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 왼쪽주머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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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연습>은 수전 최의 소설이에요.

당신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신뢰, 그 본질은 무엇일까요. 궁금하다면 <신뢰 연습>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주인공 세라는 열다섯 살. 지금은 7월 초, 세라는 데이비드와 올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어요. 작년부터 약간의 낌새는 있었지만 서로 강하게 끌린 건 1학년 가을 수업을 받을 때였어요. 두 사람이 다니는 학교 이름은 시립 공연 예술 아카데미(Citywide Academy for the Performing Arts)인데 다들 CAPA라고 불러요.

CAPA에서 연극과 1학년 학생들은 연기 수업인 '신뢰 연습'을 해요. 수업 방식은 다양해서 침묵하기, 눈 가리기, 탁자나 사다리에서 뒤로 자빠지면 학급 친구들이 받아내기, 상대방이 한 말을 되풀이하기 같은 것들이 있어요. 담당 교사인 킹슬리는 수업 첫날, 칠판에 분필로 비스듬히 'THEATRE' ('연극'의 영국식 철자)라고 적었어요.


"이렇게 써야 합니다. 이 단어의 끝을 'ER'로 표기한 과제물은 통과되지 않을 거예요."

이게 실제로 킹슬리 선생이 처음 한 말이었어요. 세라의 상상처럼 '너희는 나에게 쥐뿔 아무것도 아니야'가 아니라.  (10p)


세라를 중심으로 남자 친구가 된 데이비드와 킹슬리 선생, 그리고 CAPA 연극과 열네 살 반 친구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윌리엄, 줄리에타, 패미, 타니콰, 샹탈, 앤지, 노버트, 콜린, 엘러리, 캐런, 조엘... 마지막으로 마누엘.

그밖에 등장인물로는 영국에서 온 교환 학생들이 있어요.


킹슬리의 신뢰 연습 시간에는 별별 희한한 시도들이 있었어요. 그중 하나는 창문이 없는 연습실의 전등을 다 끄고, 어둠 속에 학생들을 가두는 거예요. 어둠은 불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워서 은밀한 모험을 할 수 있어요. 슬금슬금 기어가기와 함께 더듬기, 만지기를 묵인하게 되었어요. 아니, 부추겼다고 해야 하나. 조명이 꺼진 순간 누군가가 세라 옆으로 달려와 여기저기를 더듬대다 가슴을 힘껏 쥐었고, 세라는 바닥을 짚은 손바닥에 힘을 실어 발로 힘껏 그를 밀어냈어요. 세라는 노버트라고 확신했어요. 늘 세라 가까이 앉아 빤히 쳐다봤으니까. 이후 세라는 엉거주춤 계속 게걸음을 쳤고, 그러다가 손 하나가 세라의 왼쪽 무릎을 잡더니 손바닥으로 허벅지 앞쪽과 소용돌이 패턴의 스티치를 쓸어내렸어요. 바지 위로 손의 온기가 느껴졌고, 갑자기 뱃속이 텅 비고 마음의 문이 가만히 열렸어요. 그는 한 손으로 세라의 허벅지를 짚고, 다른 손은 그녀의 오른손을 잡아 면도한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어요. 도톰한 손끝에 모기 물린 자국처럼 살짝 봉긋한 것이 느껴졌어요. 그건 데이비드의 모반이었어요. 데이비드의 왼쪽 입가에 있는 초콜릿색의 납작한 점, 이것은 데이비드의 표식이자 그의 점자였어요. 그때부터 세라와 데이비드는 서로의 몸을 알아갔고 사귀게 된 거예요.

둘의 관계가 어긋난 결정적 사건이 있어요. 데이비드가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세라에게 작은 선물 상자를 건넸어요. 옆에서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세라는 그 상자를 데이비드 손에 다시 쥐여주며 나중에 열어보겠다고 했어요. 구경꾼들에게 무심했던 데이비드가 세라의 반응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세라는 수업 내내 데이비드의 시선을 느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어요.


데이비드에게 사랑은 선언을 의미했다. 그게 핵심이 아닐까?
세라에게 사랑은 둘만의 비밀을 의미했다. 그게 핵심이 아닐까?

... 세월이 흐른 후, 세라가 일개 관객으로 극장에 갔을 때, '무언의 언어는 있을 수 없는가?'라는 배우의 대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 놀라리라. 데이비드보다 두 줄 앞에 앉아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목덜미에서 나방처럼 날아가지 못하게 움직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세라는 어휘 없는 이 언어에 맞는 표현을 몰랐다. 데이비드가 이 언어로 말을 걸지 않자 그게 무슨 뜻인지 세라는 모를 터였다.  (34-35p)


유독 세라를 편애했던 킹슬리 선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그가 했던 신뢰 연습이나 상담하듯 조언했던 모든 말들...

