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고양이개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68
노부미 글.그림, 고대영 옮김 / 길벗어린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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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해서 더 재미있는 그림책,

바로 노부미 작가의 <이상한 고양이개>랍니다.

건이는 개를 키우고 싶대요.

율이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대요.

그래서 다음날 엄마는 '고양이개'를 데려왔어요.

세상에나, 무슨 짬짜면도 아니고, 고양이개라니요?

엄마 말로는 "아빠는 개고, 엄마는 고양이여서 고양이개가 된 거 아닐까?"라고 하시네요.

진짜 그런 게 있을까요?

사실은 엄마도 잘 모르지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한 거래요. 어쨌든 고양이개 이름은 '야옹멍멍이'로 정했어요.

그때 야옹멍멍이가 소리를 냈어요. "야옹멍멍!"

건이와 율이는 야옹멍멍이가 뭘 먹는지 궁금했어요. 엄마는 "물고기소를 먹지 않을까?"라고 하시네요.

엥? 이건 또 무슨 얘기죠?

물고기예요, 소예요?

머리는 소, 몸통은 물고기처럼 생긴 '물고기소'가 바다나 강에서 음매찰방거린다고 상상해보세요.

왠지 엄마 말이 거짓말 같죠?

엄마는 야옹멍멍이를 위해서 고양이 사료와 개 사료를 섞어서 줬어요.

야옹멍멍이는 고양이처럼 가르랑가르랑하다가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어요.

또 목줄을 보면 좋아하지만 산책을 가려고 목줄을 매면 발길질하며 싫어해요.

야옹멍멍이는 정말 이상해요.

율이와 건이는 야옹멍멍이가 이상해서 더 좋아요.

엄마도 야옹멍멍이가 이상해서 참 좋아요.

사실 그동안 야옹멍멍이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따돌림을 당했어요. 고양이도 아니고, 개도 아니라서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날, 엄마가 야옹멍멍이를 발견했고, "얘가 가장 멋져요."라고 말해줬어요.

야옹멍멍이는 너무나 기뻤어요. 야옹멍멍이는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진짜로 진짜로, 고양이개 '야옹멍멍이'와 함께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전 세계에서 텔레비전과 신문사 기자들이 아주 희귀한 동물이 있다며 몰려왔어요.

야옹멍멍이를 훔쳐가려는 도둑들이 몰래 집에 들어오기도 하고,

집안을 엿보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어요.

엄마는 이불도 못 널겠다면서 점점 더 짜증을 냈어요.

야옹멍멍이는 너무나 미안해서 집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어요. 하지만 길을 몰라서 다시 가족에게 돌아왔어요.

엄마는 야옹멍멍이에게 사과했어요. "짜증내서 미안해."

"야옹멍멍"  괜찮다는 뜻이에요.

야옹멍멍이도 엄마가 이상해서 참 좋아요.

다행인 건 이웃집에 더 희귀한 '물고기소'가 나타나서, 모두들 이웃집으로 몰려갔다는 거예요.

이 그림책을 보면서 "이상해서 참 좋아."라는 말이 엄청 멋지게 느껴졌어요.

사람은 누구나 달라요. 다르다는 건 이상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상한 건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이상하다고 따돌리고 못되게 구는 게 부끄러운 짓인 거죠.

세상에는 좋은 관심과 나쁜 관심이 있어요.

건이와 율이, 엄마처럼 이상한 고양이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건 좋은 관심이에요.

반면 고양이개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처럼 한낱 구경거리로 여기는 건 나쁜 관심이에요.

이상하고 달라도, 우리 모두는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랍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는 유쾌한 그림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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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혐오 - 공쿠르상 수상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음악의 시원과 본질
파스칼 키냐르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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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포장지를 조심스레 벗겨내니 <음악 혐오>라는 책 제목이 보입니다.

세상 그 무엇이든 그 대상에게 '혐오'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족쇄와 같은 효과가 생겨납니다.

존재의 본질은 사라지고, '혐오'만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옭조여오는 족쇄.

이상하게도 '혐오'는 묘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뭔지도 모르고 책 제목에 이끌렸는데, 프랑스 소설로 분류된 이 책은 전혀 소설 같지 않습니다.

첫 문장부터 난해합니다.

"우리는 극도로 상처 입은 어린아이와 같은 유성(有聲) 의 나체를,

우리 심연에 아무 말 없이 머무는 그 알몸을

천들로 감싸고 있다.

천은 세 종류다. 칸타타, 소나타, 시.

노래하는 것, 울리는 것, 말하는 것.

이 천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우리 몸이 내는 대부분의 소리를

타인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같이,

몇몇 음(音)들과 그보다 오래된 탄식에서

우리의 귀를 지켜 내려 한다."  (9p)

우리 몸을 하나의 소리로 인식하면서, 그 소리로부터 우리 귀를 지켜 낸다는 건 모순됩니다.

저자는 소리가 주는 고통과 음악의 지속적인 관계에 대해서 음악과 공포는 영원히 결속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모든 소리는 미묘한 공포를 안긴다.  Tremit.  그것은 떨린다."

