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는 과학 -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즘 과학계의 이슈들
다비드 루아프르 외 지음, 이규빈 외 감수 / 클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과학의 시작은 호기심인 것 같아요.

<지금 만나는 과학>은 오늘날 과학계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며, 가장 쟁점이 되는 문제 18개를 소개한 책이에요.

과학계에서 이른바 '열린 문제'라고 일컫는 문제들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라는 점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주제가 되고 있어요.

저자 역시 물리학 연구자로서 양자 중력을 주제로 연구했다는데, 지금은 응용물리학으로 전향해 과학 대중화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네요.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누군가 풀어낸다면 노벨상은 물론 100만 달러의 상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도전 과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는 거죠.

우와, 쉽게 읽을 수 있는 과학책인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었어요.

일단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내용은 심오하다는 점.


◈ 다섯 번째 문제 : 단백질은 어떻게 자기 모양을 찾을까?

... 단백질은 원자들이 긴 사슬을 형성해서 만들어진 복합 분자로, 각양각색의 단백질이 존재한다.

단백질은 물론 성분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인체 내에서 그 모양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어떤 단백질은 뱀처럼 똬리를 튼 모양이고, 다른 단백질은 터널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런데 단백질을 항상 그 모양과 밀전합 연관이 있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단백질의 유일한 구성 성분으로부터 단백질의 기하학을 예측할 수 있다면,

생물학자들에게 결국 신약을 개발하고 생물체의 무수히 다양한 구조를 더 잘 이해하는 데 엄청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수십 년간 연구하고 관련 분야에서 여러 번 노벨상을 받았는데도 과학계에서는 여전히, 

계속해서 단백질에 관해 온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백질의 기하학? 생물학자들이 골머리를 썩이는 문제다.  (66-68p)


▣ 오늘의 뉴스 :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지도를 완성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아직 우리가 잘 모르는 미지의 바이러스입니다.

유전정보를 담은 RNA 그리고 그걸 둘러싼 단백질 껍데기로 돼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침투하면, 작은 RNA 조각들을 아주 많이 만들어냅니다.

이 RNA 조각들이 사람의 면역체계를 공격하고, 대량증식에 필요한 단백질들을 만들어냅니다.

... 국내 연구진은 코로나19가 만드는 작은 RNA 조각이 모두 9종류라는 사실과 함께 9종 전체의 유전자를 처음으로 모두 풀어냈습니다.

조각 RNA까지 전부 해독하려면 보통 6개월이 걸리지만 국내 연구진은 3주만에 끝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가이자 계산생물학자의 힘이 컸습니다.  [출처 : MBC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위기에 처해 있어요.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라는 점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위기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VS 인류 라는 대결구도가 된 것 같아요. 또한 감염병을 비롯한 질병의학과 과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된 것 같아요.

마침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어려운 과학 이슈들이 호기심 자극뿐 아니라 좀더 알고 싶다는 지적욕구까지 높여준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생물학자를 도와주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내용이 나와요. 

온라인게임을 통해 단백질 모양을 다양하게 바꿔보며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형태를 찾는 미션을 주고 경쟁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해요.

2011년 <폴드잇>게임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마카크 원숭이에게서 HIV 유형의 면역결핍과 관련 있는 효소 구조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어요.

이 문제는 15년 전부터 미결 상태였는데, 게임 참가자들이 이 문제를 열흘 만에 해결해버린 거예요.

과학의 영역이 과학자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영역과 접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굉장히 놀라운 사례인 것 같아요. 과학의 영역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창의적 발상이 돋보였어요. 

지금 과학계의 '열린 문제'들이 해결되려면 젊은 과학자들의 도전 정신 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의 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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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사랑하는 기술 - 물과 공기가 빚어낸, 우리가 몰랐던 하늘 위 진짜 세상
아라키 켄타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요즘은 특별하고 소중한 일이 되었어요.

알고 보면, 우리 일상은 참으로 소소해서 그 소중함을 잊을 때가 있어요.

바로 하늘 위 구름처럼 늘 거기 있지만 미처 몰랐던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어요.

이 책 덕분이에요.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

제목부터 멋지죠?

저자는 기상 전문가이자 일본 기상청 기상연구소 연구원이라고 해요.

전작 《구름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을 집필하면서 연구 대상이던 구름이, 마음을 가진 대상으로 느껴졌다고 해요.

구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좋아져서, 마침내 구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설렜어요.


'구름 연구자'가 알려주는 구름에 관한 모든 것이었다면 흥미롭기는 해도 설레지는 않았을 거예요.

