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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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는 이경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자 한국 SF 장르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무려 7년 만에 탈고한 장편소설.

시간의 양이 작품의 질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은 놀랍네요.

'소원'이라는 단어 속에 인간의 욕망과 공포 그리고 생존본능을 담아냈어요.

무엇보다도 현실의 비단뱀과 가상의 동물 '롱롱'을 통해 세상의 '허물'을 드러내고 있어요.

원래 제목은 '롱롱'이었다는데, '소원을 말해줘'로 바꾼 건 신의 한수였네요.

뱀, 롱롱, 인간 ... 허물을 벗겠다는 욕망 그리고 소원.


끔찍한 재난에 휩싸인 D구역.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몸을 뒤덮는 피부병이 이 도시의 풍토병이 되었어요.

전문가들은 각질세포 형성에 관여하는 구조단백질이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티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요.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유독 티셀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고 증세가 심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D구역 사람들은 피부가 깨끗해도, 다른 구역 사람들에겐 기피 대상이에요. 그러다보니 D구역은 다른 구역과 자연히 격리되었어요. 아직 치료제는 없고, 'T-프로틴'이 피부 각화증을 완화시키는 신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어서 하루 두 번 복용해야 돼요.

'그녀'는 B구역 사설동물원에서 일하던 파충류 사육사예요. 석 달 전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산사태가 동물원을 덮쳤고 모든 것이 무너졌어요. 파충류관도 무너져 다른 뱀들과 함께 비단뱀도 사라졌어요. 파충류관에서 가장 큰 동물, 30미터에 달하는 비단뱀은 동물원에서 인기 동물이었어요. 방역대가 동원돼 사라진 동물들을 쫓았고 발견 즉시 사살했어요. 

동물원은 폐쇄되고 그녀는 직장을 잃었어요. 통조림공장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지만 사육사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입이라서 하루 두 번 먹던 프로틴을 한 번으로 줄였어요.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먹을 때도 있었어요. 퇴근 후에는 비단뱀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는 사이 허물이 자라기 시작했고, 허물이 드러나자 통조림공장에서 해고됐어요. 통장 잔고는 바닥나고, 월세가 밀려 살던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녀는 공원에서 먹고 자며 뱀을 찾아다녔어요. 그녀가 비단뱀을 그토록 찾는 이유는 사육사로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사람들은 뱀을 좋아하고, 뱀에게는 사육사가 필요하니까.


"예로부터,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허물이 벗겨진다고 했거든."  (61p)

"D구역에 가면 뱀을 모시는 무당들 천지야. 세상의 허물을 벗기려고 언젠가는 뱀 신이 나올 거라 믿는 거지.

하지만 아직까지 롱롱을 봤다거나 굴에서 꺼냈다는 작자는 없어. 롱롱의 전설을 믿는 것과,

롱롱을 내 손으로 꺼내는 것은 숫제 다른 말인 거다, 이 말씀이야. 내 말 알아들어?"  (66p)

"시민들이 롱롱의 전설만큼 믿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프로틴이죠.

프로틴이 허물을 막아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롱롱과 프로틴, 이 둘을 결합시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156p)

 

'소원'이라고 하면 알라딘의 요술 램프가 떠올라요. 눈깜짝할 사이에 화려한 궁전을 세우거나 옮기는 것과 같은 마법들.

스스로 이뤄낼 수 없는 욕망들은 자꾸만 커져가죠. 지니보다 더 막강한 힘을 원했던 자파는 결국 램프 속에 영원히 갇혀버렸죠.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 스스로 이뤄내야 해요. '그녀'는 간절히 믿었고 행동했어요. 익명의 '그녀'는 진정한 '소원'을 우리에게 보여줬어요. 

세상의 허물은 반드시 벗겨져야 해요. 자연의 순리대로. 그래야 우리도 허물을 벗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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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미술 산책 - 그 그림을 따라
길정현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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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라고 하면 알퐁소 도테의 <별>이 생각나요.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아름다운 풍경들.

가본 적은 없어요. 실제 어디쯤인지도 몰랐어요.

<프로방스 미술 산책>이라는 책이 끌렸던 것도 '프로방스' 때문이었어요. 호기심을 자아내는 곳이라서.

저자 스스로는 뻔한 미술 기행이라고 겸손을 떨었지만 미술을 주제로 한 멋진 감성 여행이었어요.

남들이 정해놓은 여행 코스가 아니라 나만의 감성 코스라서 더 특별했던 것 같아요.