자기 감정에 완전히 접근하라고?

킹슬리 선생은 "자기 감정에 접근하는 것 = 순간에 존재하는 것. 연기 = 허구의 상황에서 진솔한 감정으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어요.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자기 감정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현실은 연기가 아닌데, 진솔한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야 맞는 걸까요.


열네 살, 열다섯 살, 열여섯 살의 아이들.

그들에게 일 년의 시간이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요. 표면적으론 운전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당시 아이들은 자신들한테 벌어진 일들을 해석할 수 없었어요. 현실에는 가짜 감정으로 반응하는 연기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세라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인 어느 날 밤의 일로 끝이 나지만 <신뢰 연습>의 이야기는 아직 더 남아 있어요.

다음은 캐런의 이야기예요. 캐런은 실명은 아니기 때문에 앞서 들려준 이야기에 나온 친구와 동일 인물은 아니에요.

지금 캐런은 로스앤젤레스의 스카이라이트 서점 밖에 서서 옛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캐런은 30세고, 옛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며 작가예요. 둘 다 18세 이후로 보질 못했어요. 친구의 이름은 세라. 성공한 소설가. 서점에서는 독자들을 위한 사인회가 열릴 예정이에요.

세라의 소설에서 세라는 캐런과의 실제 우정을 세라와 조엘의 우정으로 치환했고, 그 우정의 결말을 '신뢰 연습' 쇼로 둔갑시켰어요. 둘이 서로에게 느낀 모든 것이 여름을 지나면서 거의 자연스럽게 죽어갔고 우정은 끝나버렸어요. '신뢰 연습' 시간에 킹슬리 선생이 그들에게 시킨 연습들은 일종의 포르노였어요. 아이들을 무대에 올려서, 세라와 데이비드가 주목을 받아 모두의 부러움을 받은 것처럼, 그것은 그들의 스타덤이었어요. CAPA에서의 스타덤 또한 신념 체계라는 걸, 결국 현실에서는 모든 게 뒤집힐 거라는 걸, 그 나이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거예요. 


REpeat (반복) / rePEAT (반복하다)는 캐런의 명사/ 동사 목록에 없었지만,

거기 있어야 마땅했다. 똑같은 방식이니까.

행동, 사건, 반복된 다른 일, 이미 한 말을 되풀이하기.

'넌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를 반복하는 것은 

'내가 다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어'를 뜻하기도 한다.  (294p)


<신뢰 연습>은 소설 속 소설, 이야기 속 현실이 등장해요.

마치 킹슬리 선생의 신뢰 연습 수업처럼 상대방이 이미 한 말을 되풀이하는 방식 같아요. 반복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읽고 나서, 또 몇몇 장면들을 다시 읽었어요. 아하,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왜 나 자신이 하는 선택이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거야?

선택할 때는 타인을 위해 선택하는 거거든. 

우린 겹친다고. 엉켜있지.

상처 주지 않을 도리가 없어.  

   (390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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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 저주받은 바다로의 항해 마인크래프트 공식 스토리북
제이슨 프라이 지음, 손영인 옮김 / 제제의숲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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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의 세계를 넘어 이제는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왔어요.


<마인크래프트 : 저주받은 바다로의 항해>는 마인크래프트 공식 스토리북이에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닷가 집에 살고 있는 청년 스텍스 스톤커터예요.

스텍스는 스톤커터 집안에서 세 번째로 이 집을 물려받았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요. 아니, 고양이 세 마리- 콜, 라피스, 에메랄드-와 함께 살고 있어요.

최초의 스톤커터 집안사람인 스텍스의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 언덕 옆에 간소한 거주지를 마련했는데, 그곳은 흙과 바위를 파내어 만든 작은 굴 수준이었어요. 그랬던 집을 지금의 멋진 집으로 탈바꿈시킨 건 할머니의 아들이자 스텍스의 아버지였어요. 집 주변 땅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건물은 윤을 낸 섬록암과 화강암으로 지어서, 아침의 첫 햇볕이 내리쬐면 집은 마치 안에서 불을 켠 것처럼 밝아졌어요. 집으로 오는 길 양쪽에는 자작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집 마당은 넓고 푸른 잔디가 깔려 있으며, 즐겁게 보글거리며 물을 튀기는 분수가 있어요. 장미, 모란, 튤립, 국화, 데이지 등 갖가지 색의 꽃들을 심어 놓아서 집과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요.

