이들 또한 포기를 먼저 배운다. '난 안 돼.' 혹은 '난 할 수 없어.'라고.

오직 인재만이 그냥 선생이 아닌 스승이 되려고 애쓴다. '아직은 아이들의 손을 놓을 때가 아니다.'라고.

버거운 현실에서 도망치고 벗어나려는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는 인재의 노력이 냉정한 세찬의 마음을 서서히 움직인다. 진심은 통하는 것일까.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아이들에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학교에서 남순은 전혀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반 회장이 되고 흥수가 전학을 오면서 숨겨왔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날라리 불량학생 정호와의 피할 수 없는 싸움 속에서 정호의 아픔을 보게 된다. 구제불능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누군가가 손을 내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누가 손을 내밀 것인가. 요즘은 부모조차 자신의 아이들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학교가 그 아이들을 품어줄 수 있을까. 분명 어딘가에는 정인재와 같은 선생님이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학교라는 공간이 과연 아이들에게 진정한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인재의 역할은 미약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강력하게 이끌어 줄 만한 힘이 없는 기간제 교사다. 그런데도 그녀가 보여준 사랑과 관심은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것이다. 모두가 구제불능, 수포자라고 외면하는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그 손을 놓지 않았으니까. 그 부분이 <학교2013>에서 볼 수 있는 가느다란 희망의 빛이다.

그 외에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겪고 있는 실상을 보여줄 뿐이다. 학부모의 뜻에 따라 기계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이나 말썽만 부리는 아이들이나 답답한 심정은 똑같다. 불쌍하다. 한창 신나게 꿈을 꾸고 도전해야 할 청소년기가 이토록 암담하다는 것이.

1권을 읽고나서 부록으로 함께 온 포토북을 펼쳐보니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든다. 하경이와 민기, 남순이와 흥수, 정호와 이경, 지훈, 그리고 인재와 세찬.

<학교2013>은 드라마나 소설로 보면 안 될 것 같다. 부모로서 현실을 직시해야 아이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내 아이만은 아닐거야.'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이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내 아이들을 지켜주고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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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사계절 : 가을 소나타 살인의 사계절 시리즈 Four Seasons Murder 3
몬스 칼렌토프트 지음, 강명순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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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다.

한때는 공포물을 즐기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소심해진 것 같다. 어쩌면 가상의 공포를 즐기기엔 현실의 공포를 더 알게 된 탓이 아닐까.

그래도 무더위를 식혀 보겠다는 생각에, <살인의 사계절>시리즈 중 '가을 소나타'를 읽었다.

<살인의 사계절>은 굉장히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살해된 사람, 즉 죽은 자가 말을 건넨다. 사건의 담당을 맡은 말린 포르스 형사를 향해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 피해자의 독백을 들을 수 있는 건 독자의 몫이다. 아무도 죽은 자의 말을 들을 수 없지만 사건 현장은 죽음을 이야기한다. 형사는 진실을 밝혀내어 죽은 자의 말을 전하는 자다.

주인공 말린은 남편 얀네와 이혼 후 딸 토베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여름이 끝날 무렵에 사건이 터졌다. 말린에게 쫓기던 여성 살인마가 토베를 납치한 것이다. 다행히 토베의 목숨을 구하고 난 뒤, 말린과 얀네는 토베를 위해 이혼 10년만에 재결합을 했다.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린은 엄마로서 딸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 자꾸 술에 의지하면서 툭하면 얀네와 싸웠다.

말린은 형사이기 전에 한 소녀의 엄마이며 고통을 겪는 인간이다. 그녀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유명한 홈즈처럼 명쾌하지 않다. 아주 차근차근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면서 형사들의 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듯한 그들의 모습은 형사로서의 명석한 판단력이나 추리력을 흐릿하게 만드는 듯하다. 린셰핑 경찰서에는 말린 포르스 형사뿐 아니라 스벤 셰만 반장, 요한 야콥손 형사, 발데마르 에켄베리 형사, 카림 아크바르 서장, 마르틴손 형사가 일하고 있다. <살인의 사계절>시리즈를 읽다보면 주인공 말린 이외에도 다른 형사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건의 용의자가 아닌 사건을 담당한 형사들의 사적인 부분까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사건에 관한 집중력을 흐트려 놓는 느낌이다. 왠지 범죄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로서 가진 뛰어나고 냉철한 수사 능력보다는 인간적 고뇌로 방황하는 면을 부각시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함을 드러내려는 것 같다. 물론 그런 부분들이 이 소설을 더욱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요소일 수도 있다.

