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중간의 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정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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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한국의 정서와 너무나 흡사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결혼은 왜 희생이 강요되는 것일까요?

아무리 양성평등을 외쳐도 여전히 여성에게 강요되는 역할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이 행복이 아닌 족쇄가 될 때...

<언덕 중간의 집>은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심리 묘사가 돋보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이라면 백퍼센트 공감할 정도로 소름돋는 이야기.

같은 여성이라도 미혼이거나 손주를 둘 정도로 나이든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아픔을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그 아픔에 공감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일지도...

리사코는 4년 전 스물아홉 살 나이에 결혼하여 세살배기 딸아이를 둔 전업주부입니다. 결혼 당시 리사코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는데 결혼 후 곧바로 임신하여 심한 입덧과 빈혈 때문에 아기가 걱정되어 직장을 그만둡니다. 그 후 3년 동안 몇 번이나 그때의 선택을 후회할 정도로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시기를 견뎌내며 아이 곁에 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 요이치로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퇴근이 늦는 날이 많지만 일찍 퇴근하면 딸 아야카의 목욕을 시켜주는 자상한 아빠입니다.

평범한 리사코의 일상을 깬 것은 바로 형사재판의 보충 재판원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작년엔가 재판원 제도 공문이 온 것을 반송하지 않는 바람에 수락한 것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어린 아야카 때문에 걱정하던 리사코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공판에 참석합니다. 오랜만에 공들여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고 나선 리사코는 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그녀가 담당하게 된 사건은 영유아 학대 사건입니다. 도쿄 도내의 삼십 대 여성이 물 받은 욕조에 생후 8개월 된 딸을 떨어뜨렸고 퇴근한 남편이 발견하여 구급차를 불렀지만 딸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떨어뜨렸다며 사고가 아닌 고의성을 인정하여 살인죄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미즈호.

검사의 설명에 따르면 미즈호는 몹시 악독한 여자인 반면, 변호인의 설명에 의하면 그녀는 매우 가엾고 연약한 엄마라서 오히려 남편 쪽이 피고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법정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양쪽의 의견은 이렇게 달랐고 리사코를 포함한 재판원들은 공판 과정에서 각자 의견을 나누게 됩니다. 리사코는 자신의 아이를 죽인 미즈호를 끔찍하게 바라보면서도 점점 미즈호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살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미즈호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외로움에 공감한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미즈호는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멋진 집에서 예쁜 아기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벌어졌을 비극이라는 것. 미즈호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 공교롭게도 미즈호의 집은 리사코가 열심히 돈을 모아서 언젠가 살고 싶었던 집이었습니다. 상상으로나마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젠 더이상 상상할 수 없습니다. 리사코는 피고를 심판한 것이 아니라 줄곧 자신을 심판하고 있었습니다. 미즈호가 저지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 역시 피해자였음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리사코는 미즈호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결혼과 동시에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사느라 '나'는 없었던 삶. 남편 요이치로에게 빼앗긴, 아니 스스로 얌전히 던져버린 자아.

겨우 열흘 간의 재판이었지만 리사코는 새로운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책을 덮으며 리사코를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응원했습니다.

* 이 소설에 나오는 매우 현실적인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의 에피소드 (181p)

... 웬만해서는 감기도 걸리지 않는 내가 그만 열이 나고 말았다. 요이치로를 출근시키고 나서 열을 재니 38도나 되었다. 아야카에게 옮을까봐 걱정되면서도 바로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이에게 애니메이션 DVD를 틀어준 채 리사코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때 시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왔다. 용건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리사코는 자신이 열이 나서 누워 있다고 전했다. 아야카를 돌보러 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어머, 열이 난다고? 감기가 왔나 보구나. "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내가 가서 밥해주마. 라고 덧붙였다.

"괜찮아요." 리사코는 사양했다. "아이 점심 정도는 그럭저럭 해 먹일 수 있어요. 저는 식욕이 전혀 없고요."

"아니, 아범은 어떡하니?" 시어머니가 물었다.

순간 리사코는 무슨 말인가 하고 어리둥절해하다가 겨우 이해하고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창피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저녁을 걱정하고 있을 뿐인데, 자신은 김칫국부터 마셨던 것이다. "괜찮아요, 그이는 오늘 회식이 있대요."라고 순간적으로 내뱉은 거짓말까지 리사코는 기억하고 있으며, 몇 달이나 지난 일을 여전히 되새기는 자신을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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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9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가 옮을까 ㅡ자신의 아기를 걱정하듯 ..시어머니도 자신의 아기(?ㅎㅎ) 를 걱정할 뿐인데..어른이 되서 그러면 안된다는 인식이 있나봐요 . 참 이상해요 . 왤케 그런것들이 서운하고 묘하게 왜곡되게 미운지..

