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박광수 지음 / 청림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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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광수생각>을 즐겨 봤던 기억이 난다.

담백한 그림과 감성을 자극하는 짧은 글 때문에 좋았던 것 같다.

만화가 박광수라는 사람을 나는 잘 모른다. <광수생각>을 즐겨 보긴 했어도 항상 광수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사랑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 사랑은 사과입니다.

처음 우리가 사과를 깎을 때 우리들은 얼마나 정성을 들입니까.

하지만 사과도 그렇듯이 사랑은 신경써서 돌보지 않으면 금새 변색되어 처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과처럼......-

위의 글은 과거 광수생각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랑은 사과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껍질을 깎은 사과의 색이 변했다고 해서 사과가 배로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만약 사랑이 사과라면 깎은지 오래되어 변색된 사과도 처음처럼 봐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사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과를 바라보는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광수생각> 중에서 유독 이 사과에 비유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현재 그는 사랑을 이렇게 말한다.

- 그 사람이 웃으며 내게 물었습니다.

"깨뜨릴까? 깨뜨리지 말까?"

계란이야 어찌되었든,

우리의 사랑은 깨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을 보면서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기에도 좋고 느낌도 좋다. 책 표지는 하늘빛을 닮은 파스텔톤으로 소녀의 일기장과 닮아있다.

이번 책에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담겨 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누구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면 뭉클해지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그런데 왜 가슴으로 전해지는 감동이 없는걸까.

우리의 삶을 그려내고 이야기하는 일들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짧은 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데 그 그림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사과였다. 광수생각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여전히 예쁘고 따뜻하게 느껴질테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깎아놓은 사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그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 뿐이다.

사랑이란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알맹이라면 그것이 변질되기 쉬운 사과나 계란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요즘처럼 푹푹 찌는 여름에는 더욱 그렇다. 흘러가는 물처럼 삶의 모든 것들을 지켜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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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
미헬 파버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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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책을 펼쳐 들었다면 과연 나는 이설리의 정체를 간파했을까?

"이설리는 벌써 몇 년째 이런 일상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낡아빠진 붉은색 도요타 코롤라 승용차를 몰고 A9 간선도로로 나가 순찰을 시작하는 것이다.

성과가 좋아서 자신감이 한껏 치솟을 때조차 앞으로 두 번 다시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태운 히치하이커만큼 만족스러운 대상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서곤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설리의 이 같은 도전에는 약간의 중독성도 없지 않았다. 바로 옆자리에 함께 집으로 가게 될 것이 분명한 멋진 남자를 태우고도, 머릿속으로는 이미 다음 남자를 그리곤 했다. 옆에 앉은 남자의 튼튼한 어깨와 티셔츠 속에서 오르내리는 가슴을 훔쳐보며 그의 알몸이 얼마나 근사할지 상상하는 동안에도, 행여 그보다 더 멋진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쪽 눈으로는 계속 도로변을 주시하는 그녀였다." (15p)

도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히치하이커를 태우는 일을 반복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미 책 소개와 광고를 통해 알게 된다.

<<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동명영화 원작소설 >>

"인간 신분으로 지구에 떨어진 외계 존재의 묵시록적 로드 무비장르적 상상력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는 초현실주의적 SF 걸작"

그런 점에서 요즘 책들은 펼쳐 보기 전에 너무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마치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이설리는 외계인이다.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지구인 남자를 사냥하는 것이다. 왜 사냥하냐고 묻는다면 인간이 동물을 사냥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좀 의외인 점은 이설리의 삶이다. 외계인이면서 지구인과 다를 바 없이 힘든 몸을 이끌고 매일매일 자신의 업무에 매달린다. 일이 끝나면 먹고 잠자고 씻고 다시 일을 나가는 반복된 삶이다. 그녀가 살던 외계행성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로 파견된 것은 굉장히 절망적인 선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슨 형벌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게 아니라면 순전히 생계를 위해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비참한 인간의 모습이랄까.

특별한 능력을 가진 멋진 외계인을 상상했다면 이설리의 모습이나 임무가 너무나 실망스러울 수 있다. 체격 좋은 근육질 남성만을 노리고 차에 태워 농장으로 운반하는 임무를 위해서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육감적인 가슴을 노출하면서 운전하는 것뿐이다. 어쩌면 단순 노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설리에게는 무척이나 괴롭고 힘든 일인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이설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건지 궁금했다. 외계인이라는 정체만 아니라면 인간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다.

