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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진, 미래를 건 승부사 - 셀트리온 신화와 새로운 도전
곽정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어디까지 왔나.
이에 대한 답변을 위해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이 직접 방송에 출연한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사실 깜짝 놀랐어요. 대기업 회장님이 인터뷰를?
셀트리온이라는 기업의 시가총액이 80조 원 넘는 대기업이란 것도 처음 알았지만, 그 회장님이 실무자로서 인터뷰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인터뷰 내용에서 치료제 가격을 국내에는 원가로 제공할 거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팬데믹 상태에서 자국 기업은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는 소신 발언을 한 거예요.
또한 자신의 성공비결은 한국인이고, 한국인들과 함께 일했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인은 여러모로 뛰어난데 '우리'라는 말에 익숙하다고 했어요. 바로 그 '우리'라는 연대감이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라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대기업 회장님의 태도와 마인드였어요.
<서정진, 미래를 건 승부사>라는 책은 그때 인터뷰의 강렬한 여운 때문에 읽게 되었어요.
이 책은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을 22개월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대기업 회장님에 관한 책이니까 당연히 성공 신화를 들려주는 건 맞지만 진부하지 않아요.
감동적인 인간극장 같은 스토리 전개가 아니라 실제 인터뷰 방식을 그대로 옮겨와서 깔끔했어요.
화려한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고, 서정진 회장의 답변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어서 셀트리온이라는 기업을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아요. 방송에 봤던 첫 인터뷰가 준 인상처럼 서정진 회장만의 소탈하고 솔직한 매력이 글을 통해서도 전해지는 게 신기한 것 같아요.
일단 흥미롭게 읽었어요. 대기업 회장님의 인터뷰 책이라는 선입견을 떼어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셀트리온은 2012년 전 세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 특허가 끝난 바이오의약품을 모방해 만든 복제약)인 항체치료제 램시마(Remsima)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2호, 3호 항체치료제인 허쥬마(Herzuma)와 트룩시마(Truxima)의 개발이 이어지면서 한국 바이오산업의 대표 기업이 되었어요.
서정진 회장이 보유한 상장 주식의 가치는 150억 달러(약 16조 원)를 넘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전 세계 부자 순위 108위에 이름을 올리며, 국내 부자 1위가 되었다고 하네요.
2019년 2월 첫 인터뷰부터 2020년 11월 말 마지막 인터뷰가 담긴 이 책에는 인간 서정진과 기업가 서정진의 이야기를 모두 만날 수 있어요.
마흔다섯, 대우차에서 일하다가 외환위기로 회사가 무너진 직후인 2000년 다섯 명의 후배와 함께 단돈 5000만 원으로 셀트리온을 창업해 제약산업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창업 20년 만에 한국 최고의 바이오그룹으로 성장시켰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에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님은 대다수가 재벌2세, 3세인데 서정진 회장은 거의 독보적인 자수성가형이라서 남다른 면이 보였어요. 그동안 재벌 회장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황제경영을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서정진 회장은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여줬어요. 2014년에 회사의 정년을 직원 60살, 임원 65살로 정했고, 회장인 자신도 임원과 똑같이 하겠다면서 2015년, 자신의 65살 정년 퇴임을 약속했어요. 그리고 2020년 12월 말, 그 약속을 지켰어요. 그의 두 아들은 회사의 수석부사장과 이사로 일하고 있는데, CEO를 물려줄 생각은 없다고 해요. 아들들이 회사 경영에 기웃거리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기존 계열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아들들은 셀트리온홀딩스에서 서정진 회장과 미래 사업인 유헬스케어(U-Health Care)를 하자고 했다네요. 자신이 만든 회사를 아들들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좋은 기업, 튼튼한 기업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 같아요.
서정진 회장은 역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전 세계와 비즈니스를 하려면 각국의 문화와 전통을 알아야 하고,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에요. 다른 기업인들은 보통 역사와 이념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데, 거침없이 소신껏 자신의 역사관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자신만의 철학,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확고하게 가졌다는 점이 서정진 회장의 강점이며 매력인 것 같아요. 서정진 회장의 약속처럼 앞으로 한국 재벌체제의 혁신이 이뤄지기를, 더 좋은 기업들이 많아지길 소망하게 되네요.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것 가지고 우기거나 싸우지 않아야 한다.
가진 사람들이 좌파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없는 사람이 가진 사람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모두 살 수 있다.
뭘 더 지킬 게 있나. 이 정부에 빨갱이가 많다고 하는데, 내가 보면 없다. 민족주의가 있을 뿐이다.
...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유리한 점은 인구가 적다는 것이다.
5000만 명을 먹여 살리는 건 1만 명만 정신 차리면 가능하다. 1만 명 모으기 운동을 하면 된다.
1만 명만 자기 욕심보다 조직, 나라를 생각하면 된다." (117-118p)
"우리나라를 살기 좋고 희망찬 나라로 만드는 제일 좋은 방법은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것이다.
성공한 결실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써야 한다." (24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