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하우스
캐슬린 그리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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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은 타임머신 같다.

어느 시대, 어떤 사람으로 살게 된다면? 우리의 삶을 선택할 수는 없어도 소설 속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인생을 엿볼 수 있으니까.

다만 안타까운 건 소설도 인생처럼 결말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끔은 소설의 결말을 읽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해피엔딩을 꿈꾸고 싶어서.

내가 작가라면 절대로 슬프고 괴로운 결말은 쓰지 못할 것이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는 건 재미없으니까.

<키친하우스>를 읽으며 그들의 불행에 눈물을 흘릴 수는 있어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18세기 말 미국 버지니아주 담배농장의 두 소녀가 겪어낸 삶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음으로 전해져 온다.

고아가 된 백인소녀 라비니아는 농장에 팔려와 흑인들이 거주하는 키친하우스에 살게 된다. 라비니아를 돌보게 된 벨은 농장주의 숨겨둔 딸이지만 흑인혼혈로 자신의 출생비밀을 숨긴 채 살아간다. 키친하우스를 책임지는 흑인아줌마 마마와 그의 남편 파파는 미운 오리새끼와 같은 라비니아와 벨에게는 부모와 같은 존재다. 책으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족의 의미를 그들은 가슴으로 느끼게 해준다. 반면 농장주와 마님 그리고 아들 마셜은 너무 실망스럽다. 백인우월주의에 빠져 자신이 어떤 죄악을 저지르는지 모르고 있다. 무지로 인한 죄악이라고 해서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놓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빅하우스에 살고 있는, 아편에 빠져 무기력해진 마님이나 자신의 여동생을 죽인 마셜도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불행은 공감할 수 없는 불행이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데 이겨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흑인노예들처럼 철저하게 지배당하는 삶과 비교할 수 없는 불행이다. 오히려 마마와 파파는 견딜 수 없는 불행을 참아내며 가족들을 지켜냈으니까. 피부색이 달라도 친딸이 아니어도 자신의 딸로 받아들여준 그들의 사랑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겉보기에는 그저 노예로 보이겠지만 마마와 파파는 진정한 삶의 주인이다.

이 소설은 라비니아와 벨, 두 소녀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소녀가 여인이 되고 인생을 알아가면서 겪게 되는 불행이 마치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인 것 같아 읽는 내내 힘들었다. 인생의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피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현실이 아닌 소설에서조차 꼼짝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던 것 같다. 소설이 아닌 현실이었다면 달랐을까? 아닐 것이다. <키친하우스>의 라비니아와 벨은 미국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흑인노예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의 일부분일 것이다. 역사책으로만 보는 것과 소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흑인노예의 실상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누구든 그 시대에 흑인노예로 산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면서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노예제도, 인종차별이 얼마나 끔찍한 죄악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불행을 피할 수 없다면 좀더 현명하게 불행을 견디는 방법은 없을까?

백인이지만 노예로 살았던 라비니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다른 사람 손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마셜과의 결혼은 최악이었다. 그리고 벨은 자신이 농장주의 딸이라는 사실을 진작에 밝혔어야 했다. 일부러 숨긴 것인지 말할 기회가 없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출생의 진실을 숨겨서 더 큰 불행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머나먼 과거에 벌어진 두 소녀의 삶을 보며 절망하면서도 한 줄기 빛처럼 찾아낸 희망이 있다. 그건 가족의 사랑이다. 혈연을 나눈 가족이 아니어도 마음을 나누면 가족이라는 것, 그들의 믿음과 사랑이 불행한 현실을 견디는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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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살리는 역설 건강법 - 금오 김홍경의
김홍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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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건강서적을 보면 우리가 알던 건강상식을 뒤집는 내용이 나온다. 왜 그럴까?

무엇이 제대로 된 건강상식이고, 무엇이 잘못된 건강상식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건강상식으로 알고 있는 지식 중에 일부는 출처가 불분명한 누가 이렇다더라는 이야기로 습득한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아침 공복에 산에 올라 약수를 마시는 건 몸에 좋을까? 아니면 나쁠까?

이 책은 김홍경 한의사가 알려주는 건강법이다. 핵심은 "지식보다 먼저 몸과 직관에 감응하라!"는 것이다. 동양의학은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심신불이를 근본으로 한다.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볼 때 동양의학은 눈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까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시술이라고 비하할 수 있다. 하지만 질병에만 초점을 맞춘 현대의학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살필 줄 아는 동양의학의 효능이 점점 입증되는 것을 보면 무엇이 우리 몸을 살리는 길인지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의사로서 한의학이 더 우수하다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학의 장점을 제대로 알고 현대의학에만 맹신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무엇이든 맹신하는 것은 좋지 않다.