구름을 단순히 바라보고 즐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구름에 관한 정보 혹은 지식은 과학책을 통해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구름을 사랑하기 위한 기술은 이 책에만 나와 있어요.

구름을 사랑하려면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어요. 더욱 깊이 사랑하려면 필요한 마음가짐이 있어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마음을 널리 확산시키고 싶어서 펜을 들었대요.

재미있어요. 우주와 별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이라서.

무엇보다도 구름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구름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구름이 만들어지는 대기 조건은 공기가 주위의 열과 습기의 영향을 받아 팽창하고 압축되면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요. 여기에 바람까지 영향을 주면서 일기예보에서 등장하는 기압과 전선이 생겨나면서 구름은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하는 거예요. 세상에 완벽하게 똑같은 생긴 사람이 없듯이 구름도 완벽하게 똑같은 구름은 없다고 해요. 시시때때로 늘 변한다는 점에서 오늘 만난 구름은 일생에 오직 한 번뿐인 특별한 구름인 거예요. 

그래서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은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처음엔 아름답고 멋진 구름에 쉽게 반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해요. 구름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

괜히 '사랑하는 기술'이라는 제목 때문에 달달한 에세이로 착각해선 안 돼요.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한 기상 과학, 그 중 구름에 관한 과학 지식을 담고 있어요.

과학적 흥미와 관심으로 접근해도 좋지만 그보다는 사랑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해요.

아무리 구름이 복잡하고 어려운 대상일지라도 사랑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거든요.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들이 기분 좋아요.


책 속 구름 사진을 보면 완전 멋져서 반할 수밖에 없어요. 신비롭고 아름다운 구름 사진 덕분에 직접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일반적인 구름의 분류 방법은 생김새와 높이, 발생과정 등을 바탕으로 한 '10종 기본 운형'이 있어요. 1956년에 세계 기상 기구가 발행한 국제 구름 도감에서 정의내렸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 기상 관측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10종 기본 운형종으로는 권운, 권적운, 권층운, 고적운, 고층운, 난층운, 층적운, 층운, 적운, 적란운이 있어요. 구름은 그 높이에 따라서도 상층운, 중층운, 하층운으로 분류하며 각각 구름 입자의 상에 따라 수운, 혼합운, 빙운으로 분류한대요. 구름을 구분하려면 각 구름의 특징을 알아야 해요.

기상 관측을 위해서는 운량도 관측 항목 중 하나예요. 운량은 하늘 전체를 10으로 놓고 눈에 보이는 구름의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수치로 표시하는 거예요. 

한국 기상청에서는 운량을 0.0~10.0으로 표시하며, 강수 현상이나 강수 유무와 관계없이 하루 평균 구름의 양을 따져요. 

0~2는 맑음, 3~5는 구름 조금, 6~8은 구름 많음, 9~10은 흐림이에요.

구름은 우리에게 대기의 상태나 흐름을 가르쳐줘요. 구름의 목소리를 들으면 날씨의 변화를 미리 알 수 있어요. 특히 적란운은 국지적으로 갑자기 발생해 큰 비나 용오름 같은 돌풍, 낙뢰, 우박 등 여러 가지 격심한 기상 현상을 일으킴으로써 재해의 요인이 되기도 해요. 우리가 적란운의 마음을 읽는다면 위험을 감지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어요. 그밖에도 재해를 불러오는 구름들이 많아요. 

우박은 싸라기눈과 비슷한 성장 메커니즘을 지닌 얼음 알갱이예요. 싸라기눈은 적란운의 내부에서 눈 결정이나 얼음 알갱이가 과냉각 구름방울을 포착해 성장하는데, 강한 상승류가 이 싸라기눈을 융해층보다 상공으로 올려 보내면 표면이 동결되고, 다시 낙하했다가 올라가는 상승 운동을 반복하면서 우박이 되는 거래요. 우박이 그친 후에 우박이 녹기 전에 쪼개서 단면을 보면 몇 번이나 구름 속을 오르락내리락했는지 알수 있대요. 

사랑이 깊어지려면 일상에서 구름과 자주 만나야 해요. 하늘을 올려다 보며 구름의 목소리를 듣고 하늘의 기분을 읽으면 돼요.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즐겨도 좋아요. 구름과 관련된 재미난 구름 물리 놀이도 책에 소개되어 있어요. 구름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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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시슨 -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6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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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주로 방송국에서 보여주는 외화가 색다른 즐거움을 줬던 기억이 나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풍경 속에 외국인들이 등장하는데 우리말을 엄청 잘한다는... 물론 더빙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 중에서 <환상특급>은 굉장히 놀라워서 거의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어요.

긴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짧은 에피소드가 여러 개 나오는 옴니버스였는데 각 내용들이 정말 강렬했어요.

