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의 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2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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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의 개>는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세트 중 두 번째 책이에요.

로알드 달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마틸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영화가 워낙 유명하니까요. 

전 세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화를 쓴 사람이 이 책의 저자라니!

이 책에는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어요. 아름다운 동화는 싹 잊게 될 잔인하고도 끔찍한 어른들의 동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냈는지 연신 감탄하게 되네요. 어린이들의 마음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까지 홀려 버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클로드의 개>는 다섯 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요. 세계 챔피언, 피지 씨, 쥐잡이 사내, 러민스, 호디 씨까지.

몰래 꿩 사냥을 하려는 클로드와 '나' 고든의 이야기로 시작돼요. 작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주변 인물인 '나'를 통해 들려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관찰자의 시점에서 주인공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남의 이야기는 심각하고 복잡한 상황일수록 흥미로운 법. 물론 그 당사자 입장이라면 이렇게 재미나 흥미를 운운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클로드가 호디 씨에게 구더기 공장 사업을 장황하게 떠드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예요. 클로드는 이미 머릿속에 부자가 되어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앉아 공장 운영을 지시하는 본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호디 씨는 클로드의 여자친구 클라리스의 아버지예요. 따님을 호강시켜 주겠다며, 큰 소리치는 클로드의 대박 사업 아이템은 바로 구.더.기!  와우, 구더기일 줄이야. 한방 크게 맞았네요.

<조지 포지>는 여자에 관해 독특하고도 이상한 취향을 가진 젊은 목사의 이야기예요. 서른한 살의 목사가 여자들을 피하게 된 건 과거 엄마와 관련된 일 때문이에요. 원래 '조지 포지'는 영국 전승 동요의 주인공으로 여자아이에게 키스를 해서 울린 사내아이라고 해요. 목사는 '조지'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그의 사연은 완전 반대라는 것.

<로열 젤리>는 기묘한 이야기예요. 실제로 아기에게 꿀이나 로열 젤리를 먹이는 건 위험해요. 

<달리는 폭슬리>는 학교 폭력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예요.

<소리 잡는 기계>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의 소리를 잡아내는 기계에 관한 이야기예요. 만약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상상해보셨나요.

신기하게도 듣는 입장이 아니라 소리를 내는 입장에서 생각하니 소름 돋더라고요. 소리 없는 외침!

<윌리엄과 메리>, <천국으로 가는 길>,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은 아내와 남편,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약간의 공포가 첨가된 완벽한 범죄 스릴러물이에요. 부부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를, 미스터리한 영역인 것 같아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부부 사이에 의심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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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1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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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세트 3권 중 첫 번째 책이에요.

<맛>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어요. 평소에 단편을 즐기는 편은 아닌데, 역시 로알드 달의 단편은 강렬하고 짜릿하네요.

대부분 짧은 이야기는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로알드 달은 반전 결말로 신선한 충격을 주네요.

천재적인 이야기꾼과 사기꾼은 한 끗 차이인 것 같아요.

세상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목사의 기쁨>의 주인공 보기스 씨는 골동품 가구 상인인데 성직자 복장으로 변장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있어요. 목사인 척 속여서 비싼 골동품을 아주아주 싸게 구입해서 아주아주 비싸게 팔고 있어요. 이번에도 완벽하게 속였어요. 다만 너무 완벽한 탓에... 자기 발에 발등을 찍는 꼴이 되었어요. 왠지 고소한 맛.

<손님>은 굉장히 스펙타클한 작품이에요. 주인공은 '나'가 아니라 내게 유언과도 같은 편지를 남긴 오스왈드 숙부예요.

오스왈드 헨드릭스 코넬리어스.

거창한 이름답게 오스왈드의 삶은 화려했어요. 부유한 독신자로서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카사노바처럼 즐겼던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조카에게 스물여덟 권의 일기를 남겼어요.

그는 편지에서 신신당부했어요. 일기를 잘 보관하라고, 집안 사람들이 읽는 건 괜찮지만 절대로 낯선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빌려줘서는 안 된다고. 만약 이것을 출판한다면 큰 위험에 처할 거라고, 아니 끝장날 거라고 경고했어요. 역시나 오스왈드의 일기에는 사교계를 박살내버릴 폭탄이 들어 있었어요. 그런데도 조카인 '나'는 출판하기로 마음 먹었고, 우리가 읽게 될 내용은 맨 마지막 권의 시나이 이야기로, 그때 오스왈드는 쉰한 살이었어요. 

와우, 쉰한 살까지도 거침없이 매력을 내뿜었던 남자 오스왈드! 그의 마지막 이야기, 궁금하죠?

