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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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연말이 다가오고 있네요.

길거리에 종소리와 함께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를 본 적이 있을 거예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는 걸까요.


<여자들의 집>은 래티샤 콜롱바니의 신작 소설이에요.

프랑스 파리에 실재하는 쉼터 '여성 궁전'을 배경으로, 그 공간의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갈래 시간을 보여주고 있어요.

현재를 살고 있는 주인공 솔렌은 유명 로펌의 엘리트 변호사예요. 파리 근교의 부유한 동네에서 태어나 법학 교수인 부모 밑에서 성장하여 스물두 살에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곧바로 유명 로펌에 들어갈 때까지 순탄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어요. 주말과 휴가를 포기할 정도로 일에 매진하여 유능함을 인정받았고, 한때 사랑하는 남자 제레미가 있었지만 헤어졌어요. 서로 결혼을 원하지 않았고 자유로운 삶을 원했으니까. 

그런데 그 날 그 사건 이후, 솔렌의 삶은 고장이 나버렸어요. 마치 엔진이 멈춰버린 자동차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마흔 살이 된 해에, 고장이라니....

의사는 업무상의 과로 때문이라고, 번아웃 증후군이라면서 수면제를 비롯한 각종 약물을 처방했어요. 도저히 다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아 로펌을 그만뒀어요. 솔렌은 의사에게 솔직히 요양원을 떠나기 두렵다고 털어놓았어요. 그러자 의사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어요. 퇴원 후에 봉사 활동을 해보라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 필요하다고, 그래야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이에요. 

집으로 돌아온 솔렌은 우연히 검색하다가 '펜 연대'라는 협회의 구인 광고를 봤어요. '글을 대신 써 줄 작가'라는 문장을 보자마자 무기력했던 솔렌의 내면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어요. 자신의 글 쓰기 재능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마음이 끌렸어요. 

'펜 연대' 협회 본부 사무실에서 40대 남성 레오나르를 만났고, 그는 솔렌의 이력서에 깜짝 놀라며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냐고 제안했어요. 레오나르가 연결해준 곳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피난 와서 지내는 쉼터였어요. 그곳은 20세기 초에 건립된 6층 건물로, 역사 유적의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팔레 드 라 팜므(Palais de la Femme)'라고 동판에 새겨져 있었어요. 건물명이 '여성의 궁전'이라니, 학대받은 여성들이 피난한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창한 이름이었어요.

바로 그 '여성의 궁전'에서 솔렌은 아픔을 겪은 여성들을 만나고 그녀들을 위한 글쓰기를 하게 되는데...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솔렌의 삶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와르르 무너졌어요. 

우리의 삶은 젠가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나무조각 같다고 생각해요. 한두 개 정도 빠진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아요. 아무리 많이 빼내도 중심만 흔들리지 않으면 버틸 수 있어요. 그러다가 결정적인 조각 하나가 전체를 흔들어 놓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무너진 젠가를 다시 쌓을 수 있다는 거예요.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1925년, 파리의 블랑슈는 놀라운 열정과 끈기를 보여준 여성이에요. 블랑슈가 꿈꾸는 것은 고통받는 여자들이 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었어요. 

그녀만큼이나 멋진 사람이 또 한 명 있어요. 블랑슈의 평생 반려자 알뱅은 혼자보다 둘 일때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어요. 결혼이 서로를 구속하는 게 아니라 연합이라고 했던 알뱅은 자신의 약속을 지켰어요. 블랑슈가 투쟁하는 천사라면, 알뱅은 그 천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그리고 천사가 이뤄낸 여성 궁전.


"고통을 멈추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아뇨. 세상의 고통은 계속될 거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멈출 수 없어요." (182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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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건 - 내게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야생에 대하여
김산하 지음 / 갈라파고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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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에 살아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차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라고 해요.

생태학자로서 코로나19사태가 인류에게 던져준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내가 살고 싶으면 남도 살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해요.

그동안 바이러스만 원망했는데, 그 원인을 살펴보니 생태계를 파괴한 인류의 잘못을 간과하고 있었네요.

이 책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좀더 깊이 느낄 수 있게 해주네요.

바로 자연 안에서 더 많은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


겉으로 보면 우리의 삶은 자연과 동떨어져 보여요. 길을 걸어도 흙을 밟을 일이 거의 없고, 풀 한 포기나 나무 한 그루도 다가가지 않으면 만져볼 일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인간이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자꾸만 잊게 되나봐요. 저자는 그럴 때 일어나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모든 것들을 만끽하라고 이야기하네요.

활짝 열린 창문으로 계절을 느끼고,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라고.