기승전결로 끝나는 내용이 아니라 기승전까지만 보여준다고 해야 하나.

직접적으로 결말을 보여주지 않지만 짐작할 수 있어서 소름끼쳤어요.

그래서 두고두고 그 내용들이 뇌리에 남았던 것 같아요. 

장황하게 과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전부 <환상특급>의 원작자 때문이에요.


리처드 매시슨 Richard Matheson

(1926년 2월 20일 ~ 2013년 6월 23일)


스티븐 킹과 더불어 현대 호러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라고 해요. 

바로 그의 작품들이 1960년대부터 영화와 TV드라마로 확장되면서, 작가 본인이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네요.

『나는 전설이다』는 출간 이후 2007년까지 세 차례나 영화화되었고, 단편들은 드라마 <환상특급>의 에피소드로 각색되었다고 해요.

우와, 리처드 매시슨의 원작이라니... 

그걸 여태껏 몰랐냐고 묻는다면 진짜 할 말이 없네요. 만약 진즉에 알았더라면 당연히 꼭 읽었을 거예요.

SF영화와 호러영화를 즐기면서도 깊이가 부족했네요. (반성모드)

솔직히 스티븐 킹의 작품만 읽었기 때문에 미국 호러 문학의 대가는 스티븐 킹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호러 장르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내 이름을 언급한다.

하지만 리처드 매시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 스티븐 킹    (629p)


휴우,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군요.

<환상특급>의 인기를 생각한다면, 원작자 리처드 매시슨이라는 언급만 있었다면 분명 그 이름을 기억했을 거예요.

마치 무슨 고대의 유물을 발굴하듯이 『리처드 매시슨』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환호했어요. 이것이 SF 호러다!!!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 중 서른여섯 번째 책이에요. 작가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정한 건 탁월한 선택인 것 같아요.

아마도 이 책을 읽고나면 리.처.드.매.시.슨 이라는 이름을 잊을 수 없을테니.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뭐, 사실 이미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작품들이라서 낯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피의 아들>이나 <시체의 춤>에서 묘사된 장면들은 짧지만 강렬하게 상황을 압도해요. 아무나 상상할 수 없는 기묘하고도 섬뜩한 설정이라서.

<죄수>에서는 한 죄수가 자신은 존 라일리가 아니라 필립 존슨이라고 주장해요. 그러나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희망이 없어." 그가 말했다. 
"희망이 없어. 아무도 날 믿어 주지 않아. 아무도."
  (282p)


사람이 느끼는 극한 공포는 뭘까요. 

리처드 매시슨이라는 작가는 그 감정의 정체를 정확하게 또한 예리하게 자극하고 있어요.

피를 철철 흘리며 달려드는 좀비나 괴생물체는 일종의 장치일 뿐이지 공포의 본질은 아니에요.

어쩌면 그러한 끔찍한 대상들은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감당할 여지가 있어요. 보이는 적이니까.

그러나 철저한 고립, 완벽한 배신으로 혼자가 된다면 어떨까요.

세상에 아무도 날 믿어주지 않는다면...

<죄수>의 경우처럼 죄수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요. 죄수가 자신을 라일리가 아닌 필립이라고 믿는다는 게 중요하죠.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의 주인공 윌슨도 죄수와 다르지 않아요. 오직 혼자만 아는 진실은 악몽이에요.

뜬금없지만 근래 TV드라마 <부부의 관계>에서 주인공 지선우가 남편의 불륜보다 더 경악했던 건 자신만 빼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매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웃과 동료,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모두 가짜라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과 공포.

그들 전부가 나를 속였다는 사실은 곧 나에겐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의미인 거니까.

흔히 SF영화나 공포영화에서 무서운 장면들은 대부분 나와는 무관한 설정이기 때문에 좀 놀라긴 해도 소름돋게 무섭지는 않아요.

반면에 평범한 일상을 파고드는 의심 혹은 배신은 엄청난 파급력이 있어요. 나도 예외는 아니라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훨씬 상상하기 쉬워요.

신기한 건 리처드 매시슨의 단편들은 우리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기괴한 상황인데도 묘하게 감정이입이 된다는 거예요. 그의 능력이겠죠.

리처드 매시슨이 선사하는 공포는 한 번에 확 터지는 폭탄이 아니라 서서히 퍼져나가는 독가스 같아요. 다 읽고나서도 긴 여운을 남기죠.

절대로 함부로 열지 마세요. 감당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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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냐도르의 전설 에냐도르 시리즈 1
미라 발렌틴 지음, 한윤진 옮김 / 글루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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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나를 설레게 하는 건 바로 판타지 세계예요.

