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탐닉 - 미술관에서 나는 새로워질 것이다
박정원 지음 / 소라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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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가슴을 콕 찔렀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대부분 실제로 본 적 없는 동서양 미술사 속 명화들."

그렇습니다, 실제로 명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유럽여행을 꿈꾸며 여러 미술관 투어를 상상한 적은 있지만 실현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림 탐닉>은 명화 감상을 위한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작품 설명이 아닌 감상이라는 것.

저자는 명화라는 숲을 함께 거닐며 이야기해줍니다. 마음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시대에 대하여, 풍경에 대하여.

그림을 보면서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제 눈에도 그림 속 언어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매우 철학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다소 기이한 설정과 구도가 만들어낸 수수께끼 같은 그림들이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자꾸 보게 만듭니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그림 속 인물들은 표정이 극대화 되어 보기만 해도 어떤 감정인지를 전달해줍니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불운한 삶을 예술로 승화한 듯 보입니다. 왠지 슬프고 마음이 짠해지는 느낌.

에드바르 뭉크가 어떤 화가인지 몰라도 그림 속에 온갖 감정들이 보입니다. 불안, 두려움, 고독, 질투의 감정들이 그림에서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조금 무서운 그림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그의 생애를 몰랐다면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며 행복한 화가의 모습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래서 예술의 힘은 신비로운 것 같습니다. 그는 고통의 순간조차도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예술을 모르는 사람도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20세기 미국 현대 미술작품 중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공감한다는 앤드류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그런데 제 눈길을 잡아 끈 건 앤드류 와이어스의 <헬가의 초상>입니다. 사진처럼 완벽하게 묘사된 여인의 모습 속에서 묘하게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아직 풀지 못한 미스터리 같은 이야기...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는 화가라서, 그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뿐입니다.

저자는 오래전, 화가를 꿈꿀 때부터 폴란드계 프랑스 화가 발튀스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 눈에는 발튀스의 작품 세계가 너무나 독특해서 낯설기까지 합니다. 만약 화가의 의도가 이색적인 낯설음이라면 대성공인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 바로크 회화의 거장 렘브란트의 자화상 3편은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담아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림 속에 인생 여정이 느껴집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들은 굉장히 사실적이며 아름답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을 그의 그림을 통해 유추하게 됩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본디 제목은 <터번을 쓴 소녀>라는데, 미지의 소녀가 보내는 눈빛에 그만 빨려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구스타브 쿠르베, 피터르 브뤼헐, 도메니크 기를란다요, 한스 발둥 그리엔, 피에르 프란치스코 시타데니, 헤르만 스틴위크, 툴루즈 로트레크...

아마도 책을 덮고나면 수많은 화가들이 제게는 이름 모를 화가로 남겠지만 그 작품들 만큼은 제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 덕분에 명화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간 것 같습니다. 그림의 언어가 마음에 잘 전달되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추천해준 코스 (경복궁역 3,4번 출구에서 출발 -> 대림미술관 -> 갤러리 시몬 -> 갤러리 아트사이드 -> 인디프레스 -> 보안여관 -> 팔레드 서울 -> 팩토리 -> 사루비아 다방 -> 콜라보 마켓 -> 시청각 -> 갤러리 룩스)를 꼭 가보고 싶습니다. 그림 탐닉... 우선 실제로 감상할 수 있는 그림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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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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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대중이 인정한 최고의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쩜 그리도 실감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늘 감탄하곤 합니다.

그래서 소설가의 거짓말은, 고급지게 '작가적 상상력'이라고 표현합니다.

십대 시절에 우연히 <꿈꾸는 식물>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작가 이름도 모른채 읽었던 소설이라서 다 읽은 후에야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이외수(李外秀)

필명인 줄 알았더니 본명이라는.

이름 자체가 예술인 듯.

한 번 본 그 이름을 잊지 않고, 이후에 이외수 작가가 쓴 책이라면 주저없이 읽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 이외수 작가님이 던진 언어의 미끼를 덥썩 물어버렸나 봅니다.