아마 다들 일분일초를 다투는 출근 시간에 지하철 한 대를 타기 위해 혹은 버스를 타기 위해 뛴 적이 있을 거예요. 정신 없이 뛰고 난 후에 헉헉대는 숨소리, 그리고 쿵쾅대는 심장소리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어요. 괜히 옆사람에게 내 심장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새삼 내 심장이 이토록 잘 뛰고 있었구나 확인할 수 있었죠. 저자도 똑같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내 몸이 작동하는 소리에 더 자주 귀 기울여보라고 하네요. 심장의 목소리, 평소엔 조용하지만 힘을 들여 몸을 움직일 때면 비로소 들리는 그 박동 소리를 낼 기회를 주자고.

저자의 야생동물과 인간에 관한 미학적 시선이 매우 흥미롭네요. 동물에 대한 미학적 시선을 갖는 것은 그들의 멋과 가치를 알아보고 이해하는 좋은 길이라고 해요. 반면 동물을 바라볼 때 지나치게 정보에 의존하는 버릇은 눈앞의 동물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고. 어쩌다 숲길에서 마주친 동물의 심상이 뇌리에 박히듯이, 야생 동물을 미학적으로 경험하는 이유는 동물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이해하려고 하는 그 사이의 가치가 미학적 풍부함과 창조력을 낳는 거라고.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가치판단을 하곤 해요. 하지만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달라져요. 생물은 각자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으므로 그 다름이 잘 맞물려야 공존할 수 있어요. 살아있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와 같아지는 건 어색한 일이고, 생명의 본질에 배치되는 억지라는 것. 

우리 개개인은 매일 각기 다른 세상을 겪어내고 있어요. 야생동물을 미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듯이, 다름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이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은 원래 함께 어울리고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어요.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공간은 자유가 허락되는 곳이다. 감각과 인지와 행동과 경험의 자유.

특정한 상태에 몰입하지 않더라도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

그 어느 것보다도 자연이 필요한 것이다. 

... 그곳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다.

또 무언가를 사서, 쓰고, 버리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쓰레기를 유발하는 그런 행위가 아니라 

죽치고 앉아 몸을 좌우로 천천히 흔들면서 공기와 햇빛 속에 있는 일.

그것을 원하며 그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라야 그토록 절실했던 휴식이 가능할 것이다. 

... 모든 것으로부터 갑자기 벗어나기란 무척 어렵다. 

쉼이 필요할 땐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자.

가장 간단하고 무해하게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195-1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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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로 산다는 것 -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 정치적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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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렸어요.

왕비로 산다는 것.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존재, 왕비.

왕비는 조선시대에 여성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지만 권력과 부를 누리는 지위라기보다는 제약이 더 많았다고 해요. 

권력의 한가운데에서 왕비라는 위치는 풍전등화와 같은 존재였던 거죠.

저자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왕비라는 존재를 통해 조선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어요. 

저자 왈, "조선의 왕비로 산다는 건 극한 직업!"이라고.


조선왕조계보를 보면 스물일곱 명의 왕이 재위했고, 왕비는 폐비까지 포함하면 마흔일곱 명이에요.

왕비의 숫자가 왕보다 더 많은 건 왕이 두 명 이상의 왕비를 맞았기 때문이에요. 

왕비가 되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남편이 세자인 시절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 세자가 왕이 되면 따라서 왕비가 되는 것이었어요. 

대개 10세를 전후한 나이에 세자빈으로 들어와 삼간택의 과정을 거쳤어요. 그런데 이 정통 코스를 거쳐 왕비가 된 인물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 연산군의 왕비 폐비 신씨, 인종의 왕비 인성왕후 박씨,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 숙종의 왕비 인경왕후 김씨, 경종의 왕비 선의왕후 어씨 등 6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변수들 때문에 세자빈의 지위를 잃거나, 왕비가 된 후에도 정변으로 폐위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이 책에서는 마흔세 명의 왕비들을 만날 수 있어요.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왕비들의 삶이 그야말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요.

7일간의 왕비, 단경왕후 신씨는 실제로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7일의 왕비>의 역사적 인물이었다고 해요.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의 운명을 바꾼 사건은 1506년 9월 2일에 일어난 중종반정이었어요. 반정 주체 세력이 연산군을 대신할 왕으로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지목하고 진성대군의 집을 찾았고, 진성대군은 자신이 정치적 희생물이 될 것을 염려하여 나서지 못했어요. 이때 지혜를 발휘한 것이 단경왕후였어요. 침착하게 주시하고 판단하여 위기의 상황에서 남편인 진성대군을 구했어요. 그러나 단경왕후가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난 건 왕비의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이라는 최측근 세력이었기 때문이에요. 반정 세력들이 단경왕후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그녀를 왕비로 두면 보복당할 것을 우려하여 폐위를 청했고, 중종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난 단경왕후는 본가가 있는 인왕산 아래 사직골로 거처에 머물렀는데, 중종은 경복궁에서 늘 옛 왕비를 그러워했다고 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단경왕후는 중종이 알아볼 수 있도록 집 근처 인왕산 자락에 붉은 치마를 걸쳐놓았고,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예요.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재위 기간에 있었던 왕은 윤달을 포함하여 9개월간 왕의 자리에 있었던 인종이에요. 6세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 되어 25년을 세자로 있었으나 정작 왕으로 재위한 기간이 워낙 짧았어요. 그러니 인성왕후 박씨 또한 가장 짧게 재위한 왕비였어요. 중종이 오랜 기간 재위한 데다가 중종의 계비로 들어온 문정왕후 윤씨가 대왕대비의 지위에 있으면서 아들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했으니, 인성왕후의 역할은 미미했어요. 실제로 <명종실록>에서 인성왕후는 왕실 어른으로 기본적인 대접을 받는 것 이외에 그녀에 관한 내용이 거의 없다고 해요. 

