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자생력을 깨워라
조엘 펄먼 지음, 이문영 옮김, 홍혜걸 감수 / 쌤앤파커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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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건강서적을 몇 권 읽다보니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동일하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곧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사실.

이 책의 저자 조엘 펄먼 박사는 미국 최고의 자연 치유전문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과 같은 만성질환을 약물치료 없이 음식만으로 치료하는 경우는 그리 낯설거나 새로운 치료법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근래 자연식품으로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어쩌면 청장년층의 암 발병률 증가와 만성질환의 증가로 인한 위기감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건 어떻게 질병을 고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내 몸의 면역력을 높여 건강을 지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치료보다는 예방이 먼저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가공식품은 피하기 힘든 유혹이다. 빵, 콘플레이크, 청량음료, 조미료 등등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데다가 맛까지 좋으니 도저히 참기 힘들다. 반면 채소는 안 먹는다고 해서 당장에 어떤 결핍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서 왜 채소를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는 챙겨 먹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있다. 가공식품과 동물성 식품 위주의 식단에는 항산화 영양소나 피토케미컬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즉, 채소를 먹지 않고 가공식품과 동물성 식품만 섭취하면 우리 몸의 독소가 쌓여 병에 걸리기 쉽다는 의미다. 겨우 채소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만성질환과 조기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믿겨지는가.

조엘 펄먼 박사가 유명해진 이유는 질병을 특효약이 아닌 음식을 통해 자연치유를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을 맹신하면 안 된다. 조금만 아파도 약 먼저 찾는 사람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약을 구입해서 설명서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효능보다 더 많은 비중으로 쓰여진 부작용에 대해 무척 놀랄 것이다. 약의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내게 벌어진다면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단순 두통이나 감기가 걸렸을 때 쉽게 약을 먹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약의 부작용을 살펴보고 신중히 복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항생제 남용이 심각하다. 의사 처방에 따른 약물만 복용하고 절대 습관적인 약 복용은 피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픈 경우 해열제를 먹인다. 소아과에서 아예 열이 나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해열제 처방을 내준다. 그런데 미국 소아과학회는 해열제를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가 열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거나 열성경련이 없다면 해열제는 필요 없다.

독감예방접종이나 감기약 역시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약, 의사, 환경오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법은 신체의 방어력을 높이는 생활습관과 식단을 바꾸고, 건강을 개선하려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슈퍼 면역력을 증강하는 음식이야말로 질병에 대한 방어력뿐 아니라 약품의 악영향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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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사람, 임동창 - 음악으로 놀고 흥으로 공부하다
임동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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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창, 이름 석 자를 보자마자 끌리듯 이 책을 읽게 됐다.

우연히 이 분의 연주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흔히 클래식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우아한 드레스나 턱시도를 입은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 분은 마치 옆집 사람처럼 너무나 편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피아니스트 임동창.

솔직히 음악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이 분의 연주곡을 즐겨 듣는다거나 공연을 보러 간 적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게 '임동창'이라는 이름이 강렬하게 각인된 것은 음악보다는 인간적인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다. 놀랍도록 훌륭한 피아노 연주를 보고 음악적 감동을 너머 그 사람 자체가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피아노가 아닌 자기자신을 연주하는 듯 느껴질까?  음악이란 과연 무엇이기에 한 사람을 오롯이 그 안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직접 만나는 인연뿐 아니라 책이나 음악도 때가 되어야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지금이 바로 '노는 사람, 임동창'을 만나야 할 때였나보다.

오롯한 내 음악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각자 삶에 놓인 질문은 비슷한 것 같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하는가?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풀어놓으며 우리 조상이 물려준 놀라운 지혜, '풍류'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한다.

열다섯 살, 개구쟁이 소년에게 피아노 선율이 벼락처럼 몸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소년은 피아노에 푹 빠졌고 온종일 피아노만 두드렸다. 그토록 피아노에만 빠져살던 소년은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음악을 알 수 있겠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막혀 출가를 결심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동생 여럿을 둔 장남이라 군면제가 확실했던 그의 출가를 막아보려고 입대서류를 내는 바람에 군대에 갔다. 절망적인 시기였지만 군대에서도 '이 뭐꼬'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다.

제대 후 스물여섯 살에 찾아온 첫사랑의 인연은 비록 가슴 아프게 끝이 났지만 음악가의 길로 이어졌다. '작곡공부, 연극, 뮤지컬, 외국 공연 등등 그의 음악적 활동은 어떤 틀에 얽매임 없이 자유로웠다. '이 뭐꼬'의 화두 때문이었을까. 그의 음악공부는 자연스럽게 우리 전통음악과 인연이 되어 '참나'와 하나되는 흥까지 나아간 것 같다.

