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 -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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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명작동화 50권 전집, 에이브 문고, 에이스 문고, 파름문고, 할리퀸 로맨스, 그리고 전혜린...

한때 읽었던 책의 목록을 보면서, 저자와 같은 세대라는 걸 알았습니다.

책을 즐겨 읽는 십대 여자아이에게 흔히 하던 말, '문학 소녀'...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문학 소녀'라는 말 속에 여성을 폄하하는 의미가 있을 거라는 걸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문학 소녀'는 어디까지 십대 사춘기 시절에 국한된 말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전혜린,

그녀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지만, 저자와는 달리 크게 끌리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그 시절 또래 친구들과 같이 읽었던 책이라는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전혜린에 대한 비뚤어진 평가들... 이를테면 '작가'라고 부르기 저어된다면서, '수필가'로만 부르는 것도, 혹은 '번역 말고는 창작을 하지 못했다'면서 '문인'의 카테고리에 넣기 힘들다는 등등.  비단 전혜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학계의 고질적인 여성 폄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책은 한국 여성 작가들에 대한 남성 문단의 편협한 시각에 주목합니다. 그들이 '감상적이다', '사변적이다', 더 나아가 '소녀 문단'이라며 비아냥거릴 때, '문학소녀'는 미성숙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인물로 전혜린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천재 작가인가, 아니면 미숙한 번역가인가.

<문학소녀>는 전혜린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 여성작가의 수난사를 이야기합니다.

설마 이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소위 글로써 예술을 한다는 문단이 이토록 고리타분하게 여성을 프레임에 가두었다니 말입니다.

박화성이 1969년에 쓴 글 「한국 작가의 사회적 지위의 변천」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보면,

"여자의 이름과 흡사한 박용숙이란느 작가가 쓴 군인을 소재로 한 전쟁소설이 발표되었는데, ....  여성의 지나친 섬세 감각은 섬세하기 때문에 오히려 리얼리티를 혼탁하게 하고 있으며 여기서 여류작가들이 지니는 한계성이 있는 것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는 여성적인 이름을 가진 남성 작가임이 밝혀지면서 일종의 해프닝으로 넘어갔다고 하나, 철저하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학 소녀'로 대변되는 섬세한 감수성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문제였던 것입니다. 전혜린을 동경하는 문학 소녀는 아니었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당당하게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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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싶었던 남자
로랑 구넬 지음, 박명숙 옮김 / 열림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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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연히 휴가지에서 현자를 만날 확률은?

아쉽게도 내 인생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줄리앙은 만났습니다.

가끔 멍하니 있다가 굉장히 불편한 자세 때문에 정신을 차릴 때가 있습니다.

앗, 내가 뭐하고 있었지?

뭔가를 알아차리는 것, 깨닫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찰나의 순간.

그러나 완전히 알아차리기까지 깨닫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요?

살면서 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다 알 것 같다가도 전혀 모르겠다 싶은 것이 행복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점 나이들수록 행복하기 위해 애쓰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행복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삼턍 선생은 줄리앙에게 남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가장 절실한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손쉬운 길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201p)

줄리앙의 모습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만 할 때가 있는데, 그 선택을 위해서 다른 뭔가를 포기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고통을 면하게 해준다고 믿어왔습니다. 나름 순리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삶의 태도가 나의 불행에 일조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연하게 나이가 들면 더 현명해질 거라고, 더 행복해질 거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를 위한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헤매는 중입니다. 늦은 나이에 사춘기 아이처럼 방황하는 나 자신을 감추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줄리앙에게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삼턍 선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줄리앙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휴가를 즐길 수는 있었겠지만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그건 이 책을 읽는 나 자신에게도 해당됩니다. 행복하고 싶었던 남자처럼, 행복하고 싶다면 스스로 선택해야 된다는 것.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오직 나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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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 빼앗긴 세계문화유산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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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권은 빼앗긴 세계문화유산을 다루고 있습니다.

