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 - 나를 죽이는 바이러스와 우리를 지키는 면역의 과학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
신의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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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세계가 바이러스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과연 바이러스는 무엇이며, 어떻게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는 인생명강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에요.

저자는 면역학을 가르치고, 바이러스 및 종양에 대한 면역반응 연구를 하는 바이러스 면역학 글로벌 권위자라고 해요. 현재 KAIST 전염병대비센터장을 맡고 있는 신의철 교수님이에요. 올바른 면역학 지식을 대중에게 널리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우선 면역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몸에 병을 일으키는 외부의 병원성 미생물, 즉 바이러스나 세균 또는 곰팡이가 침투했을 때 여기에 대항하는 몸속의 시스템이에요.

면역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의 작동을 유발하는 병원성 미생물의 존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해요.

왜냐고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  우리 몸을 공격하는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인류는 바이러스와 끝없는 전쟁을 해왔다고 할 수 있어요. 바이러스는 몸속 면역반응을 뚫고 침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취했는데 그 대표적인 방법이 변이와 잠복이라고 해요. 마치 인간의 두뇌처럼 전략적으로 대응해온 바이러스의 노력이 지속적인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전 세계는 지금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여 접종을 시작했어요. 그러나 변이 바이러스가 나오면서 백신이 무용지물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실제로 어떤 회사의 백신은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뉴스가 전해졌는데, 바이러스 면역학자의 시각에서는 우리가 T세포를 간과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네요.  면역학계에서 T세포의 존재는 특별해요. T세포는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빨리 제거해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다면 백신에 의한 기억 T세포를 가지게 될 것이고,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나타난다고 해도 기억 T세포 역시 더욱 강화될 테니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집단 면역에 주목하고 있어요. 집단 면역은 한 인구 집단의 상당수가 특정 감염성 질환에 면역을 가진 상태가 되면 설사 면역이 없는 개체라 할지라도 간접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의미예요. 미국의 저널리스트 율라 비스에 따르면 면역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환경이라는 거예요. 우리 각각이 가지는 감염이나 백신 접종의 경험이 개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며, 우리 각자가 가진 면역이 곧 우리 사회가 가지는 면역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는 집단 면역의 개념과 일치해요. 즉 백신을 접종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개인 선택의 문제를 떠나 우리 사회의 문제인 거죠. 이는 백신이 지닌 사회 집단적인 의미를 시사하고 있어요.  각종 미디어에서 백신의 부작용을 부각시켜 불안을 조장하는 뉴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 여부를 놓고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올바른 의학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알겠네요.

코로나19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모두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 힘든 시기였지만 코로나19가 알려준 교훈인 것 같아요. 우리는 부와 권력 유무를 떠나 모두 바이러스 숙주가 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개체이며,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백신과 마스크는 선택적 수단이 아닌 사회 모두의 안녕을 위한 기본적인 필수품이에요.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면역학이 면역세포들이 나와 남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면서 그 기초가 세워졌다는 거예요. 즉 면역이란 어디까지가 나인지, 나와 남을 구분하는 명제 아래에 있으며, 더 깊이 들어가면 항체의 특이성으로 설명될 수 있어요.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병원성 미생물은 나와 남의 구분에서 남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장 먼저 밝혀진 것들이에요. 면역 시스템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진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면역학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나와 남을 구분하는 접근법인데, 현대 면역학에서는 병원성 미생물에 대한 면역반응, 이식된 장기에 대한 거부반응, 자가면역질환이나 알레르기 등의 의학적 차원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면서 나와 남의 구분이 재정의되었다고 하네요. 굉장히 철학적인 개념의 확장인 것 같아요. 책속에 각 장마다 나와 있는 '내 인생을 위한 질문'이 의미심장하네요. 그야말로 인생 면역학을 만난 느낌이랄까.

면역학은 우리 모두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면역학적 상상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에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활용되면 좋을 것 같아요.  놀라운 학문의 세계, 면역의 과학을 통해 인생을 배우다니 역시 '인생 명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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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 - 미디어로 보는 차별과 인권 이야기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18
태지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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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당연한 건 없더라고요.

만약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어떻게? 바로 이 책으로!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는 미디어를 통해 차별과 인권 문제를 짚어보는 청소년 인문서예요.

저자는 현재 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사회 과목을 더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기 위한 책들을 여러 편 집필했다고 해요.

