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이 온다
더글라스 러시코프 지음, 이지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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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류는 어디쯤 와 있는가.

<대전환이 온다>는 세계적인 미디어 이론가이자 디지털 경제 전문가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책입니다.

저자는 인류가 벼랑 끝에 서 있는데도 이를 해결하려는 집단적 의지나 협력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닙니다. 저절로 위기가 닥친 게 아니라 우리의 기술과 시장, 주요 문화적 제도 속에 그럴 만한 요소들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반인간적 어젠다.

최신 디지털 기술은 우리를 서로 이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소통 기술을 손에 쥐고 살다 보니 소통하고 있다고 착각할 뿐이지, 고립된 상태입니다. 기술은 인간성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평가절하하며, 여러 방식으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심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SNS 세상에서 익명의 악플들이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사회 유대를 촉진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파괴하는 것으로 옮겨 간 여러 미디어가 가장 최신 버전입니다. 우리가 점점 더 의존하고 있는 여러 기술이 인간을 열등한 소모성 존재로 만들어버리고, 사회를 확장하는 것에서 파괴하는 것으로 전화되는 속도가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 세대 내에서 이 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번이 우리에게는 기회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이런 전환 과정에 순응하지 않고 거기에 반대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 즉 인간의 어젠다를 다함께 추진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각자 개별 플레이어라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 우리는 한 팀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인류를 위해 일어설 때다. 어떻게 보더라도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팀, '팀 휴먼 Team Human'이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서자."   (313p)


이 책에서는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디어 바이러스 속에 있는 사상, 즉 밈은 어떻게 확산되고 복제되는 것일까요. 밈의 문화적 전염 과정을 이해하려면 밈을 둘러싼 껍질과 밈이 복제를 시도하는 터전인 이데올로기를 밈 자체만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밈은 우리의 공포와 불안, 분노를 자극하고 이용합니다. 밈은 서로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밈 자체가 아니라 어떤 밈이 나타났을 때 해당 문화가 효과적인 면역 반응을 보일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콘텐츠에 관계없이 밈 전쟁은 협력과 합의, 공감을 좌절시킵니다.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밈이 득실거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인간은 고립되고, 더욱 더 자기 위치만을 지키려고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휘둘리게 됩니다. 인공지능을 동원한 밈 전쟁에서 텔레비전 광고주들은 소비자를 실험실의 쥐처럼 여길 수 있으며, 소셜 미디어는 이런 기법을 무기화하고 있습니다. 밈을 전송하는 기술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새로운 전송 형태(밈의 껍질)을 미리 알아채기는 어렵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전경(사람)과 배경(사람이 발명한 물건)의 역할이 뒤집어지기 쉬운데, 밈 전쟁이 전경(사람)을 배경처럼 다룹니다. 이제 밈이 소프트웨어이고, 사람이 기계인 셈입니다. 기술은 인간이 사용하던 도구에서 인간이 그 속에서 기능하는 환경으로 바뀐 것입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우리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많은 활동은 흔히 80/20 법칙이라고 알려진 파레토 법칙을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80퍼센트의 사람들은 수동적인 행동을 하지만 나머지 20퍼센트는 적극적이거나 창의적인 행동을 하는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그 2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그 20퍼센트 사람들을 말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사이에 예측불가능하고 괴상한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건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다양성, 회복 탄력성과 지속 가능성을 줄어들게 만듭니다. 우리가 개발한 컴퓨터 알고리즘은 인간을 더 예측 가능하고 기계 같이 만들기 위해 부단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인간관계가 지표과 편견, 권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사람들은 '좋아요'나 팔로워 수에 연연하면서 사회 생태학적 울림이나 단결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회 유대를 위해 한 팀으로 뭉치기 위해 힘들게 진화했던 여러 메커니즘이 디지털 환경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탓하는 대신 상대방을 탓하고, 이런 상황을 사회의 문제로 돌리면서, 플랫폼이 아닌 사람을 불신합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팀 휴먼은 붕괴되지만 팀 알고리즘은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24시간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상태, 즉 디지털 미디어에 중독됐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의 경제, 사회, 심지어 지구 전체의 차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이미 미디어가 통째로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에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그 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영향력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알면 비로소 보이는 인류의 위기 앞에서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팀 휴먼입니다. 우리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사회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를 떨어뜨려 놓는 모든 관습과 제도와 기술, 사고방식에 반대하며, 우리를 분리하려는 작전에 맞서야 합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증오 연설, 억압적인 제로섬 경제, 독재자와 신자유주의 강경파들의 전쟁 도발을 거부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내면에 깊이 박혀 있는 부당한 수치심을 없애야 합니다. 사회적 낙인은 수치심을 이용해 복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팀이라면 공동의 바람과 욕구, 장점, 약점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하며, 망신을 줄 게 아니라 개방성을 적극 포용해야 합니다. 팀 휴먼으로서 유기적 일관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집단 면역체계를 구축해 놓아야 합니다. 팀 휴먼은 결국 인류 협동조합의 탄생으로 실현해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왜'라는 질문이 남아 있다면 이 책속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야 생각이 바뀌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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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 트렌드 2021 - 바이오산업 최전선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김병호.우영탁 지음 / 허클베리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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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한 셀트리온을 알게 되면서 K바이오를 주목하게 되었어요.

