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로켓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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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는 비즈니스 세계를 그려낸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읽고 싶어질 거예요. 

<변두리 로켓> 시리즈 그 첫번째 이야기예요.

주인공 쓰쿠다 고헤이는 로켓 연구원이었어요. 자신이 개발한 신형 엔진을 탑재한 시험위성 '세이렌'의 발사 실패로 연구자로서 설 곳을 잃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회사 쓰쿠다제작소라는 변두리 공장을 이어받게 되었어요.

어릴 적 쓰쿠다의 꿈은 우주비행사였고, 우주에 대한 흥미가 로켓공학으로 옮겨가 전공하면서 연구자가 된 것인데... 쓰쿠다의 꿈은 로켓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아 사라졌어요.

변두리 공장의 사장이 된 쓰쿠다는 신형 엔진 개발과 특허를 내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당장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해 곤란한 상황에 처했어요. 대출만 해결되면 다행이다 싶은 그때, 경쟁사 나카시마공업이 특허 침해로 쓰쿠다제작소를 고소했어요. 손해배상액은 90억 엔.

5년 전에 출시한 스텔라는 소형 엔진과 관련 부품을 제조하는 쓰쿠다제작소의 라인업 가운데 최고의 효자 상품이고, 매년 개량을 거듭해 최신형을 작년 봄에 출시했어요. 독자적으로 개발한 연료 시스템인데, 나카시마공업이 자사에서 개발한 엔진을 베꼈다며 특허 침해를 이유로 판매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으니 너무나 억울한 노릇이죠. 이 소송 때문에 은행 대출이 막히고, 납품하던 회사와의 거래가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알고보니 나카시마공업의 비열한 전략이었어요. 일단 베기고, 상대방 기술에 트집을 잡아 풍파를 일으키면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거죠.

안타깝게도 쓰쿠다제작소가 특허낸 제품 자체는 훌륭했지만 특허 내용에 허점이 있었어요. 나카시마공업은 그 부분을 공략한 거예요.

첫 번째 구두변론 당일, 쓰쿠다제작소를 맡은 변호사는 완패했어요. 같은 변호 업무인데 기술 분야를 잘 몰라서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했어요.

낙담한 쓰쿠다는 며칠 전에 통화했던 전처 사야가 떠올랐어요. 사야는 기술 분야를 잘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쓰쿠다가 거절했던 거예요. 

변호사 가미야 슈이치. 그는 나카시마공업이 계약한 법률사무소에 있었던 사람으로 현재는 독립했다고 해요. 지식재산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수완가라고.

역시 가미야는 쓰쿠다제작소의 상황을 한눈에 알아봤어요.


"그들은 합법이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차지해왔죠.

법률을 역이용해 약자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는다. 그게 그들의 전략이이에요.

이번에는 쓰쿠다 씨가 표적인 겁니다."  (98p)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 그것도 로켓분야의 신형 엔진 밸브 기술에 관한 법정 다툼을 다룬 이야기.

이 정도로만 설명하면 영 재미없는 이야기 같지만, 단숨에 읽을 정도로 흥미진진했어요. 쓰쿠다는 타고난 연구자라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일이 녹록치 않아요. 평소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의견을 나누던 터라 직원들이 쏟아내는 불만을 외면할 수 없어요. 돈, 생계를 위해서는 중요하니까. 하지만 쓰쿠다는 로켓의 꿈을 놓지 못하고... 

변두리 로켓의 반란, 아슬아슬하지만 통쾌한 한판 승부를 보며 나도 모르게 응원했어요. 정의는 살아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서,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으니 둘다 멋지게 이뤄내자고요.


"난 말이야, 일이란 이층집과 같다고 생각해. 1층은 먹고살기 위해 필요하지. 생활을 위해 일하고 돈을 벌어. 

하지만 1층만으로는 비좁아. 그래서 일에는 꿈이 있어야 해. 그게 2층이야.

꿈만 좇아서는 먹고살 수 없고, 먹고 살아도 꿈이 없으면 인생이 갑갑해.

자네도 우리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었을 거야. 그건 어디로 갔지?"   (353p)


"1층은 현실, 2층은 꿈"  - 이케이도 준

[저자의 서명이 책 안쪽에 인쇄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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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 시대를 앞서간 SF가 만든 과학 이야기
조엘 레비 지음, 엄성수 옮김 / 행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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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중 SF장르를 가장 좋아했어요.