처음에 이 시리즈를 읽을 때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제까지 봤던 범죄소설에서는 형사 혹은 탐정의 개인적인 부분이 나올 여지가 없었다. 중요한건 누가 범인이고,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느냐를 알아내는 것이니까. 그런데 <살인의 사계절>에서는 모든 범죄가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든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각하게 만든다. 유능한 형사도 자신의 집에서는 문제엄마 혹은 문제아빠일 수 있고, 부부 간의 심각한 문제로 괴로워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스웨덴 사회도 2008년부터 사회적 격차가 더 커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팍팍하고 고된 삶을 살게 된 모양이다. 불황의 시기에 사회는 더욱 거짓으로 물들고 범죄 또한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결국 모든 사건은 인간의 탐욕과 잔인한 본성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이번 사건은 악셀 포겔셰 백작의 소유였던 스코그소 성을 구입한 예리 페테르손이 살해되어 해자에 빠진 채 발견되었다.

'지독하고 집요한 남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계. 시체를 밟고 넘어가는 남자.'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그 남자는 바로 살해된 예리 페테르손이다.

죽음은 생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앗아간다. 그런데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아둥바둥 더 가지기 위해 잔인해진다. 누가 알겠는가? 죽음의 의미를.

<살인의 사계절>은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 악몽이 아닌 현실로 느껴지는 공포를 보여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살인 사건으로 시뻘겋게 물들고 만다. 술에 취해 고통을 견디는 말린의 모습처럼 인간의 잔혹함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죽은 자의 독백을 통해 더 늦기 전에 깨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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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소피 옥사넨 지음, 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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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세계지도를 펼쳐보고 어디쯤인가 찾아보았다.

1917년 에스토니아 공화국으로 독립했으나 핀란드와 영국의 지원을 받아 소련과 휴전조약을 맺었다.

1940년 공산당이 승리하여 구소련에 가입했다가 잠시 독일이 점령하고 다시 독일의 패망으로 구소련에 복귀했다.

1991년 구소련 보수파의 쿠테타 발생으로 완전독립을 선언했다.

갑자기 무슨 세계사 공부인가 싶을 것이다.

<추방>이라는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고,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그런데 궁금해졌다. 왜?

어쩌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에스토니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세 명의 여인이 나온다. 잉겔과 알리데 그리고 자라.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여자들의 삶은 불안한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자가 자매라는 사실은 이미 불행을 예고하는 듯하다.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가 보일 리 없다. 사랑때문에 가슴 아픈 여자는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한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비극이 만들어낸 삶이다.

남자들에게 성적 노리개가 된 여자는 자신이 꿈꾸는 삶을 위해 집을 나섰지만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를 잘 모르지만 주변국가의 영향을 받으며 버텨온 역사가 어쩐지 세 여인의 삶과 겹쳐지는 것 같다. 과거의 단편적인 사건들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을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비극은 존재하는 것 같다.

왜 이 소설이 핀란드 베스트셀러 1위이고, 핀란디아 문학상 수상을 했는지는 알 것 같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소설의 진정한 깊이를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에스토니아에 대해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강렬한 로맨스와 오싹한 서스펜스"는 기대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느낌의 소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강렬하거나 자극적인 느낌보다는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운명의 굴레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함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소설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는 순간은 더 극적인 것 같다.

잉겔과 린다가 러시아로 떠난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추방...... 잉겔은 몰랐던 것 같다. 어떻게 자신이 추방되었는지를.

러시아로 추방된 잉겔과 린다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잉겔의 손녀딸 자라는 어떻게 밑바닥으로 전락하게 된 것일까?

알리데는 철저하게 현실주의자로 살면서 행복했을까?

잉겔과 알리데가 서로 헤어진 이후의 시간이 싹뚝 잘려나간채 다음 세대의 자라가 등장한 것은 굉장히 뜻밖이다. 운명적인 연결고리는 좋지만 서로에게 비어있는 시간들이 추방이라는 단어를 더욱 또렷하게 만드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특히 자라는 너무나 처참한 상황을 자신만의 의지로 버텨내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 자라의 불행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마치 알리데의 숨기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처럼 그냥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자라에게는 묻을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벗어나야 할 현실이기에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라는 자신의 모든 불행을 나타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자라는 다른 곳에 있다고. 그리고 할머니가 남겨 준 사진 한 장만으로 알리데를 찾아 나선다.

잉겔과 알리데의 이별 이후의 삶은 추방과 단절이지만 잉게의 손녀딸 자라가 알리데를 만나는 순간 단절되었던 그들의 운명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사회는 그들을 다른 식으로 분류하고 관리한다. 불순한 민족주의 범죄자들.

인간은 사회가 만든 틀에 갇혀 본연의 인간다움을 드러낼 자유조차 없다.

에스토니아에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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