<K바이오 트렌드 2021>은 바이오산업 전반에 관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K바이오의 위상뿐 아니라 바이오 산업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기회였어요.

책의 구성은 바이오산업을 이해하는 키워드와 지금 바이오산업 최전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미래 바이오 기술의 선점 경쟁, 급부상하는 K바이오 분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어요.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이라서 기본적인 바이오 용어부터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각 장마다 '알아두면 약이 됟는 바이오 지식'코너를 따로 두어서, 추가적인 해설이 자세히 잘 나와 있어서 새롭게 바이오의약품에 관한 공부를 한 것 같아요.

바이오 분야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는 유전자, 염색체, DNA, RNA, 단백질, 항체 등이 있어요. 합성의약품이란 우리 몸 안에 들어왔을 때 치료 효과를 보이는 물질을 찾은 뒤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든 의약품이며, 대표적인 예로 페니실린 항생제나 아스피린이 있어요. 크기가 작아서 알약 형태로 조제하기 쉬운 장점도 있지만 크기가 작아서 어디에나 잘 붙기 때문에 원하는 목표를 벗어나 다른 곳에 결합하여 발생하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어요. 반면 바이오의약품은 미생물, 식물, 동물세포와 같은 살아 있는 세포에서 제조되기 때문에 대부분 합성의약품보다 크다고 해요. 분자 하나가 곧 약물인 합성의약품과 달리 바이오의약품은 분자들의 혼합물인 경우가 많아서 구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요. 최초의 바이오의약품이 백신이에요. 백신은 항체를 활용해 바이러스를 막는 역할을 해요. 백신이 발견된 뒤에도 바이오의약품 개발은 제자리걸음이었는데, 1970년대 유전 혁명으로 흐름이 바뀌었다고 해요.

바이오의약품의 종류는 생물학적 제제(생물이 생산한 물질로 만든 의약품)인 '백신'부터 유전자를 재조합해 만든 단백질을 성분으로 하는 '유전자 재조합 의약품', 살아 있는 세포를 배양해 투입하는 '세포 치료제', 인체에 직접 유전물질을 투입하는 '유전자 치료제'등이 있어요.

바이오의약품 중에서 특허가 끝난 의약품과 동등한 약효와 안전성을 가진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라고 한대요. 바이오의약품 중 현재 가장 흔히 사용하는 물질은 '항체'인데 합성의약품 입자보다 무겁고 크며 구조도 복잡한 대신 딱 들어맞는 곳에만 결합하기 때문에 개발만 성공한다면 부작용이 적은 의약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해요. 또한 유전자, 단백질 등 생체 내에서 사용하는 물질을 활용한 의약품은 그동안 치료가 힘들었던 희귀난치성 질환에 효과가 뛰어나다고 해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항체 의약품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어요. 갑작스런 감염병에 대응하면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전 세계 글로벌 제약사들이 나섰고, 그 결과물들이 나왔어요.

이 책에서는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 이전에 어떤 바이오의약품이 개발되었고 어떤 과정으로 검증하고 출시하는지 전과정을 훑어보면서, 바이오산업 최전선에서 어떤 치료제들이 승승장구하는지 하나씩 소개하고 있어요.

K바이오가 전 세계 바이오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와 CMO(위탁 생산), 줄기세포 치료제 분야에서 선두권에 있지만 신약 개발은 주춤하고 있는 상태라고 하네요. 2021년 1월 둘째 주까지 국산 신약은 30개뿐이며, 1999년 SK케피칼의 위암 치료제 선플라를 시작으로 2018년 HK이노엔(옛 CJ헬스케어)이 출시한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정까지라고 해요. 이렇듯 30호를 끝으로 국산 신약이 추가되지 않는 이유는 당장에 수익 실현이 급한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요. 하지만 최근 제약사에서 AI를 도입한 신약 개발 플랫폼 기술 확보에 나서면서 신약 출시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한 것 같아요.

새로운 바이오산업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유익한 바이오산업 공부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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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내 뼈 - 난생처음 들여다보는 내 몸의 사생활
황신언 지음, 진실희 옮김 / 유노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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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도 관련 정보는 열심히 찾아보면서 정작 자신의 몸을 살펴보는 일에는 둔감했더라고요.

