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숍
레이철 조이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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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선하고도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한 권의 소설책을 읽으면서 이토록 다양한 음악을 듣게 될 줄이야.

만약 <뮤직숍>이 아니었다면 평생 들어보지 못했을 음악들이에요. 

무슨 얘기냐고요?

<뮤직숍>의 주인공 프랭크는 14년차 음반가게 사장님이에요. 오직 엘피판만을 취급하는데, 그보다 더 특이한 건 손님들에게 꼭 알맞은 음악을 소개해준다는 거예요.

그는 음악을 전공한 적도 없고, 악보를 볼 줄도 모르지만 음악을 마음으로 들을 줄 아는 능력을 지녔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프랭크가 소개해준 음반들을 듣고 나면 장르에 상관없이 음악을 즐기게 되고, 때로는 엄청난 위로를 받았어요. 프랭크의 뮤직숍은 엘피판을 장르로 나누거나 알파벳순으로 분류하지 않고, 그 음악을 들었을 때 받았던 느낌대로 정리해두었어요. 장르는 다르지만 비슷한 정서를 가진 음악들을 동시에 소개해주는 프랭크 덕분에 누구나 쉽게 다양한 음악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단골 손님도 꽤 많았어요. 유행은 돌고 돈다고, 엘피판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한테 엘피판은 여전히 추억의 물건인데 말이죠.


프랭크의 음반가게는 유니티스트리트라는 허름한 거리에 위치해 있어요. 그 거리에는 술집 하나와 가게 여섯 개가 있는데, 쇠락해가던 상권을 음반가게가 반짝 살렸다가 요즘 다시 불경기에 접어들었어요. 바로 지난달에 꽃집이 문을 닫았어요. 유니티스트리트에 손님을 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어요.

어느 날 녹색 코트 차림의 젊은 여자가 음반 가게 바깥 쇼윈도 앞에 서 있다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추운 날씨라서 프랭크가 얼른 여자를 안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고, 정신을 차린 여자는 당황해서 급히 달아나버렸어요. 그날 이후 프랭크의 머릿속에는 그 여자로 꽉 찼어요. 기절했던 여자 옆에 무릎을 끓고 앉은 순간, 맥박을 확인하려고 손목을 들어 올린 순간, 여자를 안아 들다가 이마에 살짝 입술이 닿은 순간, 이전에는 경험한 적 없는 낯선 감정을 느꼈어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찌릿한 느낌, 음악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건 난생처음이었어요. 우리는 이런 느낌을 가리켜 '첫눈에 반했다' 혹은 '사랑에 빠졌다'라고 하죠. 오래 전에 실연의 아픔을 겪고나서 아예 연애를 포기하고 살아온 프랭크에게 드디어 사랑이 찾아온 거예요. 영화였다면 슬로우 모션으로 샤랄라 아름다운 음악이 깔리면서 꽃가루가 날릴 것 같은 명장면이에요. 

<뮤직숍>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이라서 좋아요. 무채색의 삶을 살아온 프랭크에게 무지개빛 사랑이 펼쳐지나, 기대했거든요.


"어머니가 처음 《라보엠》을 들려주었던 때, 탑 오브 더 팝스(BBC에서 방송한 음악 차트 프로그램)에 출연한 데이비드 보위가 <스타맨 Starman>을 부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존 필(BBC에서 라디오 쇼를 진행한 디제이)의 방송에서 더 댐드가 부르는 <뉴 로즈 New Rose>를 처음 들었을 때에 받았던 충격이 떠올랐다.

새롭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독특한 느낌이었다. 녹색 코트를 입은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64p)


와우, 어떤 느낌의 음악이지?

쿵쿵쿵, 심장이 떨리듯 쿵쾅대는 멜로디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느낌이랄까. 들어보니 프랭크가 말한 그 충격의 의미를 알 것 같아요.

프랭크가 소개하는 음악은 정말이지 너무 궁금해서 찾아 들어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보니 책을 읽다가 멈추고 음악을 듣다가, 다시 읽다가... 그 과정이 즐거웠어요. 프랭크는 음악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도 들려줘서, 어쩐지 그 음악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것처럼 친근하게 만들어줘요. 