머릿속에 상상하던 것들이 영상을 통해 눈앞에 펼쳐질 때, 그 순간만큼은 현실이 되는 마법을 경험했거든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은 우리에게 익숙한 SF를 통해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와, 잊고 있었던 <전격Z 작전>의 키트가 자율주행 자동차로 현실화 되었다니 놀랍네요.

주목할 만한 무인 자동차의 예는 SF 소설계의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 속에도 나온다고 해요. 아시모프는 1953년 소설 「샐리 Sally」에서 낡은 자율주행 자동차들의 은퇴 시설을 상상했어요. 또 자율주행 기술로 인해 자동차를 함께 타는 사람들이 늘고 자동차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등의 변화를 예견했다는 게 신기해요. 실제로 점점 공유경제 개념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모프의 예견은 정확했네요.

쥘 베른은 1865년 소설『지구에서 달까지』에서 달 로켓 발사를 처음 다뤘고, 벨기에 만화 작가 에르제는 『달 탐헌 계획』이라는 만화를 통해 달 로켓 발사 프로그램의 여러 장면들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했어요. 곧 이어 나온 만화책 『달나라에 간 땡땡』에서는 달이 공기가 없고 먼지와 바위로 덮여 있으며 여기저기 분화구가 널린 흑백 황무지로 묘사했는데 훗날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 실제 목격한 풍경과 아주 흡사했어요. 이처럼 과학적인 사실과 SF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흥미로운 현상은 1950년대에 미국 항공우주 및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된 것이래요. 과학 전공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SF적 이야기를 활용한 거죠.

가장 소름돋는 작품은 조지 오웰의 『1984』가 아닐까 싶어요. 1949년 출간된 이 소설에는 대표적인 감시 기술인 '텔레스크린'이 등장해요. 텔레스크린은 텔레비전과 감시 카메라의 기능을  동시에 하는데, 사람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억압하는 일종의 보안요원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텔레스크린은 현재 우리가 집에 설치하는 웹캠과 IP 카메라, 아마존의 에코나 구글의 홈 같은 음성인식 스마트 스피커를 연상케 해요. 우리는 늘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고, 언제나 보고 들을 수 있는 장치들 속에 살고 있어요. 그건 반대로 누구든지 해킹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걸 뜻해요. 『1984』의 '빅 브라더'는 오늘날의 CCTV(폐쇄회로 TV) 카메라 장치들에 의한 비디오 감시의 확대와 흡사해요. 빅 브라더는 세상 구석구석을 다 감시함으로써 미래를 바꾸고 과거에도 손을 대려고 했는데, 그건 인공지능을 연상케 해요. 인공지능이 언제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을 것인지, 그 임계점이 얼마남지 안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 섬뜩하네요. 

미국 TV 시리즈물 <스타트렉>은 다양한 외계종족뿐 아니라 신기한 미래 기술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순간이동 장치에서 3D 프린터까지 <스타트렉>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가상의 이야기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현실에서 구현되는 과정이 신기해요. 다만 SF 소설에서 그려낸 암울한 미래만은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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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라이프
맥스 루가비어 지음, 정지현 옮김, 정가영 감수 / 니들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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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라이프>는 건강한 삶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모두 일곱 개로 나누어 뇌를 깨우고 면역력을 키우는 건강 습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미 아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아는 것과 실천은 별개라는 점에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읽고 아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읽고 이해하여 실천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알츠하이머와 암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나서 인간의 건강, 특히 뇌 건강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탐구를 했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유전자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환경은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 환경 요인은 대부분 통제 가능하며, 그 환경을 바꾸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그것을 '지니어스 라이프'라고 부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의 과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

이 책은 전략적이고 따라 하기 쉬운 지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여섯 가지 건강 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음식, 제대로 알고 먹어라.

둘.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어라

셋. 몸속 숨은 에너지를 찾아라.

넷. 일어나라, 그 자체가 운동이다.

다섯. 주변의 독소를 치워라.

여섯. 이너피스를 유지하라.


사실 이 수칙을 이해하려면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한데, 그 내용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FAQ로 정리한 부분은 궁금증을 풀어줘서 도움이 됩니다.

음식은 가능한 유기농 제품을 먹는 것이 좋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가공되지 않은 채소를 먹어야 합니다. 과일과 채소를 씻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물에 소금이나 식초, 베이킹소다를 1작은술 넣으면 표면의 농약 성분을 좀더 깨끗하게 씻을 수 있습니다.1~2분만 담가둬도 효과적이며 아주 바쁘면 흐르는 물에 씻으면 됩니다. 