"음악은 소리를 내는 허수아비다. 새의 울음이 새에게 그러하듯이.

Terrificatio 공포에 떨게 하는 어떤 것. "   (40p)

철학적인 비유나 문헌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으나, 조각조각 뜯겨진 지도를 보는 느낌입니다.

<1장  성 베드로의 눈물>에서 가장 공감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베드로가 안뜰에서 여자에게 말한다.

       그는 반복한다.

       Nescio quiddicis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여자는 얼어붙을 듯한 4월의 밤 끝자락에서 두건을 다시 올려 쓴다.

      여자는 말한다.

      "당신 말투에서 당신이 누군지 드러나오."  Tua loquela manifestum te facit.  (83p)

위 문장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장면인데, 제게는 이 책에 대한 소감과 일치합니다.

단락은 이해하겠지만 전체가 보이질 않습니다. 도통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베드로의 귓가에 너무나 선명하게 들리는 수탉의 울음소리, 그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야성의 소리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의 산물입니다.

<2장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에서는 음악의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눈은 눈꺼풀을 내리면 보는 것을 멈출 수 있지만 귀는 듣지 않으려 해도 스스로 막아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인간의 귀는 개인적인 것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비경계성과 비가시성.  음악은 만인의 목소리라는 것.

드디어 <7장 음악 혐오>에서 왜 '음악 혐오'라는 표현을 썼는지 설명합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징발된 유일한 예술 장르가 음악이었다는 사실.

죽음의 수용소에서 흘러나왔던 음악.

'음악 혐오는 음악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증오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지를 표현한 말입니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과거 어린 시절에 피아노 선생이 준 트라우마 때문에 음악 자체를 싫어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불행하게도 피아노에 '혐오'라는 족쇄가 풀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반면 저자 파스칼 키냐르는 평생 음악과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나는 언제 음악이 내게서 떨어져 나갔는지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모든 울리는 것들에 대해 일순 무심해져 버렸다."(255p)라고 말합니다.

확실한 건 그가 급성 폐출혈로 죽을뻔 했던 시기에 <음악 혐오>를 썼다는 겁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음악의 증오>라고 합니다.

어쩌면 음악에 대한 키냐르의 증오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에서 온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프랑스 소설이라니, 너무 난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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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쁨
유병욱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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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몇 줄의 광고가 주는 강렬한 힘!

고 일, 카피라이터에 매력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많고, 뭔가 끄적대기를 좋아해서...

그런데 현실은, 좋아하는 일보다는 돈 버는 일 쪽으로 흘러가버렸습니다.

어쩌면 가보지 못한 길이기 때문에, 카피라이터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의 기쁨>은 그야말로 광고 현장에서 일하는 16년차 카피라이터의 생각이 담긴 책입니다.

어떻게 카피라이터로 성공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더 좋은 생각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생각이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랄까.

누구나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겠지요.

"생각의 힘에 대해 제가 들었던 가장 강력한 말은 붓다의 입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현재의 내 모습은, 과거 내 생각의 결과다." (234p)

여기에 좀더 말을 덧붙이자면,

나라는 존재는 내 생각들이 모인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좋은 생각을 하려면?

'나'와 '세상'을 제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 어떤 편견이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기.

이 책은 광고 일을 하는 카피라이터에게 필요한 창의적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생각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어떻게 생각해야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정해진 규칙이나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매우 인상적인 문장을 봤습니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미국의 아프리카계 인권 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가 한 말입니다.

          모두가 벽이라 믿고 있는 어떤 것. 

          그 벽을 눕힐 수 있다면, 그것은 열리지 않던 다른 세상으로 가는 다리가 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뛰게 하는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도 해석합니다.

         '벽이라 생각하던,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면,

         그 낙차로 인해 놀라운 힘이 생긴다.' 라고 말이죠." (25p)

실제로 저자는 창의력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벽' 과제를 준다고 합니다.

먼저, 자신에게 어떤 '벽'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다음은 지금 가장 넘어뜨리고 싶은 벽이 무엇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최종적으로 지금 넘어뜨리면 좋을 벽 하나를 골라서 그 벽을 넘어서는 과정과 결과를 한 달 후에 발표하는 방식입니다.

창의적인 생각이란 기존과는 다른, 좀더 나은 생각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벽' 과제는 누구나 언제든지 도전해볼 만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벽'은 스스로 쌓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만든 한계...

결국 생각이 곧 그 사람입니다.

인생을 바꾸는 생각의 힘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책을 덮으니 노란 책 표지에 살짝 열린 문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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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립 - 2022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웬들린 밴 드라닌 지음, 김율희 옮김 / F(에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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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영화 <플립 Flip>를 봤습니다.

어쩌면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한 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일곱살 소녀 줄리의 첫사랑 이야기에 푹 빠졌습니다.

그래서 <플립>의 원작소설을 보자마자 단숨에 읽었습니다.

