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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마가파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 있으니 심신이 미약한 분들은 읽지 마세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은 1930년대 홍콩의 뒷골목 이야기예요.
홍콩 느와르 영화를 떠올리면 될 것 같네요. 실제로 영화화 될 예정이라고 하니 또 한 번 놀랄 준비를 해야겠네요.
화자인 '나'는 원래 외할아버지에게 들은 '뻐드렁놈'의 이야기를 쓸 계획이었어요. 열대여섯 살 때 외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가 얼마나 강렬했으면, 쉰한 살의 '나'는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된 거예요. 안타깝게도 외할아버지가 오래 전에 돌아가셔서, 홍콩대학 도서관에서 옛날 신문을 찾아보고 완차이에서 오래 살았던 칠팔십 대 노인들을 찾아가 그때 이야기를 물어보며 자료를 모았어요.
이런 젠장!
오, 여기서 잠깐 끊어야 할 것 같네요.
화자인 '나'의 느닷없는 욕설에 놀랐다면, 그건 순전히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지 짐작하게 하는 예고편이에요.
뻐드렁놈의 이야기는 남두목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남두목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
남두목의 성은 '록'이고 이름은 '남초이'예요. 본명은 '박초이'인데 홍콩 홍문의 손흥사 두목이 된 후 '북'자 대신 '남'자를 넣어 남초이로 이름을 바꾼 거예요.
남쪽에 있는 홍콩의 '남천왕'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이것도 인력거꾼 시절에 동료가 붙여 준 별명을 훗날 써먹게 된 거예요.
홍문은 '삼합회'라고도 불려요. 손흥사라는 명칭은 다이리가 직접 지은 것으로, '손'은 쑨원을 의미하고, '흥'은 '흥성하다'라는 뜻으로 쑨원의 흥성을 기원하는 의미였어요. 쑨원은 혁명 이전에 미국에서 홍문에 발을 들여놓았고, 장제스도 청방 두목 황진룽에게 그의 휘하로 들어가겠다는 글을 써서 보낸 적이 있으므로 다이리는 청방과 홍문이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홍문이라는 커다란 세력 아래 여러 명칭을 가진 수많은 파벌이 난립하고 있었어요. 1899년 영국인들이 싼가이 지역을 강압적으로 수용하자 중국인 수천 명이 무력으로 저항했는데, 그 중 대부분이 삼합회 형제들이었어요. 이 저항 전쟁은 오백 명의 희생자만 남긴 채 단 엿새 만에 끝났어요. 정치적으로 노련한 영국귀신들은 이 전쟁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주동자를 체포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저항 운동을 주도했던 싼가이의 향신들을 정부 관리로 발탁함으로써 자기 편으로 흡수했어요.
손흥사가 만들어진 건 홍문회의로부터 30년이 흐른 뒤였고, 드디어 록박초이가 '용두 龍頭', 즉 두목이 되었어요.
앞서 구구절절 삼합회 역사를 읊었지만 속사정은 단순했어요. 록박초이의 인생 모토는 '좆대로 되라고 해!'였거든요. 한 마디로 우연히 광저우에서 두목의 신임을 얻어 홍콩을 맡게 된 거예요. 삼합회 두목이라고 하면 거구의 체격에 무서운 외모일 것 같지만 록박초이, 아니 록남초이는 165센티미터가 안 되는 키에 외까풀 눈와 우뚝한 콧대를 가진 평범한 남자예요.
록박초이 인생에서 결정적 순간을 꼽자면, 1936년 11월 24일이예요. 그가 아내 아귄에게 몽둥이로 맞고 고향을 떠나 군대에 가게 된 날이거든요. 도망쳤던 거예요.
그리하여 홍콩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록박초이는, 또 한 번의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게 돼요.
영국 경찰인 모리스와의 만남 그리고 그 깊은 밤 이후에 록박초이는 달라졌어요. 세상에 절대 드러나면 안 될 비밀이 두 사람 사이에 생겼어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오래 전, 기껏해야 백 년도 안 된 과거에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니까.
그저 방탕하고 난잡한 뒷골목 인생이라 속단했어요. 근친상간과 성폭행 그리고 폭력과 섹스로 얽힌 사건들이 굉장히 충격적인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그러한 단편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을 관통하는 시대적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왜 이 소설의 구성이 용 龍 - 두 頭 - 봉 鳳 - 미 尾 인지,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네요. 모두 지나간 과거일 뿐이라고 넘기기엔 록남초이의 삶은 목에 걸린 가시 같아요. 어쩌면 홍콩 사람에게는 가슴에 박힌 못, 지울 수 없는 치욕일지도 몰라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은 잔악한 폭력이자 범죄 행위였어요. 약자들은 끊임없이 짓밟히기 때문에, 살기 위해 발버둥칠 수밖에 없어요. 혼란한 시대에 약자로 산다는 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거예요. 누구를 탓하겠어요. 운명의 수레바퀴는 굴러갈 뿐.
작년부터 시작된 홍콩 시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요. 홍콩은 그동안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역시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운명인 것 같아요. 부디 제자리를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 이 무렵 록박초이는 한 가지 이치를 발견했다.
자기 생각을 그럴 듯하게 꾸며내는 것이 진위 여부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진실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거짓도 그럴 듯해 보일 수 있다.
세상일은 진실인가 거짓인가가 아니라
그럴 듯한가 그럴 듯하지 않은가의 문제였다." (137p)
"양귀신은 똥구멍 귀신이야! 너도 똥구멍 귀신이 되겠구나!
나쁠 건 없어. 화끈하잖아! 그게 바로 용두봉미 龍頭鳳尾 지!"
용두봉미란 마작에서 패를 나누는 방식이다.
장가(마작에서 선을 잡은 사람)가 패를 쌓아놓고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어떤 방법으로 패를 나눌지 정하는데
이때 패를 나누는 순서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용두봉미는 마작패를 쌓을 때 앞은 높고 뒤는 낮은 형태로 쌓는다.
왼쪽은 용의 머리처럼 우뚝하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봉황의 꼬리처럼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가 된다.
주사위를 던진 뒤 제일 왼쪽에 있는 패 두 개를 첫 사람에게 주고,
다음에 오른쪽 패 두 개를 두 번째 사람에게 준다.
그리고 또 왼쪽 패를 세 번째 사람에게, 오른쪽 패를 네 번째 사람에게.
이런 방법으로 패를 모두 나눠 가진 뒤 게임을 시작한다. (102p)
"... 일본귀신도 귀신이고 영국 양귀신도 귀신이다.
중국인이 홍콩에서 살기로 한 건 양귀신의 지배를 받겠다는 뜻이다.
심지어 양귀신이 다른 중국인을 지배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홍콩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매국노인 셈이었고,
남은 건 일본과 영국 중 누구의 매국노가 되느냐 하는 것뿐이었다.
그건 아마 누가 더 많은 이득과 명분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212-213p)
"... 사람들이 일본귀신의 침략에 항의하고 있지만 영국인에게는 어떤가?
영국인도 전쟁으로 이 도시를 빼앗지 않았던가?
지난 왕조의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홍콩을 중국에 돌려주지 않았고,
중국인도 영국인들에게 홍콩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곳의 중국인들은 지배당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았다.
편하게 살 수 있다면 귀신도 사람이 될 수 있고,
편하게 살 수 없으면 사람도 귀신이 된다.
중요한 건 편하게 살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22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