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 기린 덕후 소녀가 기린 박사가 되기까지의 치열하고도 행복한 여정
군지 메구 지음, 이재화 옮김, 최형선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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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린 해부학지입니다>는 기린 박사님의 즐거운 탐구 생활 이야기예요.

저자 군지 메구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고, 다양한 동물들을 직접 키웠다고 해요. 그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동물이 바로 기린이었고요.

그래서 도코대 1학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했고 운명처럼 기린 연구의 기회가 찾아왔대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기린만 연구하는 박사님이 계셨다니요.

지금껏 살면서 기린을 직접 본 건 손에 꼽을 정도예요.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데 기린은 워낙 긴 골격 때문에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살짝 겁이 있는 편이라서 대부분 멀리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 것에 만족했거든요.


신기해요. 기린에 대해 잘 모를 때는 궁금한 게 하나도 없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정말 흥미로운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기린 박사님이 어떻게 기린의 매력에 빠져들었는지 아주 조금은 공감하게 됐어요. 

사실 어릴 때는 기린의 목이 유난히 길어서 부러질 것 같다고 걱정했던 기억이 있어요. 다리도 유난히 가늘고 길어서 약간 휘청대는 느낌이었거든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이 기린 연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저자가 처음으로 기린을 해부한 것은 열아홉 살의 겨울이었대요. 훌륭한 스승님을 만나 수많은 기린 해부 과정을 거쳐 기린 박사님의 발견한 내용은 바로 '기린의 제1흉추가 8번째 목뼈로 기능한다'라는 사실이에요. 그 전까지는 기린 목의 운동에 관여하는 뼈는 7개의 경추뿐이라는 것이 상식이었대요. 좌우 갈비뼈에 붙어 있으니까 명칭은 흉추인데 뼈의 모양은 경추 같다는 것에 주목하고 연구한 것이 기린 제1흉추의 형태적 특이성에 대한 중요한 발견이었대요. 실제로 제1흉추가 8번째 목뼈라는 걸 밝혀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끈기 덕분에 이뤄낸 성과라고 볼 수 있어요.

저자는 기린의 제1흉추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 '아오이의 새끼'와 이름 없는 기린 두 마리를 평생 절대 잊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하네요. 컴퓨터에 표시된 가상 골격이 CT 데이터에서 제1흉추가 가동성이 있다는 결과를 얻었지만 실제로 그 움직임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의 감동은 놀라웠다고 해요.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 같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떨리는 감동이었대요. 세상에 이런 엄청난 감동을 느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어요. 이것은 과학 분야의 연구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 같아요.


한 권의 책 속에서 평생 알고 있던 기린의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만큼 기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는 뜻이겠죠. 이제서야 기린의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 기린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하니 걱정스러워요. 현재 기린뿐 아니라 많은 동물들이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해요. 우리는 기린을 비롯한 지구상의 동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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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를 다시 만난다
나카타 에이이치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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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82p) 


<오늘 너를 다시 만난다>는 주인공 가바타 렌지의 시간여행을 그린 소설이에요.

이제껏 시간여행이라고 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혹은 미래를 오가는 내용만 봐 왔는데, 이번에는 아주 독특해요.

주인공의 몸은 그대로 있고,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사이에 '의식'만 뒤바뀌는 거예요.

2019년 현재 서른한 살의 렌지는 산책로 벤치에서 괴한의 습격으로 의식을 완전히 잃고 쓰러졌어요.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는 열한 살의 렌지가 서른한 살의 렌지 몸 속에 들어와 있어요. 초등학생이었던 렌지는 조금 전까지 야구 시합을 하다가 타자가 친 공을 글로브로 잡으려 했는데, 머리에 공을 맞았는지 그다음에는 기억이 없어요. 황당하게도 정신을 차려보니 20년의 세월이 흐른 거예요. 물론 서른한 살의 렌지는 열한 살의 렌지 몸으로 들어갔고요.

솔직히 서른한 살에서 열한 살의 렌지로 바뀌는 건 부러웠어요. 다시 한 번 과거를 살 수 있다면... 이런 상상은 많이 해봤을 거예요. 타임머신을 탄다면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바꿀 수 있을 테니까요. 