흔히 텔레비전을 통해 특정음식이 몸에 좋다고 방영이 되면 전국적으로 그 음식의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근본적인 건강상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편협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따로 정해놓을 필요없이 신선한 자연식품을 골고루 섭취하면 되지 않을까.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듯이 먹는 음식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굳이 남들이 좋다고 떠드는 음식을 똑같이 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처음에 말했던 아침 공복에 마시는 약수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땀흘리며 아침 운동을 하니 몸에 좋을 것 같고, 상쾌한 공기와 함께 시원한 약수를 마시니까 이보다 더 좋은 건강법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3개월을 한 어르신이 알레르기성 비염에 걸려 고생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의사는 공복의 약수가 원인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한의학에서는 약수가 독이 되었다고 알려준다. 격렬한 운동으로 땀을 흘린 경우에 찬물을 들이키는 건 양기를 떨어뜨리고 차가운 기운때문에 병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여름 더위에 냉수나 차가운 음료수를 많이 먹어 배탈나는 일이 많은 것이다. 갈증이 날 때는 따뜻한 음료수가 몸에 좋다. 여름에 지친 기운을 돋우기 위한 보양식이 '이열치열', 뜨끈한 삼계탕인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매우 지혜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잘 먹고, 잘 살고, 잘 키우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질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몸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몸과 마음을 두루 살피자는 것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자체가 건강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유명연예인들이 우울증이다, 공황장애다,라고 밝히면서 마음의 병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비단 유명연예인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건 마음의 병도 감기처럼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몸을 챙기듯 마음을 챙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부분은 각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건강에 관한 책들의 공통된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부지런히 걸어라!"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아는 이 방법으로 건강을 지켜보면 어떨까. 그래도 좀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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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파란만장하시라 - 컬투 정찬우의 돌직구 인생법
정찬우 지음 / 청림출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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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컬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컬투 정찬우님이 책을 썼다고? 다들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어떤 책을 썼을까?

그런데 이 책은 정찬우님이 쓴 책이 아니라 떠든 것을 적어낸 책이란다. 너무 솔직한 거 아냐?

역시 컬투다. 솔직하고 화끈해서 좋다.

말로 웃기고 울리는 타고난 입담꾼답다.

근래 유명연예인들의 책이 많이 출간되는 것 같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는 점에서 저절로 홍보가 될 것이고, 내용과 상관없이 그 당사자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당연히 구입할 거라는 속셈?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이라면 오히려 대중 입장에서 좀더 알고 싶고, 그러한 요구를 책으로 보여준다면 서로 만족스러운 거니까.

정찬우님도 이전부터 책을 내보자는 제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경험이 많으니까. 하지만 전문적인 작가도 아닌 사람이 글을 쓰고 책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인터뷰해서 책을 낸다고 하니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던가보다.

나도 가끔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글로 써지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 적이 있는데, 단순히 말이 글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전달할 수 있게 다듬어진 글로 전환되는 것 말이다. 편지를 쓸 때도 쓸 말은 많은데 막상 한 글자 적기가 어려운 것을 보면 말 잘하는 것과 글 잘쓰는 것은 별개 영역인 것 같다. 말은 의미전달만 되면 대략적으로 이야기해도 괜찮지만 글로 쓴다는 건 단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서 좀더 신중하게 되는 것 같다.

어찌됐든 시원하게 말 잘하는 정찬우님의 말을 알기 쉽게 잘 다듬어 쓴 이 책은 두루두루 마음에 든다.

<안녕하세요>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 대한민국 고민을 해결해주는 컬투의 역할을 이 책에서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여러 사람의 다양한 고민에 대해서 '내가 해결해줄게'가 아니라 '나는 이랬어'라고 말해준다. 세상에 아무 고민없이 살았을 것 같은 사람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 괴롭고 힘든 사정이 있다는 걸.

"기꺼이 파란만장하시라"

공감한다. 철없던 시절에는 어려운 고비마다 불평이 먼저 튀어나왔던 것 같다. 그런데 살다보니 알 것 같다. 산다는 게 원래 힘든 거라고. 힘든 줄 알면서도 왜 사냐고 묻는다면? 그건 정찬우님의 어머니 말을 슬쩍 빌려 말하고 싶다. 누가 대신 답해줄 수 없는 것,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겠지.