스텍스는 아버지와 할머니한테서 배운 기술 덕에 돌을 캐내 깎는 솜씨가 훌륭했지만 그 일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스텍스는 광산보다 고양이와 꽃에 더 관심이 많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날은 스텍스 스톤커터가 보낸 평범한 날 중 마지막 날이었어요. 모든 것이 끔찍하게 잘못되기 전이었으니까요.

뜻밖의 방문객이 찾아왔어요. 그의 이름은 푸지 템프로.

자신을 수집가, 경험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어요. 푸지는 마치 자기가 집주인이고 스텍스가 구경시켜 달라고 부탁을 한 방문객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동료들을 데려와야겠다면서, 제멋대로 일주일 후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설마, 스텍스는 다음 만남은 생각조차 안했어요. 그 약속을 잊은 거예요.

푸지가 찾아오고 일주일 후, 스텍스는 선착장 끝 작은 탁자에 앉아 있었어요. 먼 바다에 나타난 첫 번째 배, 그 뒤로 열 척이 넘는 다른 배들이 보였어요.

이럴 수가!

푸지와 침입자들은 스텍스의 집과 창고에 들어가 물건들을 훔쳐 갔어요. 벽에 걸어둔 할머니의 돌 곡괭이까지 떼어 갔어요. 가축은 도망가거나 놈들이 다른 곳으로 옮겼고, 분수대는 박살났어요. 푸지는 부하들에게 나머지는 태우라고 명령했어요. 푸지가 말했어요.


"스텍스, 편하게 자리 잡았어? 갈 길이 멀거든."

푸지의 얼굴 주변으로 불에 타는 창고가 배경이 되어 붉은색 후광이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고, 불꽃이 붙어 있는 재 부스러기가 작은 별처럼 공중에 떠다녔다.

"도대체 왜?"

스텍스는 간신히 물었다.

"다들 매번 알고 싶어 하더군."

푸지는 이렇게 말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웃기는 일이지."

스텍스는 답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푸지를 쳐다봤다.

하지만 푸지가 해 준 답은 그게 전부였다. 

   (48p)


그날, 평범하고도 평온했던 스텍스의 일상이 산산히 부서졌어요. 

저주받은 바다로의 항해가 드디어 시작된 거예요. 악당 푸지 일당에게 납치된 스텍스,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진짜 모험은 여기서부터예요. 강도들은 스텍스를 버리고 떠나 버렸어요. 미지의 땅에 홀로 남겨진 스텍스는 반드시 해야 할 임무가 생겼어요.

고양이들을 되찾고, 빼앗긴 집과 인생을 다시 마련하는 일.

불행 중 다행인 건 스텍스에겐 아버지가 남기신 나침반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라모아를 만났다는 것.


와우, 스텍스의 인생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네요.

디즈니풍의 환상적인 모험과는 완전히 다른, 마인크래프트만의 스펙타클한 모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불행의바다 황폐의만 레인즈항구 # 텀블스항구 # 오버월드

절대로 스텍스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푸지 일당의 납치가 아니었다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닐 걸요. 평생 아름다운 집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안했을 거예요. 예상하지 못했던 위험과 위기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스텍스.

온실의 화초 같았던 스텍스에게 라모아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랑 헤지라랑 같이 가자. 세상은 넓어. 물론 세상에는 끔찍한 것도 있지.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하지만 아름다운 곳도 많아. 내가 보여 줄게."  (136p)


마인크래프트 세상 속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 역시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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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마음의 볕으로 내 바람벽은 따뜻했습니다
정란희 지음 / 보름달데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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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마음의 볕으로 내 바람벽은 따뜻했습니다>은 정란희 시인의 시집이에요.

시인은 미완의 문장에 당신 마음이 얹어져 시집을 지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이 시집은 사랑, 이별, 우정, 그리움, 추억을 담아낸 "105일의 연서"이자 당신만을 읊조리는 기도라고 해요.

얼마나 당신을 생각하며 그리워했기에 마음을 적어낸 편지가 되고 간절한 기도가 되었을까요.

그래서 첫 번째 시는 시집의 제목이자 그 제목이 각 연의 첫 글자로 이루어진 N행시예요.


신의 곁을 떠도는 은우隱憂를 목도하며

께 기도를 했습니다

르고 닳도록 당신의 삶의 중량과

지에 놓인 당신

 은닉의 시간들을 소거해

살 좋은 곳에서 켜켜이 퇴적된 행복감

...