<맛>은 교활한 미식가 리처드 프랏의 이야기예요. 그는 포도주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묘한 습관이 있어요. 약간 수줍어하고 망설이는 듯한 조신한 맛이라느니, 명랑한 포도주라느니... 개뿔!  사기꾼의 언변이란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해서 정신을 부여잡지 않으면 속기 마련이에요. 리처드 프랏의 속임수에 걸려든 인물은 마이크 스코필드라는 부유한 증권 중개인이에요. 속는 사람의 유형은 두 가지예요. 너무 순진하거나 너무 탐욕적이거나. 비어 있거나 꽉 차서 넘치거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라서 사기꾼들이 쉴 틈이 없는 것 같아요. 리처드 프랏이 계획한 사기 행각의 결말은... 와우, 이 맛은 긴장감 넘치네요.

<항해 거리>는 내기 혹은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주는 이야기예요.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연상하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 같은 작품이에요. 

<남쪽 남자>는 <항해 거리>와 같이 도박 중독자의 최후를 보여주고 있어요. 인생은 도박이 아니라고요. 한방 대신에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자는 교훈이 저절로 생각나는 이야기예요.

<정복자 에드워드>는 에드워드와 그의 아내 루이자의 이야기예요.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이 남자의 성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될 거예요.

<피부>는 기상천외한 예술 작품에 관한 이야기예요. 인간의 상상력이란 늘 선을 넘어서 짜릿하고 동시에 위험한 것 같아요.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① <맛>은 처음 로알드 달을 만나는 독자들에게는 선물 같은 책이에요.

아하, 이것이 이야기의 재미구나... 빠져들 테니까. 천일야화처럼 이야기에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가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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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 더 벨벳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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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 더 벨벳>은 세라 워터스의 소설이에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네요.

<티핑 더 벨벳>이 데뷔작이며, <끌림>, <핑거스미스>로 이어진다는 것.

그 중 <핑거스미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아가씨」원작 소설이라는 것.

솔직히 놀랐어요. 열여덟 살 낸시는 작은 마을의 오래된 대가족과 살고 있는 평범한 소녀였어요. 가족들을 도와 굴 따는 배에서 일하며 지냈는데 연예장, 일종의 극장인데 그곳에서 공연하는 남장 배우 키티 버틀러를 만나면서 열병을 앓게 되었죠. 이른바 사랑의 열병.

누가 알았겠어요. 소녀가 남장배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키티는 남자 옷을 입고 남자인 척 노래를 불렀지만 미소년의 느낌을 풍기면서 묘한 매력을 발산했어요. 처음엔 잘생긴 외모의 남자 같아서 키티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냥 사랑에 빠진 거예요. 키티는 자신에게 푹 빠진 낸시에게 제안했어요. 의상 담당자가 되어 자신과 함께 런던에 가자고 했어요. 이 무모한 제안에 낸시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허락했어요. 가족들과 떨어지는 것쯤은 괜찮다고 여길 정도로 낸시에게는 오직 키티뿐이었어요. 바로 그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처음에 놀랐던 건 낸시가 동성의 키티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홀린 듯 빠져든 사랑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키티 곁에는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월터가 있었고, 월터는 낸시의 노래 실력을 알아보고 키티와 함께 남장배우로 무대에 서게 했어요. 

키티 버틀러와 낸시 킹의 공연!

당시에 남장 여가수 두 명이 무대에 서는 일은 처음이라서 대박이 났고, 두 사람은 많은 공연을 하며 돈을 벌었어요. 그리고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었죠. 낸시는 왜 사랑을 숨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렸어요. 어리숙했던 거죠. 그러다가 낸시가 며칠 고향에 다녀온 사이에 모든 게 바뀌었어요. 예정된 날짜보다 일찍 돌아온 낸시의 눈앞에는 키티와 월터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낸시에게 키티는 폭탄 선언을 해버렸어요. 월터와 결혼하겠다고. 낸시는 한순간에 버림 받았어요. 도망치듯 숙소를 뛰쳐나온 낸시는 겨우 새로운 숙소를 구하지만 완전 폐인 같은 생활을 하게 되고, 그 뒤에는 생계를 위해 남창 노릇을 하다가 돈 많고 나이든 여자의 성노리개가 되는... 적나라한 성적 묘사가 너무 자극적일 수 있으나 그건 낸시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낸시는 몸은 성숙한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숙한 소녀라는 걸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키티의 사랑은 찰나의 불꽃이었기에 낸시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만 남겼을 뿐, 성숙한 사랑이 무엇인지는 배우지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제삼자의 눈에는 사랑이 아닌 쾌락 혹은 타락으로 비쳐졌을 것 같아요. 키티는 그걸 알았고, 낸시는 몰랐던 거죠. 순진한 시골 처녀는 도시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되어 파란만장한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게 돼요. 