세상에 365일 괴롭고 힘든 사람도 없고, 365일 즐겁고 기쁜 사람도 없다. 내가 힘들 때는 나만 힘들고, 남들은 다 편해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잠시만 주위를 둘러보면 힘든 건 나만이 아니다. 오늘 힘들어 눈물 찔끔나다가도 내일 웃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더라.

파란만장 정찬우님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니 깊이가 느껴진다. 우여곡절 인생사를 거치면서 단단해진 느낌이 든다. 흔들림 없이 설 수 있는 사람? 아니, 흔들려서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사람? 인생이 원래 꼬이고 깨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철드는 과정인 것 같다. 그래서 많이 흔들리고 깨져본 사람이 잘 일어설 수 있는 것 같다.

수많은 고민을 보면 분명 당사자에게는 괴로운 일이겠지만 수긍하고 바라보면 그 고민조차 나를 키워가는 자양제라고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없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면서, 나 자신의 고민도 스스로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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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소년 2
이정명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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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윤 피살사건 1급 용의자 안길모의 심문조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위 질문의 대답이 2권의 결말이다.

<천국의 소년>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뻔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전이 있다.

길모와 날치는 마카오 카지노에서 도박에 손을 댄다. 이유는 한 가지, 영애의 엄청난 빚을 탕감하기 위해서.

평생 배고픔을 짐짝처럼 메고 다닌 소년, 날치는 길모의 유일한 친구였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처럼 죽고 싶다던 날치는 결국 더 높은 하늘나라로 갔고, 길모는 영애를 쫓아 서울로 향했다. 길모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대한민국에서 길모를 맞이해준 사람은 교화소 소장 윤영대.  그는 남한에서 탈북자를 돕는 단체를 만들어 윤회장으로 불리며 모범적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윤회장은 겉으로는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철저한 자본주의자가 되어 돈을 맹신했다. 길모를 이용하여 주식투자를 하고 부자 노인을 속여 길모를 북한에 두고 온 혈육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정말 부자 노인은 길모를 자신의 손자라고 생각했을까?  길모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중요한 건 있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있다고 믿는 거예요. 하늘에 아버지가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요구하는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고 길모를 손자로 받아들였다. 정말로 우연의 일치였을까? 할아버지가 젊은 아내와 헤어지면서 나눴던 이야기. 중요한 것은 내가 곁에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말이다.

무엇이 진실이든 우리에게 믿는다는 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윤회장은 비열하게 길모를 이용하여 돈을 벌었지만 그가 믿는 건 '돈'이었다. 얼만큼 벌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돈이 주는 믿음이 자신을 얼만큼 지켜줄까?  과연 윤회장은 행복했을까?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 사람의 삶이니까.

 

"영애야, 복리를 계산하는 법과 오일러 수의 기능과 해법을 안다고 내가 돈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돈을 바라보고, 날치는 돈을 탐하지만 돈의 주인은 되지 못했어. 돈은 누구에게도 소유를 허락하지 않는 고집 센 아가씨 같아. 누군가 품에 안으려 하면 달아나버리니까.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적게 가진 사람은 가진 것이나마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모두가 불행하긴 마찬가지지.

공화국에서는 많이 가진 사람도 적게 가진 사람도 없었어. 모두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니까. 그때 우리는 행복했었나?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지고 해. 돈을 몰라서행복했지만 돈이 없어서 불행했으니까....... 너의 길모."

 

자본주의에서 돈은 총과 칼보다 무서운 흉기가 된다. 공화국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만 이 도시에서는 돈이 사람을 죽인다. 약한 자들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열심히 늦은 밤까지 일해도 생활은 쪼들리고 빚은 늘어가는 마트 아줌마.  아줌마는 자신을 잡아먹고 있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소년에게도 타인의 아픔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숫자는 0이야.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가 더해지거나 덜해지면 괴물이 되는 건 시간문제거든.

1에 0을 더하면 1이 될 것 같지?

아냐. 1에 0을 더하면 10되지. 거기에다 또0을 더하면 100이 되고...... 빚은 스스로 증식하는 괴물이야." (122p)

 

윤회장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영애. 보통 사람이었다면 자신을 배신한 영애를 미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길모에게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영애는 길모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윤회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길모 또한 영애를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따라간 것이다. 남들은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적고 싶다.

길모는 자신을 심문한 CIA요원 안젤라에게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모든 걸 고백한다. 

참이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수학적 명제.

부정도 증명도 할 수 없는 문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 안길모는 '나는 거짓말쟁이다'라고 살인현장에 메시지를 남겼고 그는 진실을 위한 거짓말을 했다.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소년을 통해 진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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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소년 1
이정명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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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야,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란다. 그걸 잊으면 안 돼!"