 (이날의 내 기도는 어지간히도 당신만을 읊조렸던 모양입니다)

    (14-15p)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랑은 시를 노래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해서, 사랑했으니까, 사랑 때문에... 결국에 시는 사랑의 흔적이 되었네요.

<그 겨울 당신의 분다>라는 시의 마지막 연은, "그 겨울, 당신 마음의 볕으로 내 바람벽은 따뜻했습니다"라고 적혀 있어요.

당신 마음의 볕, 사랑은 추운 겨울도 따스한 볕으로 감싸주네요. 


사랑, 그 흔한 말.

그러나 시에 담긴 사랑은 결코 흔한 말이 될 수 없어요. 그때의 사랑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특별한 말이니까요.

시집을 읽다보면 신기하고 놀라워요. 누군가의 마음이 아름다운 언어로 빚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일지라도 시가 되면 새로워지나봐요.

<내 안의 한 사람>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에서는  "베껴 쓴 내 마음 안에 / 문장으로 숨 쉬며 살아가는 / 오직 내 한 사람이 / 너로 조각되어  내 안에서 자란다"라고 되어 있어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것.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점점 자라난다는 표현이 아름다워요. 그러나 이별은 잔인하게 그 자라난 마음을 도려내는 일이라 아픈 것 같아요.   


편지의 묘미는 추신인 것 같아요.

어쩌면 그 추신을 적기 위해 앞서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았는지도 몰라요.

이 시집에서 추신은, 정란희 시인의 시가 아닌 여러 사람들의 시가 적혀 있어요. 모두 제목은 "당신 마음의 볕으로 내 바람벽은 따뜻했습니다"예요.

N행시. 제목의 글자 하나하나가 각 행의 첫 글자가 되는 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석 자로 3행시를 만들어 보듯, 누구든지 N행시를 적어볼 수 있어요.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숨겨진 마음의 언어들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어요. 이 시집 덕분에 자신만의 시 한 편을 써본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니까요. 오늘만큼은 따뜻할 것 같아요. 내 마음의 볕으로 당신의 바람벽도 따뜻하길 바란다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졌나봐요. 아낌 없이 마음의 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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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을 몰라서
김앵두 외 지음 / 보름달데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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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을 몰라서>는 다섯 명의 작가가 쓴 사랑에 관한 기록들이에요.

김앵두의 사랑, H의 사랑, 시훈의 사랑, 선지음의 사랑, 탈해의 사랑.

각자 자신이 경험했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치 서랍 속에 넣어둔 일기장을 꺼낸 듯, 나즈막히 속삭이고 있어요.


"사랑해 라고 말하는 동그란 입모양만이 사랑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애틋한 사랑이 여기에 있었다.

종종 우리는 지나간 사랑스러웠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추억은 끝도 없이 팽창한다. 

찬란했던 시절은 세월의 격간 사이사이로 솟는다.

존재한 적 없는 것 같이 흔적이 희미해졌으나,

분명 존재했던 시간들.

돌아갈 수 없음은 더욱 돌아가고 싶게 만든다."

   - 앵두  (47p)


단편적인 추억들이라 내용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것 같아요. 앵두 작가의 표현처럼 추억은 끝도 없이 팽창하는데 흔적은 희미해진 느낌이에요.

지나간 사랑은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읽는 내내 뭔가 안타깝고 쓸쓸했던 것 같아요. 만약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따스한 햇볕을 쬐는 기분일 텐데...피부에 와닿는 따스함이 보이지는 않지만 온몸으로 느껴지듯이. 곁에 머물던 온기를 떠올리며 사랑을 추억하고 있네요.


H 작가는 시(詩)의 언어로 사랑을 들려주고 있어요. 그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요. 결국 사랑을 잘 몰라서... 그랬던 거라고.

추운 겨울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하얀 눈이 유난히 시렵다면 그건 떠나간 그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가.

오래지 않아 녹아 버릴 그 눈송이로

어떻게 너는, 내게 영원을 주고 떠난 것일까."

  - <사랑의, 눈> , H  (83p)


시훈 작가는 "- 사랑, 그 족적은 너무나 인간적인 흔적이었다"라고 이야기하네요.

사랑은 있는 순간순간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에 남기는 발자국이라고.

네, 그런 것 같아요. 돌아보니 사랑이었노라, 라고 느꼈다면 이제는 그 사랑을 놓치지 말기를.

교환 일기를 쓰고, 우산 아래에서 첫 키스를 나누던 우리 이야기.

이별했다고 해서 잊을 수는 없겠지요.


선지음 작가에게 사랑이란...