<에냐도르의 전설>은 저자 미라 발렌틴의 놀라운 판타지 세계가 펼쳐져요.

첫 페이지에 에냐도르 대륙의 지도가 나와 있어요.

먼 옛날 에냐도르 대륙을 인간이 통치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동서남북으로 네 군주가 다스렸어요.

얼음처럼 차가운 북부, 풍요로운 남부, 황량한 동부, 수산자원이 풍부한 서쪽 해안 지역의 군주들을 저마다 대륙을 통째로 차지하려는 야욕을 부렸어요.

동부의 왕은 우연히 슈투름(폭풍) 산맥의 정상을 지나다가 대마법사를 만났고, 다른 왕국의 무릎을 꿇게 할 강력한 힘을 얻고자 했어요.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대마법사가 원하는 능력과 그 힘을 맞바꾸는 거예요.

대마법사는 자신을 찾아온 동부의 왕자에게 '불굴의 의지'를 거둬 가는 대신에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드래곤으로 변신시켰어요.

북부의 왕도 질세라, 자신의 왕자를 보냈어요. 북부의 왕자에게선 눈부신 미모를 가져가는 대신에 드래곤을 무찌를 수 있는 데몬으로 변신시켰어요. 

그 뒤로 서부의 왕도 제 아들을 보냈는데, 대마법사는 서부의 왕자가 가진 사랑과 같은 감정을 빼앗고 엘프로 만들면서 데몬족을 무력화시킬 검을 주었어요. 아름다운 외모의 엘프는 감정 없는 차가운 존재가 되었어요.

에냐도르의 대륙은 끝모를 전쟁이 시작됐어요. 드래곤은 엘프를, 엘프는 데몬을, 데몬은 드래곤을 공격했어요.

마지막으로 남부를 통치하던 인간의 왕이 남아 있었어요. 남부의 왕자는 대마법사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가장 좋은 재능이 사라지면 파멸하리란 걸 알아차렸어요. 역시 지혜로운 왕자가 한 명은 있었네요. 

왕자가 마법사와의 거래를 거절했더니, 인간 종족이 다른 종족에게 무참히 짓밟힐 거라고 예언했어요. 왕자는 대마법사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그를 향해 검을 겨눴어요.

이 모든 전쟁이 시작된 건 바로 대마법사의 마법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대마법사는 눈짓 한 번으로 왕자를 제압했고 죽음을 감지한 왕자는 차분히 눈을 감았어요.

뜻밖에도 대마법사는 왕자에게 조용히 속삭였어요.


"네게 내가 소유한 마력 일부를 넘겨 주겠다. 이 마력을 다른 종족에게서 인간을 지키는 데 활용하라.

그리고 네 이성을 소유하라. 

너와 네 후손 중 일부에게만 이어질 마력이지만, 그 이상은 절대 얻지 못할 것이다. 

너를 찢어발기려는 타종족의 힘에 비하면 소소하겠지만, 네가 지닌 의지, 매력, 열정, 증오 그리고 용기와 결합하면

앞으로도 계속 인간이 생존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테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 그것으로 너 자신과 종족을 지켜라. 

하지만 언젠가 이 싸움에 지치는 때가 오면 다시 나를 찾아 이곳으로 돌아오라."  (15p)


그리하여 에냐도르 대륙은 마법을 가진 드래곤족, 엘프족, 데몬족의 전쟁터가 되었어요. 인간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그들의 노예 신세가 되었어요.

그중 엘프족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지역의 인간 마을에서 수시로 소년들을 징발하여 드래곤과의 전쟁터로 끌고 갔어요.

인간들은 자기 아들이 징발되지 않게 하려고 고아들을 데려다가 키웠어요. 고아 소년 트리스탄은 함께 자란 카이를 대신해서 징발되었어요.

사실 카이는 마법의 힘을 타고난 소년이었어요. 동네 부랑자가 엘프족에게 마법사의 정체를 고발하려다가 카이의 친구 얀네스에게 죽임을 당했어요. 그 과정에서 엉뚱하게 카이의 여동생 아그네스가 마법사로 오인받아서 끌려가게 됐어요. 엘프족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인간 마법사를 찾아내 제거해 왔어요.

엘프족에게 끌려간 트리스탄, 얀네스, 아담 그리고 아그네스... 그들이 겪는 시련과 모험이 흥미진진하네요.

판타지 세계라서 자꾸만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게 되지만 확실하게 다른점은 등장인물들이 십대의 아이들이라서 헝거게임, 메이즈러너, 다이버전트 영화의 주인공들을 상상하게 되네요.

과연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갈까요?


