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디언스 웰레스트는 죽지 않아
니콜라스 볼링 지음, 조경실 옮김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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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아 할아버지는 이제 내 무덤을 파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7p)

이 소설의 첫 문장이네요. 무덤을 파도 된다니, 이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인지, 약간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네요.

《오비디언스 웰레스트는 죽지 않아!》는 니콜라스 볼링의 섬뜩한 고딕 미스터리 소설이네요.

이 소설에서는 무덤을 파는 행위가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아요. 과학과 마법 사이, 그 어디쯤에서 벌어지는 놀랍고도 신기한 이야기네요.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주인공인 네드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고, 할아버지의 모습은 다소 기괴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염려는 없어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모스카와 묘지에 사는 새와 동물을 제외하면 아무도 두 사람을 신경쓰지 않아요. 할아버지의 직업은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비드는 웰레스트 가문의 딸이지만 외롭게 자랐다는 점에서 네드가 공통점이 있어요. 비드가 바로 오비디언스 웰레스트예요. 어느 날 비드가 묘지를 찾아 왔고, 할아버지에게 오두막 뒤편에 자라고 있는 식물에 관해 물었어요. 이것이 네드와 비드의 첫만남이네요.


"그럴게요, 아가씨."

"비드."

"뭐라고요?"

"나는 비드야. 우리 나이도 거의 비슷해 보이는데, 격식 차리지 말고 앞으로 편하게 말하는 거 어때?

격식 차리는 건 집에서 하는 걸로 이미 충분하거든."

"그래 그럴게." 나는 뒤돌아서다 말고, 그 애가 막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에 다시 돌아섰다. 그 바람에 문틈에 코가 끼일 뻔했다.

"식물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 다윈이 쓴 책을 한번 읽어봐."

그 애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아까보다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다윈?"

"응, 에라스무스 다윈. 『식물원』이라는 책인데, 우리 할부지한테도 한 권 있어. 적힌 글도 그림도 무척 아름다운 책이야."

"교회지기인데, 학자처럼 아는 것도 많구나. 진짜 대단하다. 책 추천해줘서 고마워." (152-153p)


서로 마주치거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두 사람이 우연한 기회로 만나면서 가까워지고, 네드는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훔치는 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데... 그리고 비드의 책을 사람들은 왜 나쁜 책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충격적인 죽음과 반전, 과연 사람들 말처럼 미신 때문일까요, 아니면 숨겨진 음모가 있는 걸까요. 하나씩 베일을 벗겨내듯이 흥미로운 전개에 빠져드는 이야기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책 제목을 다시 보게 됐네요. 알아선 안 될 것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달까요. 어쩌면 무서운 고딕 미스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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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대변자, 달라이 라마 - 조국과 민족을 위한 70여 년의 비폭력 투쟁, 달라이 라마 구순 특별 회고록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 지음, 안희준 옮김 / 하루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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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야만에 맞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싸워야죠, 근데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가 있네요.

《티베트의 대변자, 달라이 라마》는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구순 특별 회고록이라고 하네요.

현재 티베트인들은 공산주의 중국의 억압적인 통치 아래, 민족 고유의 언어와 문화, 종교 전통을 빼앗겼고, 자유롭게 말할 권리조차 박탈당했어요.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는 1959년 망명 이후 티베트인들의 목소리가 되어 왔어요. 이 책은 티베트의 비극적인 현대사 그리고 티베트와 티베트 민족 그리고 티베트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온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투쟁기이자 인류 평화를 추구하는 부처님 말씀이 담겨 있어요.


"과거 수천 년 동안, 이 눈의 땅 티베트는 종교와 세속이 결합된 제도 아래 통치되는 독립 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 나라의 크고 작음을 제외하면, 우리는 세계의 여타 독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속성, 위상, 자격을 갖추고 있다.  ······ 간덴 포당이라는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알리는 이 희소식을 접하는 자는 이 칙령을 자기 지역의 모든 승려와 재가자에게 널리 알리고, 그들 모두가 이를 들었는지 반드시 확인하라." _ 1959년 3월 26일, 티베트 독립 정부 선포문 (62-63p)