잘 읽고 가요 . ^^
 
취향의 탄생 -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의 비밀
톰 밴더빌트 지음, 박준형 옮김 / 토네이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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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슨 색을 좋아하나요?

그러면 왜 그 색을 좋아하는지 말해주세요.

아마도 첫번째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있겠지만 두번째 질문은 망설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냥"이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왜 싫어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거의 없을 겁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통해서 자신만의 취향을 갖게 됩니다. 바로 그 취향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가 됩니다.

또한 취향은 우리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취향의 탄생>에서는 음식, 온라인 평가, 넷플릭스 영화, 음악, 소셜미디어 활동 등을 통해 취향에 관한 심리학적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흔히 "취향은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취향에 관한 연구를 통해 감춰진 심리를 분석할 수는 있습니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만들어진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반응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를 수 있는데 그건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고 싶은 환상 때문입니다. 환상이든 진실이든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은 온라인 덕분에 유행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관심사와 유행을 선택하는 것은 좋지만 선택의 주체가 항상 자신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보면 삶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든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만의 취향을 가질 수 있고, 그 취향을 통해서 개성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한 마니아들이 꽤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걸 통해 행복함을 느끼니까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만의 취향'이란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알려주는 나만의 취향을 갖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거나 이유를 알기 전에는 좋아하지 않을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넘어설 것.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말로 표현할 것.

카테고리로 묶어볼 것.

쉽게 좋아할 수 있다면 믿지 말 것.

보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만 보일 수 있으므로 좋아하는 것을 학습해 볼 것.

취향을 알고 싶다면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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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
닉 태슬러 지음, 강수희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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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는 변화에 대처하는 리더십에 대한 책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변화를 일으키는 '한 방'을 도미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건 맨 앞의 도미노를 어떻게 쓰러뜨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변화도 유도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극복하는 주체가 매우 중요합니다. 조직의 리더라면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집단이 필요합니다. 변화에 대처하는 유능한 리더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향식 방식과 하향식 방식 양쪽 측면에서 모두 조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훌륭한 결정가가 되려면 선택을 분명히 표현해야 합니다. 결정 없이는 리드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예상되는 변화를 감지하고 전략적 변화 결정을 하고, 팀원들이 한 곳을 보고 달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팀원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방향성을 부여하는 비결로 강조한 것이 90일 단거리 경주와 대기목록입니다. 변화를 확실히 하기 위해 우선순위 중에서 90일 동안 집중할 것 세 가지를 추리고 나머지는 대기 목록에 넣는 방법입니다. 90일이라는 기간은 큰 목표를 관리할 수 있는 작은 단위로 감당할 만하고 행동할 만한 기간입니다. 어떤 특정한 변화가 팀원들에게 정착되려면 아무리 원해도 일주일이나 한 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변화를 추진할 때는 명확하고 단호한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전략은 필요한 일을 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딱 세 가지만 명시한 90일 단거리 경주는 초과 달성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고 목표에 좀더 의욕적으로 집중할 수 있습니다. 대기목록은 미리 정해둬야 추가적 변화가 아닌 결정에 의한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매일 벌어지는 긴급 상황처럼 피할 수 없는 변화를 대처하는 방법은 우선순위 시간 활용법으로 매일 15분만 조직의 최상위 목표에 시간을 낼 수 있으면 됩니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유능한 리더가 필요합니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면서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리더.

우리 자신부터 변화의 리더십을 갖추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릅니다. 도미노는 사람들이 방향을 바꾸도록 설득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걸 알려줍니다. 리더가 앞서 가는 차량이라면 뒤따라오는 차량이 의식적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확실한 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디로 방향을 전환해도 뒤차가 따라갈 수 있습니다. 리더는 뒤차가 방향을 틀 수 있도록 깜빡이를 켜주고, 룸미러로 뒤차의 깜빡이가 켜지는지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변화 리더십은 지속적인 소통 속에서 실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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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 시간.언어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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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권을 읽을 때는 뭔가 예기치 않은 장소에 간 듯한 어리둥절한 느낌을 처음에 받았습니다.

관객들과 함께 했던 인문학 콘서트를 책으로 만들다보니 공연 그대로가 아니라 주제를 중심으로 또다른 공연이 펼쳐진 듯한 구성이라서 그런 듯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2권을 읽을 때는 조금 익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이것이 철학카페구나라는 느낌?