무엇보다 황당하면서도 놀라운 존재는 농장 주인의 아들 암리스 베스다. 마치 흔해빠진 멜로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처럼 등장한다. 돈많은 아버지 덕분에 고생이 뭔지도 모르고 곱게 자란 도련님이라서 생계를 위해 일하는 농장 외계인들과는 생각 자체가 다르다. 동물의 인권보호와 채식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전형적인 이상주의자 같다. 근본적인 해결책도 없으면서 혼자 착한 척 하는 느낌이다.

지구를 배경으로 인간의 형상을 한 외계인이 저지르는 인간사냥이 묘하게도 인간의 모습과 겹쳐진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맛있는 고기를 보면서 동물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까? 반대로 소, 돼지, 닭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군침을 흘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도살과정은 생략된 채 깨끗하게 포장된 고기를 구입하기 때문에 아무런 죄의식이나 혐오감 없이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소, 돼지, 닭이 자기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면 인간이 과연 동물을 잡아 먹을 수 있을까?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일까? 문득 이 책을 덮고나니 고기를 먹는 일이 굉장히 잔인하고 파렴치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이러한 생각만으로 육식을 끊기에는 이미 입맛이 길들여졌다는 사실이다.

under the skin 알면 알수록 섬뜩한 현실이다. 머나먼 우주 외계인의 이야기가 우리의 어두운 내면을 들춰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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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 사랑과 전쟁과 천재성에 관한 DNA 이야기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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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에 관한 책이다.

제목에 비하면 좀 딱딱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여러가지 사례를 읽다보면 조금씩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건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DNA 분자를 나타내는 A, C, G, T 라는 4가지 염기라는 것과 염기 배열 순서에 따라 유전 정보가 달라진다는 정도였던 것 같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는 DNA라는 우리 몸 속 이야기와 함께 역사적 이야기를 통해 유전학을 설명한다. DNA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도구이자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제목으로 등장한 바이올리니스트가 궁금할 것이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렸던 이탈리아의 니콜로 파가니니가 주인공이다.

그의 놀라운 연주 실력 때문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 재능을 얻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파가니니를 지배한 것은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DNA였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파가니니는 손가락을 아주 유연하게 만드는 유전 질환인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증후군이 있으면 결합조직의 주성분인 콜라겐을 많이 만들지 못하여 모든 관절이 심하게 뒤로 멀리 구부러지며 새끼손가락을 나머지 손과 거의 직각 방향으로 펼칠 수 있었다고 하니 바이올린 연주자로는 최적화된 손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연주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장점이지만 평생 동안 관절통, 시각 장애, 호흡 곤란, 쉽게 손상되는 투명한 피부, 근육피로 등 건강상의 문제를 초래했다고 하니 안타까운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누구도 자신의 유전자를 선택할 수 없다. 만약 우수한 유전자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궁금하다면 영화 <가타카>를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유전학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면 더욱 알맞은 영화일 것이고 설사 DNA는 전혀 관심이 안 간다고 해도 정말 볼 만한 영화다. 이번 기회에 다시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사람들이 연애를 하면서도 상대의 머리카락이나 타액을 검사하여 우수한 유전자를 가졌는지 파악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피 한 방울, 피부 한 조각, 타액만으로 인간의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건강하고 똑똑한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 유전자 선택을 100% 할 거라고 확신한다. 주인공 빈센트는 자연의 섭리로 태어난 아기였기 때문에 그의 유전자는 심장 질환에 걸릴 확률 99%에 범죄자 가능성을 지녔고 31살에 사망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부모는 빈센트의 운명에 좌절하여 둘째 아이는 완벽한 유전자를 선택한다. 바로 빈센트의 동생 안톤이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완벽한 동생과의 수영 시합에서 이긴 빈센트는 이렇게 말한다.

"난 되돌아갈 힘들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거야"

완벽한 육체보다 앞선 것은 놀라운 정신이라는 것을 보여준 빈센트를 보면서 이것이 기적이구나 느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아무리 완전한 인간 유전체 염기 서열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인간의 본질을 밝혀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의 고백처럼 유전자 검사를 받았을 때 파킨스병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때문에 파킨스병에 관한 정보를 받지 않으려 했던 심정도 이해가 된다. 어렵사리 결과를 봤을 때 파킨스병에 걸릴 위험이 높지 않아 안심했다가 이후에 결과를 갱신하는 과정에서 "파킨스병에 걸릴 확률이 약간 더 높아짐"이란 결과로 바뀌었으니 참 야속한 일이다. 현재 유전학의 수준은 개인에게 유전적 유죄선고를 내리는 데에 그친다. 앞으로 얼만큼 더 발전할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위대한 정신이 존재하는 한, 유전과학은 확실성이 아닌 확률이라는 걸 기억해야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유전과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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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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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마치 오래된 친구 이름처럼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좋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마음까지 흐믓해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간혹 외국작품 중에는 번역이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한 부분 때문에 작품 자체의 매력까지 반감시키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 읽었던 <데미안>은 번역이 문제될 만큼 안 좋았던 기억은 없다.