몸, 내 몸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거나 바뀔 리가 없다보니 당연한 듯 무심하게 내버려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내몸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어요.

뭐니뭐니해도 내 몸을 알아야,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몸 내 뼈>는 현직 의사가 들려주는 몸에 관한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엔 몸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의학적인 정보만 담겨 있는 줄 알았더니 그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있더라고요.

저자는 전문의가 되기 전 의대생 시절부터 인턴, 레지던트, 치프 레지던트의 단계마다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고 있어요. 왠지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은근 재미있었어요. 

우선 얼굴 이야기부터 급격한 호감을 느꼈어요. '난 내가 좀 사나웠으면 좋겠어!'라고 부르짖는 저자의 심정을 백분 이해할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할 때 착해 보이는 인상이나 어려 보이는 동안은 타인에게 만만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단점이에요. 하물며 저자는 환자를 진찰해야 하는데 노인환자들에게 젊은 의사는 영 미덥지 않은 초보 의사로 보일 수밖에요. 어떤 환자는 대놓고 '선생님보다 높은 의사 선생님께 여쭤봐라, 그쪽은 너무 어려 보인다'라며 무례하게 굴었다고 하네요. 

다음은 심장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의과대학 시절에 심장내과를 실습하면서 전문의 선생님이 했던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해요. 2주간 심장내과 실습을 하며 많을 걸 배울 수는 없지만 반드시 배워야 할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심근경색이라고요. 사람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라고요. 심근경색 환자들은 대부분 가슴 답답함과 흉통을 호소하며, "심장이 아파요'라고 말하기보다 "가슴이 아파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해요. 흉통의 원인은 심장뿐만이 아니라 폐, 식도, 뼈, 근육, 신경 어디 한 군데에 문제가 생겨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의대생들은 치명적인 흉통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네요. 진짜 심장이 아픈 사람도 그저 가슴이 아프다고 말할 뿐 심장이 아프다고 호소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심장이 꿋꿋하게 마지막까지 참아내는 침묵의 장기라는 뜻일 거예요. 가슴 한 켠에서 두근두근, 오늘도 쉴 새 없이 뛰고 있는 내 심장에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항문 이야기는 읽다가 민망함에 몸서리를 쳤어요. 환자 입장에서만 곤란하다고 느꼈는데 진찰하는 의사 역시 똑같이 힘든 과정이란 걸 알게 됐네요. 모두를 민망하게 만드는 항문 검사, 잠깐! 상상은 금물, 유경험자라면 더더욱 괴로울 수 있어요. 저자는 손가락을 뻗어 수지검사를 시행하면서 오직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폴립인지 종양인지, 아니면 뒤쪽으로 쏠린 자궁인지를 판단하느라 무척 긴장했다고 해요. 또한 회음부를 예리하지 않은 물건으로 긁어 괄약근의 수축 상태를 관찰하는 항문 반사라는 검사도 있다는데, 이 검사는 수지검사보다도 민망한 극강의 검사라고 하네요. 사실 아프지 않다면 이러한 검사들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동안 병원이나 의사에 관한 부정적인 선입견은 '아프다'라는 통증과 연계된 자동반사였던 것 같아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의사 선생님의 속내를 듣다보니 새삼 그 노고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도 이 책을 통해 의사로서 대상이 되는 '몸'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주체인 자신의 몸 이야기를 솔직히 들려줬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내 몸의 사생활을 드러낸다는 건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아무튼 항문은 문이다. 문은 도망칠 곳과 숨을 곳을 제공하고, 차단, 방어, 사적인 영역의 권리를 은유하며,

'여기부터는 우리 집이니 구경을 사절합니다'라는 의사를 드러낸다.

우리는 문 안의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영원히 알 수 없다. 항문 안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문을 기점으로 깊이 숨어 버린다.

병변도, 취향도, 냄새나는 무엇도 그리고 마약도 .... 항문은 언제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집안의 추악한 모습을 밖으로 알리지 않는다. (2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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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시작하면 세상도 시작합니다 - 더 정의롭고 선한 세상을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이현경 옮김 / 더숲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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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시작하면 세상도 시작합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를 모아 엮어낸 책이에요.

요즘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쿠테타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군부 쿠테타가 자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어요. 남의 나라 얘기라고 넘기기엔 그 비극이 낯설지 않아서 자꾸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지구 곳곳에서 이러한 전쟁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절망적으로 느껴져요. 언제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가능할까요.


평화는 시인 샤를 페기(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 1873~1914)가 말했던 희망과 비슷합니다.

그것은 폭력이라는 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연약한 꽃과 같습니다.

