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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꽤 오래 전에 읽었던 걸로 기억해요.
기억한다는 건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었다는 사실이지, 그 내용은 아니에요.
이번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구토>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와 정식 계약한 국내 완역본이자 새로운 번역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첫 문장에 더욱 집중했던 것 같아요.
날짜를 적지 않은 페이지
가장 좋은 방법은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을 써놓는 것이다. 실상을 명확히 보기 위해서다.
뉘앙스와 작은 사실들을,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놓치지 말 것.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분류할 것.
이 탁자가, 거리가, 사람들이, 내 담뱃갑 이 어떻게 보이는지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변한 것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범위와 성격을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
(13p)
<구토>는 앙투안 로캉탱의 노트를 발견한 편집자가 그의 일기를 그대로 발행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편집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앙투안 로캉탱이 1932년 1월 초 무렵에 썼던 일기이며, 그가 롤르봉 후작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마치기 위해 부빌이라는 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어요. 본격적인 이야기는 '날짜를 적지 않은 페이지'부터 시작되고 있어요.
일기라는 점, 그것도 전혀 본 적 없는 낯선 남자의 일기를 들여다 본다는 것이 묘하네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그는 왜 주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토록 정성껏, 그리고 세밀하게 적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뭔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데 그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게 뭘까요. 일부러 비밀을 만들 생각은 없다면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가 사소한 사건을 어렵사리 털어놓네요. 그건 그가 종이를 줍지 못했다는 거예요. 뭐지, 특별한 종이였나, 아니면 종이를 주워야 할 임무가 있었나? 전부 틀렸어요. 그냥 그는 평소에 종이 줍는 것을 아주 좋아해요. 우연히 물웅덩이 옆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발견해서 한 걸음에 다가갔고, 그 종이를 만질 생각에 기분이 좋았으나... 그러지를 못했다는 것. 그때문에 혼란스러운 거예요.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된 걸까요.
갑자기 접촉하는 것이 두려워진 이유가 궁금했고, 드디어 알아냈어요. 언젠가 바닷가에서 돌멩이를 들고 있었을 때의 느낌이었다는 걸요. 그건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고, 굉장히 불쾌한 느낌이었다는 게 떠오른 거예요. 그 느낌은 분명히 돌멩이로부터 왔고, 돌멩이에서 손으로 전해졌다고 해요. 손안에 느껴지는 일종의 구토증이었다고, 그는 설명하고 있어요.
살면서 '구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구토는 목구멍을 통해 치밀어 오르는, 급기야 쏟아내야만 진정되는 불쾌한 느낌이라서, 되도록 피하고 싶어요. 일부러 떠올려서 자신을 괴롭게 만들 이유가 전혀 없어요.
앙투안 로캉탱, 이 남자는 왜 구토라는 불쾌감을 자신의 삶속에 포함시켰을까요.
그는 롤르봉 후작에 관한 몇 줄의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후로 그의 매력에 빠졌고, 이 역사적 인물을 연구하기 위해 파리나 마리세유가 아닌 여기 부빌에 정착했어요. 부빌 시립도서관에 롤르봉 후작의 파리 체류에 관련된 자료 대부분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도서관에 가서 후작의 서신들, 일기의 일부분, 각종 서류 등 대단히 중요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어요. 아직 다 못봤는데 슬슬 지루해 하고 있어요.
거의 아바타 같은 상황이에요. 나는 앙투안 로캉탱의 일기를 읽고 있고, 앙투안 로캉탱은 롤르봉 후작의 일기를 읽고 있으니...
지루하다가 토할 것 같다가 아주 조그만 행복감을 느끼는 그는 너무나 변덕스러워요. 그에게 있어서 구토는 자기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것들이에요. 카페에 들어선 순간 구토를 느꼈고 구토는 카페와 하나를 이루더니 그 안에 자신이 있다고 이야기하네요. 구토가 원래 이토록 심오한 의미였나 싶어요.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감정들이 지루한 일상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요.
화요일
아무것도 없다. 존재했다.
(242p)
존재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그는 불쑥 치밀어오르는 구토를 통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고 있어요. 구토가 사라지고 찰나의 행복감도 느끼곤 해요. 그리고 권태로운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어요.
사랑이란 감정에 무심한 줄 알았더니, 그가 손에 든 책은 《외제니 그랑데》였어요. 그리고 호텔 여사장으로부터 건네받은 안니의 편지가 있어요. 안니는 6년 전 헤어진 연인이에요. 그는 이별의 고통조차 느끼지 못햇고, 그저 텅빈 느낌이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다가 텅 비고 평온한 마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과연 그럴까요.
구토, 원래 구토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혹은 느끼는 것인데 그는 바깥에서 일어난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그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삶속에 존재하면서 점점 '나'라는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어요. 구토는 흐릿해지는 '나'를 깨우는 자각의 일종인 것 같아요. 또한 그는 글을 쓰면서 이 모든 변화를 남기고 있어요.
구토를 통해 그는 존재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내 눈에는 현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현재 속에 갇혀 있는 존재 그리고 고독이 보이네요.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예기치 않은 위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립 혹은 고독의 감정을 경험했어요. <구토>를 읽으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앙투안 로캉탱을 통해 사르트르는 말하고 있어요. "두려워하면 안 된다." (169p)
<구토>의 마지막 문장을 여러 번 소리내어 읽었어요.
어둠이 내린다.
프랭타니아 호텔 2층의 창문 두 개에 불이 들어왔다.
신역 공사장은 축축한 냄새를 짙게 풍긴다.
내일 부빌에 비가 내리리라.
(41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