"선생님.  세상은 아름다워요. 왜냐면 세상은 수로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은 자기가 아름다운 걸 어떻게 알죠?"

"세상은 수많은 눈을 가지고 있어. 아주 작고 예쁜 눈들 말이야.

그 눈은 별들, 나뭇잎들, 소라들, 달팽이들, 고양이들, 잠자리들, 박쥐들의 눈이고 우리의 눈이야.

우리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세상은 비로소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는 거야."

 

   - 수학 선생님과 길모의 마지막 대화 중에서 101p

 

안길모. 소년의 이름이다. 북한에서 태어난 소년은 수학천재이며, 자폐성향이 있다. 아버지는 원래 평양 의대의 유능한 외과의사였는데 최고 간부를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면허를 빼앗기고 장의사가 되었다. 그래서 소년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죽음배달부다. 구두닦이가 구두를 광내듯, 죽음은 아버지의 손끝에서 우아하게 태어났다. 소년은 아버지를 도우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그건 용감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없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와 소년은 교화소로 끌려간다. 벽장에 숨겨둔 성경책 때문에. 어머니는 함께 가지 않는다. 그럼 어디로 가신 걸까?

소년의 삶은 고된 노동과 배고픔의 연속이다. 교화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를 보며 소년은 울지 않는다. 슬픔이란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3-1-1=1

홀로 남겨진 소년이 알고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숫자밖에 모르는 소년에게 교화소에서 만난 소녀는 뭔가 특별하다. 영애. 소녀의 이름이다. 소녀는 날이 선 말들로부터 도망쳐 소년의 특별한 언어의 영토로 들어온 유일한 사람이다. 영애의 아버지, 강씨 아저씨는 길모와 함께 교화소의 장부를 관리한다. 하지만 교화소장의 의심으로 강씨 아저씨는 죽고 영애는 교화소를 떠나게 된다. 영애를 보살펴달라는 강씨 아저씨의 마지막 부탁이 있었지만 길모는 함께 가지 못한다. 그러다가 장부 뒤표지에 붙어 있는 보라색 우표를 발견한다. 그건 영애의 우표.

길모는 영애의 우표를 배달하기 위해 교화소를 몰래 탈출한다.

국경부근에 좀도둑 패거리에 붙잡혀 있던 길모는 자신을 감시하던 날치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수학천재, 길모라는 소년을 통해 바라본 북한의 모습은 너무도 처절하고 비참하다. 오히려 감정을 제거하니 더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세상을 수학처럼 이분법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과 악, 기쁨과 슬픔, 옳고 그름...... 삶과 죽음. 그러나 우리의 삶이 끝난다고 해서 정말 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믿었던 길모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행복했을까?

이 소설은 어떤 느낌보다는 자꾸만 질문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는 어땠을까? 그녀는 어땠을까?

소년에게 수학은 존재의 의미처럼 느껴진다. 수학선생님과 나눈 대화처럼 소년은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아무리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영애의 얼굴은 눈동자에서 앞니 끝, 앞니 끝에서 턱 끝에 이르는 1 : 1.618 의 황금비가 있다. 코 중심선에서 눈 가장자리의 거리와 눈의 가로 길이도 황금비다. 그래서 그녀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소년은 행복하다. 소년에게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말은 영애를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

소년은 누구에게는 바보처럼, 누군가에겐 천재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름다움을 사랑한 소년으로 보인다.

영애를 따라 길모와 친구 날치는 두만강을 건너 연길에서 상하이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살기 위해 각자 몫의 일을 한다.

그러나 세상이 바라보는 안길모는 다르다. 살인 현장에서 뉴욕 경찰에게 붙잡힌 아시아계 남성이며 그의 가방 속에는 위조여권 아홉 장과 의문의 수첩을 가진 악질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만약 소년이 살아온 긴 여정의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면 나는 그를 무엇으로 생각했을까?

 

"수학적으로 우연이란 없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지.

넌 지구상의 한 점을 떠난 끈의 끝이고

나는 다른 쪽 끝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거든."  (280p)

 

순수하게 소녀를 향해 달려가는 소년과는 달리, 소녀는 더 이상 소년이 알고 있던 영애가 아니다. 영애는 변했지만 소년은 변함없이 소녀를 찾아 나선다. 영애는 자본주의자가 되어 더 자유롭고 더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소년과 소녀는 마치 우리의 이상과 현실 같다. 서로 맞물려 함께 가면 좋겠지만 현실 앞에 이상은 늘 뒤쳐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1권을 덮으며 안타까웠던 것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 현장에 붙잡혀 CIA 요원의 심문을 받고 있는 안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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