하지만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건 프랭크와 유니티스트리트 가게들이 처한 상황 때문이에요. 운명의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프랭크, 그리고 재개발의 물결에 떠밀려 문을 닫거나 철거되는 낡고 오래된 건물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끝까지 몰입할 수밖에 없는 <뮤직숍>, 왜냐하면 삶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다만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찌됐든 프랭크의 추천 음악은 최고였어요. 제 플레이리스트에 잘 담아두었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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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들리는 별빛 칸타빌레 2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2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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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울러의 소설은 정말 특별한 것 같아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실과 맞닿은 저 너머의 세계처럼 신비롭게 느껴져요.

평범한 일상에 감춰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주인공 루크는 피아니스트 아빠처럼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소년이에요. 그런데 그 사랑하는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실의에 빠져서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어요.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이 숨어 있어요. 바로 음악이에요. 루크가 아빠와 함께 연주했던 곡, 하딩 선생님을 위해 연주한 곡, 그리고 자신보다 더 약한 누군가를 위로하는 연주곡, 마지막으로 특별한 한 사람을 위해 바치는 연주곡까지 그 음악이 주는 힘을 느낄 수가 있어요.

아마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그 음악들을 찾아 들어볼 생각조차 못했을 거예요.

드뷔시의 <춤추는 눈송이 The Snow is Dancing>, 차이코프스키의 <꿈 Reverie>, 헨델의 <메시아 Messiah>, 글룩의 <정령들의 춤 Dance of Blessed Spirits>, 스크리아빈의 연습곡 Op.2 No.1 , 에드바르 그리그의 <그대를 사랑해 I Love Thee>.

솔직히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 아니라서 이 음악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는데, 루크의 이야기와 함께 그 음악을 들어보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았어요. 음악 소리가 마음으로 와닿는 느낌이었어요. 낯선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 같은, 구체적인 감정으로 느껴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음악으로 위로받고 치유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요즘들어 저도 그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을 겪은 루크에게 아빠는 세상을 떠났지만 동시에 늘 함께 한다는 걸,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마녀 같은 리틀 부인과 미스터리한 소녀의 비밀... 그리고 루크의 특별한 능력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뿐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음악까지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별, 오각별이 제 마음 속에도 반짝이며 빛나고 있어요. 눈으로 볼 수 없어도, 우리는 마음으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옛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믿었다지요. 그건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만 하는, 남은 사람들의 소망이지 않았을까요.


"제 눈에 계속 보여요. 이 ...... 이 별이 말예요."

"네 아빠도 그렇게 말했었단다."

"더군다나 이제는...... 제가 그 별을 찾고 있어요."  (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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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롤랑 1
자유 지음 / artePOP(아르테팝)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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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롤랑>은 네이버 인기웹툰 단행본이에요.

제가 아날로그 감성이라서 그런지 웹툰으로 보는 것보다 종이책이 더 좋더라고요. 

이미 귀여운 롤랑롤랑의 매력에 홀딱 빠졌던 사람이라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리게 될 거예요.

왜 롤랑롤랑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건지... 으앙, 귀여워!


일단 <롤랑롤랑>의 세계관은 정통 중세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신은 못된 인간을 처벌했는데, 개들은 신에게 인간을 용서해달라고 청하고, 이에 감동한 신은 개들에게 인간의 모습, 인간의 지능, 인간의 마법을 주었어요.

그리하여 개들은 인간처럼 변할 수 있고, 인간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것이 아델 왕국의 탄생 신화에요.

롤랑롤랑은 아델 왕국의 왕자이며, 책 표지에 보이는 복슬복슬 귀여운 뒤태를 가진 웰시코기예요. 어느날 갑자기 여왕이자 엄마 엘레노아가 개의 모습으로 짖기만 하는 거예요. 의사도 불러보고 마법사도 불러 봤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이때 황제이자 아빠 카를로스가 출장 중이라 롤랑롤랑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신하가 말하길 이걸 고칠 방법은 아는 사람은 대사제 로데 님뿐이라고 알려줘요. 그래서 롤랑롤랑은 뛰어난 왕실 경호원 이디와 함께 모험을 떠나게 돼요.


