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 한 사내가 72시간 동안 겪는 기묘한 함정 이야기
정명섭 지음 / 북오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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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은 정명섭 작가님의 스릴러 소설이에요.

한물 간 배우 강형모라는 남자가 72시간 동안 겪는 기묘한 함정 이야기.

강형모는 한때는 잘 나가는 스타였지만 사업하다가 빚더미에 앉고, 마약과 스캔들까지 겹쳐 현재는 사채업자 독거미에게 시달리고 있어요.

그래서 돈 많은 이혼녀 서미진을 유혹하여 돈을 끌어올 계획이었는데, 바로 그녀가 살해되었어요.

사건의 시작은 금요일 오전 11시 51분, 서미진이 보낸 카톡 메시지였어요. 딸과 함께 경주로 여행을 가려고 하니까 집에 있는 여행둉 캐리어를 마두역에 있는 상가로 갖다 달라는 부탁이었어요. 원래 마두역에 짓고 있는 상가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여행을 가겠다는 서미진에게 화가 났지만 비위를 맞추느라 알겠다는 카톡을 보냈어요. 서미진의 목동 아파트 거실에는 커다란 캐리어 세 개가 있었고, 강형모는 유난히 무거운 캐리어를 낑낑 대며 상가 공사 현장까지 옮겼어요. 도착해서 서미진에게 전화를 하자, 캐리어에서 벨소리가 들렸고 캐리어를 열었더니 그 안에는 서미진이 들어 있었어요. 꼼짝 없이 살인 누명을 쓰게 된 강형모는 월요일 전까지 진짜 범인을 찾아야 해요. 왜냐하면 서미진의 집 앞에서 그녀의 남동생 서욱철을 만나서 여행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올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에요. 서욱철은 백수로 누나한테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 강형모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하필이면 캐리어를 옮기는 걸 서욱철뿐 아니라 아파트 경비까지 목격한 터라 모든 정황이 강형모에게 불리해요.

과연 누가 서미진과 딸, 아들까지 세 사람을 한꺼번에 죽인 걸까요. 

강형모는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 살인 현장을 둘러보고 범인 추적에 나서게 돼요.

솔직히 강형모라는 인물은 배우라기보다는 사기꾼으로 타락한 인간이라서 그에 대한 연민은 안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그가 살인범이 아니니까 억울한 누명을 쓰면 안 될 일이에요. 짧은 시간 동안 강형모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그야말로 악몽 같아요.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악몽. 

가장 마음 아픈 건 아무 잘못 없는 서미진의 딸과 아들의 죽음이에요. 

이 소설에서는 강형모가 밝혀 낸 진실보다 주변인의 적극적인 행동이 사건 해결에 주효했던 것 같아요. 범죄사건이란 수없이 얽히고 설킨 인간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그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서로 속고 속이는 배신의 결과라는 점에서 뒷맛이 씁쓸하네요. 무엇보다도 죽음은 돌이킬 수 없고, 남은 이들은 평생 그 슬픔과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게 비극인 것이죠.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추락'이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됐을 때 더 끔찍했던 것 같아요. 아무도 이런 비극을 예상하지 않았겠지만 결국에는 일어났을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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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트
아네 카트리네 보만 지음, 이세진 옮김 / 그러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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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가트>라는 책도, 제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고, 그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일흔두 살 은퇴까지 아직 5개월이 남았다. 이는 도합 22주에 해당하고 

지금 보는 환자들이 모두 끝까지 함께한다면 상담 회기로는 정확히 800회를 진행해야 한다.

환자 중에서 누군가 병이 나거나 예약을 취소한다면 이 숫자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어찌 됐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하다."  (7p)


주인공 '나'는 일흔두 살, 은퇴를 앞둔 정신과 의사예요. 

병원 진료소에는 30년 넘게 일하고 있는 비서인 쉬뤼그 부인이 있어요. 

그녀는 처음 일하게 된 후로 늘 똑같이 나를 맞이해왔어요. 내가 들어가면 일어나 외투와 지팡이를 받아 걸어준 뒤, 그날의 진료 일정을 브리핑하고 차트 다발을 건네줬어요.