요즘 세상은 소설가보다 더 기가막힌 거짓말쟁이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니, 듣고 있기가 너무나 괴롭습니다.

차라리 소설가가 된던가, 왜 소설가도 아니면서 참말처럼 거짓말을 꾸며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근래 이외수님의 <보복대행전문 주식회사>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 이제 작가님이 소설은 안 쓰고 팩트를 쓰기로 작정하신 건가 싶어서.

최순실이 개명해서 최서원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까지 바뀌진 않잖아요.

소설을 빙자하여 가명을 썼지만 우리는 그들이 누구를 뜻하는지 다 알잖아요.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은 이외수 작가님이 쓰고 정태련 작가님이 그린 그림 에세이입니다.

그간 암 투병 소식 때문에 궁금했던 근황과 소설가의 일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  작가님에게는 시간의 옆구리 같은 골방 하나가 있어서 그곳에서 명상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고.

그때는 시간도 공간도 정지하고 모든 현실이 사라져 버린다고. "내가 비정상인 것일까."라고 자문하셨는데, "아니오. 지극히 정상이에요."

오히려 우리 삶에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순간이 없는 게 비정상이지 않을까요.

벌써 바람이 서늘한 가을이 왔습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이 현실이 되어 제 머리에도 서리가 살짝 내렸습니다.

작가님도 어느새 일흔 나이를 드셨네요.

"나는 소설을 통해 인간이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보다는

인간이 이런 식으로 살아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는 쪽에 가깝다." (88p)

맞습니다, 작가님의 이번 신작소설에 썩어빠진 인간들이 등장하죠. 문제는 그 인간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 그러니 부끄러움도 모르는가봐요.

"감동이 없는 글은 죽은 글이다.

그러면 어떤 글이 살아 있는 글인가.

쓰는 이의 진실을 바탕으로 읽는 이의 사랑을 각성시키는 글이 살아 있는 글이다."  (116p)

작가님은 감동이 있는 글을 쓰세요, 저는 제 안의 사랑을 깨워가며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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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 - 신경림 시인이 가려 뽑은 인간적으로 좋은 글
최인호.김수환.법정.손석희.이해인 외 34명 지음, 신경림 엮음 / 책읽는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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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지역행사 자리에서 소설가 박완서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원래 사인회를 진행했는데 연로하신 선생님의 몸상태를 고려하여 몇 분 만에 중단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책을 들고 기쁜 마음에 줄 서 있던 저로서는 얼마나 속상하던지.  공교롭게도 제 바로 앞에서 중단된 것.

암튼 안타까운 마음으로 선생님을 지켜보다가 평소였다면 절대 못했을 행동을 했습니다.

성큼 다가가 "죄송하지만 악수라도 한 번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했던 것.

다행히 저를 향해 손을 내밀어 주셔서 제 인생 최초로 소설가님과 악수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마르고 앙상한 손의 감촉... 약간 차가웠던 그 느낌.


<뭉클>은 시인 신경림님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산문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이 책 속에서 박완서님의 글을 만났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반가움을 느낄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선생님과는 소설가와 독자라는 뻔한 관계 외에는 아무런 인연도 없지만,

오로지 악수 한 번의 추억이 제게는 뭔가 특별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침 여기에 소개된 글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을 읽으니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던 작가님이 아차산 아랫자락 마을로 이사한 건 순전히 산 때문이라고.

아차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지만 자신이 개발한 길은 1년 내내 아무하고도 안 마주칠 정도로 사람들이 안 다니는 길이었다고.

그 산길은 약수터도 없고 암자도 없는 그냥 산길이지만 나무와 풀들, 새들과 다람쥐들 덕분에 하루도 같은 날이 없을 정도로 혼자 걷는 기쁨을 주는 길이었다고.

그러던 어느날 산길에서 집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며칠 동안 발밑을 보고 걸어도 당최 찾지를 못했다고. 이후 스페어 열쇠 때문에 발밑 살피는 일을 그만 둔 어느날,

눈에 잘 띄는 나뭇가지에 자신의 열쇠가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고.

