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w 글로우 피카 지식 그림책 2
노엘리아 곤살레스 지음, 사라 보카치니 메도스 그림, 고정아 옮김, 심채경 감수 / FIKAJUNIOR(피카주니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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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W 글로우》는 피카 지식 그림책 두 번째 책이에요.

노엘리아 곤살레스 작가님이 쓰고 사라 보카치니 메도스 작가님이 그린 과학 그림책이에요.

우루과이에서 태어나 미국 멜릴랜드주에서 자란 노엘리아 곤살레스 작가님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 비행 센터에서 선임 과학 작가로 10여 년간 일하며 과학 기술에 대한 글을 썼고, NASA 팟캐스트 수석 프로듀서와 진행자로도 활동 중이라고 해요. 뉴욕 브루클린에서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예술가로서 다양하게 활동 중인 사라 보카치니 메도스 작가님의 수채화를 비롯해 아라비아고무가 섞인 수채 물간인 과슈를 사용하여 독특한 그림을 그리고 있대요. 이 책에서도 맑고 청량한 느낌의 수채화로 그려진 별들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책 제목인 GLOW 글로우는 '빛나다, 뜨거운 것처럼 반짝이다'라는 뜻인데, 이 책에서는 밤하늘에 보이는 반짝이는 별들과 환하게 빛나는 달을 표현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달로 시작해 태양, 북극성, 수성, 오리온의 허리띠, 금성, 핼리 혜성, 화성, 알리오트, 목성, 시리우스, 인공위성, 아크룩스, 은하수, 대기를 차근차근 소개하고 있어요. 예쁜 그림과 함께 과학 지식을 알려주고,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주는 재미있는 과학책이에요. "지구는 태양계에 있는 우리의 집이고, 태양계에 별은 태양밖에 없어요. 하지만 태양은 우리은하(은하수)의 무수한 별 중 하나일 뿐이지요. 우리 하늘에 보이는 모든 별과 행성은 은하수에 속한 것이지요. 우리가 은하수 안에 있어서 은하수 전체를 볼 수는 없지만 그 일부는 볼 수 있어요." (60-61p)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천문학자들은 우리은하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1920년대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파월 허블이 망원경을 통해 드넓은 우주에는 은하가 셀 수도 없이 많다는 걸 확인하면서 다른 은하들을 연구하게 된 거예요. 수십 년 전에 과학자들은 대기의 오존층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는데 이 구멍은 인간이 사용하는 해로운 화학 물질 때문에 생겨났고, 세계 각국은 힘을 합쳐 이 화학 물질 사용을 줄이기로 합의했는데 이 합의를 몬트리올 의정서라고 해요. 최근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전 지구적인 자연재해가 늘고 있어서 걱정이에요. 국가적 기후위기 대응책이 절실한 시점이에요. 며칠 전 우리나라에 오로라가 관측되어서 깜짝 놀랐어요. 원래 오로라는 위도가 높은 극지방 주변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천문 현상인데 21년 만에 가장 강력한 태양폭풍이 지구에 불어닥치면서 발생한 오로라였대요. 이 폭풍은 태양 상층부 대기인 코로나에서 플라스마와 자기장이 폭발해 지구로 향하면서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에 교란을 일으키는 것인데 이번은 태양폭풍 등급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서 전파 교란과 인공위성 통신 문제를 대비해 우주전파재난 주의 경보가 발령됐어요. 태양풍 입자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 위까지 도달했다니 신기하면서도 살짝 무섭네요. 흑점 폭발이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일곱 차례 연속으로 코로나 대량 방출이 일어났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해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머나먼 우주가 한결 가깝게 느껴진 것 같아요. 밤하늘을 반짝반짝 밝혀주는 열다섯 가지 천체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책이에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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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최진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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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 사리자 백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생행식 역부여시 /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

우연히 들었던 불경이 바로 《반야심경》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이 경전의 정확한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며,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라는 문장이 핵심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어요.

《건너가는 자》는 철학자 최진석님이 풀어낸 《반야심경》의 지혜를 담아낸 책이에요.

저자는 《반야심경》에서 '경(經)'이라는 한 글자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경이라는 글자가 붙은 고전을 보면 당대의 비전, 이념, 이데올로기의 기준점이 담겨 있는데, 오늘날에는 경이라는 글자가 보통 '기준'이라는 뜻으로 쓰이며 대표적인 단어가 '경영(management)'이고, 이 manage의 의미가 비유적으로 말고삐를 잡고 말을 타는 것, 즉 고삐를 잡고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어요. 여기서 고삐가 내포한 의미는 다른 말로 철학 혹은 이상(vision)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의 화두와 같은 질문은 "당신의 고삐는 무엇입니까?"라는 거예요.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고삐가 무엇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해요.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삐를 잡지 못하면 꿈이나 비전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되고, 고삐와 삶이 분리되고 말아요. 그러면 경전을 읽어도 경전에서 얻은 감동과 삶이 분리되어 감동이 삶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거예요.