40대 중반, 그는 새로운 의미의 첫사랑인 현재의 각시 효재를 만난다. 이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앗, <효재처럼>의 저자가 임동창님의 각시라고?

<효재처럼>이란 책은 지인의 권유로 읽었는데 남편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어서 그냥 무심하고 자유분방한 남편 아무개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인연이었다니,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을 나만 이제 알게 된 건데도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부부의 인연은 예사롭지 않구나.

인생공부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공부라는데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났으니 무엇이 또 필요하겠는가. 그는 피아노를 통해 자유를 갈망했다면 사랑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은 것 같다. 결국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그 깨달음은 하나라고 했던가. 그가 얻은 답은 '아무것도 없는 것', 즉 자유라고 한다.

다른 이의 깨달음을 몇 줄의 글로 내 것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얼핏 알 것도 같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정말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지혜란 생각이 든다. 표현은 다르지만 내게도 '이 뭐꼬'와 같은 화두가 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다. 가끔은 그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울 때가 있다. 풀지 못해서 품고 있지만  언젠가는 때가 되어 풀게 될 거란 믿음은 있다. 그가 풀어낸 화두처럼 그것이 음악이 되었든, 삶에 그 어떤 형태가 되었든.

고마운 책이다. 임동창님에 대한 인간적 호기심뿐 아니라 내 안에 화두까지 조금은 풀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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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되라 - 세계적인 크리에이티브 그룹 디젤 CEO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프로젝트
렌조 로소 지음, 주효숙 옮김 / 흐름출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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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자신감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CEO의 성공전략이 곧 바보전략이란다.

"바보가 되라."

2010년부터 디젤에서 벌이는 광고 캠페인이다.

작은 청바지 회사 디젤이 어떻게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는지, 디젤의 창업자 렌조 로소가 알려준다.

여기서 '바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저돌적으로 뛰어드는 열정을 뜻한다.

성공한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성공비결이기에 무척 기대를 했다.

과연 렌조 로소는 패션계의 독보적인 존재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바보전략'이라고 일컫는 성공전략은 굉장히 똑똑해보인다. 어떻게 어린 소년이 이토록 멋지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라는 감탄을 하게 된다. 정말 천재가 아닐까. 기발한 아이디어와 열정적인 추진력은 천재적이라고 할만하다.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바보 같은 일들로 시작했다. 어리석어 보이는 아이디어가 점점 반짝반짝 빛나는 현실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18가지 바보전략 속에 설명되어 있다.

18가지 바보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현실을 본다. 바보는 현실 그 이상을 본다.

2. 우리는 불평한다. 바보는 창조한다.

3. 바보짓을 한 적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4. 우리는 머리를 굴린다. 바보는 마음에 귀 기울인다.

5. 바보는 실패해도 도전한다. 우리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6. 우리는 바보를 믿지 않는다. 바보만이 바보를 믿는다.

7.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바보는 정말로 성공할 수 있다.

8. 우리는 계획을 세운다. 바보는 즉흥적이다.

9. 우리는 생각한다. 바보는 실행한다.

10. 바보가 되라. 바보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11. 우리는 자신이 성공했다고 말한다. 바보는 우리가 성공했다고 말한다.

12. 우리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바보는 '네'라고 말한다.

13. 우리는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바보는 한 발 먼저 간다.

14. 우리는 실수하지 않으려 한다. 바보는 실수해도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15. 우리는 안정을 추구한다. 바보는 변화를 추구한다.

16. 우리는 친국가 있다. 바보는 친구가 많다.

17.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만족을 우선으로 한다. 바보는 자신의 만족을 우선으로 한다.

18. 우리는 가정과 회사 사이에서 갈등한다. 바보는 회사를 가정처럼 만든다.

어른이 되면서 누구한테든 '바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남들과 좀 다른다는 것이 두렵고, 남들의 시선때문에 '나다움'을 포기할 때가 많아진다. 렌조 로소가 말하는 바보는 세상의 흐름을 쫓는 사람이 아닌 먼저 나서는 사람이다. 꿈과 열정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바보에 비유한 것이다.

'바보'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 '보'는 사람이 아닐까.

남이 나를 어떻게 볼 지 걱정하며 똑똑한 척 하기보다는 당당하게 나답게 사는 것.

