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떨어지는 소리 눈물 떨어지는 소리 - 사라져가는 것들 사이에서 살아내는 오늘
박상률 지음 / 해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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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하고, 무슨 얘기, 하세요?"

"영감 얘기도 하고, 골목 지나다니는 사람들 얘기도 하고......"

"할아버지는 안 계세요?"

"벌써 사십 년 전에 세상 버렸어."

"할아버지도 꽃을 좋아하셨어요?"

"응, 좋아했지. 이 화분들, 다 영감이 장만했던 거야."

...

"어, 할머니 봉숭아 물들였네요."
"응, 영감이 들여준 거야."

"할아버지가요?"

"새색시 때부터 봉숭아 꽃잎 따서 해줬어."
"지금은 할아버지가 안 계시잖아요......"

"영감이 심었던 봉숭아꽃에서 해마다 씨를 받아 다시 심어. 

꽃이 피면 이렇게 물들이지. 그러니까 영감이 들여주는 거나 마찬가지야."

...

"봉숭아 물이 예쁘게 들어야 저승길이 밝아진다는데......"

"예뻐요, 무척 예뻐요."

"봉숭아 씨 좀 나누어 줄까?"   (53-55p)



<꽃잎 떨어지는 소리 눈물 떨어지는 소리>는 박상률 작가님의 에세이예요.

저자는 담담하게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사랑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보내주신 택배 꾸러미, 고향 진도 앞바다에 피어오르는 안개, 진도를 노래한「그 땅 그 하늘」이라는 시가 세월호 침몰로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을 기리는 노래가 되어 라디어에서 흘러나오더라는... 그리고 열여섯 살 때 한영 큰스님의 수발을 들면서 불가와의 첫 인연을 맺은 이야기와 법당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부처님을 향해 엎드려 울었던 일, 그뒤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살다가 불쑥 떠나는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네요. 

저자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에게 서해에 지는 해를 통해 소멸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 소멸을 알아야 생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나아가 삶이 더 진지해질 수 있다고 말하네요. 이른바 소멸의 미학. 그래서 저자가 하는 문학 강의는 곧 삶의 강의가 되나봐요. 

이 책의 부제는 '사라져가는 것들 사이에서 살아내는 오늘'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겠지요. 삶과 죽음, 빛과 어둠, 탄생과 소멸이라는 굴레에서 아둥바둥 살아내는 일.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있을 수 없는 일,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어요. 여전히 그 고통은 가시질 않았어요. 고향집에 가면 들르던 팽목항을 차마 가지 못하는 이가 저자만은 아닐 거예요. 1980년 광주의 기억 때문에 모교인 전남대학교에 근 10년을 못 갔다는데, 점점 갈 수 없는 곳이 늘어만 가니 어찌해야 할까요. 지극한 불심으로, 두 번 다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불가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늘 부족할 따름이지만 박상률 작가님의 글을 통해 배우고, 깨우치며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오늘날 진정한 방생은 물고기 몇 마리를 풀어주면서 자기 위안적 자족감에서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으로 넓혀야 한다는 것. 오늘의 불자들은 이 시대의 가장 반인간적인 것들, 즉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모든 억압들로부터 인간을 풀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마치 할머니의 봉숭아 물들이기처럼 이 책을 읽다보니 제 마음이 예쁘게 봉숭아 물이 든 것 같아요. 아름다운 말이 주는 감동을 봉숭아 씨를 나누듯이 널리 전하고 싶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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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미스터리 입문
아라이 히사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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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사건 전개를 미리 상상하게 되고 나름의 결론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이제껏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만 했지, 직접 써봐야겠다는 엄두를 내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미스터리 입문>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도전 욕구가 자극이 된 것 같아요.

이 책은 미스터리란 무엇인지 기본적인 질문부터 추리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 수수께께의 창작과 좋은 복선, 해결 파트 등 추리소설을 쓰는 온갖 비법들을 알려주고 있어요. 사실 제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건 매력적인 수수께끼 요소인데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그동안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처리했을지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데, 여기에도 그런 생각들이 중요한 훈련법이라고 하네요. 많은 수수께끼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수수께끼를 정상에 놓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소재를 완만하게 배치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매력적인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범인이나 수수께끼 풀이의 방향을 정한 뒤에 이들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복선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좋은 복선이 깔려야 멋진 해결 파트를 완성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야기는 항상 수수께끼와 복선 모두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논리적인 해결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기술적인 배치와 깜짝 놀랄만한 장치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꼼꼼한 예시를 통해 잘 알려주네요.

