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말이 사라진 날 -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투쟁사
정재환 지음 / 생각정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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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에게 조선어학회가 없었다면... 

솔직히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울컥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을 바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계셨습니다. 그 중에는 총칼 대신 펜을 든 조선어학회 분들이 계셨습니다.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투쟁사를 다룬 이 책은 오늘날 우리의 언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한글 만세!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일본은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온갖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끔찍한 건 그러한 일본에게 충성한 친일파, 변절자, 매국노의 행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인보다 더 잔혹하게 동포들을 괴롭히고, 고문했던 놈들은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일본의 개가 되어 조선인들을 사냥하였습니다. 개만도 못한 나쁜 XX.

조선어학회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보면서 기가 막히고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1942년 3월, 함경남도 홍원군 홍원읍 홍원읍 전진역 대합실.

한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 쓴 박병엽은 결혼을 앞둔 친구 지장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차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검문하던 홍원경찰서 보안계 형사 후카자와에게 불심검문을 당했습니다. "너는 누구냐?" 라는 기분 나쁜 말투에 응수라도 하듯이 병엽이 '나는 박병엽이오'라고 퉁명스럽게 답했습니다. 이를 고깝게 여긴 후카자와가 '복장 불량, 언행 불량'으로 병엽을 홍원경찰서로 연행했고, 고등계로 넘겨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고등계 주임 나카지마, 형사부장 야스다(본명 안정묵), 형사 이토(본성: 윤)는 병엽을 앞세워 가택수색에 나섰습니다. 병엽은 지역 유지의 아들이라 엄청난 양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으나 병엽을 구금할 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야스다는 병엽의 조카 박영희의 방까지 뒤졌고, 서랍에서 발견한 영희의 일기장 두 건만 들고 나왔습니다. 여학생의 일기장을 가져가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야스다는 계속 꼬투리를 잡으려고 조사해도 아무런 증거가 없자, 박영희의 일기장을 훑어 보았고 거기서 한 줄의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정태진과 조선어학회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한 줄의 문장이 될 줄이야.


오늘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한테 단단히 꾸지람을 들었다.  (146p)

 

야스다는 일기장에 적힌 '국어'를 일본어로 생각했고, 국어를 사용한 기특한 여학생을 혼낸 불순·반역분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관련된 학생들에 대한 조사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희는 자신이 쓴 글이 2년 전에 쓴 일기였고, '조선어'라고 쓸 것을 '국어'라고 잘못 썼다고 말했습니다. 2학년 때의 일이었으니 어린애의 실수로 봐야 할 문제를, 야스다는 끝까지 추궁하여 정태진, 김학준과 일기장에 도장을 찍은 담임 최복녀 등 세 교사의 이름을 알아냈습니다. 형사들은 현직에 있는 김학준과 최복녀의 신문을 뒤로 미루고, 대신 사전 편찬원으로 조선어학회에 근무 중이던 정태진에게 출두 명령서를 발부했습니다. 이것이 '조선어학회사건'의 시발점입니다. 

정태진은 홍원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증인 신분에서 피의자로 바뀌어 20여 일 동안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때 정태진을 고문한 놈이 박영희의 일기장을 뒤진 야스다였습니다. 고문으로 육체와 정신이 파괴된 정태진은 거짓 진술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민족정신을 주입한 사상이 불순한 교사가 되어 있었고, 조선어학회는 불순한 독립운동 단체가 돼 있었습니다. 그 뒤에 회원들이 차례로 검거되었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 33인 (161p)

구속(31인) :  권승욱, 김도연, 김법린, 김선기, 김양수, 김윤경, 김종철, 서민호, 서승효, 신윤국, 안재홍, 윤병호, 이강래, 이극로, 이만규, 이병기, 이석린, 이우식, 이윤재, 이은상, 이인, 이중화, 이희승, 장지영, 장현식, 정열모, 정인섭, 정인승, 정태진, 최현배, 한징

불구속(2인) :  권덕규, 안호상


조선어학회사건 피의자들은 치안유지법 제1조에 해당하는 내란죄로 기소되었고, 국체변혁을 모의한 대역의 사상범으로 전원 구치소 독방에 수용되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예심은 원래 취지와 다르게 피의자를 무기한 구금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나카노 판사에 의한 요식적인 예심이 끝난 것은 1944년 9월 30일이었고, 그동안 이윤재와 한징은 사망으로 기소 소멸되었고, 장지영과 정열모는 면소로 석방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원심 공판에 회부된 사람은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태진, 김양수, 김도연, 이우식, 이중화, 김법린, 이인, 장현식, 정인승 등 12명이었습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7인은 곧 석방되었지만,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등 5인은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을 읽고나서야 조선어학회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주시경의 어문민족주의 사상을 계승한 최현배는 '정복당한 겨레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겨레 의식을 기르며, 겨레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서는 겨레의 말글을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한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조선어학회는 조선 독립을 위해 10여 년의 긴 세월에 걸쳐 조선어문운동을 전개해왔기 때문에 독립운동 단체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조선어학회사건이라는 일제 탄압으로 좌초될 뻔 했고, 한국전쟁과 한글맞춤법간소화파동으로  큰 고비를 겪었으나 1957년 마침내『큰사전』완간을 이뤄냈습니다. 1929년 사전 편찬에 착수한 지 무려 28년 만이며,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제정반포한 지 만 510년 만에 우리글과 우리말로 해석한 사전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민족운동사에 길이 빛날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기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놀랍고도 감격적인 일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는 힘, 그 저력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생여학교에서 조선어와 영어를 가르쳤던 정태진은 제자들에게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며 평소 이렇게 말했곤 했답니다.  "노력하라, 나도 노력하리라. 인생은 힘쓰는 자의 것이다."  (133p)