여지껏 그 산길은 자기 혼자만의 산책길인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자신이 낸 길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오솔길이며 누군가 먼저 거닐며 낸 길이었던 것.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235p)

이 책을 읽는 제 마음이 어쩜 작가님이 그 열쇠를 발견했을 때와 같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냥 각각의 산문을 읽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뭉클해지는 산문들을 모아 읽으니 글에 담긴 감정들이 더욱 진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의 인생 길을 함께 거닌 것 같은, 정말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을 한 것 같습니다. 따스한 악수를 나누듯 나의 사람들에게 <뭉클>를 건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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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라스 캐슬
저넷 월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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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샛말로 "이게 실화냐?"라는 말이 있죠.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 감탄사라고 할 수 있어요.

<더 글라스 캐슬>을 읽다보면 이 말이 저절로 튀어나와요.

그러니까 소설이 아니라는 말씀.

진짜 실화라서 더 놀라운 이야기예요.

저자 저넷 월스는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라고 해요.

그녀는 20년 간 숨겨왔던 자신의 가족사를 이 한 권의 책으로 고백하고 있어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누구라도 저넷과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평생 비밀로 묻어두었을 과거라고 생각해요.

첫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뉴요커로 살고 있는 그녀는 택시를 타고 파티 장소로 가던 중 우연히 차창 밖으로 바라봤어요.

그때 거리에서 허름한 노숙자가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걸 봤어요.

그 노숙자는 바로 그녀의 엄마였어요.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요?

그녀가 아무리 부모를 도우려고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고 있는 거예요.

남들 보기에는 꾀죄죄한 노숙자의 모습으로.

이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그녀의 부모가 얼마나 고집불통인지 알 수 있어요.

엄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자 철부지 소녀 같고,

아빠는 가족을 끔찍히 사랑하지만, 그보다 술을 좀더 끔찍히 사랑하는 몽상가 같아요.

저넷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언니 로리, 남동생 브라이언과 유랑 생활을 했어요.

어릴 때는 온가족이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듯 다녔기 때문에 재미있는 모험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부모의 양육방식이 거의 방치 상태라서 남들 눈에는 위태롭게 보였지만 적어도 삼남매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아이들이 커갈수록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일을 구하지 못해서 기본적인 음식을 못 챙겨먹을 때가 많았고, 심하게 다쳐도 병원 치료는 아예 받지 못했어요.

유일하게 저넷이 세 살 때 엄청 심각한 전신 화상을 입었을 때만 입원 치료를 받았어요.

피부이식을 여러 차례 받을 정도로 심했는데 거의 나아갈 때쯤 아빠가 무작정 퇴원시켜버렸어요.

술만 마시면 난폭해지는 아빠에게 저넷은 생일선물로 술을 끊어달라고 부탁했고,

아빠는 며칠 동안 방 안에서 금단 현상을 견뎌내며 알콜중독에서 벗어났어요.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다시 술에 손을 대게 된 아빠는 완전히 알콜중독자가 되었어요.

엄마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지만 경제개념이 없어서 살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다행히 교사자격증이 있어서 잠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사 일을 한 적이 있지만 오래 가지 못했어요.

휴우~~~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저넷의 부모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똑똑했던 언니 로리는 어떻게든 엄마를 대신해서 살림을 꾸려보려고 했어요.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하면서 저금통에 돈을 모았어요.

그런데 술 때문에 딸의 저금통까지 손 댄 아빠를 보고 로리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어요.

그 돈은 로리가 대학 진학을 위해서 뉴욕에 가려고 차곡차곡 모았던 피 같은 돈이었기 때문이죠.

이밖에도 한숨을 유발하는 사건들과 어려운 상황들이 펼쳐져요.

아빠는 늘 말버릇처럼 아이들을 위해 유리성을 짓겠노라 말했었죠. 왜 하필 유리성이었을까요.

