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연주 - 연주 불안을 겪는 음악가에게 전하는 마음의 지혜
케니 워너 지음, 이혜주 옮김 / 현익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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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악기를 배웠지만 10대 때 그만두었다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음악을 계속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들은 왜 음악을 그만두었을까?

그들이 공부하는 내용에서 음악이 주는 환희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39p)


살면서 후회까지는 아니고, 늘 아쉬운 건 피아노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거예요.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체벌하는 선생님을 만나는 바람에 영영 음악과 멀어지게 됐거든요.  후회가 아니라 아쉬움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처음 음악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다정하고 좋은 분이었다면 피아노를 꾸준히 배웠을 뿐 아니라 음악을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음악 자체가 싫어지는 부작용을 겪었네요. 어떻게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고, 지금이야 말할 수 있지만 십대 시절에는 음악이 트라우마였어요. 자유롭게 음악을 느끼고 즐기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어요.

솔직히 연주자가 아니면서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도 '길 잃은 음악가들'을 위한 음악 레슨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어요. 연주하는 음악가들이 겪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훈련법이라면 누구에게든 도움이 될 테니 말이에요.

《완전한 연주》는 케니 워너의 책이에요.

저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4살에 공연을 시작해 11살에는 텔레비전에 출연할 정도로 음악 영재였다고 하네요. 누구보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던 그가 한때는 무기력증에 시달렸고 특별한 훈련법으로 극복했다는 사실은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여기서 소개하는 훈련법은 명상과 아주 흡사해요. 연주와 관련한 문제들, 이를 테면 두려움에 근거한 연주, 연습, 교육, 감상, 작곡에 대해서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저자는 연주자들을 위한 훈련법으로 소개했지만 삶의 변화를 불러오는 훈련법이라는 점에서 모두에게 유용한 방법이에요. 4단계 훈련법은 집중력과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며, 보다 수월하게 내면과 연결하도록 도와주는 방식이에요. 명상과 동일한 원리이며, 직관적인 자신을 확장하도록 돕는 마음 다스림 요법이라고 볼 수 있어요. 훈련을 위한 준비로는 '자아 놓아주기'가 있어요. 쉽게 설명하자면 생각을 제거하는 거예요. 의식적인 마음에 지배당하면 집중력 부족과 압박감으로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할 수 없어요. 그래서 자아를 놓아주고 음악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어야 해요. 저자는 회복 훈련을 받고 있던 주앙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고, 그가 "너에게 친절해야 해!"(32p)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본인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집착을 버릴 수 있었으며, 그제야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핵심은 마음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 무엇인지, 자신은 누구인지, 자신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거예요. 케니 워너는 자아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음악만을 힘들이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음악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연주자, 음악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인생에 적용할 수 있어요. 삶과 음악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우리는 여기에 각자의 꿈, 사명을 추가하면 돼요. 왜 이 책이 수많은 음악가들의 삶을 바꾼 음악론의 고전인지 이해가 됐어요. 탁월한 마음챙김 훈련법으로 완벽한 연주 대신 완전한 연주를 해냈을 테니까요. 케니 워너는 훌륭한 음악가이자 놀라운 통찰을 지닌 철학자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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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림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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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인 자극은 강렬하고 오래가는 것 같아요. 한 번 봤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 있나요?

혹시나 겁이 많은 편이라면 이 책은 추천하지 않아요. 다만 호기심이 많고 추리를 좋아한다면 다르겠죠.

《이상한 그림》은 우케쓰(雨穴)의 소설이에요.

이 책 속에는 얼핏 보면 평범하지만 자세히 보면 매우 이상한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어요.

그냥 그림만 보여줬을 때, 뭔가 수상한 점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탐정이 될 능력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만큼 그림의 수준이 전문가의 솜씨는 아니라서 일부러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정도는 아니라는 거예요.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다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림의 해석을 듣는 순간 보이게 될 테니까요. 조금 섬뜩하고 무서울 수도 있어요.

재미로 보는 심리테스트에서 인간, 나무, 집을 그려본 적이 있는데 소설 첫 장에서도 심리학자가 그림 한 장을 보여주고 있어요.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문조를 보호하는 나무 그림, 미술 교사의 마지막 그림, 바람 속에 서 있는 여자 그림, 집을 뒤덮은 안개 그림까지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그림을 다시 보게 될 거예요. 네 편의 이야기와 그림들이 퍼즐 조각처럼 느껴지네요.

"아이는 눈에 보이는 '실물'이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린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 유타의 머릿속에는 '뭉게뭉게 피어나는 회색'이 떠올랐다는 건가.

유타의 마음이 알고 싶다." (107p)

새삼 이 소설을 읽다가 그림이 가진 힘을 발견했어요. 우리가 말이나 표정, 몸짓,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하듯이 자유롭게 그리는 그림 속에도 무의식적인 본능이 있어서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림 안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 그 진실을 알아채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심리상담사, 정신과의사라고 해도 100퍼센트 정확한 분석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예측할 뿐인 거죠.