  - 2019년 1월 1일, 메시지


지속적인 평화를 추구하려면 힘겹지만 지속적이고 쉼 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평화는 폭력이라는 돌들 속에서 피어나려 애쓰는 연약한 꽃과 같기 때문입니다.

 - 2019년, 9월 5일 , 트위터   (89p)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작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가령 집에서 형제들끼리 다투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를 내며 아무도 만나지 않아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형제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까요?

나는 작은 몸짓으로 평화를 만들 줄 아는 걸까요?

  - 2018년 7월 31일, 담화 (95p)


"평화는 연약한 꽃"이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어요.

인류 역사에서 결코 사라진 적 없는 폭력, 그로 인한 전쟁 때문에 세상이 황폐해졌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평화라는 연약한 꽃들이 피어났어요.

연약한 꽃이라서, 너무나 작은 힘이라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때는 쉽게 절망하고, 어쩔 수 없다면서 포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해도 된다고, 그것이 평화를 위한 한 걸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이, 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듯이.


이 책에는 여러 해에 걸쳐서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표현되었던 교황님의 말씀이 적혀 있어요.

짧은 문장들이지만 몇 번이나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에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교황님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확해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공동의 집이며, 그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따라서 우리는 다함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해요.

출신이나 종교가 다르다고 해도 우리 모두는 형제라는 것, 그러니 자비의 시선으로 형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

교황님은 한시도 쉬지 말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평화 없는 미래는 없다고...

평화를 위한 길이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여기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되고 있어요.

이 책의 제목처럼 나 자신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평화롭습니까?

평화롭지 않다면 평화를 말하기 전에 먼저 당신 마음을 정리하여 평화롭게 만드십시오.

  - 2016년 9월 8일, 산타마르타의 집 강론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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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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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난다면 견디기 힘들 거예요.

세상을 떠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어요. 그러나 잔인하게도 현실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요.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 이후 일 년여간 쓴 편지를 모아 엮어낸 책이에요.

첫 장에는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의 장례식에서 낭독했던 추도문이 실려 있어요.

추도문은 장례식에서 고인을 기리기 위한 공식적인 글인데,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에게 보내는 편지로 대신했어요.

그리고 장례식 날부터 계속해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허공에다 외치는 외롭고 절절한 고백 같아서 마음이 아팠어요.


"이 편지는 온전히 너를 향한 것, 우리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방법이자

너에게 말을 거는 나의 방식이니까.

듣지도 답하지도 않을 너에게."  (17p)


문득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가 떠올랐어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2년여간 기록한 내용인데, 이 책 덕분에 저마다 자신만 아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감정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픔,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이니까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나봐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강해지는 줄 알았던 거죠.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피에르 베르제가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썼는지 알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연인의 빈 자리가 믿기지 않아서 자꾸 확인하듯 그에게 말을 걸고 있어요. 두 사람만의 애틋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가끔 안 좋았던 일들은 툴툴대면서도 그 모든 시간들이 행복했다는 게 느껴져요. 사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힘든 고비가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사랑했다니, 진심으로 사랑했네요. 술, 마약, 기타 등등 불행한 일들이 둘의 관계를 위기로 몰고 갔던 것 같아요. 하지만 피에르 베르제는 떠나지 않았고, 이브 생 로랑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곁에 있었고, 그의 두 눈을 감겨주었어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피에르 베르제가 누구인지 잘 몰랐어요. 이브 생 로랑의 명성은 들어봤지만 그의 연인에 관해서는 알지 못했어요.

스물일곱 살의 피에르 베르제가 스물한 살의 이브 생 로랑을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이후 평생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사랑하는 연인으로 함께 했다고 해요. 두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성지향성을 숨기지 않았고 공개적으로 연인 관계를 인정했으며 성소수자를 위한 입법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네요.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사랑하며 함께 지내온 세월이 50년이라는 거예요.

자그마치 50년.

그토록 소중한 존재가 내 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어요. 그러니 남겨진 자의 슬픔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크기일 거예요.

피에르 베르제의 편지는 오직 이브 생 로랑을 위한 것이지만 그 편지를 읽는 동안 슬픔 못지 않은 사랑을 느꼈어요.

우리는 사랑한 시간만큼 이별할 때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애도의 시간은 삶을 지탱하기 위한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떠났지만 그 사랑은 영원히 마음에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마음 안에 담아둬야 외롭고 쓸쓸할 때 꺼낼 수 있을 테니까요.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였어요. 오직 사랑뿐.


2009년 8월 14일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내가 살아온 그대로 다시 살고 싶다.

나는 과거를 불평하지도,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몽테뉴 『수상록』의 글귀야.

여기에 덧붙일 말이 있을까? 전혀.

너에게 편지를 쓰는 내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저 문장이야.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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