가바타 렌지의 뒤바뀐 시간은 단 하루예요. 어른인 나와 어린아이인 내가 각자의 하루를 바꿔서 살게 돼요. 뭔가를 바꾸기엔 너무도 시간이 짧아요. 하지만 렌지에겐 한 가지 확실한 목표가 있어요. 여덟 살 소녀를 강도로부터 구해야 해요. 그녀가 바로 현재 렌지의 약혼녀 니시조노 코하루예요. 그러니까 어른의 의식으로 깨어난 1999년의 렌지는 그녀를 죽음의 운명에서 구출하게 돼요. 안타깝게도 그녀의 부모님은 목숨을 잃었고 삼인조 강도는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잡지 못했어요.

과연 살인범들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어요. 20년 후의 미래에서 알려준 과거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어요.

시간여행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건 렌지와 코하루 그리고 또 한 명이 있어요. 렌지의 형 신이치로.


약혼녀 코하루는 열한 살 렌지에게 두 사람이 관측한 방향으로 미래가 수렴된다고 이야기했어요. 이미 관측된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관측되지 않은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상한 건 분명히 이미 일어났던 일을 과거의 자신에게 알려줬을 뿐인데 미래를 알게 된 나는 마치 자유 의지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운명을 바꾸기는커녕 도리어 운명에 갇혀 사는 기분인 거죠. 아무도 알 수 없는 미관측의 세상부터가 진짜 인생일지 몰라요. 처음으로 렌지의 의식이 뒤바뀐 2019년 그 날 이후...

렌지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갈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게 되는 이야기... 결국 반복되는 시간여행 속에서 서서히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게 되는 <오늘 너를 다시 만난다>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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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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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는 걸,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어요.


<노라와 모라>가 어떤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오래 달리기의 마지막 한 바퀴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글쎄요, 그건 오래 달리기를 할 때 어떤 기분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네요. 어쩌면 누군가는 왜 이 소설에서 오래 달리기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어요. 순전히 나만의 감상일 뿐인 거죠. 그러니 이 책을 펼쳐 보는 건 오로지 그 사람의 선택인 거예요.


책 띠지에 적혀 있는 문구에 끌렸어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이의 창가에, 

이 소설을 놓아두고 싶다."

  - 김숨 (소설가)

"마음 둘 곳 없는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소설"

   - 누구의 말일까요?


'함께'라는 단어와 '온기'라는 단어 때문에 일차원적으로 생각했어요.

아하, 따뜻한 내용이겠구나, 라고.

그러나 여기서 또, 생각의 차이를 잊고 있었네요. 혼자라서, 너무나 쓸쓸해서 반대의 상황이 절실해질 수 있다는 걸.


소설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이에요.

성은 노 씨이고, 이름은 라, 그래서 노라. 성은 양 씨이고, 이름은 모라, 그래서 양모라.

두 사람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야기.

노라의 엄마가 모라의 아빠와 재혼하면서 두 여자애는 자매지간이 되었어요. 칠 년을 함께 살다가 헤어졌고, 그 뒤 20년만에 만나게 된 이야기.

한때 가족이었다가 남남이 된 사이인데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는 건 십중팔구 부고.

모라가 전화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죽음이 우리를 만나게 하다니. 우리는 만난 게 맞을까.

모라에게 다가서며 나는 생각한다. 죽음은 언제나 눈을 감은 자의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 영영...... 알 수 없는 것." 

    - 노라 (73p)


처음엔 노라 입장에서 모라를 봤기 때문에 노라가 가엾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반대로 모라 입장에서 노라를 봤더니 모라가 너무 불쌍했어요. 노라와 모라는 같은 방에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몰랐던 거예요.

말하지 벗않으니 보이는 것만 봤고, 본 대로 판단했으니 서로 가까워질 수 없었어요. 각자에겐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 그들은 쉽게 말하고 쉽게 지치다가 뭐든 쉽게 포기했다. 

이를테면 사랑이나 우정, 혹은 예의나 도덕 같은 거. 