이 책은 렌조 로소의 성공비결을 18가지 삶의 철학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렌조 로소가 썼다기 보다는 기업전략 전문 교소인 귀도 코르벳타라는 사람이 쓴 것 같다. 왠지 굉장히 학술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책이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렌조 로소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뤄냈는지를 알 수 있어 좋았던 반면에 너무 똑똑해 보여서 살짝 거부감이 드는 그런 책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이 책도 렌조 로소의 스타일대로 독특하고 파격적인 형식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궁금증이 든다. 디젤의 광고 캠페인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책 내용을 보면서 정말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매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증거 같았다. 사실 책으로 렌조 로소의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디젤만의 매력을 표현해주길 바라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디젤과 렌조 로소를 알게 되어 좋았고 과감히 바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저하고 머뭇거리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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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스트라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미겔 시후코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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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그 작가의 나라를 의식하며 읽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책의 세계에서조차 국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어떤 경우는 더 부각될 때가 있다.

미겔 시후코는 필리핀 마닐라 출신의 작가다. <일루스트라도>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를 가르기 어려운 소설이다.

2001년 9.11 테러가 터진 지 다섯 달이 지난 어느 날, 뉴욕 허드슨 강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죽음은 자살로 마무리되지만 그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미겔 시후코는 의문을 품는다. 그는 분명히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 작품 <불타는 다리>를 쓰고 있었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원고는 사라졌으니까.

"......살바도르는 그런 식으로 인생을 끝마칠 만큼 용기가 있지도, 비겁하지도 않았다. 필리핀 문학계의 흑표범은 느닷없이 살해당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피 묻은 촛대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피 묻은 촛대는 발견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원고는 모호한 암시밖에 주지 못했다......" (14p)

<일루스트라도>의 작가 미겔 시후코는 스스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 된다.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유일한 친구이자 살바도르를 자신의 멘토로 생각했던 사람으로.

처음에는 미겔이 살바도르의 죽음 속에 감춰진 진실을 밝혀낼 줄 알았는데, 미겔이 선택한 것은 <크리스핀 살바도르 : 여덟 번의 인생을 살다>라는 전기를 쓰는 것이다. 살아 생전, 곁에서 지켜봤던 인물과 죽은 뒤에 그 인물의 살아온 흔적을 찾아가는 건 전혀 다른 일인 것 같다. 죽은 살바도르를 위해 그의 작품과 미겔이 쓴 살바도르의 전기, 그리고 미겔 자신의 이야기가 마치 퍼즐조각처럼 하나씩 맞춰져 가는 듯하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의 일생을 보면서 무의식중에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살바도르의 작품 중 <자신을 표절한 자>의 일부분을 보면서 <일루스트라도>가 곧 <자신을 표절한 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겔은 필리핀 문인들에게 살바도르의 전기를 쓴다는 사실을 숨긴 채 살바도르에 대해 묻는 내용이 나온다.

리타 : "크리스핀을 죽이고 싶어한 유일한 사람은 크리스핀이야."

푸리오 : "글쎄, 이 홀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러고 싶었을 거야. 적어도 한 때는. 솔직히. <자신을 표절한 자>는 죽여줬지......"

리타 : "진실은 우리를 아프게 하니까." (312p)

......중략

나 : "두 분은 크리스핀의 작품은 좋아하셨나요? 걸작 <당신 때문에>는 어떻습......"

푸리오 : "<다힐 사요>? 별로 독창적이지 못해. 필리핀 사람의 본질을 포착하지 못했어."

리타 : "그 책의 문제는 새로운 것에 집착한 나머지 그야말로 진부해졌다는 거지."

푸리오 : "그래도 인정을 받으려고 애쓸 때 작품이 좋았어."

나 : "그럼 <유럽 4부작>은요?"

푸리오 : "엘리트주의지! 극도의 엘리트주의."

나 : "<형제들>은 그래도 꽤......"

리타 : "이 친구야! 그건 너무 마닐라 중심적이야."

나 : "<붉은 대지>는요?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하는 농부들 얘기였는데."

푸리오 : "너무 지방적이지."

리타 : "게다가 너무 논쟁적이야."

나 : "<선각자들>은요?"

리타 : "거 참. 탈식민주의적 남성우월주의지."

나 : "<자신을 표절한 자>도 안 좋아하셨겠네요."

푸리오 : "그건 난 좋아했어."

리타 : "형편없으니까. 남 안 되는 걸 보는 건 깨소금 맛이거든."

푸리오 : "아닙니다, 자매님. 적당히 봐주고 한 작품은 아니야. 하지만 권력에다 대고 진실을 말할 땐 그들을 지루하게 해서는 안 돼. 적어도 그들을 웃게 만들려고 노력해야지."

리타 : "<자신을 표절한 자>의 문제는 필리핀인들을 위하기보다는 필리핀인들에 관해서 썼다는 거였지."

푸리오 : "미국인들은 좋아하고 필리핀인들은 싫어할 책이지. 우린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 써야 돼."