이 책은 자신만의 고삐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돕는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승 경전인 《반야심경》의 원제목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마하'는 '크다'라는 뜻이고, '반야'는 '지혜'이며, '바라밀다'는 '건너가기'라는 뜻이며, 대승에서는 '함께' 건너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정확히 우리말로 풀어보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게 돕는, 반야의 지혜를 담은 핵심 경전.' (112p)인 거예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잘한 경쟁 구도에 갇히지 않고 그 경쟁 구도를 넘어서는 일대 도약을 통해 성장하는 거예요. 스스로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 그 기준에서 벗어나야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어요. 하지만 반야의 지혜마저도 테두리를 정해버리면 그 개념의 틀에 갇히기 때문에 건너가는 목적지에 초점을 두지 말고 건가기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해요. 결국 《반야심경》의 핵심은 건너가기 그 자체이며 건너가기를 행하는 주체로서의 '나'가 건너가기를 부단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요. 무언가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큰 골이 있지만 반야바라밀다를 통해 그 골을 메워갈 수 있어요. 철학자 최진석님이 길어올린 반야심경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습득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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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위의 아이들 라임 청소년 문학 64
남예은 지음 / 라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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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에게 사랑은 나빴다." (42p)

《선 위의 아이들》은 남예은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에요.

십대 청소년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고달픈 현실과 고민에 관한 네 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풋풋한 첫사랑 상대인 설연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 괴로워하는 열일곱 살 남학생 로운의 이야기인 <나쁜 사랑>을 읽을 때만 해도 비교적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가족 간의 갈등이나 친구 문제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로운이가 '사랑은 나빴다.'고 했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근데 <코르셋>부터는 꽉 조여대는 코르셋을 입은 것마냥 가슴이 답답해졌고 그 다음은 슬퍼졌어요. 도대체 사랑이 뭘까 싶었어요. 생선가게 모녀가 말없이 달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 연수가 '이만하면 부족할 게 없는 밤이다.'(96p)라고 느꼈다는 것이 굉장히 큰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어린 연수가 갑자기 훅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좀 아팠어요.

<선 위의 아이들>에서는 학교 폭력과 왕따, 자살, 아동 학대 등 벼랑 끝에 놓인 아이들의 이야기인데 읽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 모든 게 연결되어 있어. 그러니까 이런 전화 다시는 안 했으면 좋겠다." (104p) 라고 말했던 인우는 그 말이 얼마나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는 줄 몰랐던 거예요. 세상을 잇고 있던 사슬이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 역시 그 보이지 않는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어요. 그래서 인우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고, 인우의 결심 덕분에 희망을 보았네요.

<지하철 1호선>은 한때는 단짝 친구였던 민지와 상희의 이야기인데, 둘 사이에 벌어졌던 여러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만들어야 할 내용인 것 같아요. 운명의 장난일까요, 어떻게 두 아이의 삶이 이토록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되었을까요. 오랜 망설임 끝에 상희가 민지를 만나러 갔고, 둘의 대화를 보면서 살짝 소름이 돋았어요. 민지는 모든 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웃어줬어요. 비열하고 옹졸했던 마음을 가뿐하게 즈려밟은 민지, 결국 민지는 가장 행복한 인생을 선택한 사람이 되었어요. 놀라운 반전이었어요.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답게 나를 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야 된다는 걸, 민지를 통해 배운 것 같아요.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내 행복은 전적으로 나의 결심이라는 것.

"지하철 타고 왔나?"

"응."

"와 줘서 고맙데이. 근데 상희야 ······."

"응."

"인자 오지 마라. 내, 니보다 잘 살게."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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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당신께, 다르마 톡
영화 지음, 대지 외 옮김 / 어의운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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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당신께, 다르마 톡》은 미국 위산사 영화 선사의 대중 법문집이에요.

우선 제목에 나온 '다르마(dharma)'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원어는 산스크리트어로 달마라고도 하는데 한자문화권에서는 법(法)으로 번역해왔다고 해요. 가장 흔히 사용되는 용례는 불법(佛法, Dharma of Buddha),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하고, 제법무아(諸法無我)에서 법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므로 다르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복잡한 개념이라고 하네요.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도 철학에서 다르마는 최소한 20가지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다르마의 어근인 'dhr'는 '잡다', '지탱하다', '담고 있다','실천하다','지키다' 등의 뜻이 있어서, 다르마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정의로움을 갖고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성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 책은 미국에서 선 명상과 정토 법문으로 다르마를 전하고 있는 영화 스님의 첫 대중 법문집이며 영어로 법문한 내용을 녹취해 정리, 번역한 것이라고 해요. 천주교나 개신교에 천상, 천국이 있다면 불교에서는 정토, 서방 극락정토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영화 스님의 법문을 듣거나 읽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복이 있대요. 첫 번째 복은 행복만 있을 뿐 고통이 없는 서방 극락정토에 대해 듣는 것이고, 복의 두 번째 단계는 사후 거기 가겠다고 원을 세우는 것이고, 세 번째가 가장 어려운데 거기 갈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거예요. 영화 스님은 사람들이 세 번째 복을 갖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정토 불교를 수행하는 방법이 바로 대승 명상이며, 이 명상은 세속적인 명상과 달리 스승이 필요하다고 해요. 가장 높은 형태의 명상인 대승 명상은 불성을 볼 수 있게 해주며 배꼽으로 가라고 말해주네요. 영화 스님이 지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단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거예요. 고치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그냥 배꼽에 더 집중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저절로 고쳐진다는 거예요. 무행(無行), 무업(無業)의 이치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엇을 말하는 건지는 알 것 같아요. 명상을 통해 한순간이라도 마음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그때 복을 짓고 있는 거라고, 선 수행은 많은 복을 만든다고 해요. 더 많은 복을 짓고 싶다면 부처님이든 뭐든 찾으러 다닐 게 아니라 그냥 주라고,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은 복이 생긴다는 거예요. 정말 복이 있다면 아이들을 교육할 때 근본적 가르침 중 하나로 보시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그것이 기본이라는 것, 반드시 보시를 실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어요. 세속적인 행복은 더 많이 가질수록 커진다고 말하지만 불교에서 진정한 복은 더 많이 비워내는 것이네요. 결국 우리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복은 바로 수행, 선(禪)이라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네요.