매일 1회 샐러드를 큰 대접에 가득 담아 먹으면 뇌의 노화를 최고 11년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케일이나 시금치, 루꼴라 같은 짙은 녹색 채소에 달걀이나 지방이 많은 생선 조각,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1~2큰술 같은 지방 성분을 꼭 추가합니다. 건강에 좋은 몇 가지 식품만 꾸준히 먹어도 충분합니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는 일, 매우 간단한 일 같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공조명 때문에 낮은 물론이고 밤까지 너무 밝아져서 우리 몸의 생체리듬이 깨지는 것입니다. 생체 시계를 늦추면 수명도 연장될 수 있습니다. 시간 제한적 섭식, 즉 간헐적 단식은 칼로리를 제한하여 건강을 개선하고 수명을 연장해주는 다양한 효과가 있습니다. 

뇌를 생각한다면 운동은 필수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근육이 튼튼할수록 나이가 들어도 건강합니다. 근력 운동과 뇌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노인들의 경우 근력이 강할수록 인지 기능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등장합니다. 바닥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라는 것, 의자에 앉는 것보다 바닥에 책상다리로 앉는 것이 몸의 다양한 곳을 튼튼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운동만큼 중요한 것이 휴식이므로, 잘 자고 자주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독소들입니다. 비스페놀 A 혹은 BPA는 식품 포장과 재활용 가능한 물병에 흔히 사용되는데 BPA가 들어간 플라스틱에 저장된 식품과 음료수에 합성 에스트로겐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열에 반응하는 종이영수증의 코팅제로도 쓰여 피부와 손으로 입을 만지는 행위로 우리 몸에 들어옵니다. 내분비교란물질이 일으키는 건강 이상에는 생식기 기형, 자궁내막증, 성조숙증, 천식, 면역질환, 주의력결핍과인행동장애(ADHD) 등이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BPA나 프탈레이트는 안전한 노출 수준이 없다는 겁니다. 최대한 독소에 노출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미 몸 안에 쌓인 독소를 해독하는 법은 강력한 식단과 생활방식이 몇 가지 있습니다.공기 정화 식물 가까이 두기, 땀 흘리기, 과일과 채소 먹기, 영양소 밀도가 높은 식품 먹기, 황을 함유한 식품 먹기 등이 있습니다.

새로운 행동을 지속하려면 행동보다 핵심 믿음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지니어스 라이프는 건강도 중요하지만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지도 중요합니다. 저자는 알려준 이너피스를 유지하는 법은 어머니에게 배운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바르게 사는 삶의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니어스 라이프를 위한 4주 플랜은 실천을 위한 지침이라서 정말 유용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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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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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되면서 함께 뜬 뉴스가 있어요.

부인 질 바이든이 본업인 교수직을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

231년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직업을 가진 퍼스트레이디가 탄생했다는 내용은 의외였어요.

변호사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 생활을 하며 일을 그만뒀는데, 질 여사는 자신의 본업을 유지하겠다고 공식발표한 거예요.

어찌보면 당연한 건 아닌가요. 남편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부인이 반드시 내조해야 하는 법은 없잖아요.

도대체 왜 영부인으로서 내조하는 게 당연시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21세기 미국에서 말이에요.

호기심에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검색해보니 남편은 화학자인데 공개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른바 조용한 외조. 오히려 메르켈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도 남편의 아침 식탁을 차려주는 일은 손수 하고 있대요. 처음엔 '엄마(Mutti)'라는 별명이 동독의 촌스러운 아줌마를 비꼬는 뜻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실용주의 리더십을 인정받으면서 국민을 어머니처럼 포용하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대요. 여자는 총리직을 수행해도 '엄마'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네요.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 다시 로크먼의 두 번째 책이에요.

"왜 남자들은 일을 더 하지 않는가?" , "평등주의자인 남녀는 왜 가정에서 불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가?"의 근원을 추적하기 위해 100명의 엄마들을 인터뷰했다고 해요.

그 인터뷰 결과는 놀라웠어요. 나이, 인종,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엄마들이 털어놓는 얘기가 똑같았대요. 

우선 이 책은 자녀를 둔 기혼여성들이라면  200% 공감하게 될 거예요. '앗,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중요한 건 자신이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을 당하고 있었다는 현실 자각이라고 생각해요.


끝나지 않은 성차별.

성평등을 외치면서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순간 200년 전으로 돌아가버리는 현실.

왜 그럴까요. 그건 '개인 영역'이었기 때문이에요.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바뀌지 않았던 거에요.

이렇게 말하면 발끈하는 남자들이 있을 거예요. 요즘 세상은 남자들도 집안일 하느라 힘들다고.