사실 <데미안>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읽었을 뿐이지, 번역이 더 완벽한 책이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일반 독자에게 번역을 비교하라는 건 그만큼의 자신감이겠지만 <데미안>이라는 작품이 번역에 의해 좌지우지 될 정도로 난해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만난 데미안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제는 싱클레어의 시각이 아닌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의 시각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처음 만난 시기가 열한 살도 채 되기 전이라는 건 어른이 된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린애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심오한 내용이라 어른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 뿐이라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과거를 돌아보면 열 살이라는 나이에는 뭔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봐도 수도원 학교에 입학하여 성직자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자살 시도까지 할 정도로 힘든 십대 시절을 보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해도 청소년 자살은 늘어가고 있다. 무엇이 십대 아이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일까. 헤르만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를 통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십대 소년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누구나 겪어야 할 혹은 겪었던 시절의 모습이며 인간 본질의 내면을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미안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여서가 아니라 우리의 낡은 생각들을 흔들어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생각이 생각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생각으로서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소년이지만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고, 어떤 순간에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면서 늙거나 젊지도 않고, 어쩐지 천 살은 된 것 같은, 아니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와 전혀 다른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 때문에 연극으로 본 <데미안>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데미안인 척 한다는 건 용납될 수 없는 것 같다. 이렇듯 데미안의 존재는 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모습은 이제 완전히 그와, 내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똑같았다." (265p)

<데미안>의 마지막 문장이다. 문득 지금 이 순간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싶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떤 내 모습을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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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나라의 앨리스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38
안트예 스칠라트 지음, 이덕임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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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금융회사에서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인터넷 해킹의 문제가 아니다.

놀라운 문명의 발전으로 여겨지던 인터넷이 오히려 우리의 사생활을 침범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예전에는 유명인을 상대로 한 스토킹이 문제가 되었다면 지금은 소셜 네트워크 시대를 맞아 누구든 개인의 영역이 침해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어떤 유명인은 자신의 속마음을 SNS에 무심코 올렸다가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청소년들 중에는 SNS의 편리성만을 생각하지, 그로인한 폐해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간혹 악플러를 추적해보면 의외로 어린 학생이라 더 충격적인 경우가 있다. 익명으로 자신을 감출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악의적으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은 범죄자와 다를 바 없다.

<인터넷 나라의 앨리스>는 독일의 청소년 소설이다.

주인공 앨리스는 열여섯 소녀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유명인사가 되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질주하는 리타'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파워블로거다. 그런데 앨리스의 글은 읽는 사람은 재미있을 수 있지만 글 속 당사자에게는 모욕감을 줄 정도로 내용이 지나친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앨리스에게 앙심을 품은 아이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앨리스의 단짝친구인 카트야도 블로그에 올린 글 때문에 앨리스와 싸우게 된다. 그리고 앨리스 주변을 서성대는 에드가로 인해 카트야와 묘한 삼각관계가 생기면서 카트야의 사이는 더욱 어색해진다.  

어느날 앨리스에게 미지의 인물 야레드가 이메일을 보낸다.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인데 앨리스는 카트야가 보낸 것으로 착각하고 농담조로 답장을 보낸다. 그 뒤 야레드가 보내는 메일은 마치 위협적인 스토커처럼 변해간다. 불안에 떨게 된 앨리스는 야레드가 분명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아이들 중 한 명이라고 추측한다. 과연 야레드는 누구일까?

 

“디지털 원주민인 너희들이 남긴 온라인 프로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사회적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된단다.”
선생님은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이렇게 형성된 정체성은 일생 동안 너희를 계속 따라다니게 될 거야.”
“그게 뭐 잘못된 거예요?”  (47p)

 

이 책은 바로 앨리스와 같은 청소년들에게 인터넷 세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들의 심리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인터넷 세상은 개인적인 영역이 한순간에 공적인 영역으로 바뀔 수 있다. 서로 얼굴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더 필요한다. 오히려 그 때문에 몰지각하고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어린 청소년들에게 인터넷 세상에서 지켜야할 올바른 윤리의식을 심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앨리스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예방적 차원에서 올바른 인터넷 사용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아이들은 인터넷을 사용한다. 아무런 준비없이 인터넷을 접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것 같다. 어른들 또한 경각심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이 건전하게 인터넷 세상을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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