유명한 미술관들은 살짝 미뤄두고, 아담한 동네 미술관 투어를 선택했어요. 관광객 입장이 아닌 현지인 감성으로 그 지역을 느껴볼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여행이죠.

흔히 '남프랑스'와 '프로방스'를 동의어로 사용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다르다고 해요.

프로방스는 로마 시절 이후부터 사용됐던 옛 지명으로,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Provence-Alpes-Cotte d'Azur, 줄여서 PACA)'가 지금의 지명이래요.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쪽에서도 특히 동부 지역만을 포함한 지역이래요.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여정을 보니, 저자의 말마따나 프로방스 여행이라고 해도 프로방스 안에서 어떤 곳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색다른 여행이 될 것 같아요. 

책 속 사진을 보고 있으면 모든 장소들이 다 예술이라서, 물론 멋진 곳만 찍었겠지만, 예술적 감성이 저절로 솟아나는 풍경들이에요.

1884년 모네가 화폭에 담은 모나코 해안 절벽 길의 모습은 현재 매끈한 해안 도로가 깔려 있지만 과거 화가 모네의 심정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의 묘미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자동차로 이동 중에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이 작동되지 않아 혼란에 빠졌다고 해요. 겨우 표지판을 보면서 일방통행 길과 좁은 골목, 언덕을 지나 산자락에 다다른 곳은 카뉴쉬르메르의 오트 드 카뉴(Haut de Cagnes)였대요. 관광 안내소에서 마을 지도를 받고 나서야 지도 어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작고 낯선 동네를 걸어봤다고 해요. 마을 곳곳에 화가들이 마을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어요. 세련된 도시와는 달리 소담스럽고 정갈한 동네라고.

유독 느릿느릿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 많아서 더욱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는데, 동네 사람들도 낯선 이들에게 따뜻했다고 해요. 외지 사람이 차를 세우면 벌금을 물게 되니 자기 차를 빼주겠다며 친절을 베푼 곳도,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눈치보지 않고 오래도록 멍 때릴 수 있었던 곳도, 화장실을 공짜로 이용하게 해준 곳도 모든 여정을 통틀어 카뉴쉬르메르의 오트 드 카뉴가 유일했다고 해요. 또한 이곳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말년에 약 12년 동안 거주했던 집이 있어요. 이 집에서 8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르누아르 미술관이 된 그 집에는 가족 사진과 손때 묻은 이젤, 물감 묻은 파레트, 그의 휠체어 등이 보관되어 있어요. 르누아르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유의 따뜻함 때문이에요. 생전 르누아르는 "세상은 이미 불쾌한 것들로 넘쳐나지 않는가. 예술까지 일부러 불쾌한 것들을 그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83p)라고 말했다는데, 역시나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행복한 기운을 느낄 수 있어요.

왜 저자가 작은 마을의 미술관 여행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아요. 세월이 흘러도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들은 옛 정취가 남아 있어요. 덕분에 카뉴쉬르메르에서는 르누아르를 만날 수 있고, 엑상 프로방스에서는 세잔을 만날 수 있어요. 한 명의 예술가가 어떻게 작품을 완성해냈는지 그 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어요. 위대한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은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지만 예술가의 삶과 작품의 탄생 과정은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에서 느낄 수 있어요. 이러한 지역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서 렌트카는 필수라고 하네요.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아름다워서 직접 운전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요. 미술에 관심이 있거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프로방스는 꼭 가봐야 할 여행지네요. 제 마음 속에도 '프로방스'가 들어왔네요. 느긋하게 그 마을을 거닐고 싶어요.


"누구나 삶에서 한 번은 내 삶을 뒤흔들 만한 대단한 인연을 만난다고 하는데

흘려 보낼 인연인지 붙들어야 할 인연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238p)


"마티스를 좋아하고 르누아르를 소중히 여기며 샤갈을 아끼는 이, 

세잔을 존경하고 고흐를 안쓰럽게 여기며

수잔과 로트렉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에게

프랑스는

무궁무진한 보물들을 한껏 품고 있는 보물섬이나 다름없다."  (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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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보이 - 시크한 고양이 헨리의 유쾌발랄툰
벤지 네이트 지음, 조윤진 옮김 / 문학테라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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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보이>는 고양이 집사들이 한번쯤 꿈꿔봤을 기분 좋은 상상을 만화로 그려낸 책이에요.

저자 벤지 네이트는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현재 파트너와 세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살고 있다네요.