온갖 마법과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진짜 멋진 건 판타지 세계가 주는 교훈이에요.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판타지 세계 속에서 무엇이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거든요. 마법보다 더 강력한 힘이 존재할까요.

에냐도르의 인간은 나약하지만 트리스탄은 용감해요. 자유를 빼앗겨도 내면의 긍지와 용기만 잃지 않는다면 무너지지 않아요. 초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니어도 인간이 인간다울 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하, <에냐도르의 전설>은 끝나도 에냐도르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두 번째 이야기 <에냐도르의 파수꾼>으로 이어진다네요. 언제쯤 볼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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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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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Dame Daphne du Maurier 

​(1907년 5월 13일 ~ 1989년 4월 15일)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다음의 작품은 알 거예요.

히치콕의 영화 <레베카>,<자메이카 여인숙>, <새>와 니컬러스 뢰그의 영화 <지금 쳐다보지 마>의 원작자.

사실 요즘은 영화보다 뮤지컬 <레베카>가 더 유명한 것 같아요. 

이 책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단편집이에요.

첫 번째 단편인 <동풍>은 1926년, 작가가 19살에 쓴 작품이라고 해요. 아무런 편견 없이 작품을 봐도 놀라운데, 그걸 쓴 작가의 나이를 알고나니 무서울 지경이에요.

어떻게 십대의 머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그 점이 가장 미스터리하네요.

여기에 실린 단편소설 13편의 차례는 발표순이 아니라 순수한 의미의 작품 탄생 순서를 따랐다고 해요.

작가와 동시대에 살았던 독자라면 작품 그 자체를 즐기면 되겠지만,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된 작가를 뒤늦게 만난 독자라면...

저는 작품만큼이나 작가의 삶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유명 만화가이자 작가였던 할아버지. 유명 연극배우였던 부모.

조부의 문학적 재능을 물려받은 둘째 딸에게 유독 기대와 애정을 쏟아부은 아버지 제럴드.

어린 시절부터 딸들에게 얼음여왕 같았던 아름다운 어머니 뮤리엘.

아들을 몹시 바랐으나 딸만 셋을 둔 아버지의 심리적 결핍을 공감한 때문인지

스스로 남자 옷을 입고 자신의 내면은 남자라 여겼던

작가의 유년 시절과 사춘기의 정신적 방황.

심지어 어머니는 남편과 대프니 사이를 시기하고 의심하는데,

끊임없는 여성 편력과 알코올 의존증을 보였던 제럴드는 

실제로 대프니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증언도 전해진다."  

      - 옮긴이의 말 (325-326p)


일단 대프니의 단편소설을 읽고나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삶을 떠올리게 될 거예요.

대부분 25세 이전에 쓴 작품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광기어린 사랑, 탐욕과 위선, 성착취와 성차별, 배신과 불륜, 이중인격, 절망과 증오...

특히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예리하게 끄집어낸 묘사들이 소름돋았어요.

그건 마치 아름다운 로맨스물로 시작해서 끔찍한 공포물로 끝나는 반전 영화 같아요.

단순히 상상만으로는 표현해낼 수 없는 리얼하고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1930년대 발표되었고, 7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전혀 녹슬지 않았어요.

영국 작가 대프니는 1977년,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상을 받았다고 해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전기 작가인 마거릿 포스터가 "인기 작가로서 듀 모리에처럼 장르 분류의 틀을 그토록 거부한 이는 아무도 없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자신의 소설이 공포물 혹은 미스터리물로 규정되는 게 싫었을 것 같아요. 그녀가 들려주고 싶었던 건 가상의 공포가 아니라 감춰진 인간 본성이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작가 자신의 삶이었을 수도... 굳이 장르를 규정해야 한다면 블랙코미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잔혹할 때, 소설은 진짜 소설이 되는 것 같아요.

<인생의 훼방꾼>의 주인공 딜리는 자신의 불행이 자신의 착한 마음씨 탓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건만 도리어 자신이 파멸에 이르렀다는 결론.

그토록 친절하게, 진심을 다해 너그럽게 사람들을 대했는데, 어째서 왜 자신은 불운하고 불행하냐고 부르짖고 있어요.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319p)

딜리가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맷지 고모, 케네스, 에드워드, 버넌 마일스, 치체스터 경에게 했는지, 제삼자의 눈으로 확인해보세요.

과연 딜리 인생의 훼방꾼은 누구일까요.

각 단편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주인공들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어요. 비극의 주인공, 그들의 인생은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요.

문득 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아찔했어요. 


"괜찮아, 오래가는 아픔은 없어, 오래가는 아픔은 없어."  (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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