아침 인사 몇 마디를 주고받고 나면 점심시간까지 서로 얼굴 볼 일이 없어요. 나는 정확히 12시 45분에 진료소에서 나가 평범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이따금 쉬뤼그 부인은 뭘 먹는지 궁금할 정도로 한 번도 음식 냄새를 풍기는 일이 없었어요.

그날 아침, 쉬뤼그 부인은 어떤 독일 여성이 전화를 걸어 이따가 상담 예약을 잡으러 오겠다고 했다고, 그리고 그녀의 주치의인 닥터 뒤랑과 환자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몇 년 전 자살 기도를 하고 심각한 조증을 보여 생 스테판 병원에 입원했었다고도 전했어요. 나는 딱 잘라 안 된다고 말했어요. 그런 환자는 꾸준히 몇 년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나는 곧 은퇴할 예정이니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순 없다고 말이에요.

거의 50년간 임상의로 일했으니,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거라고, 그러니 새로운 환자는 더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후에 그 독일 여성이 병원을 찾아 왔고, 나는 쉬뤼그 부인에게 일처리를 부탁하며 황급히 '나의 안전한 진료실 안으로' 달아났어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쉬뤼그 부인은 그날의 진료 일정을 브리핑하며 그 독일 여자의 진료 예약을 받아줬다고 말했어요. 자신은 분명히 선생님이 앞으로 5개월만 일한다고 설명했는데도 그 여자가 완강하게 요청했다는 거예요. 그 독일 여성의 이름은 아가트 지메르만.

어쩔 수 없이 아가트라는 환자를 진료하게 되었고, 그녀는 자신을 지메르만 부인이 아니라 그냥 아가트라고 불러달라고 했어요.


"제가 여기 온 이유는,

...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에요.

병이 씻은 듯이 나을 거라는 환상 따위는 전혀 없어요.

그렇지만 웬만큼 사람 구실을 하고 싶어요."   (29p)


나에게 아가트라는 환자는 남아 있는 688번의 상담에서 추가된 몇 번의 상담자일 뿐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그런데 점점 상담이 진행될수록 궁금해졌어요. 아가트는 조증이라기엔 너무나 차분했어요. 독일어로 그녀의 이름을 '아가테'로 발음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주위 사람들이 늘 자기 이름을 '아가트'라고 발음하는 게 그녀 입장에서 싫지 않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어요. 그녀의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고, 기념 선물로 문구를 새긴 쌍안경을 주셨다고 했어요. 그 문구란 '퓌르 아가테, 마이넨 아욱아펠'이며, '나의 눈동자(또는 나의 소중한) 아가테에게'라는 뜻이에요. 덴마크어로 '오이에에블레(눈동자)'에는 사과라는 뜻이 있대요.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무엇인지 깨달았어요. 그건 계핏가루를 뿌린 사과가 오븐에서 익어가는 냄새, 내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주었던 요리 냄새였어요.

자신도 모르게 아가타와의 상담을 기다렸던 이유가 그 향기 때문이었을까요.


여기엔 주인공 '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요. 모두들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때문이에요.

진료실 안에서 나는 선생님으로 살아왔고, 이제는 은퇴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모든 것이 순탄하게 별일 없이 잘 흘러가는 와중에 아가트의 등장은 예기치 못한 변수였어요. 나는 언젠가 환자를 상담하다가 지독한 좌절감 때문에 연필 끝으로 종이를 뚫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종이에 새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환자들이 이야기할 때 그들의 말을 듣는 척 하면서 새를 그리는 거죠.


익명의 정신과 의사와 여러 환자들, 쉬뤼그 부인 그리고 아가트까지.

그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듯이 그들 자신이 스스로를 볼 수 있다면...

네, 다들 잊고 있었던 거예요. 정말 아이러니한 건 이 책을 읽는 나 역시 타인을 보느라 나는 잊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결국은 다 똑같아요. 사람이란, 상처받은 마음이란, 살아간다는 건...


<아가트>는 비교적 짧은 소설이에요. 읽다보면 어느새 끝나버렸어요.