주인공 올리브는 어느 날 밤,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어요. 자신의 고양이 헨리가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죠.

소원을 빌 땐 좀더 신중해야 했는데... 다음날 아침, 헨리는 사람만큼 커졌고, "굿모닝~ 안녕, 올리브!"라고 말했어요.

앗, 이럴 수가!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한다는 건 진짜 인간의 외모로 바뀌는 거 아닌가?  

검은 고양이 탈을 뒤집어쓴 사람 같아요. ㅋㅋㅋ  홀딱 벗고 있다고 해도 전혀 야하지 않아요. 털복숭이 헨리~ 

저자의 인터뷰를 보니, '만약 고양이 몸에 갇힌 사람이라면 좀 무서울까?'라는 엉뚱한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네요. 

결과물은 고양이 헨리가 사람처럼 걸어다니고 말하는 캣보이가 된 거죠.

세상에나, 올리브가 헨리에게 자기 청치마를 줬어요. 혼자 사는 올리브에게 남자 옷이 있을 리 만무.

놀라운 건 헨리가 치마 입은 모습을 본 올리브의 반응이에요. "완전 러블리해!"라며 감탄하네요.

작고 귀여웠던 고양이 헨리가 한 덩치하는 사람 고양이로 변했는데도 러블리하다니, 올리브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꼈나봐요.

드디어 거침없는 성격의 캣보이 헨리와의 유쾌한 일상이 펼쳐져요.

매달 월세 걱정을 해야 하는 올리브는 아직 취직을 못한 상태라서 알바를 구하고 있어요.

마침 딕시의 파티에서 만났던 쟝이 자신의 강아지 제니를 돌봐줄 펫시터를 구한다고 해서, 헨리에게 그 일을 맡겼어요.

으르르르~ 크아아아앙 ~ 온몸으로 거부하는 강아지 제니.

헨리 역시 강아지 제니가 싫기는 매한가지인 듯. 

싫어도 먹고 살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일', 이제 헨리도 인간이 되었으니 밥값은 해야겠지요.

이런, 쟝이 제니뿐 아니라 펫시터가 필요한 친구들을 더 맡아달라고 부탁하네요. 피자 한 판에 홀딱 넘어간 헨리는 바로 OK!

네 마리의 강아지를 돌보게 된 헨리는 완전 지쳐버렸어요. 

그러나 파티와 친구 사귀기 만큼은 올리브보다 한 수 위인 헨리~ 무엇보다도 패션은 또 얼마나 신경쓰는지 ㅋㅋㅋ 샤워도 안 하면서...

러블리했던 헨리, 알고보니 나름 성깔이 있었어요. 속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게 되니 성격도 확실히 보이네요.

올리브에게 불만을 품게 된 헨리는 올리브가 일하러 간 사이에 가출을 시도해요. 나만의 길을 개척하겠노라~

고양이 헨리였다면 집 나간 김에 놀러 갔을텐데, 인간이 되더니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터득하게 됐어요.

집 나가면 개고생, 아니 고양이고생~

조용히 아무 일 없었던 것마냥 집으로 돌아온 헨리는 문 앞에서 올리브를 만나고, 아주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 이야기로 넘어가네요. 능글능글.

와우, 완전 인간 다 됐어요. 눈치와 적응력 최고!

사실 고양이 집사들에게 고양이의 존재는 인간 못지 않은 베스트프렌드잖아요. 말만 못할 뿐이지, 어쩌면 말을 못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시크한 고양이는 사랑할 수 있지만 시크한 인간은 정 떨어지는 법. 

어찌됐든 고양이 헨리는 사람이 되니 더 매력적이네요. 특히 치마 입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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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2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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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같은 인생이여!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는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예요.

이번 생에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를 주인으로 둔 수호령이 목격했던 모든 것을 들려주고 있어요.

수호령들은 주인을 위해 간청하려고 천상의 법정에 서 있어요.

사람의 영혼이 오니에우와가 되어 세상에 돌아가는 것, 즉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영혼이 조상들의 땅에 받아들여질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수호령의 목소리가 이토록 마음 깊숙히 들어오게 될 줄은... 전혀 낯설지 않았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곁에 수호령 같은 존재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수호령은 주인들의 삶에서 실패를 막을 수는 없지만 의지를 심어줄 수는 있어요. 언젠가 그와 비슷한 마음의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의 삶은 정말 너무 가혹해요. 어찌하여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힘 없고 작은 것들의 슬픈 노래예요.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것들보다 잃은 것들로 인해 더 괴로운 것 같아요.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들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졌다가 잃은 것들은 그 빈자리가 너무나 커요. 수호령은 치논소의 육신에 머물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미래를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처음부터 직감했던 건지도 몰라요. 치논소가 새들을 사랑하게 만들었고, 그 새들의 울부짖음을 통해 슬픈 운명의 노래를 들려줬어요.