중국의 티베트 침공은 단지 티베트인들만의 비극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겪는 참혹한 재앙이라는 것, 바로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게 아닌가 싶어요. 강대국의 침략에 주권을 빼앗긴 약소국의 비애를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티베트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네요. 지난 70여 년 동안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지배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고 분노해 온 현실에 대해 공산주의 중국의 대답은, "달라이 라마 파벌의 분리주의 활동"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이에요. 달라이 라마는 지난 70여 년간 공산주의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과 만나 교섭해왔고, 시종일관 비폭력 투쟁으로 진정한 자치를 추구하는 중도적 접근을 제안했어요. 하지만 마오쩌둥 주석은 웃는 낯으로 긍정적인 대화로 안심시킨 뒤, 마지막엔 "종교는 독이오."라며 정체성을 무시했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살하려는 자와 무슨 협력이 가능하겠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에 직면하면 포기하거나 낙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이런 절망은 티베트인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억압적인 정권 아래서 자유를 추구해 온 이들이 겪는 공통된 경험일 거예요. 고통과 난관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네요. 비극은 사람들로 하여근 자발적인 자비심을 드러내게 하고 인간 본연의 선한 본성을 일깨운다고, 이럴 때일수록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어요. 증오를 경계하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증오는 더 큰 증오로 이어질 뿐이라는 부처님 말씀은 단순히 영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적인 조언임을 상기시켜주네요. 증오에 뿌리를 둔 행동은 그 대의가 아무리 숭고해도 지속 가능한 해결을 위한 토대를 파괴한다고, 결국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를 위기에서 구하는 방법은 편협한 이기심을 넘어서는 인류애, 연대와 보살핌 안에 있다는 것을 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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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채우는 마음 필사 - 손끝으로 새기는 옛 시의 아름다운 문장들
나태주 외 지음 / 서울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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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얼굴은 봄 하늘의 고요한 별이어요

그러나 찢어진 구름 사이로 돋아 오는 반달 같은 얼굴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어여쁜 얼굴만을 사랑한다면 왜 나의 베갯모에 달을 수놓지 않고 별을 수놓아요

··· 온 세상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할 때에 당신만이 나를 사랑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여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여요." (16p)


한용운 시인의 <사랑을 사랑하여요>의 일부분이에요. 오랜만에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써보는 시간을 가졌네요. 《쓰면서 채우는 마음 필사 한국시 100》은 한국 시 100편이 담긴 필사책이에요.

이 책에는 한국 근현대 시문학을 대표하는 스무 명의 시인들,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이육사, 김영랑, 이상, 박인환, 정지용, 심훈, 이상화, 장정심, 이장희, 함형수, 윤곤강, 박용철, 김현구, 오일도, 노자영, 조명희, 나태주의 시들이 실려 있어요. 크게 다섯 개의 장, '사랑이 머무는 자리', '마음이 돌아가는 길',' 자연이 건네는 말들', '나를 마주하는 시간', '다시 봄이 오는 소리'로 나누어 시를 소개하고 시 아래에는 시인에 대한 정보가 간략하게 나와 있고, 시 옆에 나란히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네요. 시를 필사하고 난 뒤에는 맨 아랫줄에 적혀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적을 수 있어요.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요즘 더 즐겨 읽게 된 시가 바로 한용운 시인의 시들이네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22p)는 <사랑하는 까닭>이라는 시의 일부인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네요.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미소뿐 아니라 눈물도 사랑해주는 사람, 세상에 이러한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버텨내고 살아낼 수 있어요. 좋은 시를 낭독하고, 그 시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시인의 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자연을 노래하며,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를 통해서 문학적 감성이 되살아나고, 철학적 사유의 시간을 갖게 되네요. 한 편의 시와 하나의 질문, 그리하여 모두 100편의 시와 100개의 질문을 만나게 되네요. 좋은 시와 질문이 내면의 나를 깨우고, 더 나은 나로 성장시키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꾸준히 기쁨으로 해낸 경험이 있나요?" (201p)라는 질문을 보면서, 이 책이야말로 모두에게 꾸준히 기쁨으로 해내는 경험을 선물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네요. 시를 읽고 쓰면서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직접 경험해보면 느낄 수 있어요. 한국시, 아름다운 문장들이 전하는 감동을 누릴 수 있었네요.


"좋은 시는 사람을 살리게 마련입니다. 애당초 시를 쓰면서 시인을 살린 시가 좋은 시입니다.