일상에서 철학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철학은 늘 일상에 녹아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시간과 언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꽤 철학적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니까요.

소설가 윤성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망연자실이라는 단어를 되게 좋아해요. 망연자실, 어리둥절, 이게 제 인생의 키워드인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이 있어요. 내가 왜 여기 서 있지? 기억상실증처럼 그러고 있을 때 맨 처음 영상처럼 떠오르는 사건이 있는데 매번 달라요. 영상처럼요.

소설을 쓸 때 제가 저 자신을 버리고 3인칭으로 쓰려고 노력하는 건 맞지만 어쨌든 쓰는 건 저라는 사실은 버릴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가는 소설을 잘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 필요가 있어요. 소설 주인공에겐 어쨌든 나 자신이 투영되기 마련이에요." (183p)

제가 느낀 시간도 비슷한 듯 다릅니다.

누군가 제게 "너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잖아."라고 말해줄 때, 제 기억에는 전혀 없는 일이라서, "무슨~ 그건 내가 아니지."라고 잡아 뗐습니다. 기억에 없으니까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과연 내 기억이 확실한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은 우리에게 각자 방식으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아무런 거림낌없이 조작되는 사실들. 무엇이 진실이냐가 아닌 존재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와 관련된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또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7부작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말하는 '잃어버린 시간'이 '잊어버린 시간'이 아니듯, '되찾은 시간'도 '다시 기억난 시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되찾은 시간'은 잃어버린 삶의 진실과 의미가 되살아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읽지 않았는데도 워낙 여러 곳에서 인용되다보니 그 누군가의 해석이 내 것인양 받아들여집니다. 작품은 몰라도 의미는 알 것 같습니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과거들을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면 되지 않을까.

다음은 심보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의 한 구절입니다.

"내게 인간과 언어 이외에 의미 있는 처소를 알려다오.

거기 머물며 남아 있는 모든 계절이란 계절을 보낼 테다.

그러나 애절하고 애통하고 애틋하여라. 지금으로서는

내 주어진 것들만이 전부이구나." (333p)

인간과 언어에 대해서 시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달리 어떤 말을 덧붙일 필요없다는 게 '시'가 주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심보선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는 무엇이다' 정의하는, 아까 누구였죠? 여자 주인공이? 아, 아그네스의 언어 '참, 잘생기셨어요'라고 하는 진실의 언어. 거기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 하면 선생님께서는 사실과 진실을 말씀하셨지만 저한테 중요한 건 행복이거든요. 제가 여기서 행복을 증언하는 당신이라고 얘기했는데, 사실은 그 사장이나 간부들이 그 말을 듣고 중요한 것은 행복해졌다 하는 거고, 그리고 행복한 현실이 만들어졌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너느 이렇다'가 아니라 '너는 사실 못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잘생겼다', 일종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인 것 같아요. 사실을 넘어서는 행복한 현실을, 사실을 극복하는 행복한 현실을 시가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340p)

철학가처럼, 소설가처럼, 시인처럼 멋진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무척 공감하는 일상의 언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그런 희망 혹은 의지를 갖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철학 카페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해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해답을 찾아가는 '나' 자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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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 혁명.이데올로기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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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용규의 철학 카페에서 인문학 콘서트가 열립니다.

초대손님은 시인 김선우와 소설가 김연수입니다.