은달리는 한눈에 치논소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어요. 운명의 남자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치논소 역시 은달리를 위해서, 오직 사랑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걸었어요. 엄청난 도박이었어요. 단숨에 모든 걸 잃을 수 있으니까.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건지, 은달리는 알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치논소를 막을 수 없었어요. 사랑의 힘으로 기다린다고 했어요. 

과연 치논소는 잃어버린 것들을 도로 찾을 수 있을까요. 

읽는 내내 수호령의 심정으로 바라봤어요.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를 위하여, 만물의 창조자이신 추쿠시여, 부디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소서.


"마음이 너무 아파, 논소. 불쌍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우린 이 새들을 가두고, 원할 때면 죽여. 이 새들에게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목소리에 깃든 분노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냈습니다.

"얘들은 같은 소리를 내고 있어, 논소. 들어봐, 들어봐. 

매가 공격했을 때 냈던 것과 같은 소리야."  

...

"강자들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 논소?"

그녀가 떠날 것처럼 물러서며 말하더니 다시 그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네가 그 사람들처럼 부자가 아니라서야. 사실 아니니?"

"맞아, 마미." 그는 부끄러운 것처럼 말했습니다.

... 다시 그를 돌아보는 그녀의 눈꺼풀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 세상에! 논소, 정말 그래! 이건 잘 조율된 노래 같아, 장례식에서 부르는 그런 노래 말이야. 합창단처럼.

이건 슬픔의 노래야. 그냥 들어봐, 논소." 

그녀는 잠시 조용히 서 있다가, 약간 물러나 손가락을 꺾었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맞아. 이건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야."  (44-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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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1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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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의 '치'란 영적 세계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지상의 인간을 보완하는 영적인 존재로 말이다.

그 무엇도 혼자 존재할 수는 없기에,

곁에는 항상 다른 존재가 있어야 한다.

   - 치누아 아체베, <이보 우주론에서의 치>  (9p)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는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치고지에 오비오마의 소설이에요.

이보는 나이지리아의 동부 지역 부족을 뜻해요. 

첫 장을 펼치면 <도표로 보는 이보 우주론>과 <이보 우주론에 따른 인간의 구성>이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이보 우주론'부터 알아야 해요. 우주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해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식물 등의 영역인 '우와'와 영혼의 영역인 '벤무오'가 있어요.

수호령들은 두 개의 세계 모두 존재해요.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신과 함께>를 떠올려 보면, 저승과 이승의 개념이라 할 수 있어요. 



첫 번째 주문, 

오바시디넬루시여 -

저는 피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영원한 밝은 빛의 땅 엘루이궤의 웅장한 베추쿠 법정에 나아와 당신을 뵈옵니다 -

저 역시 다른 수호령들처럼 여러 차례 환생을 통해 우와로 가 새로 만들어진 육신에 깃들었나이다 -

...

제가 온 까닭은 그분이, 이번 생에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제 주인을 가리키며 

불리한 증언을 할까 두렵기 때문이옵니다 -

제가 목격한 모든 것을 증언하고, 제가 두려워하는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한들

주인은 실수로, 모르고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음을 

당신과 위대한 여신께 알려 두 분을 설득하고자 서둘러 왔나이다 - 

이 일은 거의 모두 제가 전하는 것이오나,

그와 제가 하나이기에 이 이야기는 진실하옵니다.

그의 목소리가 제 목소리이옵니다.

... 저는 왕의 혀처럼 대담하게 주인을 위해 빌고자 당신 앞에 섰나이다.

당신께서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실 것을 믿나이다 -      (15-17p)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요. 

네, 이 소설은 전지적 영혼 시점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원래 수호령들은 주인의 모든 일에 간여할 수 없어요.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인간답게 존재해야 하므로.

그런데 치논소의 수호령은 딱 한 가지를 그의 정신에 집어넣었어요.

그건 바로 '새들을 사랑하며 날짐승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이 변화된 사람'이라는 생각이에요.