"아이는 슬픔이나 불안에 어른 이상으로 민감하다.

그리고 어른과 마찬가지로 그렇다는 사실을 감춰서 주변에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미우도 유타도 분명 웃음으로 가린 채 참을 때가 있으리라." (322p)

어떻게 그림으로 공포 미스터리를 완성할 수 있었는지, 다 읽고 나니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어요. 우케쓰, 한자로는 비 우, 구멍 혈, 그 의미도 기묘하다 싶었는데 실명이 아니더라고요. 일본의 인기 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 겸 유튜버로 활동 중인데 흰색 가면에 검은색 전신 타이츠, 변조한 목소리로 본모습을 감추고 있어서 신원은커녕 성별조차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미스터리한 인물이라고 하네요.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1,400만 뷰를 돌파한 '이상한 집' 영상이 동명의 소설로 출간되면서 작가로 데뷔했고, 《이상한 그림》이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해요. 확실히 색다른 그림 미스터리의 세계였어요.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 완전 소름돋았어요. 아참, 책 표지도 이중 표지라서 그 뒤에 그림이 숨겨져 있어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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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의 배신 - 대중의 욕망인가, 기업의 마케팅인가
이호건 지음 / 월요일의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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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이나 광고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트렌드라는 단어예요.

워낙 여기저기서 트렌드에 관한 정보들이 쏟아지다 보니 오히려 트렌드를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도대체 트렌드의 정체는 뭘까요. 바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한 책이 나왔어요.

《트렌드의 배신》은 일종의 트렌드 비판서예요.

저자는 교육컨설팅 회사를 경영하며 작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라고 해요. KBS1 라디오 <라디오매거진 위크앤드>에서 '생활 속 인문학' 코너를 진행하고 있고,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직장인을 위한 출근길 인문학>을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트렌드가 과연 대세적 흐름이 맞는지, 트렌드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본질을 탐색하고 있어요.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요. 본인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좇는 거라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해요. 일단 다수가 따르는 트렌드라고 해서 모두 좋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트렌드가 지시하는 방향만 볼 게 아니라 그것에 내재된 본질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이 책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 영역, 모두 스물여섯 가지의 트렌드를 비판적 시삭에서 살펴보고 있어요. 돈과 관련된 주제에서는 파이어족, 영끌 빚투, 자본주의 키즈, N잡러 등의 트렌드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욕망과 관련된 주제에선 편리미엄, 편슈머, 업글인간, 뉴트로, 김정대리인 등의 트렌드를, 행복이란 주제에서는 소확행, 욜로족, 워라밸, 러스틱 라이프, 오하운, 한 달 살기라는 트렌드 상품을, 자아를 찾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 멀티 페르소나, 레이블링 게임, 혼밥혼술족, 나나랜드, 인싸/아싸 트렌드를, 디지털 시대 이슈인 메타버스, 언택트, 데이터지능, 조용한 퇴사, 인공지능 트렌드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어요. 트렌드라는 이름의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해요. 저자는 트렌드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하면서 위대한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을 소환했네요. 그는 <자유론>에서 세상 사람들을 흉내내기보다는 개별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는데, '개별성-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제목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대요. "그저 관습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이 최선인지 구분하는, 또는 가장 좋은 것에 대해 욕망하는 훈련을 하지 못하는 셈이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신이나 도덕적 힘도 자꾸 써야 커진다. (···) 만일 사람이 세상 또는 주변 환경이 정해주는 대로 살아간다면, 원숭이가 가진 흉내내는 능력 이상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31-32p) 우리는 각자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욕망하는 정신적 훈련을 통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어요. 행복한 삶이란 외부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추구하는 거예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인간으로서 월등한 점은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어요. 깊이 생각하는 힘, 지혜롭게 사는 길을 알려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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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을 회복하는 연습 - 후회와 미련은 접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두뇌 재훈련 프로젝트
데이먼 자하리아데스 지음, 안솔비 옮김 / 서삼독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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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파도가 덮치듯, 살다 보면 전혀 예상도 못했던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할 때가 있어요.

그야말로 멘탈붕괴, 멘붕 상태가 되고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는 거죠. 아마 저마다 힘든 고비가 있었을 거예요.

잘 견뎌내면 다행인데 너무 큰 상처를 받으면 헤어나오기가 힘들어요. 겉으론 괜찮은 척 지내지만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곪아버려요.

《멘탈을 회복하는 연습》은 데이먼 자하리아데스의 책이에요.

저자는 미국에서 떠오르는 자기계발 멘토라고 하네요. 기존의 자기계발 멘토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건 개인적인 경험이나 연구 결과가 아니라 철저히 이론과 실전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직접 강연이나 워크숍을 하지 않고 오로지 책으로만 독자들과 소통하며 실제로 독자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요. 하나 더, 특별한 점은 비밀에 싸인 저자라는 거예요.