'아이가 아프면 누가 휴가를 내는가?' 미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력 변화에 대한 전국 연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여자의 77.7퍼센트, 남자의 26.5퍼센트가 자신들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보고했다.

(부부가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조사했기 때문에 총합이 100퍼센트보다 크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몸은 1980년대 후반에 가족 연구자들이 남자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육아의 책임을 "받아들이지만", 

여자는 남편의 일정과 아이들의 필요에 맞춰 일을 "조정"한다고 밝힌 이래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181p)


내가 인터뷰한 엄마들은 대개 배우자가 뜨뜻미지근한 부모임을 자각하는 태도를 보이며 

도우미형, 나누미형, 태만형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분노하고, 

인터뷰에 응한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의 불만에 영문을 몰라 한다. 

오바마가 미셸의 불만에, 조지가 나의 불만에 대해 느끼는 것처럼.

저는 아내를 사랑해요. 도와준다고요. 뭘 어쩌라고요?   (219p)


저자는 엄마들의 인터뷰뿐 아니라 생물학,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사례를 통해 성차별주의를 지속시킨 편견과 과학적 오류를 짚어내고 있어요.

왜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할까?  왜 여자들은 이런 행동을 봐주는 걸까?

성별에 따른 사회화, 즉 사회화는 성별 행동 차이를 낳는 데 영향을 줘요. 한 가지 예로 평등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똑같이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반면,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는 아기에게 관심을 덜 보인다고 해요. 타고난 생물학적 성향과 문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분석하기란 불가능하며 결국 이 둘은 상호작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현대적이고 가정적인 아빠 시대에도 생계비를 버는 일과 돌보는 일에 균형을 찾기 위해 벌이는 공적 토론은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집중되어 있어요. 콕 집어서 여자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어요. 현대 엄마 역할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여자는 본능적으로 즐겁게 양육해야 하고, 모든 개인성을 버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어요. 여성 희생 숭배는 문화적 하위 집단마다 다양한 형태를 띠지만 그 속내에는 가부장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어요. 여자들이 처한 위치는 정확히 여자들의 책임이 아닌데, 성 불평등이 내재된 역할을 강요받고 있어요. 사회규범은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고정관념은 역으로 사회규범을 강화하고 있어요. 

사회학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성 고정관념의 변화를 추적해왔어요. 연구에 따르면 가정 일로 직장에서 휴가를 내는 남자들은 덜 좋게 보고, 연봉을 더 적게 받는 사람으로 인식된다고 해요. 즉 남자는 여자처럼 되어서 득볼 게 하나도 없다는 식의 편견이 문제라는 거예요.

온정적 차별은 남성 지배를 애정이 담긴 기사도 정신으로 표현하면서 여자는 성공한 남자 뒤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조장해요. 공동체적 특성의 규범을 어기는 여자, 마땅히 여자답게 행동하지 않는 여자는 벌을 받는다는 인식인 거예요. 뉴욕대학교에서 실시한 2005년 연구를 보면, 남을 돕는 행위를 하겠다고 응답할 때 남자의 호감도는 올라가는 반면, 여자의 호감도는 변화가 없었어요. 이는 온정적 성차별의 적대적인 면모예요. 여자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피하기 위해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일제히 틀에 박힌 행동을 하면서 모순을 느끼는 거죠. 적대적 성차별에 대해서는 싸울 수 있지만 애정 넘치는 다정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엄마는 여기에 저항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온정적 성차별이 훨씬 더 교활한 거예요. 불평등에 익숙해지면 불평등도 마치 평등처럼 보인다고 해요.

이제는 적응을 멈출 때가 왔어요. 우리가 모든 성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고 저항해야 불평등한 가정을 정당화하는 일을 종식시킬 수 있어요. 평등의 과정에 대한 책임은 똑같이 분담해야 하되 엄마 혼자 주도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포함하고 있어요. 불평등을 끝내는 것은 우리 남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엄마 역할과 아빠 역할을 구분할 수 없게, 다같이 부모 역할을 하자는 거예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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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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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N번방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그야말로 공포와 분노 그 자체였어요.