놀랍게도 전체적인 스토리가 영화에서 거의 완벽하게 재현되었다는 점.

물론 일부 각색되거나 빠진 부분도 있지만 브라이스와 줄리의 감정변화를 멋지게 그려낸 영화라서,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동일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저장된 느낌이랄까.

소설을 읽으면서 동시에 영화를 다시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첫사랑에 관한 기억은 한 사람의 일방적인 추억일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첫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이 희박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그 사랑에 관한 기억은 왜곡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자가 바라본 남자 vs 남자가 바라본 여자

달라도 너무 달라서, 어떻게 완전히 다른 여자와 남자가 사랑할 수 있는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줄리는 브라이스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고, 브라이스가 새빨개진 얼굴로 엄마 뒤에 숨는 것을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브라이스가 줄리를 끔찍하게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처음 보자마자 자신에게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여자애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했고,

그 감정을 불쾌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브라이스의 진심을 알 리 없는 줄리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브라이스를 좋아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죠.

질풍노도의 시기.

외계인도 무서워한다는 중2.

줄리는 첫사랑 브라이스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성숙해져가고,

브라이스는 둔하게 눈치채지 못했던 줄리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진짜 줄리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답게 핑크빛 기류의 열린 결말을 보여줍니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에겐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매력적인 건 첫사랑의 감성뿐 아니라 가족 간의 사랑까지 담아냈다는 것입니다.

줄리네 가족과 브라이스네 가족은 많이 다르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면 절대 가까워질 수 없지만 진심으로 바라보면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란, 닫혀있던 마음을 여는 열쇠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상대가 가족이든, 아니면 연인이든 딱 들어맞는 열쇠만 찾는다면 말이죠.

오랜만에 두근두근 설렘을 유발했던 <플립> - 영화도 좋고, 소설도 좋습니다, 많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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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
프레데릭 파작 지음, 김병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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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지금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들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는 화가 빈센트가 아닌 인간 빈센트의 삶을 담아낸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프레데릭 파작은 프랑스 소설가이자 화가라고 합니다.

책 소개가 없었다면 착각할 뻔 했습니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그림들... 프레데릭 파작의 작품입니다.

그가 얼마나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그림들을 사랑하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습니다.

책 소개를 보니,

"이 작품은 텍스트와 데생을 함께 읽어나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긴밀하게 뒤얽힌,

말과 이미지의 매력적이고도 강력한 결합"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물론,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빛나게 하는 건 빈센트 자신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다음은 이 책의 첫 문장입니다.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아! 광기 발작 이후의 차가운 평온을 말해주는 그의 자화상, 무감동한 시선으로, 입에 파이프를 물고 있는 그의 그 귀 잘린 자화상 앞에서 나는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밭두렁 길에 잘린 밀밭,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하늘, 그리고 풍경의 거짓 정적에 흠집을 내는, 검은 십자가 같은 그 까마귀들은 또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이제 아시겠죠? 

우리는 빈센트의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받지만, 정작 빈센트는 잊고 있었습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빈센트는 자신의 그림을 팔지 않았습니다. 생전에 유일하게 팔았던 그림은 딱 한 점, <아를의 붉은 포도밭>으로, 이 그림을 산 여인은 수집가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림의 가치를 알아봤습니다. 빈센트는 악착같이 그림에 매달렸으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믿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여인들은 가진 것 없는 그를 외면했고, 나중에 만난 여인은 거리의 여인이었습니다. 간절히 사랑을 원했지만 번번히 빗나갔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유복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는데, 무엇이 그를 세상으로부터 단절하게 만들었을까요.

목사와 무신론자 사이.  전혀 양립할 수 없는 삶의 기로에서 갈팡지팡했던 그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생 테오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생활을 스스로도 한심하게 여겼기 때문에 자기비하와 우울증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세상, 어쩌면 그를 마지막까지 사로잡은 건 그림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를 삶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

수많은 명작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꽃이 핀 아몬드나무의 큰 가지들"입니다.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하나가 남자 아이를 출산했고, 빈센트는 자신의 조카를 위해 이 그림을 선물합니다. 아기의 요람 위에 걸린 그림을 상상하니 저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오롯이 사랑을 담은 그림이라서 참 좋습니다.

너무도 독창적이어서 외로웠던 진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생애를 되짚어보니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삶이 너무도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그가 왜 배에 대고 총을 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 테오가 곁에 있었고, 형의 주머니에서 테오는 형이 쓴 편지 한 통을 발견합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말들로 마무리됩니다.
"글쎄, 내가 해야 하는 일, 난 거기에 내 인생을 걸었고, 그 일로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어 - 그래. 좋아 - 한데 내가 아는 한 너도 장사꾼 부류는 아냐. 그래서 내 생각엔 너도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정으로 인류와 더불어 행동하면서 말이야.  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  (254p)

결국 빈센트는 사후에 더욱 빛나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은 아득히 먼 과거로부터 온 빛이라고 합니다. 마치 빈센트 반 고흐처럼.

별이 빛나는 밤에, 우리는 빈센트를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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