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의 대명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585
오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서 쾅!

그냥 번쩍 눈에 띄었어요.

'없음'이 이토록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니 신기했어요.

요근래 시집을 좀 펼쳤더니, 점점 시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커지는 것 같아요.

《없음의 대명사》 는 오은 시인의 시집이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585 번째 책이에요.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첫 장에는 '시인의 말'이 적혀 있어요.

"'잃었다'의 자리에는 '있었다'가 있었다."

2023년 봄 , 오은 (3p)

이 책에 실린 시의 제목은 모두 아홉 개예요.

그곳 / 그것들 / 그것 / 이것 / 그들 / 그 / 우리 / 너 / 나

동일한 제목으로 된 여러 시를 읽다 보면 생판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에서 주변 지인, 너 그리고 나로 귀결되고 있어요.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건말건 "나와 무슨 상관인데?!"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요. 마치 불행이 자신만 비껴가는 듯 착각하거나, 남의 불행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일 거예요. 그건 이기심보다는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해요. 저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세상이에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시인은 '없음'이 원래 '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네요. 상실의 아픔과 슬픔...

"사람은 고유명사로 태어나 보통명사로 살아간다

제 이름을 대신하는 명사로 분扮해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분해서 허허 웃어버렸다

...

그의 이름은 하염없이 낡아만 갔다 그는 보통명사에서 추상명사가 되었다

사랑처럼 흔하고 희망처럼 귀하지만 삶처럼 끝끝내 막연했다

없음의 대명사처럼

물불 가리지 않았기에 그는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었다

똥오줌을 못가렸기에 아기처럼 자연히 의연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던 순간이 딱 한 번 있었다

그때 그는 웃음을 이해했다고 믿었다 웃느라 한 말에

감히 초상이 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98-99p)

고유명사로 태어나 대명사로 살아가는 사람들,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너, 그리고 나.

그들, 그, 너를 익명으로 만드는 대명사는 오히려 특정하지 않아서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대명사... 이 모든 것들을 합친 말을 알고 있어요. 바로 거시기, 전라도 사투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사전에 실려 있는 표준어라고 해요.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거나 직접적으로 말하기 거북할 때 쓰는 말이에요. 거시기의 '거'는 본래 대명사 '그'인데, 이것이 '거'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거... 뭐지?"라고 애매하게 구는 세상을 향해 시인은 "그건 말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범람하는 명랑, 무표정도 표정이라면 감춰진 것들을 꺼내어 보여주네요. 무엇이 보이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역사 (리커버)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평점 :
품절


한 문장이 마음에 꽂혀 읽게 된 책이에요.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8p)

읽다 보니 모든 문장 하나하나에 마음이 움직였네요. 시를 읽는 일이 새롭게 느껴질 정도로 좋았어요.

또한 이 책이 2022년에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 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뜻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이라는 직업' (알렉상드르 졸리앵)을 가진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말에 감동했네요.

《인생의 역사》 는 문학평론가 신형철님의 시화 詩話 ,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에요.

원래 2016년 한 해동안 한겨레에 연재했던 '신형철의 격주시화'를 바탕으로 다듬고 엮은 것이라고 해요.

이 책에는 저자가 꼽은 시와 이야기가 있어요. 「공무도화가」에서 황동규 시인의 최근 시까지, 그리고 에필로그에는 박준 시인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라는 시집에 실린 시의 문장들을 곱게 펼쳐 보여주네요. 저자는 "시인 박준은 시를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312p)이라면서 나의 현재를 당신의 미래에 선물하는 마음을 '돌봄'이라고 해석하고 있어요.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당신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317p) 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책에서 만난 모든 시들이 마음을 토닥여줘서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그냥 시를 읽었더라면 얕게 스쳐갔을 의미들이, 저자의 이야기 덕분에 마음 깊이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네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 (8p) 라는 저자의 말에 백번 공감했어요. 지금 나이에 이르러, 겨우 시를 읽을 줄 알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그러나 이제 고백하자, 시인하자.