허울 좋은 왕비의 삶, 그 속내를 들여다보니 시대적 굴레와 압박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아요.

조선의 역사를 왕비 중심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역사 수업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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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인도신화 - 신화부터 설화, 영웅 서사시까지 이야기로 읽는 인도
황천춘 지음, 정주은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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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도 신화?

누군가 되묻더군요. 인도에도 신화가 있냐고.

저 역시 잊고 있었어요. 인도가 4대 문명국 중 하나라는 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도신화와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그것이야말로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보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신화와 전설은 시대의 사상을 품고 있어요. 베다(Veda), 불교와 자이나교, 힌두교 등 수많은 종교와 사상의 발상지 인도에는 인도인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수의 신이 살고 있다고 해요. 인도인이 하는 말처럼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인도신화 속에서 최고의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 속에 담겨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 거예요.


"태초의 세상은 그저 캄캄한 어둠이었다. 아무런 특징도 없고 인식할 수도 없는, 한없이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영혼이 나타났다. 그는 어둠을 몰아내고 우주가 모습을 드러내게 하였다.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느낄 수도, 상상할 수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브라흐마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17p)


브라흐마는 우주의 왕인 범천으로서 황금알 속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브라흐마는 황금알을 둘로 나눠 반쪽은 하늘을 만들고, 나머지 반쪽은 땅을 만들었어요.

천지창조의 장면이 성경과 흡사하죠? 이럴 때 보면 인간의 언어는 최소한의 표현을 담을 수 있는 도구인 것 같아요.  

우주가 만들어졌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이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외롭고 쓸쓸해서, 여섯 명의 아들이자 위대한 조물주 여섯 명을 낳았다고 해요. 재미있는 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영혼이 스스로 외롭고 쓸쓸하다는 감정을 느꼈다는 부분이에요. 신의 감정이라기엔 너무 인간적이지 않나요. 

첫째 마리치는 브라흐마의 영혼에서 태어났고, 둘째 아트리는 브라흐마의 눈, 셋째 앙기라스는 브라흐마의 입술, 넷째 풀라스티야는 브라흐마의 오른쪽 귀, 다섯째 플라하는 브라흐마의 왼쪽 귀, 여섯째 크라투는 브라흐마의 콧구멍에서 태어났대요. 또 오른손 엄지손가락에서 일곱 번째 아들인 다크샤를 낳고 왼발 엄지발가락에서 밤이라는 뜻의 딸 비라니를 낳았대요. 훗날 다크샤와 비라니는 부부가 되어 딸 50명을 낳았대요. 다크샤의 첫째 딸 디티와 둘째 딸 다누가 낳은 아들들을 아수라라고 불렀대요. 이들은 아디티의 아들들, 데바들과 우주의 지배권을 두고 팽팽히 맞서며 끊임없이 싸웠어요.

인도의 신화와 전설에 따르면 세상은 사트야 유가부터 칼리 유가까지 네 개의 시기를 거치는데 뒤로 갈수록 타락해요. 현재 사람들은 암흑의 시대인 칼리 유가에 살고 있고, 네 유가가 끝나면 곧 1겁인 셈이며, 세상은 멸망한 다음에 다시 창조된대요. 이 세상은 지금까지 일곱 번의 윤회를 거쳤다고 전해져요. 우주의 최고 주재자는 마치 놀이처럼 세상을 창조하고 멸망시키며 끊임없이 우주를 윤회시켰대요. 인도인은 지금도 여전히 영혼이 카르마(Karma, 전세의 행위로 인한 운명)에 따라 환생한다고 믿고 있어요. 