결국 낸시가 그토록 원했던 건 진정한 사랑이었어요.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깨지는 순간 삶을 포기한 듯 보였지만 낸시를 구원한 것 역시 사랑이었어요. 

저자 세라 워터스는 퀸 메리 대학교에서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 소설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박사 논문을 준비하다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해요. 빅토리아 시대의 낸시라는 인물은 단순히 동성애자라기 보다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랑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회적 금기마저 넘어서는 역동적인 인물이라서 더욱 놀라웠던 것 같아요. 정말이지 대담하고 도전적인 작품이었어요.



「우리는 누구와도 같지 않아요!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일 뿐이에요.」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일 뿐이라면, 왜 우리는 그걸 숨겨야 하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와 그런 여자들 사이의 차이점을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내가 소리 내어 웃었다. 「차이가 있어요?」 내가 다시 물었다.

키티는 여전히 시무룩하고 우울해했다. 키티가 말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당신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알지 못해요......」

「전 이게, 우리가 하는 게 그르지 않다는 걸 알아요. 세상이 이런 행동이 옳지 않다고 말할 뿐이에요.」

키티는 고개를 저었다. 「같은 거예요.」 키티가 말했다.   (176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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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 더 벨벳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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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하고 도전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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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지음 / 열림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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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는 김이듬 시인의 산문집이에요.

이 책은 시인이 책방을 열게 되면서 겪게 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시인을 아는 모든 사람이 말리고 걱정했다고 해요.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책방을 여는 일이 그럴 일인가... 나였다면 응원했을 것 같은데, 그랬다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당했을라나.

후회는 아니어도 책방을 꾸려가느라 힘들어하는 시인의 모습은 너무 안쓰러워요. 특히 비싼 월세에 허덕이는 건 현실이니까.

10여 년 모은 돈이 반년 만에 다 사라졌고, 건강은 나빠져서 스트레스성 탈모까지 생겼다고 하니.

어찌보면 주변 지인들이 예상했던 그대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3년 이상 책방을 유지했고 코로나19에도 버텨냈다고 하니 거기까진 예상 밖일 거예요.

책방 입구에는 간판보다 큰 분홍색 아크릴 판이 붙어 있는데, 거기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대요.

"You need chaos in your soul to give birth to a dancing star."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쓴 문장이라고 해요. 스스로 선택한 혼돈, 그것이야말로 삶의 주인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피폐해진 시인을 위하여 곁에 남을 사람은 남을 것이고, 떠날 사람은 떠나겠지요.

시인의 시는 읽어도 잘 모르지만 책방을 하는 시인의 마음은 조금 알 것 같아요. 시는 늘 내게 암호 같은 언어라서, 어렵지만 풀어내는 중이에요. 한 번도 완벽하게 풀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에 시인의 산문은 답답했던 속을 뚫어주는 뭔가가 있어요.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왠지 알 것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책방 때문에 시를 창작할 시간은 부족해졌지만 책방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은 많아진 탓에 매일의 기록들이 쌓여서 이 책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나는 매일매일 사람들과 부딪쳐 내 안의 선한 신이 태어나기를 바란다'는 시인의 마음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변할 수 있다는 건 살아 있는 존재의 가능성?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혼돈의 재발견이었어요.


"책방이듬을 열게 된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었고,

어떤 분은 "예전의 시들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며 전위적이었는데

이번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의 시들은 기운이 빠져 좀 부드럽다고나 할까, 변했다고나 할까,

뭔가 다른 느낌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삶이 바뀌니 시도 바뀌나 보다 하며 나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실제로 나는 기운도 맥도 없이 뒤풀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가 먼저 일어나겠다며 밖으로 나왔다.

... 정 시인이 뒤따라와서 차비를 쥐여주었다. "책방 문 닫게 되면 놀러 갈게요"라고 말하며.

폐만 끼친 듯한 촉촉한 낭독회는 그야말로 우울하고 축축했다.

우리는 책으로 먹고 살려는 게 아니라 책과 함께 사려는 건데, 

월등한 책방지기가 아니라 친구 같은 책방지기가 되려는 건데...... (44p)


의사가 말했다. 

"이 뺀 자리에 혀를 자꾸 갖다 대면 잇몸이 잘 아물지 않습니다."

그는 임플란트를 권했지만 나는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왼쪽 어금니가 있던 자리에 혀끝을 넣어 보다가 깜짝 놀란다.

한 솥에 삶아도 익었나 안 익었나 찔러본 감자는 빨리 상한다. 의심은 그런 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지, 왜 사랑하는지 묻는 사람과는 관계를 끊는 편이 좋다.

의심은 옮는다. 서로의 심중을 찔러보다가 서로를 빠진 치아처럼 툭 뱉는다.   (1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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