그러니까 나에게 그래도, 라는 말은 뭘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하는 말에 불과한 말이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넌...... 모르잖아, 아무것도."

나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렇게 말한다. 

노라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또한 흔치 않은 일이다.

...... 미안.    (139-140p)


속사정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졌을까요.

그건 알 수 없어요. 어쩌면 진짜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냥 서로 몰랐으니까, 모르는 채로 쿨하게...

집요하게 서로에게 달려들다가 상처를 내느니, 적당한 거리와 벽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 

노라와 모라의 이별 장면처럼.

버스를 타기 직전에 노라는 볼펜을 내밀며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고, 

메모지를 찾는 모라에게 노라는 자신의 손바닥을 들이밀며 그냥 여기다 써줘,라고 했어요.

모라는 노라의 손바닥에 메일 주소를 적으며 말했어요. 너무 애쓰지 말자고.

그 뒤로 노라는 가끔 가슴에서 뜨겁거나 서늘한 마음이 치솟을 때면 모라의 사진을 들여다보곤 해요. 아니, 자신의 손을 찍은 사진. 거기엔 모라의 메일 주소가 찍혀 있어요. 

꿈속에 다녀간 누군가를 떠올리듯이, 누군가 다녀갔다고 여기면 마음이 한결 좋아진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더 애쓰게 되는 마음이 있다고 말이에요.

노라는 그것을 '한때 하나였던 어떤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그래서 모라에게 그 사진 한 장을 보냈어요. 모라의 글씨가 적힌 노라의 손바닥 사진. 이제 그 사진은 새로 태어난 우리들의 손바닥이 되었어요. 


"있거나 없는 것.

그건 우리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 노라 (197p)


뭐가 그리 어려운 거라고, 노라와 모라는 20년만에 재회하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그건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그저 불친절한 세상에 태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애썼을 뿐이라고.

이제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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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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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사건의 생존자, 사건 이후의 삶...


<블랙 아이드 수잔>의 주인공 테사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던 연쇄살인사건 '블랙 아이드 수잔' 네 명 중 한 명이에요.

운이 좋았던 단 한 명의 생존자.

이 소설은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현재의 테사와 과거의 테시.

그리고 또 하나, 연쇄살인범으로 붙잡힌 테렐 다시 굿윈의 무죄를 주장하며 6년 동안 테사를 괴롭혀온 앤젤라가 있어요. 앤젤라는 텍사스 주정부의 압력으로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누명을 벗기는 데 자기 인생의 마지막 절반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 전부를 쏟아부은 사람이에요. 테사는 아홉 달 전, 앤젤라의 사무실에 가본 적이 있어요. 앤젤라는 테사에게 기억을 되찾아 준다는 전문가들을 한 번만 만나달라고 호소했어요. 그러다 그녀는 산더미 같은 테렐 다시 굿윈 사건 관련 기록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심장마비로 사망했어요. 그녀가 죽은 그 주 내내 테사는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그제야 테사는 깨달았어요. '앤젤라는 내게 묶인 고삐 중 하나'라는 것을, 나를 포기하지 않은 몇 사람 중 하였다는 것을. 그래서 앤젤라의 사무실에 연락했고, 그녀의 동료 변호사 빌이 법의학자 조애나 세거 박사와 함께 집으로 찾아 왔어요.

그들은 테사에게 물었어요. 왜 갑자기 자기들 편에 서기로 했는지. 

그 이유는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는 꽃 때문이었어요. 연쇄살인사건의 이름이 되었던 그 꽃은 여자들의 시신 더미 옆에 잔뜩 피어 있었어요. 1995년 당시 열일곱 살 테시의 증언으로 테렐 다시 굿윈은 연쇄살인범으로 확정됐고 사형수가 되었는데, 판결 이후 테시의 집 마당에 누군가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어놓았어요. 땅 밑에는 협박 편지도 남겨 놓았어요. 네가 입을 열면 리디아를 수잔으로 만들겠다는 경고의 메시지. 리디아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테사의 단짝 친구예요. 그때는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17년이 흐른 지금 또 누군가가 테사에게 보란 듯이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어놓았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리디아에게서 보고 싶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과연 블랙 아이드 수잔의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요. 어디에 숨어서 테사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요.