그래도 온갖 감정들을 다 느끼게 해주네요. 진료실 안과 밖, 이토록 단조로운 세상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질 줄이야.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자기 자신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죠, 아가트."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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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민지 지음, 임현성 그림 / 뜰boo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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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는 민지 님의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수많은 책들 중에 한 권일 뿐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꼭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기억해내길 바랍니다. 그들이 진짜 양심을 가진 인간이었다면 그런 짓을 했을 리 없을 테니까, 그러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리도 없을 테니까. 그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다면 이제 이 책을 통해 똑똑히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에 만났던 그들.

그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했고, 그들이 데려간 곳은 석촌 호수 근처에 있는 선배 집이었습니다.

... 6년이 지난 그때에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저자와 친구는 그 날의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애써 모르는 척, 잊은 척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잊지 못한다.

그 남자,

나를 지켜보던 그 남자,

그 남자의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 남자의 머리카락과

그 남자의 얼굴과

그 남자의 눈빛과

그 남자의 손가락과

그 남자의 무릎과

하얀 양말을 신은 그 남자의 발을,

나는 잊지 못한다.

   (16p)


책 속에 나오는 내용들은 저자가 직접 겪은 일들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

저자는 그때 그 일 이후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줄에 이어 두 번째 줄이 생겼고, 세 번째, 네 번째... 점점 많은 줄들이 일렬횡대로 새겨졌다고. 

피가 흐를 정도만, 딱 그 정도까지만.

자해를 하는데 왜 아프지 않는지가 스스로 궁금해서 책을 찾아보니,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들이 자해하는 순간은 극도의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라서 고통을 덜 느끼게 된다고 적혀 있더랍니다. 

저자는 그동안 만났던 의사가 대략 열 명 정도인데, 자신이 왜 경계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는지 그 원인을 물어봤더니 의사마다 말이 달랐다고 합니다. 어떤 의사는 어릴 때부터 자라 온 가정환경 탓이라고 했고, 어떤 의사는 열네 살의 그 사건 때문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의사는 선천적으로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이 일반 사람들에 비해 다르게 나와서일 거라고도 했습니다. 병의 원인이 너무 복합적이어서 어느 것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금의 주치의도, 과거의 의사들도 그걸 모르는 것 같다고, 그래서 저자는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한 채 정처 없이 헤매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진단을 받은 지 16년, 십대 소녀는 어느덧 삼십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어린 소녀는 자신의 상처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그 상처가 소녀의 삶을 병들게 했습니다.

왜 소녀는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을까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을 테니까... 그때 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특별합니다.

드디어 저자가 말하기 시작했으니까. 경계성 성격장애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으니까.


"말 못 할 상처를 품고 사는 이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계절에......"

   - 민지 올림


이 책을 덮으면서 저자에게 할 말이 생겼습니다. 

당신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러니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나'가 아니라 '민지'로서의 삶을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상처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상처를 낸 자가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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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게임 2
박상우 지음 / 해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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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사방이 다 막혀버린 것처럼 답답한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문득 상상한 적이 있어요.

이건 현실이 아니다, 이건 꿈이다.... 물론 부질 없는 짓이지만 가끔은 상상의 힘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운명 게임>은 꽤나 독특한 소설이에요. 

주인공 이보리는 불교가 아닌 샤카무니의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보리는 자신을 '이보리'라고 칭하면서 타인을 대하듯이 자신의 말을 전하고 있어요.

솔직히 1권을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종잡을 수 없었어요.

창조주라는 신과 그들의 창조물인 인간의 관계가 종교를 뛰어넘어 우주로 확장되고 있어서, SF 소설이 되고 있었으니까요.

이보리는 세상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보기'라고 이야기했어요.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샤카무니를 석가모니라고 부르고, 이 세 문장을 '무아(無我)'라고 압축한 건 중국 불교의 영향인데, 문장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굳이 경전을 읽을 필요 없이 바로보기가 가능하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이 정도의 설명으로 그 뜻을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소설가는 그 의미를 알려주기 위한 소설을 쓴 거예요.

인류의 역사, 철학, 과학... 또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요. 어쩌면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우주적 존재와 미션의 등장은 설득을 위한 새로운 장치라고 생각해요. 거대한 세계 앞에서 우리는 한낱 미시적 존재이므로.

'인생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진실'에 대하여, 소설가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어요.

소설은 소설일 뿐.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굳이 토론의 장으로 끌고 가지 않기를.

2권까지 다 읽고나니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아요. 운명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해결의 열쇠는 무엇인가?"