어쩌면 아빠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지... 저넷 부모의 삶은 얇은 유리 위를 걷고 있는 듯 위태로워 보여요.

유리로 뭔가를 만들기도 전에 와장창 깨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제가 볼 때 아빠가 저넷에게 진짜 아빠 노릇을 한 건 저넷이 대학 등록금이 부족할 때 자신의 남루한 외투 속에 꼬깃꼬깃 모아둔 쌈지돈을 준 게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저넷의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을 사랑했다고 해도 현실적으론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부모였던 건 부인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넷은 훌륭하게 성장했고, 다른 형제들도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엄마 대로 자식에게 어떤 도움도 바라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고요. 한때는 부끄러웠던 가족사를 세상에 드러냈다는 건 정말 멋진 용기라고 생각해요.

저넷 월스의 인생은 아빠의 유리성과는 달리 바위처럼 굳건한 성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잘 견뎌낸 당신에게 박수 쳐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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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진짜 인생은
오시마 마스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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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강한 펀치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 여기 없어."

우시로는 유명 소설가 홀리에게 이 말을 듣고 안정적인 공무원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곧바로 홀리의 비서가 되어 또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편집자 가가미는 홀리 씨의 남편 미노시마와 함께 카지노 도박에 빠져서 완전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당시 홀리는 미노시마와 이혼한 상태였고 자신의 재산을 두 사람이 도박에 탕진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놀라운 건 홀리의 태도였습니다. 가가미의 횡령을 용서했고 이후로도 편집자 일을 맡겼던 것.

그래서 가가미는 평생 홀리를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스멀스멀 도박 중독기가 나타나서 홀리에게 종종 거액의 돈을 빌리고 있습니다.

홀리 곁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관리하는 우시로는 걱정만 할 뿐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어찌됐건 홀리 마음이니까.

소설가를 꿈꾸는 마미는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번번이 퇴짜를 맞아서 절망하던 차에 편집자 가가미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습니다.

자신이 엄청 좋아하는 소설가 모리와키 홀리의 제자가 되어보라는 제안.

그런데 실상은 홀리 선생이 재활 치료 중이라 원고를 쓰지 않으니, 제자가 아니라 시중 들 사람이 필요했던 것.

물론 홀리가 원했던 건 아니고 가가미의 계략이랄까.  마미 같은 젊은 여자애가 옆에서 자극을 주면 홀리가 원고를 쓸 수도 있고, 반대로 소설가 지망생인 마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테니까, 양쪽 모두 나쁠 게 없다는 결론.

문제는 홀리와 우시로를 만난 마미가 사흘 만에 그 집에서 도망쳤다는 것.

홀리는 마미를 처음 보자마자, "처칠을 닮았네."라고 말했습니다. 처칠은 홀리의 대표작 '비단 배' 시리즈에 나오는 검은 고양이로 포탄처럼 기운이 넘쳐 주인공들을 골치 아픈 사건으로 몰고 가는 번잡스러운 캐릭터.

소설가는 언어의 마법사라고 했던가. 홀리는 소설가답게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뚜렷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무슨 초능력자나 무속인 같은 능력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작가적 상상력인 듯. 홀리는 우시로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 엷은 연두색 투피스에 노란 구두를 신고 홀리 집에서 일하는 우시로. 그로부터 3년 뒤 우시로는 노란 구두와 엷은 연두색 투피스를 구입했는데 그제서야 홀리가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말은 속박한다.

그걸 언어의 혼이라고 하는 걸까.

당신의 진짜 인생은." (21p)


홀리의 요청으로 다시 돌아온 처칠, 아니 마미는 그 집에서 소설을 쓰는 대신 고로케를 만듭니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일까 싶지만 홀리의 집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늘 그렇듯이 홀리는 진지한 듯, 무심한 듯 말했으니까요. "당신의 진짜 인생은?"  그 말이 마법처럼 사람들에게 진짜 인생을 찾게 만든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자꾸만 스스로에게 '내 진짜 인생은?' 묻게 됩니다.

어떤가요?  당신의 진짜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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