옥사한 이윤재는 사전 편찬실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말과 글은 민족과 운명을 같이한다. 일본이 조선의 글과 말을 없애 동화정책을 쓰고 있으니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글과 우리말을 아끼고 다듬어 길이 후세에 전해야 한다. 말과 글이 없어져 민족이 없어진 가까운 예로 만주족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글을 써두고 조선어사전을 편찬해두면,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후세에 이것을 근거하여 제 글과 말을 찾아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되고 민족운동이 되는 것이야."  (184-185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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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쓰고, 함께 살다 - 조정래,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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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건하게 한국 문학을 이끌어주신 조정래 작가님의 진솔한 대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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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 300년, 몰락과 재기의 역사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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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는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저자는 영국 의회정치의 역사를 통해 영국 보수당이 걸어온 다양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본보기로 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책은 개정판입니다. 처음 출간된 2008년과 지금 2020년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한국 보수의 무기력과 몰락을 보면서 오랜 시간 동안 건재해온 영국 보수당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지금 영국 보수당이 성공적인 생존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지금 한국의 보수 정당을 본연의 보수 정치 세력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그만큼 보수 정치에 대해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시대적 변화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정치 세력은 보수든 진보든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보수당의 300년 역사가 우리에게는 유익한 교훈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보수당이란 그 명칭 그대로 기존의 질서와 이해관계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당입니다. 다른 국가의 역사와 비교할 때 영국의 보수 세력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격변의 근대사를 거쳐오면서도 성공적으로 지켜냈다고 평가하는 것은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과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정치적 급진주의나 과격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의 정치적 생존 기술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는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경험, 상식과 같은 현실적 체험과 관찰에 의해 형성된 사고방식, 감정의 양태, 생활양식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보수당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 지도자에 의해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떤 지도자를 뽑느냐 하는 것이 보수당의 정치적 성패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을 하나로 통합해내고 시대적 요구에 지혜롭게 대응했던 지도자를 맞이했던 때와 그렇지 못한 때의 당의 정치적 운명은 너무나도 커다란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보수당의 역사를 당을 이끌어온 지도자를 중심으로 논의해보면,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지도자는 디즈레일리, 볼드윈, 처칠, 대처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1923년부터 1937년까지 14년 동안 보수당 지도자였던 볼드윈은 많은 이슈에 대해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며 분열된 보수당을 훌륭하게 결집시켰습니다. 성공적인 보수당 지도자로서 볼들윈의 역량은 급변하는 시대의 요구를 읽어냈고, 거기에 알맞게 보수당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도력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보수당의 장기 지배가 단지 유능한 지도자 때문만은 아닌 것이, 당조직과 자금력이 충분히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 보수당은 11년째 야당이었다가 2010년 총선에서 승리한 후 오늘날까지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6년 영국은 유럽연합 European Union : EU 을 탈퇴하는 이른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영국 정치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1987년 마거릿 대처가 이끈 승리 이후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보수당의 명백한 승리였습니다. 2010년 총선 이후 노동당은 네 번째 잇단 패배를 당했습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탈퇴 쪽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보수당으로 집결했고,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북부 잉글랜드에서도 보수당 지지가 상승했습니다. 선거 결과가 나온 후 보리스 존슨 수상은 자기에게 브렉시트를 마무리하라는 위임이 주어졌다고 선언했습니다. 여전히 혼란을 수습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보수당이 어떻게 대처하고 변화에 적응해가는지 지켜봐야 할 시점입니다. 결국 보수당의 생존 비밀은 시대를 읽을 줄 아는 탁월한 지도자의 존재이며, 정치적 성패는 변화에 대한 유연성과 적응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영국 보수당의 생생한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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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여행 - 방랑가 마하의
하라다 마하 지음, 최윤영 옮김 / 지금이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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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가라고, 여행가가 아니고?"

이 책은 프리랜서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소설가 하라다 마하의 어슬렁여행 이야기예요.

단순한 연상법이지만 제 머릿속에 방랑가는 김삿갓뿐이라서, 왜 '방랑가'라는 호칭이 붙었는지가 궁금했어요. 

그 궁금증은 책 속에 자세히 나와 있어요.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않고 대답할 테다.

여행이라고.

여행이 좋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동'이 좋다. 이동하고 있는 나는 뭐랄까, 아주 온화해진다.