아홉 영 중 다른 하나가 이보리에게 다시 묻는다.

"사랑과 감사입니다."

"사랑과 감사는 상승 차원의 답인데, 그것은 자율충천의 반영인가?"

"사랑과 감사가 샤카무니의 일깨움으로 생성되는 상승 차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가 실현되면

이 우주에는 오직 사랑과 감사만 충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26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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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게임 1
박상우 지음 / 해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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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게임>은 종잡을 수 없는 소설이에요.

불교적 관점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종교 이야기가 아닌 범우주적 이야기가 펼쳐져요.

액자식 구조는 들어봤지만 아바타식 구조는 처음이에요.

소설 속에 주인공을 창조한 소설가 자신이 등장해요. 소설가는 소설 전체 시공간을 만들어낸 창조주라면서,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매우 심각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첫 장면은 주인공 이보리가 자신의 원룸 방 한가운데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있어요.

원룸의 천장으로부터 눈부신 원통형의 광선이 밀려 내려와 그를 비추고 있어요. 무대 위 조명처럼.

곧이어 빛기둥 속에서 예리한 탐침봉 같은 것이 내려와 잠을 자고 있는 이보리의 심장을 향해 그대로 삽입돼요. 거의 동시에 심장 부위로부터 미세한 색상이 바늘을 타고 위로 상승하더니 붉은 기운이 점차 푸른 기운에서 백광의 상태가 되어 바늘과 함께 원통형의 빛기둥에서 사라져버려요.

와, 이건 미드 <엑스 파일>에 나올 법한 장면이네요.


이보리의 원룸에 조필규라는 남자가 찾아와 자신이 모시는 어르신과의 면담을 요청해요.

그건 이보리가 쓴 『인간 문제의 궁극에 대한 답』이라는 책 때문이었고, 어르신이 원한 건 바로 책 제목과 동일한 것이에요.

어르신이라는 인물은 철저하게 얼굴을 숨긴 채 이보리로부터 그 답을 얻고자, 면담을 위한 종신 계약을 체결해요. 어르신이 죽을 때까지 유효한 계약.


이보리 : 잘 들어보세요.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는 가르침을 제가 하나의 단어만 바꿔서 읽어보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참자아는 나의 것이 아니다.

참자아는 내가 아니다.

참자아는 나의 자아가 아니다.


어르신 : 흠, '이것'이라는 말을 참자아로 바꾸니 그 말이 그 말이 되는군.

정말 신기하군. 자넨 이걸 어떻게 알았지?

(더욱 믿어지지 않는다는 어조.)


이보리 : 이 지구상에 샤카무니의 무아와 힌두교의 참자아가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밝힌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이보리뿐!

(못을 치듯 단정적인 어조.)

   (122p)


어르신과 면담을 한 뒤 원룸으로 돌아오던 중 이보리는 납치를 당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다짜고짜 이보리의 정체를 털어놓으라며 폭력을 가하고...

다행히 정신을 잃은 이보리를 조필규가 발견하여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주고,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줘요.

소설가는 자신의 창조물 이보리의 무의식과 접속할뿐 아니라 상위자아의 존재와도 소통할 수 있어요. 이보리는 자신의 원룸과 어르신과의 면담이 있는 세상을 거대한 프로그램 속 게임이라고 이야기해요. 명상을 통해 의식이 우주적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실재계와 접속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러니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운명 게임'의 참관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재미있는 건 소설가 자신 역시 이 게임의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는 거예요.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애초에 구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변형되는데도 속수무책이에요. 소설가는 상위자아가 이런 정황을 완전히 간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나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 게임은 '나'라는 인간의 존재에서 시작하여 인생, 그리고 지구와 우주의 근원을 파헤쳐가는 여정이기 때문이에요. 소설가는 이 소설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어요.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지구에 태어났다!"라고. (51p)

저 멀리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했듯이, 우리는 운명 게임이라는 거대한 세상 속 하나의 점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보리와 소설가 그리고 상위자아... 그 너머 우주적 존재까지 모든 것은 운명의 프로그램 속 설정값이라면, 과연 인간 문제의 궁극의 답은 무엇일까요.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묻고 있어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지구에 태어났는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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