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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그랬어 ㅣ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평점 :
<호르몬이 그랬어>는 박서련 작가님의 단편집이에요.
세상에나,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생생한 날 것의 표현이라고 해야 하나?
그야말로 거침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소설 속 '나'는 분명히 작가 자신일 거라고 추측하면서, 이래서 소설이지 싶은 구석들이 있어요.
믿거나 말거나, 선택은 독자의 몫이니까요. 물론 가장 좋은 건 믿고 봐야 몰입할 수 있을 거예요. 적어도 읽는 순간 만큼은 소설 속 '나'로 변신해야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어요. 누군가를 알아가는 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소설 속 '나'는 적혀 있는 그대라서 어려울 게 없어요.
이 책에는 모두 세 편의 이야기, 그리고 추가된 작가의 <에세이 ...... 라고 썼다>와 윤경희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들어 있어요.
무엇을 먼저 읽을 지, 너무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다 읽고 나서, 또 한 번 읽어도 될 정도 짧으니까요.
여기에 수록된 단편들은 박서편 작가님이 2008년부터 2010년, 대략 10여 년 전에 썼던 글들이라고 해요. 이십대 초반에 쓰고 삼십대 초반-근래-에 고쳐 쓴 작품들.
작가는 이 글들이 꼴 보기 싫었지만 스스로가 남겨 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 당시의 제가 삼십대 초반인 저처럼 작품을 쓸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저 또한 이십대 초반의 저처럼은 쓸 수 없습니다." (112p)
그러니 이 책의 세 작품을 쓴 '나'는 한 명인 동시에 세월을 품어낸 여러 명이 될 수 있어요.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의 '나'는 '예'를 정말 만나고 싶지만 혹시나 서로 달라진 걸 확인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과연 나는 예를 만났을까요. 만남은 최종 결말이 아니에요. 그래서 작가는 이 지점에서 소설과 현실은 갈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어느 쪽이든 모두 가능한 이야기, 왜냐하면 이후의 일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으므로.
제목에서 '바람'은 공기의 흐름일 수도 있지만 그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담은 '바람'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나'는 한때 미숙했고 열정적이었으며 불안했었음을.
'예'는 특정한 누군가일 수도 있고, 다시 안 올 청춘의 시간들일 수도 있겠지요. 결국 작가가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호르몬이 그랬어>는 기억하고 싶은 않은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모든 건 호르몬 때문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힘들었던 거야.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행동들이 그걸로 설명된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테니.
<총 塚>은 '나'와 '너'에 대한 이야기예요. 여기서 '총'은 주인이 없는 빈 무덤을 뜻한대요.
네가 있어야 할 자리, 네가 떠나간 자리... 결국 남은 건 빈 자리였다는 사실이에요. 섬뜩한 슬픔 뒤에 남는 건 공허함일 것 같아요.
'너는 내가 화를 내는 것을 싫어했다. 너는 왜 슬프면 화를 내? 라고 했던가, 너한테는
슬퍼하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던 거지 라고 했던가.
모두 네가 했던 말일 수도 있다.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항상 화가 나 있는 나를 싫어한 것은 네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있다. (87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