그런 다음 그 시가 독자에게로 가서 독자까지도 살립니다. 나날이 외롭고 우울하여 시들어 가는 감성이 있다면 시를 읽고 외우고 베끼는 사이 조금씩 소생하기 시작하여 끝내는 싱싱한 목숨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우리, 오래된 시의 덕성을 빌려 우리 또한 좋은 인생을 꿈꾸어 봅시다." _ 나태주 시인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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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수리점 우리 아이 인성교육 27
록사나 옌줴예프스카-브루벨 지음, 요나 융 그림, 김영화 옮김 / 불광출판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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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마음은 어떻게 치료할까요.

눈에 보이는 상처는 약도 바르고, 회복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마음은 안 보이잖아요.

《마음 수리점》은 우리 아이 인성교육 시리즈 스물일곱 번째 그림책이네요.

이 책은 폴란드 작가 록사나 옌줴예프스키-브루벨이 쓰고 일러스트레이터 요나 융이 그린 그림책으로 2020년 폴란드 최우수 아동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네요. 마음을 고쳐주는 곳이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하여, 너무나 달라져 버린 세상과 각박해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주인공 오로라는 <마음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아서 가게 문을 닫기로 마음먹었어요. "이제 그만 둘 때가 됐어."라고 혼잣말하는 오로라, 바로 그때 작업실 안으로 비에 쫄딱 맞은 소녀가 들어왔어요. 갑자기 내린 비에 무작정 들어온 소녀는 손님이 아니었지만 오로라는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신기한 곳이네요. 여기선 뭘 하는 거예요?"

"예전엔 다친 마음을 고쳤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마음이 다쳐요? 다리가 부러지는 것처럼요?" 소녀는 깜짝 놀랐어요.

"응, 비슷해. 그렇지만 깁스를 댈 수는 없어. 깁스를 대면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거든. 굳어 버린 마음은 느낄 수 없게 되고, 느끼지 못하는 마음은 아무 소용이 없단다.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지."


무슨 대화였을까요. 중요한 건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생각하게 됐다는 거예요. 그림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매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의 마음은 어떠한지를 보질 못할 때가 많아요. 예전엔 고장 난 물건을 고쳐 썼지만 지금은 고장 나면 그냥 버리고 새 걸 사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리하고 고치는 일엔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 마음을 수리해주는 오로라를 찾아 올 일이 없어진 거죠.


"모두가 서두르고, 모든 게 열쇠를 맞추듯 빨라야 하지요. 하지만 마음은 그럴 수 없어요.

마음은 돌봄이 필요하고, 특히 시간이 필요해요. 다친 마음은 쉬게 해 주어야 하니까요.

만약 마음이 너무 빨리 고쳐지면, 비극이 닥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은 기다리고 싶어 하지 않아요.  ...  마음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평생 하나로 살아야 해요. 요즘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존중하지 않아요. 너무 서두르다 보니, 상처가 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어요. 뭔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마음엔 너무 늦었을 수도 있어요."


오로라는 소녀에게 자신이 해온 일을 들려주고 있어요.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일이라고, 낙심한 오로라에게 소녀는 어떻게 했을까요. 마지막 장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완전 감동했네요. 오로라와 소녀 덕분에 다치고 아픈 마음은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우리 자신에게 꼭 필요한 마음 공부를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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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말고 남미, 혼자 떠난 120일
송경화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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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는 이들을 보면 신기해요.

어디든 여행을 가려고 해도 준비만 한세월, 여태 떠나지 못한 사람인지라 항상 여행자들의 이야기에 끌리네요. 우연히 마추픽추 여행 영상을 본 뒤로는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서, 가는 길을 찾아보니 쉽게 가볼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더라고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혼자서 남미를 네 달 동안 여행한 사람이 있었네요.