이 책에서는 아이들이 즐겨보는 미디어 세상에서 당연한 현상이라고 여겼던 문제들을 삼촌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고 있어요.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재벌의 모습, 주인공이니까 뭘 해도 멋지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재벌 가문의 자녀가 빠르게 승진하고 경영권을 물려받는 구조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재벌 2세나 3세가 젊은 나이에 경영을 승계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묘사되는 장면, 이 장면에서 그들은 검증되지 않은 능력으로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은 셈이에요. 실제로 대표적인 재벌 기업의 불법, 편법적인 경영 승계가 우리 사회에 끼친 파장을 생각해보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불공평한 현실을 당연히 여기면 공정하지 못한 구조가 더욱 공고히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것.

드마마 속 여주인공은 왜 실수하고 남주인공은 해결할까요. 뻔한 줄거리라서 문제인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은연중에 드라마 속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당연한 성 역할의 공식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예요. 미스코리아 대회가 공중파 TV에서 사라진 건 성 상품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 연예인에 대한 비하가 일상적으로 이루지고 있다는 건 심각하게 다뤄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다양한 미디어와 채널에서 성차별이나 성희롱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것도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근래 법률과 제도 차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을 보면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증거일 거예요.

미디어에 비쳐지는 장애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있는데, 불쌍하고 동정받아야 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 좋은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어요. 또한 교과서에서도 장애인을 배려나 보호의 대상으로만 묘사하는 장면들이 많다고 해요. 이는 학생들에게 장애인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라는 편견을 불러일으켜서 불편하고 싫은 감정까지 생기게 만든다고 해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교과서도 인권 감수성을 키울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고, 개선 중이라고 하네요.

최근 들어 인권과 평등이 중요해지면서 사회적 소수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북한 이탈 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와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미디어를 통해 커질 수도 있지만 부정적 인식을 줄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해요.


무심코 지나쳤던 미디어의 장면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많은 문제점들이 보였어요.

먼지 차별(Microaggression)이라는 용어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눈에 잘 띄지 않는 먼지처럼 사소한 일상의 대화 속에 숨겨진 차별을 의미해요.

예를 들면, "아파트  30평대 정도는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여자라면 화장하고 다니는 게 예의지." , "흑인이니 운동 잘하지 않아?" 등 듣는 이에게 불편함을 주는 말들이에요. 특정 성별이나 지역 혹은 인종에 대해 차별하는 표현들 모두가 먼지 차별에 해당한다고 해요. 예전에는 먼지 차별의 말을 듣고 반박하는 사람을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받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사소한 말이나 행동 속에 숨어 있는 먼지 차별을 알아채고, 그 문제를 알리는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아마 이 책을 읽고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거예요. 먼지 차별을 비롯한 수많은 차별과 편견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될 테니까요. 수많은 미디어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수용력과 인권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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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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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은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소설이에요.

19금 딱지가 붙어야 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폭력과 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저자 블란카 리핀스카는 현재 폴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라고 해요. 

바로 『365일』『오늘』『또 다른 365일』3부작이 폴란드 내에서만 15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고, 25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으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네요. 3부작 시리즈 중 1권에 해당하는 『365일』이 2020년 넷플릭스 영화로 만들어졌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영화로 압도적 1위에 랭크되었다고 해요.

와우,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네요.

이건 마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확장판이라고 해야 하나.


줄거리는 단순해요.

서른 살 생일을 맞아 남자친구와 함께 시칠리아로 여행을 온 라우라가 이탈리아 마피아 가문의 젊은 수장인 마시모에게 납치당해 기상천외한 제안을 돼요. 

마시모는 라우라에게 그녀의 365일을 달라고 요구해요. 좀 뻔뻔하죠, 납치범 주제에. 암튼 다음 해 생일까지 자신과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일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자는 거예요. 이건 뭐, 현대판 <미녀와 야수>라고 해야 하나?

왜냐고요?  몇 년 전에 총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던 마시모는 사경을 헤매는 동안 누군가의 환상을 보게 됐는데 그 꿈속 여자의 모습이 바로 라우라였던 거예요. 실제로 마시모의 대저택에는 라우라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가 여러 개 걸려 있으니 거짓말은 아닌 거죠. 마시모는 환상에서 본 그 여인이 운명의 상대라고 여기고 있어요. 퍽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달라요. 폴란드인 라우라가 이탈리아 여행을 왔다가 마피아에게 납치 감금 협박을 당한 거예요. 명백한 범죄!

그런데 이야기는 이상하게 로맨스로 흘러가요. 라우라는 갇혀 있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게 되고, 잘생기고 멋진 마시모에게 조금씩 끌리게 돼요. 