내용이 4컷으로 짜여져서 가독성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빠른 전개와 재미있는 에피소드 덕분에 휘리릭 책장이 언제 넘어갔는지도 모르게 다 읽게 되네요.

<롤랑롤랑> 단행본은 모두 3권 구성이라서 1권까지 읽고 나니 다음 권이 너무나 궁금하네요.

귀여움으로 똘똘 뭉친 롤랑롤랑 왕자의 매력뿐 아니라 순정만화의 정석과도 같은 이디의 멋짐은 그야말로 뿜뿜 느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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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들리는 별빛 칸타빌레 1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1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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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들리는 별빛 칸타빌레>는 팀 보울러의 소설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얼마만큼의 고통일까요.

차마 짐작하기 어려운, 견딜 수 없는 고통일 거예요. 어른도 버티기 힘든데, 아이라면...

열네 살 소년 루크는 2년 전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신 이후 방황하고 있어요. 동네에서 소문난 문제아인 스킨과 다즈, 스피드와 잠시 어울렸다가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에 처했어요. 이들 패거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스킨 때문에 어찌할 방도가 없어요. 스킨은 학교 폭력뿐 아니라 동네에서 온갖 일탈을 저지르는 전형적인 불량 학생이에요.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스킨은 곁에 다즈와 스피드를 부하처럼 거느리면서 루크를 종 부리듯 함부로 대하고 있어요. 그동안 자잘한 말썽은 부렸지만 불법적인 일은 동참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달라요. 스킨은 동네에서 가장 비싼 저택에 혼자 살고 있는 리틀 부인의 집을 얼쩡거리다가 우연히 창문을 통해 보석 상자를 봤고, 그걸 훔칠 계획이에요. 루크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지만 스킨 패거리를 피할 수도 없어요. 이런 고민을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는 루크를 보면서 안타깝고 속상했어요.

평범한 열네 살 소년이어도 엄마에게 반항할 사춘기 나이인데, 루크는 사랑하는 아빠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배신감처럼 느껴졌나봐요. 그래서 아닌 줄 알면서도 괜히 엄마를 괴롭히고 있어요. 엄마와 함께 있으려 하지 않고, 자꾸 피하려고만 해요. 

사실 루크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타고난 음감으로 한 번 들은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어요.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아빠에게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이에요. 이건 학교나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청각이 예민해서 남들보다 잘 들을뿐만 아니라 아무도 못 듣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요. 가끔 그 소리가 눈앞에 환영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건 엄마만 아는 비밀이에요. 

며칠 전 스킨에게 흠씬 두들겨 맞던 날, 루크는 소녀의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이전에 상상이라고 넘어갔던 소녀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고, 이 울음이 리틀 부인과 관련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한밤중에 스킨 패거리와 그 집 앞에 숨어 있을 때마다 그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분명 리틀 부인은 혼자 사는 할머니라고 했는데, 도대체 왜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린 걸까요. 여기서 살짝 의심했어요. 루크의 능력이 그냥 상상력이 아닐까하고.

그런데 그 소녀의 정체는...

사실 미스터리한 소녀의 울음소리보다 루크가 너무 걱정스러워서 읽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늪에 빠진 것처럼 나쁜 친구들은 루크를 놔줄 생각이 없고, 루크는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할 짓을 저지르고 말아요.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루크가 혼자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루크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주는 하딩 선생님은 곧 은퇴를 앞두고 계신데, 마지막 연주회를 열 예정이에요. 하딩 선생님은 단번에 루크의 상태를 알아보고 중요한 말씀을 해주시네요. 


"루크, 너에게도 미적 재능이 있어. 하지만 네가 네 자신을 올바로 대하지 않는다면 그 재능도 별로 소용이 없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네 재능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하지만 그 재능이 너한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해봤니?"