문화재 분쟁이 국제적 분쟁이 될 정도로 엄청난 문화재들이 등장합니다. 안타깝게도 반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문화재들이기도 합니다.

함무라비법전 비문은 바빌로니아에서 만들어져 6백 년간 보존되다가 엘람 왕국에 약탈당해 3천 년이 지난 뒤에 프랑스로 옮겨져 1백년이 지났습니다.

세계 최초로 약탈당한 문화재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문화재일까요?

바빌로니아의 후예인 이라크, 엘람 왕국의 후예인 이란, 현재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

누구의 문화재라고 판단하든 중요하지 않은 건, 함무라비법전 비문이 루브르 박물관의 최고 보물 중 하나로서, 프랑스는 반환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세계 최초의 인권헌장이라고 불리는 키루스 칙령도 마찬가지 사례입니다. 키루스 칙령을 제작한 나라는 이란이고, 발견한 나라는 영국, 발견된 장소는 이라크, 당시 이라크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었습니다.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존된 키루스 칙령이 이란에 반환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입니다.

이밖에도 문화재를 약탈하거나 함부로 발굴하여 그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문화재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는 사라지고, 예술품으로서의 미적 가치만 남게 됩니다. 대부분의 유럽 박물관들이 문화재의 출처 미상을 아랑곳 하지 않고 하나의 예술품으로 전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문화재를 소유하는 방식이고, 상업적 가치를 부여하여 막대한 수입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나폴레옹의 약탈 예술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자연과학적 수집품은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지금까지도 프랑스 관광의 명물이 되고 있습니다.

영국은 프랑스로부터 약탈한 이집트의 로제타석과 그리스에서 약탈한 파르테논 마블을 대영 박물관에 소장시켰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약탈 문화재를 소장한 영국이나 프랑스는 추악한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비쳐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국제적 여론은 식민 통치의 과실인 약탈 문화재는 반드시 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를 강제할 법적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오로지 윤리적이고 도덕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문화재협회 이사장 샤피로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문화재 반환은 누구의 소유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의 문제이다. 문화재 취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문화재 상실에 관한 문제이다." (150p)

이 책을 통해서 세계문화유산이 지닌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는 기회였습니다. 거의 세계사 수업을 받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빼앗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된 <몽유도원도>는 이미 오래전에 일본의 국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입장에선 너무도 황당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일본의 소유입니다. 또한 한국에서 추방된 외교관 그레고리 헨더슨의 문화재 수집품은 한국의 전 역사를 가로지르는 광범위한 문화재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수집이 아닌 약탈로 보는 게 맞을 정도로 그 양이 엄청나고,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가 상당하다고 하니 가슴을 칠 노릇입니다. 지금 헨더슨 컬렉션은 하버드 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역사왜곡을 서슴치 않는 일본이나 문화재 반환 운동의 반대자로 앞장선 하버드 대학 박물관장이 문화재를 반환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약탈된 우리 문화재에 관한 관심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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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 돌아온 세계문화유산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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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2011년 4월 11일, 프랑스에 약탈됐던 외규장각 도서가 145년 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반환된 것이 아니라 5년 단위 갱신이 가능한 임대 형식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왜?

그건 의문이 아닌 반문입니다.

속된 말로 도둑에게 뺏긴 내 물건을 찾았는데, 도둑이 사죄하며 돌려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뻔뻔하게 빌려주는 상황이라니...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권은 돌아온 세계 문화유산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다년 간 외교관 생활을 했고,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을 역임했으며 프랑스와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 당시 자문위원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약탈 문화재에 관한 책을 저술한 것입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시대에 힘의 논리로 대거 약탈당했던 문화재들은 수도없이 많습니다. 어떻게 문화재 반환이 시작되었나를 보니, 1970년 유네스코 불법 문화재 반환협약이 성립되고, 1995년 유네스코 후원 하에 '도난 및 불법 문화재에 관한 유니드로와 협약'의 채택을 위한 외교관 회의가 개최되면서 국제사회의 단골 이슈로 자리잡게 됩니다.