물론 <미녀와 야수>의 미녀 캐릭터와는 완전히 상반된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라우라는 결코 만만하게 여길 수 없는 야수 캐릭터라는 것. 처음엔 살짝 마피아라서 겁을 먹는 듯 하더니 선을 넘는 야수적 기질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네요. 

위험한 로맨스, 수위를 넘나드는 적나라한 표현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다소 얼굴이 화끈거릴 수 있어요. 성적인 묘사가 많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수많은 독자들과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에요. 


『365일』은 라우라 입장에서 두 가지 질문을 건네고 있어요.

돈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가. 당연히 NO! 라고 해야 맞지만 일부 사람들은 돈의 액수와 포기해야 할 자유가 뭔지를 따지더군요. 영화 <은밀한 유혹>처럼, 너무 오래된 영화지만 그 당시엔 꽤 충격적인 내용으로 유명했어요.

사랑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가. 이 역시 NO! 인데 야수 같은 라우라가 냉혈한처럼 보이는 마시모를 능가하면서 비현실적인 로맨스를 가능하게 만드네요. 전 세계인들을 현혹시킨 비결은 어쩌면 성적인 환상 그 자체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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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2
이철환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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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우리가 봐야 할 건 어둠이 아니라 그 어둠 너머에 있는 푸른 바다라는 것.

푸른 바다를 본 지가 정말 오래되었지만, 두 눈을 감으면 그 바다를 떠올릴 수 있어요. 바다가 그곳에 있다는 걸 두 눈으로 봤고, 느꼈으므로.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바다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 없을 거예요. 경험해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거죠.

우리가 밤의 어둠을 견뎌낼 수 있는 건 곧 해가 뜨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어둠이 못견딜 정도로 길어서, 다시는 해가 뜨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일 때가 있어요. 어떻게 참고 기다릴 수 있을까요.  


이철환 작가님의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려낸 장편소설이에요.

동네마다 있음직한 중국집 '고래반점'의 용팔 씨와 영선 씨 부부를 중심으로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어요.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과 부유한데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처음엔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는 용팔 씨네 부부의 현실 대화가 영 불편했는데, 나중에 그들 각자의 사연을 알고 나니 둘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표현에 서툰 것이지, 사랑 없는 부부는 아니라는 걸, 무엇보다도 평범한 두 사람의 일상이 행복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부부의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도 행복은 무슨 행복이냐며 투덜대고 있을 용팔 씨에게 긍정의 아이콘 영선 씨의 구박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용팔 씨는 말은 험해도 꽤 쓸모 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영선 씨는 잘 들어주는 편이에요. 말다툼인 줄 알았던 둘의 대화는 용팔 씨가 얼마든지 잘난 척 할 수 있도록 영선 씨가 깔아준 멍석이었네요.

반면 주변 사람들은 남모를 아픔이나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어요. 괴로운 현실에서 구원해줄 영웅은 그 어디에도 없었어요. 어려운 이웃들에게 손을 내민 건 영선 씨와 투덜이 용팔 씨였는데, 그마저도 망설이느라 큰 도움이 되진 못했어요. 중요한 건 얼마나 도움을 줬느냐가 아니라 손을 내밀어준 용기였어요. 

현실을 닮은 이야기는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지만 마냥 슬프고 절망적이진 않았어요. 작은 빛을 발견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빛이 점점 더 커져서 어둠을 몰아낼 거라 믿기 때문에. 그러니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 책에서 얻은 것들은 덧없이 사라지지 않고 심연에 쌓여 서로 부딪히고 적대하고 화해하면서

우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인도할 거야. 

누군가가 우리에게 건네준 애정 어린 말과 눈빛과 지지와 심지어 비판까지도 

우리의 심연에 쌓여 우리를 밝혀줄 빛이 되고 안내자가 되어주는 것처럼......

생각해봐,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것들이 우리도 모르게 벼락처럼 떠오를 때가 있잖아." 

"맞아. 그럴 때가 있어."

영선이 발랄한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용팔이 말했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얻은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쌓이고 또 쌓이면 

우리도 언젠가는 해와 달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지 않겠어?"

"그건 또 뭔 말이래? 해와 달을 동시에 본다고? 

해는 낮에 뜨고 달은 밤에 뜨는데 어떻게 해와 달을 동시에 봐?"

"일종의 역설이야. 철학자 최진석의 말처럼 해 日와 달 月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밝을 명 明을 얻을 수 있잖아." 