진짜 범인이 따로 있다면, 테렐 다시 굿윈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예요. 그의 사형집행일이 확정된 상태여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테사는 비혼모로 열네 살의 딸 찰리와 둘이 살고 있어요.

문득 딸 찰리를 볼 때마다 과거의 공포가 밀려와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더더욱 진짜 범인을 잡아야 해요.

사람들은 끔찍한 비극을 겪은 이에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해요. 하지만 그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다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우리는 연쇄살인사건이나 비극적 사건의 생존자가 어떤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해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어설픈 위로가 아니라 따뜻한 시선인 것 같아요. 생존자를 구경거리로 여기지 않고, 그냥 평범한 이웃으로 바라보는 마음. 

 

알고 있었다. 블랙 아이드 수잔이 된 이후 내 인생에 대한 온갖 과장된 기사란 기사는 다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사 속에서 엄마는 '미심쩍은' 정황에서 사망했고, 할아버지는 으스스한 집을 지었으며, 나는 말 그대로 완벽했다.

하지만 사실은? 엄마는 희귀한 뇌졸중을 앓았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더 미치광이였으며, 나는 절대 동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여주인공들은 일단 전부 피해자긴 하지만.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었고, 신데렐라는 노예처럼 일했고, 라푼젤은 감옥에 갇혔고...

테시는... 뼈와 함께 버려졌다.

어느 괴물의 뒤틀린 판타지 때문에.   (160p)


1995년 테시는 사건 현장에서 구조된 이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어요. 리디아는 늘 테시 곁에 있어줬어요. 오랜 단짝 친구였으니까.

리디아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라서 감정을 밀어두고 테시에겐 없는 냉정한 시각으로 모든 것을 관찰하는 능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테시의 담당 의사가 바뀔 때마다 분석하기를 좋아했어요. 직접적으로 사건에 대해 물은 적은 없지만 리디아는 유난히 죽음에 관심이 많았어요. 테시는 리디아가 지켜보고 있으면, 나는 죽을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테시가 누런 밀랍 인형 같은 모습으로 관 속에 누운 어머니를 바라보는 동안 리디아는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네 엄마는 저기 없어. 

그토록 친했던 리디아. 그런데 얼마 뒤 리디아 가족이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어요. 도망치듯,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나는 아직 여기 있다 I am still here." ​ (230p)


현재의 테사는 삼십 대 중반의 엄마가 되었어요. 여전히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확실히 달라진 건 더 이상 연약한 소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녀는 이제 지켜야 할 사랑하는 딸 찰리가 있어요. 테사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준 딸 덕분에 강인한 엄마가 되었어요. 사랑이란 정말 위대한 것 같아요. 그러나 한편으론 비뚤어진 사랑도 존재한다는 게 현실의 비극인 것 같아요. 사이코패스...


<블랙 아이드 수잔>은 연쇄살인범을 쫓는 추적기이자 생존자의 이야기예요.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테렐은 흑인이었어요. 약자에 대한, 인종에 대한 차별이 만든 비극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테렐과 같은 경우가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 씨가 올해 재심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어요. 그는 자신을 수사한 경찰관들에 대해 용서한다고 말했어요. 용서는 이런 경우에 해당될 거예요. 하지만 연쇄살인범은...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는.



[현재의 테사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장면 중에서]


"그를 용서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내 눈은 아직도 칠판의 꽃에 못 박혀 있었다. 

직접 지우개를 들고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변할 때까지 문지르고 싶었다. 깨끗하게 지우고 싶었다.

"그러면 종결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표현하죠.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어떨까요?

만약에 그가... 당신은 그를 뭐라고 부르나요?"

"나의 괴물." 수치스러움에 목소리가 너무 작게 나와서 박사가 들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정신도 멀쩡한 성인 여자가 아직도 괴물 이야기를 하다니!