쓴다는 것, 써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더라면

내 삶은 아주 시시한 의미밖에 갖지 못했으리라는 것,

어쩌면 내 삶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

오 쓴다는 것, 써야 한다는 생각에276

내가 얼마나 높이높이 내 희망과 절망을 매달아 놓았던가를

내가 얼마나 깊이깊이 중독되어왔던가를

이제 비로소 분명히 깨달을 수 있겠구나.

- 「워드 프로세서」 부분, 최승자 (276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죽음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지음, 박영숙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명제 :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명제 : 톰은 사람이다.

결론 : 따라서 톰은 죽는다.

삼단논법의 대표적인 예문이에요. 두 개의 명제를 전제로 결론을 내리는 논리적인 추론법이에요.

이제껏 조금도 의심한 적 없었던 개념이 흔들리고 있어요. 전제가 맞지 않다면 결론은 달라지겠죠.

《죽음의 죽음》 은 노화 연구의 핵심을 담은 책이에요.

공동 저자인 호세 코르데이로와 데이비드 우드는 노화 저지 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고 해요.

우선 노화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오브리 드 그레이이며, 이 책에도 그의 서문이 실려 있어요.

오브리 드 그레이는 노화연구의 혁명적인 선구자로서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에서 노화방지를 위한 학제간 공동연구소의 일원이며, 독자적인 연구를 위해 비영리기구인 므두셀라 재단을 2003년 설립 운영 중이에요. 드 그레이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과 전산을 공부했고, 생물학자나 의사보다는 엔지니어나 기술자에 더 가까운 비전을 가졌고, 수명 연장에 관한 그의 접근방식은 SENS(Strategies for Engineered Negligile Senescence : 미미한 노화에 관한 기술적 전략)라고 불리는데, 2002년 저명한 의사와 생물학자들과 함께 쓴 논문을 발표했어요.

"당신도 1000살까지 살 수 있다. 늙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제 노화는 질병처럼 예방하고 치료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의 주장은 전 세계의 폭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돌팔이나 미친 사람이라고 했어요. 다수의 전문가들이 그의 생각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공격했지만 학술적인 검증 과정에서 드 그레이의 주장이 허위임을 증명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2005년 이후 세상은 변했고, 최근 몇 년 동안 오브리 드 그레이의 독창적인 생각을 강화하는 커다란 과학적 발전이 있었어요. 드 그레이는 2009년 세게가 노화 관련 질병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SENS 연구재단을 공동 설립했어요. SENS 재단은 재생의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연구 결과로 만들어진 치료법 중 몇 가지는 이미 적용되고 있어요.

이 책은 '불멸'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관한 과학적 고찰을 담고 있어요.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래 불로장생은 인류의 염원이었으나 오늘날까지 그 불멸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은 없었는데, 노화 연구자들은 이제 곧 인간의 노화 역전을 위한 첫 번째 치료법을 얻게 될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저자들은 우리가 마지막 필멸의 세대와 첫 번째 불멸의 세대 사이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네요. 이 책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음을 알려주네요. 노화와 죽음에 맞서는 혁명에 동참할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건지 말이에요. 수명 연장을 위한 연구 내용뿐 아니라 수명 연장을 반대하는 주장을 함께 다루고 있어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양측이 모두 사회적 뿌리가 깊다면 적절한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수 있어요. 노화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노화로부터 자유로운 장수인간 사회를 받아들일지에 관한 논쟁을 통해 각자 판단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인간 노화 역전을 위한 최초의 생명공학 치료법이 2020년대에 상용화되고, 2030년에는 나노기술 치료법이 등장하며, 2045년에는 노화를 완전히 제어하고 역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해요. 안타깝게도 그때까지는 계속 늙어가고 죽겠지만 적어도 노화와 죽음에 맞서는 혁명에 동참할 수는 있어요.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훨씬 젊게,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실존적 절망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노화 연구자들은 '노화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며, 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해주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떻게든 이별》 은 류근 시인의 시집이에요.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번째 책이에요.

시는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이에요. 왜 하필 이별이었을까요.

