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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일주 ㅣ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2년 6월
평점 :
쥘 베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 순위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유명해요.
저 역시 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작품을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떨림까지는 아니어도 굉장히 기뻤어요.
열림원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은 독자들이 가장 사랑한 작품들 <지구 속 여행>, <해저 2만리> (전 2권), <15소년 표류기> (전 2권), <80일간의 세계일주>, <지구에서 달까지>, <달나라 탐험>, <신비의 섬> (전 3권) 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여기 책에 실린 삽화는 뇌빌과 브네가 판화로 제작한 것으로 프랑스 초판본 삽화라고 하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어요. 책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랄까. SF와 모험 소설의 바이블이니까요.
《80일간의 세계일주》 는 쥘 베른의 '경이의 여행' 시리즈 중 하나이며, 처음에는 잡지에 연재되다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 1873년 책으로 출간되었대요. 이듬해는 연극으로 각색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고 하니, 원작의 힘이 대단한 것 같아요.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수수께끼 같은 영국 신사예요. 아내도 자식도 없이 새빌로의 저택에 혼자 살았는데, 그는 시중을 들어줄 하인 한 명으로 충분했어요. 생활 습관이 규칙적이라서 하인에게도 정확성과 규칙성을 요구했는데 제임스 포스터라는 하인이 면도용 물 온도를 잘못 맞춰서 해고되었어요. 새로운 하인으로 고용된 장 파스파르투는 파리 태생의 프랑스인이며 5년 전에 영국으로 건너와 런던에서 하인 자리를 찾다가 드디어 필리어스 포그를 만난 거예요. 꼼꼼한 주인과 충직한 하인의 환상적인 조합이지만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게 함정이네요.
집돌이 필리어스 포그는 혁신 클럽의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뜻밖의 내기를 하게 돼요. 도둑이 도망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시작된 대화가 지구로 확장되어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세계일주까지 이어진 거예요. 필리어스 포그는 호기롭게 80일 이내, 1920시간, 11만 5200분 안에 세계일주를 하겠다며 2만 파운드를 걸고 내기를 제안했고, 스튜어트와 폴런틴, 설리번, 플래너건, 랠프까지 다섯 명은 이 기막힌 내기에 합의했어요.
하인 파스파르투는 이 내기 소식을 듣고는 놀라 자빠지게 돼요. 맨날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주인들에게 질려서 집돌이 포그를 선택한 건데, 이게 웬 날벼락인지... 무엇보다도 뜬금없는 내기를 구실로 영국을 떠나려는 필리어스 포그를 경찰이 은행 절도범으로 의심하게 된 것이 가장 황당하네요. 또한 런던 시장에 새롭게 상장된 주식 '필리어스 포그 주'가 활발히 거래되다가 급격히 추락했다는 것도 주목할 소식이에요.
타고난 모험가도 아니고 규칙적인 일상을 기계처럼 살아가는 독신남의 세계일주라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지만, 그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재미가 있네요. 별의별 경험과 위기 속에서도 내기에 성공하겠다는 필리어스 포그의 집념도 놀랍지만 그럼에도 파스파르투를 구출하러 가기로 결심하는 모습은 감동을 주네요. 허무하게 끝나는구나 낙심하는 순간, 깜짝 반전이 벌어지는데... 밀당인가요, 어쩜 쥘 베른은 독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지, 중요한 건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말이라는 거예요. 필리어스 포그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인생에 한 번쯤은 미쳐라!" 인 것 같아요.
"자네는 도둑 녀석이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모르지요. 하지만 어쨌거나 세상은 넓으니까 말입니다."
"옛날엔 그랬지요."
"옛날엔 그랬다는 게 무슨 뜻이오? 지구가 갑자기 작아지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물론이지. 나도 포그 씨와 같은 생각일세. 지금은 백 년 전보다 열 배나 빠른 속도로 지구를 돌 수 있으니까, 지구가 그만큼 작아진 셈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사건에서도 그만큼 범인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걸세."
"하지만 도둑도 달아나기가 그만큼 쉬워지겠죠!"
"지구가 작아졌다는 말은 아무래도 이상해요. 비록 지금은 석 달 안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해도......"
"80일이면 족해요."
...
"나는 그 조건에서 그런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쪽에 4천 파운드를 걸겠소."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럼 해보시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그렇소!"
"그럼 좋습니다."
"언제 떠날 거요?"
"지금 당장."
"그건 미친 짓이오."
(29-3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