인도의 카스트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 네 가지로 나뉘는데, 신분 계급제를 뜻해요. 브라만은 사제로 처음에 지식을 독점하는 계층이자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자들이고, 크샤트리아는 무사 계급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전쟁을 치르는 역할이며, 바이샤는 농업, 상업, 축산업 등의 노동 계층이자 인도 사회의 서민에 해당해요. 수드라는 최하위 계층으로 대개 사람들이 꺼리는 육체노동에 종사해요. 이밖에 불가촉천민인 달리트가 있는데, 이들은 지위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가장 비천한 직업에 종사하며 도시와 농장 밖으로 내쫓겨 살아가요.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인도의 카스트는 종교와 결합하여 21세기 민주 사회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근래 해외뉴스에서 인도 달리트 계급의 19세 소녀가 상위 계급 남성에게 잔혹하게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어요. 현재 인도는 카스트 차별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에요. 

인도신화에서 락샤사는 대표적인 사악한 세력이에요. 아수라와는 달리 락샤사는 천계의 데바들뿐 아니라 인간들도 공격해요. 락샤사의 왕, 라바나는 수차례 전투를 벌여 데바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았어요. 라바나는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를 비롯한 모든 데바에게 자신의 궁에서 비천한 잡일을 시켰어요. 데바들은 간신히 노역에서 벗어났으나 곧바로 라바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대신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를 통해 라바나를 벌할 수 있었어요. 

물론 인도신화가 끔찍하고 추악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아름답고 감동적인 붓다의 이야기와 라마의 모험기, 영웅 서사시도 있어요. 그 모든 이야기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요. 종교와 사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 책은 우리에게 더 많은 질문과 답을 찾도록 이끄는 게 아닌가 싶네요.


"바람보다 빠른 것은 무엇이냐?"

"생각이다."

 (4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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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바다로
나카가미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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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미 겐지의 소설 <18세, 바다로>는, 저한테는 서핑 같은 재즈 이야기였어요. 

신나게 즐기는 서핑이 아니라 난생 처음 바다로 나가 거칠게 몰려오는 파도에 올라타야만 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불안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때론 흥분되고 미칠 것 같은 심정.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도 왜 그런 감정들이 솟구치는지 모른 채 마구 질주하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이 저한테는 불안한 파도 타기처럼 보였어요.

사랑, 사랑 같은 욕망이 어설프게 성장한 육체를 자극하고 있어요. 젊은 육체는 쾌락을 원하지만 불안하고 혼란스러워요.

실제로 저자 나카가미 겐지는 열여덟 살에서 스물세 살 때까지 <18세, 바다로>를 썼다고 해요.

이 소설집에는 <18세>, <JAZZ>, <다카오와 미쓰코>, <사랑 같은>, <불만족>, <잠의 나날>, <바다로>라는 여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어요. 

그 중 <다카오와 미쓰코>는 1979년 <18세, 바다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고 하네요.

과연 젊음, 청춘은 뭘까요.


"우리들, 아무리 착하게 굴어도 소용없어. 또 세찬 바람이 불었다.

흙먼지와 종이 쓰레기가 휘날리고 내 모자까지 날아갔다.

빙글빙글 돌다, 흙 위에서 구르다, 배구 코트 쪽으로 날아가는 모자를 눈으로 좇으며,

나는 배 속에 그득하게 고여 있던 웃음을 한꺼번에 토해내려 했다.

그 소리는 웃음소리가 아니라 매머드의 외침 같았다.

...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

모자를 잡아 푹 눌러쓰고 정렬을 끝낸 반 아이들 쪽으로 뛰어가는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내 몸을 덮쳤다."   (47p)




정말 이상한 것 같아요. 열여덟 살.

세찬 바람에 날라간 모자처럼, 언제 날라갈지 모르는 모자를 잡아 푹 눌러쓰는 모습에서 그냥 모든 감정이 느껴져요. 

이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인 것 같아요. 젊음, 청춘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고 느끼게 만드는 것.

분명 나는,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지 않지만 그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어요. 아니, 안다고 생각해요. 그걸 증명할 수는 없지만.

재즈, 재즈에 대해 모르지만 가끔 듣고 싶을 때가 있어요. 주인공이 재즈를 들으면서 그저 몸속에서 솟구치는 선율을 좇는 것처럼. 

재즈의 미친 리듬은 청춘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에게 청춘은 재즈 - 재즈를 들으며, 그 리듬에 몸을 들썩이면서도 정작 나는 재즈를 모른다고 생각해요. 재즈의 리듬을 느끼는 것과 아는 건 다르니까. 

멈추지 않는 세찬 바람과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나에게 청춘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지나가는 중인 것 같아요. 

열여덟 살의 젊은 작가는 우리에게 들려주네요. 젊음은 너무도 잔혹하다고.


"어디로 가는데?"

"바다로."

"거기 가서 뭐 하려고. 어디로 가든 아무것도 없는데."

아주 나쁜 감정이, 나의 검은 때가 낀 발가락 끝에서 길게 자란 머리칼 끝까지 파먹고 있었다. (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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