리타 : "여자 동포들 포함." (312p~314p)

크리스핀 살바도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또한 그의 작품은 필리핀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소설은 살바도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죽음으로 인해 살바도르는 새롭게 태어난다. 조국 필리핀은 살바도르가 그저 세상에서 제일 눈에 띄는 필리핀 작가가 아니라 좀 더 제대로 필리핀적인 작가이길 바랐지만 살바도르는 동조하지 않았다. 전설이 된 <불타는 다리> 원고는 어디에 있을까?

텅 빈 박스, 사라진 것은 사라지지 않은 것의 윤곽을 짐작케 해준다는 말.

그 텅 빔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 전체가, 삶이 어떻게 끝이 났고, 우리 각자는 그렇게 끝이 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남겨 있다는 말.

<일루스트라도>는 필리핀 작가 미겔 시후코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의지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그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었을 때는 새로운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하는 것 같다. <일루스트라도>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미겔 시후코와 크리스핀 살바도르이 함께 녹아든다. 필리핀적인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깨달음에 대하여.

죽음의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삶의 미로를 헤매다가 돌아온 느낌이다. 아, 현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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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하차 - 잘 나가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기타무라 모리 지음, 이영빈 옮김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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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서 마흔은 어디쯤 온 것일까?

한창 정신없이 걸어갈 때는 멈추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가던 방향을 잃어 헤맬 수도 있다.

'도중하차'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든 반갑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이유들로 인해 발목잡힌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왠지 갑자기 '도중하자'가 된 느낌이랄까.

유명 잡지사 편집장으로 승승장구하던 마흔의 가장이 어느 날 사표를 낸다. 그 이유는 공황장애.

여행잡지라는 특성상 잦은 출장으로 비행기를 자주 타야 하는 그가 도저히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일말의 자존심.

아내에게 허락을 구하고, 사표를 낸 그는 여섯 살 아들과의 여행을 계획한다. 아내에게 받은 천만원으로.

이 책은 공황장애로 무직이 된 일중독자, 마흔의 가장이 털어놓는 진솔한 자기고백이다.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어찌보면 곁에 든든한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만약 혼자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버티지 않았을까. 현실적으로 마흔이란 나이에 대책없이 사표를 냈다는 건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공황장애로 비행기 타기가 어렵다면 출장이나 외근이 없는 일로 바꾸면 되는 것이고, 증상이 나아질 때까지만 쉬면서 치료하면 되는 것이다. 이건 순전히 공황장애의 고통을 잘 모르는 사람의 추측일 뿐이다. 그는 공황장애로 고통을 받기 전까지는 일밖에 모르는 일중독자였고, 나름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이다. 물론 과다한 업무로 가정에 소홀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그의 아내는 말없이 그를 응원해줬다.

그래서 아픈 몸과 마음을 쉬면서 아들과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아프다는 걸 남들에게는 숨길 수 있어도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들킬 수밖에 없다. 그가 아들과의 여행을 계획한 건 모처럼 생긴 시간을 아들과 더 많이 보내면서 제대로 아빠노릇을 하려는 거였다. 그런데 도리어 여섯 살의 어린 아들이 아빠를 걱정하고 챙겨줬다. 무뚝뚝한 아내는 말없이 그를 이해하고 보듬어줬다. 공황장애로 인해 그의 일은 도중하차했지만 그의 인생은 새롭게 재출발하게 되었다.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표현을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인생 이야기를 보면서 이해할 것 같다. 인생의 길은 빨리 뛰어간다고 해서 더 좋은 것도 아니고, 조금 느리게 걷는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잠시 쉬어갈 때가 있어야 남은 길도 끝까지 잘 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성공이라는 것도 그 기나긴 길 중에서 잠시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남들보다 조금 먼저 높은 산에 올랐다고 으시댈 것도 없고 아직 가야할 정상에 못 올랐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근래에는 당당하게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했던 공황장애가 유명 연예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증상으로 알려진 듯하다. 이 책의 저자 역사 평범한 가장으로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황장애라는 병이 생긴 것이다. 남들에게 숨기고 싶어서 사표까지 냈던 그가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누구나 자신의 멋진 면만을 보여주고 싶은 법인데 연약하고 부족한 면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용기라고 생각한다. 현재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세상에 공황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공황장애는 반드시 고칠 수 있다는 믿음도 준 것 같다.

그의 공황장애를 치유해준 사람은 정신과 의사도 상담사도 아니다. 바로 그의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마흔즈음, 당신은 오늘도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가? 이제는 도중하차가 두렵지 않다. 다만 바삐 가느라 함께 가는 이들의 손을 놓을까봐, 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할까봐 두렵다. 앞에 놓인 길만 보지 말고, 곁에 함께 하는 가족을 바라보자.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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