우선 저자는 멘탈이 강해지기 이전에 회복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강한 멘탈을 만들고 싶다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의 일, 그로 인한 분노, 억울함, 좌절감, 후회, 고통스러운 기억을 끊어내야 해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멘탈이 약해진 상황에서는 현재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에 악화될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멘탈을 다독여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들이 있는데, 이 중 하나라도 겪고 있다면 정신을 차리고 그 이유를 찾아야 해요. 끝없는 좌절을 느낀다거나 특정 사건을 계속 곱씹는 일, 자기 연민에 빠져 있거나 현명한 선택이 아닌데도 결정을 합리화하고, 감정의 고갈을 느끼며 가장 최근에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지 못한다는 신호를 감지했다면 왜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을 느끼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해요. 상처받고 약해진 멘탈을 다시 회복시키고 싶다면 과거에서 비롯된 후회와 미련을 모두 놓아버려야 해요. '놓아 버리기' 혹은 '내려놓기'는 때로 불편한 감정을 회피한다는 오해를 받는데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에요. 그냥 포기하는 태도는 불편한 감정을 외면하다가 감정이 없는, 무감정 상태로 이어지므로 위험하고 건강하지 못한 태도인데 반해, '놓아 버리기'는 마음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거예요.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반드시 버려야 할 스무 가지 문제들로는 헤어진 연인, 해로운 관계, 질투, 과거의 실패, 선택에 대한 후회, 예기치 못한 불행, 이루지 못한 목표, 타인의 평가, 타인의 원한과 분노, 모든 것을 통제하고픈 욕구, 언제나 행복하고 싶다는 기대, 분노, 수치심, 타인의 의견, 부정적인 비교, 완벽주의, 바꿀 수 없는 과거, 실패에 대한 두려움,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는 믿음,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어요. 이 스무 가지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문제들을 놓아주는 방법, 즉 놓아버림의 기술을 배운다면 우리의 멘탈은 과거보다 훨씬 더 건강해질 수 있어요.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는 실행가능한 스물한 가지 전략을 알려주고 있어요. 각 전략마다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실전 트레이닝 방법이 나와 있어요. 진심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강력한 다짐, 결심이 필요해요. 결국 모든 건 본인에게 달려 있어요. 박살 난 멘탈을 복구하기 위한 도구는 이 책 속에 담겨 있으니 각자 멘탈 회복을 위한 작업을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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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리움
이아람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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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리움》은 이아람 작가님의 SF 장편소설이에요.

지구 멸망 이후에 살아남은 소년의 이야기예요. 소년은 줄곧 지하 벙커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지냈는데, 지난 겨울에 긴 열병에 시달리는 동안 어머니가 사라졌어요. 벙커에 혼자 남게 된 소년은 어머니가 돌아오길 반년 기다렸고, 포기하기까지 또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결심했어요. 벙커 밖 세상으로 나가자고, 어머니가 곁에 있었다면 엄두도 못낼 일이에요. 배낭 안에 챙긴 물건들 중에는 엄마가 준 선물인 완벽하게 밀봉된 병이 있는데, 그건 바이오스피어(biosphere), 폐쇄순환생태계인데 소년은 테라리움(terrarium)이라 불렀어요. 밀폐된 병 안에는 둔갑새우라는 합성동물이 병 내부의 이끼를 먹고, 이끼는 새우의 배설물을 먹고 햇빛을 받아 수분과 산소를 만들어내며 내부 균형이 유지되는 거예요. 마치 벙커 안에 살고 있는 소년처럼, 물론 어머니가 떠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소년은 어머니의 방에서 둥근 로고가 찍힌 얇고 투명한 홀로그램 카드와 정체불명의 작은 기계를 챙겼어요. 두렵지만 분명 어머니가 바깥 세상으로 나간 건 확실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소년이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소년은 낯선 세상에서 상상도 못했던 진리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인류 멸망이라는 설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납득된다는 게 씁쓸했어요. 우려한 것들이 현실이 된다면 미래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작가님도 인류에게 닥친 모든 위기를 생각할 때,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거라는 두려움이 소설 창작에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소년은 혼자 남겨졌을 때,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10p)라는 어머니의 말을 기억해냈어요. 변화를 겪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소년은 스스로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행동할 수 있었던 거예요. 과연 소년은 새로운 세상에서 무엇을 찾게 될까요. 소년의 시점에서 심오한 진리를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어서 놀라웠어요. 그 진리가 답이었어요. 모든 것의 시작과 끝, 참으로 절묘하네요. 그리고 헨리에타의 정체는 여러모로 많은 시사점을 남기네요. 미리보는 멸망 시나리오, 의미 있는 교훈을 주네요.

"궁금한 건 당신의 정체가 아니라, 왜 여기냐는 겁니다.

검은 형체들은 다른 곳에선 잠시 관측되어다가 사라졌지만 여기 이곳,

이 도시에서만큼은 결코 잠잠해지지 않았어요. 급기야 당신이 나타났죠." (155-1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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