1998년 미국 국무부와 홀로코스트기념관 공동 주관으로 워싱턴 회의가 열리면서 나치가 약탈한 재산에 대한 보상과 환수에 대해 미국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워싱턴 회의 원칙은 문화재의 내력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으로 박물관을 비롯한 문화재 소장자들이 먼저 문화재 내력을 공개하여 합법적 소유를 증명해야 할 책임이 생겼고 이후 일련의 문화재 반환사례에서 입증됩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점은 유럽과 일본의 대륙법 체계와 영미의 관습법 체계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영미법 체계에서 불법 문화재는 영원한 도난물이며, 누구도 도난물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는 법원칙입니다.

그러나 실제 약탈 문화재 반환 사례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완전 반환이 아닌 영구대여 방식이라서 씁쓸합니다. 또한 서산 부석사 불상처럼 도난과 약탈이 겹친 문화재 사건을 보면 1970년 유네스코 국제협약의 규정이 미흡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고려 말 왜구가 약탈해간 불상을 대마도 간논지가 수백 년간 불법점유해왔고, 그 불상을 한국인 도둑들이 훔쳐왔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국제 협약을 들먹이며 반환 요구를 한 것입니다. 부석사 불상의 핵심은 불상 소유권에 대한 분쟁으로, 간논지가 수백 년을 소장했어도 소유권을 입증하지 못하면, 소유권이 확실한 서산 부석사를 상대로 반환 요구를 할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 한국인 절도단에 의한 대마도 관음상 도난사건의 재판이 진행중이라고 하니 지켜볼 일입니다.

중요한 건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소유권 다툼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정의와 보편적 도덕의 문제라는 것.

약탈된 세계 문화유산들이 본래의 후손들에게 돌아가는 건 부끄러운 인류의 역사를 바로잡는, 반드시 해야 할 인류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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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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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진실일까요?

어떤 경우는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소문 자체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역사란 과연 무엇일까요?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은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아마추어 역사가, 저널리스트라고 말합니다. 역사 전문가와는 반대되는 입장에 서서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역사는 불변의 진리가 아닙니다. 객관적 진실을 붙잡는 학문이 아닙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서술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집니다. 오만하고 이기적인 수많은 역사들.

그는 유럽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했음을 시인합니다.

편견의 역사.

인류가 정착하고 문명을 건설하면서 인간은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가 아닌 자연과 분리된 존재, 더 나아가 자연의 주인으로 여겨 왔음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세계사를 단순하게 정리하여 인류 역사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여느 세계사책과는 달리 그림이나 연표, 지도가 없습니다. 오로지 텍스트로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카를 야스퍼스의 방식대로 인류 역사를 네 시기로 구분합니다. 1단계는 언어와 도구의 탄생 시기, 2단계는 유목에서 정착한 농업 혁명의 시기, 3단계는 인류가 이성의 힘으로 탐구하고, 사상의 체계를 세운 시기, 4단계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기술과 과학의 시기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모두 10개의 장을 통해서 각 장마다 인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주제를 요약하는 TOP 10 목록을 제시합니다.

이를테면 '인류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 TOP 10'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지혁명 : 호모사피엔스 등장

2) 천국에서의 추방 : 농업 혁명 또는 신석기 혁명

3) 민족 대이동 : 근대 유럽의 탄생

4) 백지 상태 :  14,15세기 유럽 흑사병 창궐

5)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 유럽의 세력 확장

6) 과학 혁명 : 17세기 자연과학과 기술의 시대

7) 프랑스 혁명 : 귀족에 맞선 시민계급의 혁명

8) 산업 혁명 : 유럽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글로벌 시장사회로 탈바꿈

9) 달 착륙 : 1969년

10) 디지털 혁명 : 진행 중

신기하게도 숫자, 날짜, 연표가 없어서 좀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세계사가 참을 수 없는 농담이 아니라 자꾸만 질문하게 만드는 진지한 농담이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역사를 고찰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자신을 고찰하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건 의미있는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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