 "사랑은 기어코 삶의 전부는 아니란다. 세상이 공기라면 사랑은 수많은 정화 중 한 방법이야. 내 숨을, 또 네 숨을 조금 더 깨끗하게 만드는, 이 삶, 이 땅에서 조금 더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그저 아주 작은 빛을 만들어줄 따뜻한 가로등이야. 사랑은.

절대 무너지지 말자. 이 세상은 아직 미치도록 눈부셔."  (233p)

사랑했고 이별했다면 옛사랑은 간 것이고 새로운 사랑이 올 차례예요. 그러니 살아보자고 이야기하네요. 


탈해 작가는 "사랑은 알 수 없는데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고"라고 이야기하네요.

사랑했던 우리가 존재하고,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한다면 그럴 거예요. 하얀 종이 위에 빽빽이 적힌 글들이 사랑의 증거들이겠지요. 아니 흔적이라고 해야 하나.


"말하자면, 너는 내일이야. 알 수 없고, 그래서 불안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기대하고 말아. 

그러면서 그 사이의 공백을 공백만큼 생각해."  

  - 탈해  (306p)


<우리는 사랑을 몰라서>는 김앵두, H, 시훈, 선지음, 탈해라는 삶의 조각 모음집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사랑은 모르겠지만 사랑은 삶의 조각이 아닐까요.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한 조각 빠지면 허전하고 쓸쓸한... 그래서 오늘도 사랑을 추억하며 사랑하고 싶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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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상2 - 얽혀진 혼동의 권세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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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 : 오래된 세계> 2권이 드디어 나왔네요.

우와, 중국 판타지소설의 매력이란 정말 어마무시하네요. 스케일의 방대함!

앞서 1권에서는 경국 황실을 중심으로 한 인물관계도와 경국기구에 대한 도표 그리고 경여년 각국 세력지도를 통해 주인공이 겪게 될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줬는데, 2권에서도 역시나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어요. 워낙 스케일이 커서 인물관계도부터 잘 파악해야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갈 수 있어요.

경국은 황제의 강한 통치 아래 가장 강한 세력을 지닌 나라이며, 지금의 황제가 태자일 당시에 북벌을 시작하여 북위군을 상대로 한차례 처참히 패배했으나 뒤이은 북벌전쟁에서 첩보전을 통해 북위를 와해시켰어요. 경국의 황제에게는 직속 비밀 호위조직이 있어요. 

현실 세계에서 죽어가던 판시엔의 영혼이 간 곳은 하늘 나라가 아닌 경국이며, 황실과 막역한 관계인 판씨 집안의 친아들 판시엔의 몸 속이에요.

판시엔의 아버지는 황제의 충신이며 황실의 장사(산업)를 전담하는 내고의 수장이에요.


2권에서 판시엔은 아버지의 편지를 두 통 받았는데, 장사에서 정무, 그리고 이제는 감사원의 일을 하라는 내용이었어요.

처음에는 지난 연회자리에서 벌인 소동에 대한 문책이라고 여겼는데, 그것은 어쩌면 죽은 어머니의 절친인 쳔핑핑이 판시엔에게 감사원을 넘겨주려는 계획으로 보였어요.

감사원을 이어받는다는 건 재상의 자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로 보였어요. 쳔핑핑은 판시엔에게 북제의 사절단 임무를 내렸어요. 성공적으로 옌빙윈을 구하고 돌아온다면 옌뤄하이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고, 옌빙윈도 어느 자리에 오르게 되어 판시엔에 대한 감사원 고위 관료들의 과반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어요. 문제는 아버지 판지엔이 원하는 건 아들이 편안히 내고를 이어받아 부자로 잘 살기를 바란다는 점이에요. 진짜 중요한 건 판시엔이 무엇을 선택하든지간에 결국은 황제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결정될 거라는 사실이에요.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판시엔과 속내를 알 수 없는 황제, 그리고 황실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음모로 인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네요.

판시엔은 점점 이곳 경국에서의 삶, 판씨 집안의 사생아라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면서 신비로운 남자 우쥬와 어머니의 이야기, 신묘의 비밀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진실에 다가가고 있어요. 그를 둘러싼 음모는 갈수록 얽혀만 가고, 혼동의 권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숨막히게 전개되네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진정한 내 편은 누구인가, 그들이 감추고 있는 진짜 비밀이 무엇이길래 나를 향해 비수를 겨누는가.

무엇보다도 마지막 장면은 치명타를 날리네요. 이렇게 끝나면 어떡하냐고요.

상 완결, 중 1권에 계속... 으윽, 다음 이야기까지 또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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