2020년 3월 25일, '텔레그램 박사방'의 조주빈 신상이 공개됐어요. 그의 표정에는 일말의 반성이나 죄책감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2020년 4월, 국민청원 사이트에 '미국 송환은 가혹하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어요. 내용인즉슨 미국 법무부가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한 것에 대해 그의 아버지가 막아달라는 청원을 올린 거예요. 손정우는 다크웹에 '웰컴 투 비디오'(W2V)'의 운영자로 아동 성착취 영상을 판매·유포한 범죄자예요. 미국 법원은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자에게 징역 600년을 선고했는데, 한국 법원은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했을뿐 아니라 징역 18개월의 솜방망이 처벌만 했어요. 또한 웰컴 투 비디오 이용자 다수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솜방망이 처벌조차 받지 않았어요. 겉보기에는 평범한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자들이 우리 주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예요. 웰컴 투 비디오 이용자들이 흘러들어간 곳이 바로 텔레그램 N번방과 다크웹의 □□□, ○○○같은 사이트였어요.


텔레그램 N번방이 세상에 알려지고, 범죄자들이 체포되기까지 그 뒤에는 '추적단 불꽃'이 있었어요.

정식 기자도 아니고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두 여성이 어떻게 최초 보도자이자 최초 신고자가 되었을까요.

바로 그 피, 땀, 눈물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 있어요.


"2020년, 지긋지긋한 여성혐오 범죄에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이 '이제 우리 함께 걸을까요?'라는 인사로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 살아온 환경, 살아온 방법, 살아온 시간이 달라도,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연대'는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7-8p)


1년 전, 두 사람은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으로 신문사 인턴 생활을 같이 했던 인연으로 뉴스통신진흥회의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도 함께 준비하고 있었대요. 기사 주제는 '불법촬영'으로 잡았고,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는 소굴을 찾으려고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너무나 쉽게 발견했다고 해요. 그때 '와치맨'이라는 운영자의 공지를 통해 '고담방'이라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알게 되었고, 수십 개의 파생방을 통해 'N번방'으로 연결된다는 걸 알게 되었대요. 

텔레그램에 가입한 지 다섯 시간 만에 링크를 받아 N번방 중 하나인 1번방에 입장할 수 있었고, 눈앞에 펼쳐진 영상은 어린아이들의 나체였다고 해요. 고담방과 파생방 회원들이 수없이 말하던 '노예'란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은 N번방 회원들의 지시에 따라 영상을 직접 촬영해 보냈던 거예요. '갓갓'이라는 자는 아이들을 협박하여 받은 불법촬영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공유했던 거예요. 이 끔찍한 범죄 현장을 목격한 두 사람이 한 일은 '신고'였어요.

어쩌면 그냥 모르는 척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신고했고 적극적으로 경찰에 협조했어요.


만약 우리나라가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법률과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었더라면 '추적단 불꽃'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추적단 불꽃' 덕분에 N번방의 조주빈을 비롯한 공범들을 잡을 수 있었지만, 바꿔 말하면 그들의 피, 땀, 눈물이라는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 B는 2018년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해당 지역 경찰서에 신고했더니 해당 경찰서에서 해외기반 SNS는 수사가 어렵다며 사실상 수사를 종결해버렸다고 해요. 이때까지만 해도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성폭력을 수사하는 전담 팀이 없었대요. 더군다나 수사기관은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범죄라고 여기지 않을 정도로 몰랐던 거예요. 이후 B는 2년간 홀로 고통 속에 지내다가 2020년 5월, 대대적으로 N번방 사건의 갓갓이 잡힌 후에야 비로소 피해자 지원을 받을 수 있었대요.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였던 손정우의 솜방이 처벌은 법관들이 디지털 성범죄를 가볍게 여긴 탓이에요. 그건 법관들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국회 접수 요건인 동의자 수 10만 명을 달성하여,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3월 5일에 관련 법안 네 건을 처리했다고 해요. 그런데 처리 직후 법사위 참석자 대부분이 'N번방 사건'과 '딥페이크'를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해서, 어느 국회의원은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할 것이냐?", "생각하는 것까지 처발할 수는 없지 않느냐?", "청원한다고 다 법 만듭니까?",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 수 있지 않냐"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해요. 

[딥페이크 처벌법 만든 고위 공직자들의 안이한 현실 인식 - 경향신문 2020년 3월 18일자, 심윤지 기자] (70p)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시키겠다던 입법부 국회의원들이 이토록 한심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 처참한 현실인 거죠.


두 사람은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의 태도에 절망했다고 해요.

언론이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보도할 때 피해 사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은 기사가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고, 이로 인한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고 호소했건만 피해자의 안위는 뒷전이었다고 해요. 사람들이 알아야 할 내용은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인 것이지, 자극적인 피해 사실이 아니에요.


그동안 몰랐던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을 '추적단 불꽃'이 취재했고, 그 참혹한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불'과 '단', 두 사람의 열정과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용감한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걸 두 사람이 보여줬어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거예요. 이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야 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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