제 머릿속에 이별은 사람과의 헤어짐이 먼저 떠오르지만 시인에게 이별은 다른 의미였네요.

<어떻게든 이별>이라는 시에서, "... 어제는 어제와 이별하였고 오늘은 또 어제와 이별하였다 아무런 상처 없이 나는 오늘과 또 오늘의 약속들과 마주쳤으나 또 아무런 상처 없이 그것들과 이별을 결심, 하였다" (24p) 라고 이야기하네요. 진짜 시인은 아무런 상처 없이 이별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죠. 마지막 연에서 "그러니 나의 이별을 애인들에게 알리지 마라 너 / 빼놓곤 나조차 다 애인이다 부디, 이별하자" (25p) 라고 한건 어찌할 도리 없는 삶의 고통을 표현한 게 아닐까요. 어떻게든 이 별,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이별을 피할 수 없으므로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듯이 이별하라는 뜻이겠지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라는 시에서는 "파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 파도의 굳은살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38p)라고 한 것도 같은 의미일 거예요. 파도는 밀물이라고 기뻐하고 썰물이라고 슬퍼하지 않듯이, 이별도 파도처럼 받아들여야 할 순리이겠지요.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가사에서도, "또 하루 멀어저져 간다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진짜 서른 즈음에는 몰랐던 노랫말의 감성을 요즘에서야 제대로 음미하고 있어요. 이별을 좀 알만한 나이가 됐나봐요.

그럼에도 삶이 버거울 때는... <굳센 어떤 존재 방식의 기록>이라는 시를 읽어보세요.

"...아아, 모든 구토하는 것들은 미리 먹어둔 게 있다" (113p)

시인은 우리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지만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듯 흔들리고 아파하는 자신을 숨김 없이 보여주고 있어요. 모두들 보아라, 불행했고 행복했노라.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을 뿐이에요.



시인의 말

당신 만나서 불행했습니다.

남김없이 불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 불행한 세상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어서 행복했고

사랑하는 사람

당신이어서 불행하였습니다.

우린 서로 비껴가는 별이어야 했지만

저녁 물빛에 흔들린 시간이 너무 깊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서로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단 한 개의 손이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꽃이 피었고

할 말을 마치기에 그 하루는 나빴습니다.

결별의 말을 남길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당신 만나서 참으로 남김없이 불행하였습니다.

- 2016년 8월

다시 감성마을 慕月堂 모월당에서 류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처적 체질》 은 류근 시인의 시집이에요.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번째 책이기도 하고요.

최근에 류근 시인을 알게 됐고, 어떤 시를 썼는지 궁금했어요.

시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은 많아서, 그 사람이 시인이라 시집을 읽게 되었네요.

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어서 시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고 다시 시를 마주하니 그냥 이해되는 느낌이랄까요.

살다보니 이해할 수 없는 건 세상이더라, 어려운 건 삶이더라...

류근 시인의 <치타> 라는 시를 보면, "전속력으로 달려가 톰슨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치타를 보면/ 먹이를 물고 나무에 오를 힘마저 탕진한 채 / 하이에나 무리에게 쫓겨 주춤주춤 / 먹이를 놓고 뒷걸음질 치는 치타를 보면 / 주린 배를 허리에 붙인 채 다시 평원을 바라보는 / 저 무르고 퀭한 눈 바라보면 / 쉰 살 넘어 문자 메시지로 / 전속력으로 해고 통고받은 가장을 보면 / 닳아 없어진 구두 뒷굽을 보면 / 거울을 보면 " (120p)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무심히 거울을 바라보게 되네요.

쉬이 낫지 않은 상처마냥 아프네요.

<더 나은 삶>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은, "내 이 별에 오직 견디는 힘으로 살다 가려고 온 것 / 아니다" (142p) 인데 마침표가 찍혀 있지 않아요. 이 시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에 마침표가 없어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요. 삶을 계속되고 있고, 살아가야 하므로.



시인의 말

진정한 지옥은 내가 이 별에 왔는데

약속한 사람이 끝내 오지 않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2010년 4월

감성마을 慕月堂 모월당에서 류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