자신을 가늠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더 오래 앉아서,

자기 스스로 지난번보다 더 많은 걸 요구하는 것입니다. 

... 저번보다 더 많이 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밀어붙입니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향상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믿지 마십시오. 

"참을 수 없을 때까지만 앉아야겠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앉습니다. 

왜냐하면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앉아야지."라고 말하는 순간, 

바로 10초 후 더는 참을 수 없게 됩니다.

사실 그것이 여러분 마음의 본성입니다. 

여러분은 늘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노출시켜 놓고는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이런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알았나요? 

마음은 아주 교활합니다. 그런 이유로 진정한 지혜를 얻을 때까지 자기 마음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교활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선종의 조사 스님들은 모두 이런 다양한 기술들이 있어서, 스스로 간파할 때까지 여러분의 훈련을 돕고, 여러분을 통제하에 둘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지금 쓰고 있는 그 마음은 놀랍게도 불교에서 '거짓된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선 명상은 거짓된 생각과 마음의 한계를 간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특별한 기술입니다. (59-60p)


대승의 궁극적 목표는 여러분이 부처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대승에서는 성불(成佛, Buddhahood)을 이루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소승에 가면 어떻게 부처가 되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소승에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부처님이 될 수 있는지 모릅니다.

대승에서는 "당신은 부처가 돼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소승과 대승의 차이입니다. (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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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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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떠한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이브 엔슬러는 45년에 걸쳐 써온 글들을 주제별로 묶어 한 권의 책을 냈어요. 이 책에는 이브 엔슬러의 인생을 이끌어 온 사유가 담겨 있어요. 저자는 상실과 모순에 관한 사유와 슬픔에 관한 사유, 애도도 되지 못하고 나누어지지 못한, 소화되지 못한 슬픔이 너무나 많다고, 그래서 이 책은 '어떤 슬픔의 형상'이라고 표현했어요. 혼돈과 폭력, 어린 시절의 구타와 강간이 남긴 기억 상실, 파편화된 지성이라는 균열을 넘어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발견했던 '나'는 글쓰기가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갑자기 번쩍 번개가 치듯이, 머릿속에 '폭력'과 '기억 상실'이 터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과거 어느 시점에 어린 '나'는 끔찍하고 비참했던 경험을 기억에서 지우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마저 잊고 싶었다는 걸 떠올리고 말았어요. 십대 시절에 일기장을 채워가며 아픈 마음을 위로했지만 점점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워졌던 이유도, 그건 발가벗겨진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겁쟁이였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수많은 비극들을 목격하면서 아픔과 슬픔은 살아 있는 우리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브 엔슬러의 깊게 뻗어나간 사유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트라우마의 시대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되었고, 왜 이브 엔슬러가 V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네요. 저자의 말처럼 저 역시 이야기의 힘, 이름이 가진 힘을 믿어요. 진득하게 쌓여 있던 고통들이 기억들을 통해 드러날 때,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그건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걸 V가 알려줬네요.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는 V의 회고록이자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슬픔과 희망의 사유이기에 읽을 수밖에 없었네요.



"사유는 대체 무엇이며 지금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할까?

사유의 과정은 기억하기, 인식하기, 책임지기의 행위를 수반한다.

눈앞에 있으나 우리가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바로 그것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수치심을 기꺼이 끌어안으라고 요구한다.

사유는 개인과 집단의 책임과 그 둘이 언제,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결정한다.

진정한 사유에는 실수와 잘못, 악행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필요하다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일까지도 뒤따른다.

지난 45년간 나는 수많은 글과 일기를 썼다.

내게는 까만 글씨 위에 에스프레소 자국이 짙게 남은 종이 한 무더기가 있다.

모놀로그, 연극, 기사, 에세이, 우화, 연설문, 시, 불평들이다.

코로나19는 내게 그간 써온 글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내 일생의 천착과 호기심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사유에 관한 책 한 권이 되었다."

(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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