세계를 구축할 때는 사소한 흐트러짐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해요. 사용하지 않는 설정을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쓰지는 않아도 세계의 균열을 막으려면 숨겨진 부분까지 설계하는 것이 작품의 몰입감과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어요. 

기본적인 미스터리 기법을 익혔다면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자의 답은 "뭐든 읽고 많이 쓰자!" (229p)라는 거예요.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면 일단 써야 하고, 끝까지 써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해요. 짧은 단편이라도 완성해봐야 조금씩 늘려가며 장편에도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완성한 작품은 마구 투고해야 한다는 것이 나름의 팁이에요. 도전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는 법.

20년 경력 베스트셀러 편집자가 알려주는 추리소설 작법 가이드북이라서 그런지 이론적인 설명이 깔끔하고 유용한 실전 기술이 잘 정리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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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생 -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에서 논의되는 ‘위안부’ 문제의 현재를 다루다
김지민 지음 / 소울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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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생>은 위안부 문제의 현재를 다룬 책이에요.

왜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까요.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한탄이에요. 우리 역사에 대해 올바른 인식도 없이 함부로 막말을 해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있어요.

30년이 지난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은 우리의 잘못이 큰 것 같아요. 여전히 가짜, 허위 내용이 논문으로 등장하고 뉴스 기사로 나온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해요.

이 책은 위안부의 역사와 논쟁점들과 위안부 운동의 다양한 면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제목이 '그녀의 일생'인 것은 여러 생존자 증언을 참고하여 허구의 한 위안부 여성의 일생을 시기별로 구성하여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역사적 사실 몇 줄로 요약될 수 없는, 한 여성의 일생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위안부 문제를 정치 외교적 논쟁으로 보기 전에 어린 소녀와 여성들이 직접 겪은 끔찍한 피해라는 것을 그녀의 일생 이야기로 들어보면 그 상처와 아픔을 느낄 수 있어요.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인 것 같아요.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역사를 왜곡, 축소하는 데에 급급하고 있어요.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은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면서 서울과 부산에 설치된 소녀상을 철거시키려 했어요. 이렇듯 역사를 부정하고 외면하려는 세력에 맞서 우리는 위안부를 기억하고 현재의 문제로 이어가는 노력을 지속해야만 해요. 그래서 위안부 문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어요. 국내에서는 초중고 교육과정 모두에 위안부 문제가 포함되어 교육하고 있어요.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불편한 한일관계의 사례라는 인식을 넘어서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시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올바른 역사 교육의 방향이라는 점에서 매우 공감하고 있어요. 근본적으로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떠올리게 만드는 값진 수업을 받은 것 같아요.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하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는 

스페인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처럼,

과거의 비극은 잊고 지나갈 일이 아니라 되새기고, 기억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을 얻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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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바꾼 결정과 판결 -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판결’ 세계는 내 친구 시리즈 3
박동석 지음 / 하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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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바꾼 결정과 판결>은 청소년 인문교양서예요.

청소년 대상이라고는 해도 법과 관련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우리 모두가 논의할 만한 내용인 것 같아요.

법이란 분쟁이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법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된 법은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어요. 그 법이 공정한지,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심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그 제도가 바로 헌법재판소라고 해요. 헌법재판소는 '법을 심판하는 곳'이며, 법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역할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 공정하고 정의롭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꾼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판결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요.

여기서 잠깐,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청구서에 기재된 사실 관계를 헌법 해석을 통하여 위헌 여부만 판단하기 때문에 '결정'이고, 대법원은 재판이라는 원칙적 형식으로 검사와 변호사 등이 변론을 통하여 사실을 판단하는 것이라 '판결'이라고 한대요.