이 책은 혁명과 이데올로기라는 주제를 통해 시민으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똑같은 단어도 어떤 시기에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라는 낭독 공연을 보면 크레온 왕에게 하늘의 법을 내세워 저항하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안티고네를 만나게 됩니다. 크레온 왕의 조카딸이자 며느리가 될 그녀는 반란을 일으켜 역적으로 몰린 오빠의 장례를 치름으로써 신의 법을 따릅니다. 결과적으론 왕의 법을 어긴 것이지만 이에 앞서 그녀는 옳다고 여기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로 인해 다가올 불행을 당당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저자는 안티고네를 통해 시민불복종과 직접행동의 지침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강연에서는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같은 학자들이 구상하는 21세기의 혁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포스트 안티고네가 등장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저항의 목적과 방법이 더욱 일상적이고 다양하게 확장된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2002년 영화배우 마틴 쉰이 내레이션을 맡은 다큐멘터리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이 미국 PBS에서 방송되면서 유명인사가 된 포포비치를 들 수 있습니다. 포포비치는 자신이 개발한 '웃음행동주의'에 바탕을 둔 다양한 아이디어와 비폭력적인 저항 전술을 전파함을써 전 세계의 시위 문화를 비폭력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시민불복종과 직접행동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야기하는 모든 법률, 제도, 명령, 관행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이야말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탐욕적인 성격과 폭력성을 '몰아세움'과 '닦달'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가가 현대 과학기술의 특성이라고 규정한 '몰아세움'과 '닦달'이라는 용어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자유화를 원칙으로 세계화되면서 전세계의 환경과 인간을 극단으로 몰아세우고 닦달하여 그것들을 오염시키고 파괴합니다. '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최상의 가치가 되고, 이러한 긍정성이 과잉인 사회가 우리를 점점 더 극단적인 자기 닦달로 몰아가고 급기야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개인은 좌절감, 자기상실에 빠지게 됩니다. 지젝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내재적 모순과 구조적 불균형에서 오는 한계와 무능력이 드러날 때마다, 즉 점점 더 "썩을수록"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바꾸는 혁명화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바로 썩을대로 썩은 한국 사회의 모습이야말로 혁명의 도래기를 맞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혁명은 필요에 의한 변신 작업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금기어로 인식된 것인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시인 김선우와의 대담에서 '일상이 혁명이다. 모든 순간이 혁명이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김선우 시인의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에 실린 <사랑에 빠진 자전거 타고 너에게 가기>라는 시는 혁명을 이토록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구나라는 걸 알려줍니다.

"....사랑에 빠져서 정말 좋았던 건 세상 모든 순간들이 무언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 (217p)

우리에게 소중한 건 일상에 있습니다. 이러한 일상에 비해 이념이니, 혁명이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들은 얼마나 끔찍하고 부질없는 것인지.

원래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긍정적인 의미로는 이념 또는 사상, 부정적인 의미로는 허위의식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역사와 현실을 왜곡 또는 전도하여 만든 허구적인 이념과 사상'을 가리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건 정치이념을 이데올로기로 몰아가는 세태입니다.

모스크바 재판을 다룬 아서 쾨슬러의 장편소설 <한낮의 어둠>이라는 낭독 공연을 소개한 것은 이데올로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희생된 사람들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혁명가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혁명가들의 비극은 그들의 목적이 사악하지 않고 오히려 숭고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신들은 진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굳은 믿음이라서 더 처절하고 끔찍합니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자는, 밤이 오면 횃불을 켜듯이 이제는 혁명을 일으켜야 할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혁명가가 되어어 한다고, 그것이 시대적 소명이라고. 다만 이데올로그로서의 혁명가가 되어선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므로 어떻게 하면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지 않는 혁명,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않는 혁명을 수행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밤은 노래한다>에서 마지막 장면이 도스트옙스키적인 해결책이냐는 저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 찝찝한 거죠. 찝찝함에도 불구하고 살려둔 거죠. 그게 제가 생각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어디서 그걸 직관적으로 깨달았는가 하면요. 입체 사진을 봤는데 두 개가 핀트가 안 맞잖아요? 다른 부분들이 존재하고 있죠. 그걸 렌즈로 들여다보면 두 상이 합쳐지면서 입체가 생기는 거죠. 약간 다르다는 것의 찝찝한 느낌, 이런 게 같아지면 모노로 딱 또렷하게 보일 텐데 하는 찝찝함을 놔두고 견디는 것 자체가 이 세계의 어떤 깊이를 주는 게 아닐까, 그때부터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예를 들면 이분법 같은 거나 양자택일하는 문제들, 어릴 때 많이 물어보잖아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럴 때 대답을 하지 말자는 해결책을 발견하고 난 뒤에 알게 된 거예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걸 할 건가? 저걸 할 건가?' 할 때 두 개 다 하는 게 정답이더라고요. '국제주의냐, 민주주의냐'라고 했을 때 같이 하는 대신에 찝찝함을 견디는 거죠. 한쪽이 깨끗해지는 건 없다는 거죠. 아까 생각하기에 그 견디는 게 남을 위해 참는 거잖아요? 싹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참는 것.

<한낮의 어둠>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던 배 밑의 짐, 그 윤리하는 것, 그렇게 꼴 보기 싫은 것들을 나한테 큰 해를 안 끼치는 한에서 참고 견뎌주는 것이 윤리가 아닐까라는 제 생각이었습니다." (393-394p)

이보다 더 적절한 답변이 또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으로서 또는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한낮의 어둠을 이겨내고 밤을 노래할 수 있는 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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