"어렵다. 쉽게 설명해봐."

"사물이나 사건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말라는 뜻 아니겠어?"  (53-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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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1
이철환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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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는 이철환 작가님의 신작이에요.

용팔 씨와 영선 씨 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집 가게 이름은 '고래반점'이에요. 첫 장면은 꽁꽁 얼어붙은 길 때문에, 부부가 투닥대며 말다툼을 하고 있어요.

영선 씨는 어제 눈이 올 때부터 얼기 전에 치워야 한다고 남편에게 말했고, 용팔 씨는 치운다고 약속까지 해놓고는 나몰라라 딴청을 부리고 있어요. 영선 씨는 가난하게 살았어도 옛날이 좋았다며, 예전에는 눈이 오면 얼어붙을까봐 너 나 할 것 없이 연탄재를 들고 나와 빙판길에 뿌렸던 때를 회상하는데, 용팔 씨는 그건 모두가 가난했으니까 서로 비교하거나 질투할 게 없었던 거지 특별히 인심이 좋아서가 아니라며 딴지를 걸고 있어요. 

저 역시 옛날 사람인가봐요. 시대가 바뀌었고, 인심이 변했다는 것을 눈 오는 날에 느꼈거든요. 골목길이 사라지고, 이웃의 개념이 희박해지니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집앞 거리에 눈이 쌓여도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게 되었어요. 연탄길이 까마득한 추억으로 잊혀진 것 같아요. 온몸을 불태워 주변을 따뜻하게 해준 연탄은 다 타버린 뒤에도 빙판길에 뿌려져 미끄러지지 말라며 제몸을 내어주는데... 연탄하면 자동적으로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르면서, 이철환 작가님의 <연탄길>이 생각났어요.

이번 소설에서는 부모를 잃은 남매에게 짜장면을 공짜로 내어주는 일화가 등장하지만 감동의 거품을 완전히 거둬내고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어요.  용팔 씨와 영선 씨 부부가 나누는 솔직한 대화와 그들의 행동을 보면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모질게 굴다가도 어느새 다정한, 딱히 선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우리들의 모습을 닮아 있어요. 특히 용팔 씨의 이중적인 면은 무척 흥미로웠어요. 말투는 거칠지만 속내는 여린, 겉보기엔 그저 중년의 아저씨지만 책을 좋아해서 독서모임을 하고 틈틈이 생각나는 문장을 수첩에 적어가며 소설을 쓰고 있는 예비작가라는 것. 그래서 용팔 씨가 단골 손님이자 독서모임으로 친해진 정 선생과의 대화를 즐거워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책을 매개로 하여 자유롭게 지식과 생각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보면 어쩐지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만큼 작가님이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대목들이 있어요.


"나라 밖에 적이 없고 나라 안에 근심이 없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맹자는 말했다지만, 요즘 대한민국은 너무 소란스럽지 않아?"

"소란스럽다는 건 그만큼의 자유가 있다는 뜻인지도 몰라요. 서로 적대하는 두 세력이 서로를 깔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턱대고 상대를 깔보면 상대의 실체를 못봅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의 이해관계에 따라 혹은 신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고, 

반대의 목소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혁명이 반혁명이 되는 것은 반대의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목소리가 있어야 혁명은 시작되고, 반대의 목소리가 없을 때 혁명은 반혁명이 됩니다."

"그래도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 보편타당성......"   

용팔이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상식에 대한 기준이 다르니까 문제지요. ... "  (125-126p)


가겟세를 올리려는 악덕 건물주 최대출은 용팔 씨네 '고래반점'을 비롯한 세입자들 앞에서는 갑질을 해대면서 국회의원 앞에서는 굽신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용팔 씨의 맏아들 동현의 담임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하라는 잔소리 뒤에 공부 못하면 쓰레기가 된다는 막말을 떠들어대고 있고요. 참으로 못난 어른들의 모습이 소설 속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 실재한다는 사실이 씁쓸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돈과 권력으로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나쁜 놈들을 싸악 혼내주고 싶지만... 과연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기 안의 선량한 마음을 키워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용팔 씨처럼 선뜻 나서지 못한 용기가 어둠 속에 감춰진 빛인지도.


어둠은 어둠이 아니었다. 어둠이 감추고 있는 빛의 실체가 있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그것을 '어둠의 빛'이라 명명했다.

캄캄한 시간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오직 어둠을 통해서만 인도되는 빛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1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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