머리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기분 좋은 바람이 드나든다."  (9p)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저자는 일본 방방곡곡을 떠돌며 어슬렁여행(정식명칭은 어슬렁식도락여행)을 즐겨왔다고 해요. 그래서 '마하의 행방불명 = 어슬렁여행 중'이라는 도식이 성립할 정도라고 하네요. 저자의 '어슬렁여행'은 마흔이 되던 해에 돌연 시작되었대요. 오랫동안 미술 관련 일을 해왔는데, 마흔 되기 직전에 '인생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거듭하다가, 깔끔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대요. 그뒤로 살짝 후회의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 친구 오하치야 지린이 도쿄로 놀러온다는 메일을 보냈고, 함께 도쿄관광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대요. 일부러 맞춘 게 아닌데 마침 마하의 마흔 살 생일을 파크하얏트 도쿄의 최상층에 있는 '뉴욕 그릴'에서 맞이했다네요. 그때 두 사람이 앉게 된 자리가 프러포즈를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일명 프러포즈 좌석이었다고. 도쿄 도심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굉장한 전망을 갖춘 자리였으니, 실제로 그 장소에서 생일축하 점심을 먹으니 기분이 좋았대요. 친구는 생일 선물이라며 꽤나 비싼 점심값을 계산하며, "이렇게 가끔은 둘이서 나오는 것도 좋네."라고 말했대요. 그 이후로 둘이 사계절마다, 일본 전국으로 떠나게 된 거예요. 어슬렁어슬렁~ 유유히 어슬렁거리는 여행 속에서 보는 풍경, 만나는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글을 쓰게 했고, 어쩌다보니 작가가 되어버린 거죠.

왠지 어슬렁여행 자체가 삶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인 것 같아서 멋져 보였어요. 무엇보다도 미각을 만족시켜주는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는 여행이라면 대환영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마하의 프랑스 여행이 가장 흥미로웠어요. 밤의 루브르를 비롯해서 여러 미술관을 둘러보는 즐거움은 살면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여행이에요. 또한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고흐 순례여행은 완전 매력적인 것 같아요. 

마하의 방랑여행기를 읽고나니 어슬렁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쏙 들어오네요. 아둥바둥의 반대말 같아서.

바람 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우리 인생도 어슬렁여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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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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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보건교사 안은영 선생님~"

이미 5년 전에 출간된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랬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어요.

와우, 이런 신박한 내용이었다니!


출간 5주년과 작품 영상화를 기념하여 리커버 특별판이 출간되었어요.

드라마 영상 때문인지 새롭게 바뀐 책표지가 딱인 듯.

킹스맨 옷장처럼 멋지진 않지만 보건실 캐비넷에 고이 보관된 무기들.

딱총, 광선검, 그리고 온갖 종교에서 사용되는 퇴마 물품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악귀나 혼령은 무시무시한데, 보건교사 안은영 선생님에게 보이는 건 말랑말랑 젤리들이에요.

아무도 못 보는 걸 혼자만 본다는 것도 괴로운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영웅 노릇을 빡세게(?) 해야 하는 그녀의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요.

진짜 혼자만의 비밀이었는데, 같은 학교 한문교사이자 학교 설립자의 손자인 홍인표에게 특별한 보호막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협업이 시작돼요.

각색된 드라마를 본 후에 원작을 봐도 역시나 재미있어요.

무엇보다도 재미 그 이상의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라서 더욱 반했어요.


정세랑 작가님의 친필 사인과 메시지.

"우리의 친절이 

오염된 세계에

단호히 맞설 거예요!"


얼마 전에 아잔 브라흐마 스님의 <개구리 수프>를 읽었는데, 스님 말씀이 세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세상을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대하며 살라고 하셨어요.

그 깊은 의미를 <보건교사 안은영>을 통해서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어요.

친절과 다정, 어쩌면 우리가 별 거 아니라고 무시했던 그것이 우리를 오염된 세계로부터 지켜내는 힘이었구나.




# 보건교사 은영이 원어민 영어 교사 매켄지와 나누는 대화


"너 뭐야? 쟤 보이지?

은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뱃속에서 끓어오르는 확신에 자기도 모르게 반말이 나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매켄지가 모른 척하거나 얼버무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막상 매켄지가 만면에 이기죽거리는 웃음을 띠자 뒤늦게 더 열이 올랐다.

"나? 너보다 훨씬 고급 능력자. 그렇게 첨범첨벙 다 잡아 없애고 돌아다니면 뭐 해요? 

돈 되는 일을 해야지."

문득 아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마음의 한 부분이 잠시 경련을 일으키듯 움직였다.

은영은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위험하고 고된데 금적적 보상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은영의 능력에 보상을 해 줄 만한 사람들은 대개 탐욕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좋지 않은 일에만 은영을 쓰려고 했다.

아주 나쁜 종류의 청부업자가, 도무지 되고 싶지 않았다.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만약 능력을 가진 사람이 친절해지기를 거부한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치관의 차이니까.  (122-123p)



# 은영에게 찾아 온 동창생 강선이 한 말


- 칙칙해지지마, 무슨 일이 생겨도.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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