《유럽 말고 남미, 혼자 떠난 120일》은 송경화님의 여행 에세이네요. 저자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서 여행을 가는 거라고 이야기하네요. 더위를 싫어해서 여름방학이면 늘 북유럽이나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고 책을 냈는데, 남미를 여행하고 쓴 책과 남미 작가들의 책을 거의 빠짐없이 읽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많아져서 , 그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고 남미 지도에 가고 싶은 곳을 점으로 찍어 일정을 짰더니 여행 기간이 3개월에서 4개월로 늘어나게 된 거래요. 일단 남미의 여름에 해당하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 떠나야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할 수 있고 물이 가득 찬 우유니 소금 사막도 즐길 수 있다고 하네요. 우기인 2월에는 페루 마추픽추로 가는 잉카 트레일을 한 달 동안 폐쇄한다고 하니, 남미 여행에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건 계절 이슈인 것 같아요. 여행을 떠나기 전 나만의 리스트, '이건 꼭 가봐야 해!'라는 걸 정해 두면 좋을 것 같아요. 저자는 3년 전에 다녀온 이과수 폭포를 다시 일정에 넣은 건 브에노스아이레스 지하철에서 폰을 도난당해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아쉬운 때문이라고, 여행에서 인증샷은 포기할 수 없잖아요. 요즘은 여행 유튜버들뿐 아니라 일반 여행자들도 촬영 장비를 갖춰 영상을 찍는 경우가 많아져서, 사진은 기본이고, 영상까지 더해지면 최고의 여행 기록이 될 것 같아요. 역시나 이 책에서도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만날 수 있네요. 여행에 관한 정보는 남미 대륙 지도에 저자가 갔던 곳을 표시한 정도인데, 딱 그만큼의 정보가 적당한 것 같아요. 제가 궁금한 건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여행자의 생생한 경험담이거든요.


"우연히 성당에 갔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언덕 위로 성당이 보여 무작정 올라갔더니 마을에 비해 큰 규모의 성당과 멋진 광장이 있었다. 성당 내부를 돌아보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성가 소리가 들렸다. ... 갑자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누군가 다가와 라파스에서 온 카를로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의 가방에서 성서를 꺼냈다. 멀리서 보고, 동양에서 혼자 여행 온 나를 사연 많은 여자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가 말했다. '넓은 집도, 비싼 차도 하나도 안 중요해요. 영혼이 중요해요.' 당황한 나는 맞다면서 내가 운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왜 울었을까. 아마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었을 것이다. 나처럼 이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눈물일 수도 있다. 이제는 안다. 그 눈물은 한편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아, 아버지가 보고 싶다." (192p)


멋진 여행지에서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일 거라고, 어쩐지 저자의 눈물이 가진 의미를 이해할 것 같아요. 집을 떠나 머나먼 낯선 땅에서, 오롯이 혼자 자신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떠나기 전날 밤에 모든 일정을 끝내고 숙소에 들어오니 어둑어둑한 부엌에 헤르만 할아버지께서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 앉아계신다. 할아버지께서는 혼자 되고 나서 이곳에서 5년간 임대 계약을 맺어서 살고 계신다는데, 칠레 북부가 고향이고 서부에서도 살았지만 여기가 가장 좋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파트리시아 여사님께서 이 밤중에 또 오셨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고 조식을 가지고 왔다. 보통은 고객이 사정이 있어 조식을 못 먹으면 끝인데, 이래서 발파라이소를 잊을 수가 없다." (251p)


저자는 남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라고, 그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따스한 사람 냄새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위험한 여행지가 아닐까라는 우려를 싹 잊게 만드는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저자의 여행은 힘들지만 행복한 여정이었다는 것, 그 모든 기억과 추억은 여행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네요. 호기심은 많지만 용기가 부족해서 선뜻 떠나지 못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저자의 여행을 보면서 위험하다고 소문이 난 남미 여행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던 건 모두 좋은 사람들 덕분인 것 같아요. 웃는 얼굴의 여행자를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행복한 여행자의 뜨거운 여행기였네요.


"이 책에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여행기를 쓰는 원칙이기도 하니까.

··· 혼자서 긴 시간 여행하면 외롭거나 힘들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트레킹을 할 때, 무거운 짐을 주로 남자가 메고 가는 커플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외로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대도시 여행에서는 외로운 시란들이 많았다. 최초의 자유여행으로 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가 살던 집 방명록에, '집에 가고 싶다'라고 쓴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대도시들은 어디나 비슷한 면모가 많아 지루하기 쉽고 사람들이 서로 경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 외로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미는 하나의 대륙이다. 남미 여행은 국경을 수도 없이 통과해야 하고 도시마다 특색이 있어 늘 긴장하고 매일 새로운 상황과 맞닥뜨리니 지루하거나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씩 성취할 때마다 희열이 넘쳐흘렀다." (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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