"전 아무 도움도 필요 없는데요."

"정말?"

"네."
"알았다."

"전 아무 도움도 필요 없어요."

"방금 말했잖니."

"왜 제게 그런 충고를 하시는 거예요?"

"넌 지금 투쟁 중이니까."

"누구와요?"

"모든 사람과. 특히 너 자신과."   (95p)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로운 루크, 과연 루크는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저는 클래식 음악은 잘 모르지만 하딩 선생님이 루크에게 연주를 부탁한 <춤추는 눈송이>를 찾아 듣고, 그 음악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어요.

루크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처럼.

<나에게만 들리는 별빛 칸타빌레>의 원제는 '스타시커 Starseeker', 별을 찾는 사람이라고 해요.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나면 우리말로 번역된 제목과 원제가 모두 신기하게 들어맞는다고 느끼게 될 거예요. 별을 바라보면 별들은 반짝이는 빛으로 노래 부르듯이 우리를 감싸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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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각본집 - 용기를 내는 게 당연한 나이
임선애 지음 / 소시민워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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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각본집은 읽은 적이 있지만 영화 각본집은 처음이에요.

무엇보다도 <69세 각본집>은 단순히 각본집이라고 하기엔 더 특별한 것들을 담고 있어요.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감독의 생각이 담긴 각본 일기와 스토리보드가 들어 있어요. 그 과정을 알고나서 완성된 각본집을 읽으니, 마치 눈앞에 영화의 장면들이 펼쳐진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갔어요. 그리고 뭉클했어요.

69세, 용기를 내는 게 당연한 나이.


처음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냥 어영부영 넘어갔던 것 같아요. 딱히 기분 나쁘진 않았어요. 그런데 진짜 아줌마가 된 후에 그 말이 몹시 불쾌했던 적이 있어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굉장히 깔보듯 내뱉는 아줌마라는 호칭에 욱해서 따져 물었어요. 왜 내가 아줌마냐고. 그랬더니 움찔하면서 어쩌구저쩌구 하시라고 설명하더군요. 뭐야, 만만해 보여서 시비를 걸었나 싶을 정도였어요. 똑같은 상황에서 남자였다면 넘어갔을 일을 왜 나한테는...

언젠가는 더 나이들어 할머니 소리를 듣겠지요. 그건 상관 없어요. 다만 여자라서 무시당하는 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나이들수록 용기가 생겨서 좋은 것 같아요. 정말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그것이 삶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 69세의 주인공 효정이 보여준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영화 69세의 주인공 효정은 성폭행 피해자예요. 그녀는 직접 신고했고 증거물까지 제출했지만 사건은 흐지부지 제대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도대체 왜?

그러나 잠시 시간을 되돌려서,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돌아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다음과 같은 인쇄물을 본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심효정. 69세. 저는... 병원 조무사 이중호에게 성폭행 당했습니다."  (123p)


69세라는 나이. 

그 나이 때문에 성폭행 당한 사실이 묻힐 수도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대부분 자신이 고통을 겪어 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어느 정도 살다 보면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만 한 때가 오고, 그때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어른이라면 내가 아프듯 남도 아프다는 걸 공감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해요. 편견과 차별 대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해요. 과연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되었을까요. 


영화와 단편소설은 줄거리가 약간 다르지만 효정이라는 인물을 여러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줘서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어딘가에 살고 있을 효정, 그녀는 그냥 69세의 할머니가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걸.

그러니 효정의 용기는 살아 있는 한 계속되어야 할 삶 그 자체인 것 같아요.

 

2020년 8월 20일 개봉한 영화 <69세>는 임선애 영화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해요. 2020년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감독상 및 연기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박남옥상 수상작이라고 해요. 사실 작년은, 아예 극장에서 본 영화가 없어서 어떤 영화가 개봉되었는지도 몰랐어요. 이렇게 책을 통해 좋은 영화를 알게 되어서 기쁘네요. 각본집이 주는 특별한 감동 덕분에, 영화 <69세>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아요.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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