"좋아요. 당신의 괴물이 바로 지금 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그가 자리에 앉았어요. 모든 것을 자백했어요. 당신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이름도 알고, 어디서 자랐는지, 어머니가 그를 사랑했는지,ㅅ 아버지에게서 얻어맞았는지, 고등학교 때 인기가 많았는지, 개를 사랑했는지, 개를 죽였는지...

다 알고 있어요. 그가 바로 저기, 1미터 떨어진 의자에 앉아서 당신의 모든 질문에 답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달라질까요? 당신을 만족시킬 대답이 있을까요? 기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나는 의자를 응시했다.

엉덩이에 찬 총이 철제 쿠키 커터처럼 피부에 느껴졌다. 그 총을 들어 의자의 천에 대고 쏴버리고 싶었다. 흰 솜이 폭발하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

나는 내 괴물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가 죽기를 원했다.  (268-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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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I LOVE 그림책
모 윌렘스 지음, 앰버 렌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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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Beacause)>는 어린이 그림책이에요.

요즘 그림책이 정말 좋아졌어요. 다시 어린이가 된 느낌? 아니, 아직 여전히 어린이였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책 보는 즐거움이 커졌나봐요.


이 그림책은 모 윌렘스가 쓰고 앰버 렌이 그렸어요.

모 윌렘스는 칼데콧 아너 상을 세 번 수상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예요.

유명세 때문에 이 그림책을 칭찬하는 건 아니에요. 그림책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다 있어요. 궁금하면 펼쳐봐야겠죠?

이미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그림책 속에는 "때문에 because"라는 단어가 수시로 등장해요.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바로 "때문에"가 알려주고 있거든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음악을 작곡했기 때문에, 어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연주 연습을 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있었어요. 또한 어떤 사람은 음악 콘서트 포스터를 멋지게 만들었기 때문에 티켓이 잘 팔렸고, 기관사는 커다란 콘서트홀 앞에 기차가 잘 멈추도록 지휘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마침내 도착했어요. 오케스트라의 사서가 악보를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  오케스트라는 리허설을 했어요. 관리 직원들이 조명과 좌석을 점검하고 바닥을 깨끗이 닦았기 때문에 - 콘서트홀은 착착 준비가 되었고 관객을 맞이할 수 있었어요. 

마침내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 좌석 안내원들은 문을 열었어요.

누군가의 삼촌이 때마침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 누군가의 숙모는 아주 특별한 누군가에게 줄 티켓이 한 장 생겼고, 그 특별한 손님과 숙모는 안내원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러 거기 왔기 때문에 - 정말 조용했어요.

C열 14번 자리에 - 그 소녀는 삼촌의 티켓으로 앉아 있었고 슈베르트라는 사람이 작곡한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것이 소녀를 변화시켰어요.

그 순간부터 소녀는 음악을 사랑했고 열정적으로 배웠어요. 악기도 배우고, 작곡도 시작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실력은 점점 훌륭해졌고 아주아주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

어느 날 밤, 그녀의 음악은 마침내 발굴되었어요. 그녀에겐 행운도 따랐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커다란 콘서트홀 공연에 초청되었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음악을 듣고 싶어 했기 때문에 - 

그녀의 곡은 C열 14번 자리에 앉은 삼촌에게 헌정되었어요. 그녀를 지금 여기 무대 위에 있게 한 건 바로 삼촌의 티켓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날 밤, 또 누군가가 변화되었어요. 

놀라운 이야기죠?

한 소녀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 여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림책이기 때문에 멋진 그림들이 소녀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주네요.


각자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킨 "때문에"가 있을 거예요. 이 그림책에서 "때문에"는 인생에서 벌어지는 우연과 멋진 기회, 인내, 숨은 노력과 열정을 포함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때문에"는 핑계나 불만 등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해서 "때문에"의 가치를 잊고 있었나봐요.

Because , "때문에" 대신 "덕분에"를 넣어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인생은, 결국 누군가 덕분에 도움을 받기도 하고, 멋진 기회가 생기곤 해요. 그런 의미에서 "때문에"는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마법 같아요.

혹시 모르죠, 그림책 <때문에>가 그 마법이 될지도.  


"나의 '때문에'가 되어 준 찰스 M. 슐츠를 기억하며"

    - 모 윌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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