수호령은 그 순간, 그가 한때 소유했던 새끼 거위의 흥분된 모습을 그의 정신에 비추었어요.

별다른 효과는 없었어요. 다리 위의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주인은 불과 며칠 전 익사한 여자를 봤는데, 여기 눈앞에 강으로 몸을 던지려는 다른 여자와 마주친 거예요.

운명의 장난처럼. 

주인은 강력하게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강에 빠져 죽으면 안 돼요. 절대로요."

그는 닭들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누가 저 안에 떨어지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죽어서 아무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된다고요."  

... "이런 닭들도 똑같아요." 그는 다시 말한 뒤 닭들을 다리 너머 어둠 속으로 내던졌습니다.      (26p)

닭들은 살려고 처절하게 버둥거렸지만 곧이어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깃털 한 장이 그의 손에 내려앉았으나 그는 순간 고통이 느껴질 만큼 서둘러 격하게 그것을 쳐냈어요.

주인은 자신의 소중한 닭들을 희생시키면서 한 여자의 목숨을 구했어요.

그녀의 이름은 은달리.

외로웠던 그의 인생에 불쑥 찾아온 사랑.


치논소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여동생마저 결혼해서 멀리 떠난 후 계속 큰 집에서 홀로 양계장을 하며 지내왔어요.

다리 위의 여자, 은달리가 그를 찾아왔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어요. 논소는 은달리를 '마미'라고 불렀어요. 은달리는 논소가 새들을 정말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요. 논소는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러나 은달리는 그녀의 가족에 대해 수수께끼 같은 말만 했어요. 

- "좋지 않을 테니까" "나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 "만나게 될 거야. 그건 약속할게" "그다음에, 언제쯤 널 집으로 데려갈 수 있을지 보자"-  (126p)

그가 이 말들을 소화하고 있을 때 뒤뜰에서 울부짖는 암탉 소리가 들렸어요. 그는 새총을 집어들고 달려나갔지만 이미 늦었어요. 매는 병아리 한 마리를 낚아채 날아가버렸어요. 은달리는 매가 새끼를 채 간 다음에 닭들이 낸 소리에 대해 물었어요. 어쩐지 닭들이 전부 같은 걸 말하는 것 같았다고, 같은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고.


"맞아, 마미. 그들이 우는 거야." 주인이 말했습니다. 

"정말?"

"그래, 마미."

"아, 세상에, 논소! 놀랄 것도 없지! 그럼 그 이유는 작은 닭이......"

"맞아."

"그 닭이 매한테 채여 가서 그런 거야."

"그래, 마미."

"너무 슬픈 일이야, 논소."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게 우는 소리라는 걸 넌 어떻게 알았어?"

"아버지는 늘 저게 사라진 닭을 기리는 장례식 노래 같은 거라고 하셨어.

에구 우무 - 오베레 - 이헤 라고 부르셨지. 무슨 뜻인지 알아?

영어로 우무 - 오베레 - 이헤 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작은 것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냐, 소수자, 마이너리티."

"그래, 그래, 맞아.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옮겨야 한다고 했어.

영어로 그렇게 말하셨어, 마이너리티라고. 

아버지는 항상 그걸 마이너리티 '오카스토라'라고 하셨어."

"오케스트라야." 그녀가 말했습니다. "오 - 케 - 스 - 트 - 라."

"맞아, 그렇게 발음하셨어, 마미.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기로는, 닭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대.

울면서 꼬꼬댁! 꼬꼬댁! 소리를 내는 것 말이야."  

시간이 지나 그녀가 다시 잠들자 그는 그녀의 곁에 누워 매의 공격과 닭들에 대한 그녀의 의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지고 그녀가 자기 가족에 대해 했던 말로 생각이 되돌아가자 다시 한번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들었습니다.

이번에 그 두려움은 불길한 영혼의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135-136p)


수호령이 곁에 있으니까 내심 안심했어요. 그런데 실망했어요. 수호령은 주인을 보호한답시고 실패를 막아서는 안 된대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망가진 것을 고쳐주는 게 아니라 고쳐지리라고 주인을 안심시키는 것이래요. 이미 절망에 빠졌는데 부질없는 희망으로 버텨낼 수 있을런지.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논소의 수호령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그가 잠든 시간에 몸에서 빠져나왔어요.

과연 그는 어떻게 될까요. 

영혼의 목소리에 이토록 몰입하게 될 줄 몰랐어요. 작은 것들의 이야기, 그래서 더 간절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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