법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 사람들에게 법은 거리감이 있어요. 법이 필요한 순간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라서 법을 멀리하고 싶은 심리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일단 법은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결정과 판결을 통해 크게 이슈가 된 사회 문제를 살펴보니 법의 작용과 역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심판 의뢰 이유와 결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법적 해석을 쉽게 들려주면서 다른 측면으로 생각한 내용도 나와 있어서 토론하기 좋은 것 같아요. 이미 결정과 판결이 난 문제지만 학생들끼리 찬반 의견을 나눠보면 생각의 폭이 훨씬 확장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결정과 판결마다 정리노트가 있어서 핵심을 정확하게 되짚어볼 수 있는 점이 유익하네요.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회문제를 법적 측면에서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계기였어요. 



▣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성차별인가?

 헌법재판소 2014년 2월 27일 선고, 2011헌마825 결정

▶ 헌법재판소는 남성에게만 부과된 병역 의무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한다고 결정했다.

▶ 전 세계적으로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고 있거나 도입할 예정인 나라들은 대부분 성차별이 적다.

▶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 평등이 완전하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성 평등이 완전하게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또 다른 불평등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69p)


▣ 낙태죄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인가?

 헌법재판소 2019년 4월 11일 선고, 2017헌바127 결정

▶ ... 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생활 영역에서 인격의 발현과 삶의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권리이다.

▶ 헌법재판소는 자기결정권에는 여성이 그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 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 또한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한 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 낙태죄 조항은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했다. (121-122p)


▣ 정당방위는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는가?

 대법원 2016년 5월 12일 선고, 2016도2794 판결

▶ 「형법」제21조에는 정당방위에 대해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첫째,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방어 행위여야 한다. 셋째,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 법원에서 쌍방 폭행을 정당방위로 보지 않는 이유는 싸움의 경우 가해 행위는 방어 행위인 동시에 공격 행위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싸움은 방어 행위가 되면서 동시에 공격 행위가 되기 때문에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는다. 정당방위가 되려면 방어 행위만 있어야지 공격 행위가 있으면 안 된다.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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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이상하든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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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고 쓸쓸해서 그러는데, 저랑 놀아줄래요?" (193p)


해진 씨는 스무 살이에요.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에요. 편의점 알바를 하며 간간이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처음엔 해진 씨의 강박적인 성격이 이상해보였어요. 나른하고 무기력한 듯한 일상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강박이라서 좀 뜬금없다고 느꼈어요.

게다가 물러터진 성격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무례한 요구를 하는 손님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싫은 소리 한 마디를 못해서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요즘 세상은 착한 사람을 호구로 부려먹는다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다행인 건 해진 씨의 주변 사람들이 사기꾼이나 나쁜 놈은 아니라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그 남자는... 불쑥 해진 씨의 삶에 들어온 그 남자는 기기묘묘, 정말 이상했어요.

남자의 이름은 김만초.

만초 씨는 왜 해진 씨에게 다가왔던 걸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존재는 묘하게 스며드는 구석이 있어요. 그림자처럼.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만초 씨에게 털어놓는 해진 씨를 보면서 그제서야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은 뭣도 모르면서 겉만 보고 맘대로 떠들어댄다고 투덜대던 나였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민망했어요. 그래도 해진 씨가 착한 사람이란 건 알았기 때문에 대신 화를 냈던 거예요.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이 거의 없어 보이는 정해진과 김만초, 이들의 조합은 꿈만 같아요. 읽는 내내 '이 모든 건 꿈입니다'라고 말할까봐 조마조마했어요. 알 수 없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느끼다가 드디어 숨겨둔 비밀이 드러났는데 속이 후련하기는커녕 몹시 슬펐어요. 이래서 꽁꽁 감춰뒀던 거구나, 그래서 이상한 남자 만초 씨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구나...

해진 씨를 바라보던 나의 시선은 전부 오해와 착각, 편견에서 시작되었지만 점차 바뀌었어요. 왜 그토록 이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건 내 안에 해진 씨와 만초 씨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나와 닮은 구석이 보기 싫었나봐요. 숨겨둔 그것처럼.

스무 살의 해진 씨는 오늘도 잘 살고 있을까요. 마치 모두를 향해 안부를 묻는 것 같아서 잔잔한 위로를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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