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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1
이철환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3월
평점 :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는 이철환 작가님의 신작이에요.
용팔 씨와 영선 씨 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집 가게 이름은 '고래반점'이에요. 첫 장면은 꽁꽁 얼어붙은 길 때문에, 부부가 투닥대며 말다툼을 하고 있어요.
영선 씨는 어제 눈이 올 때부터 얼기 전에 치워야 한다고 남편에게 말했고, 용팔 씨는 치운다고 약속까지 해놓고는 나몰라라 딴청을 부리고 있어요. 영선 씨는 가난하게 살았어도 옛날이 좋았다며, 예전에는 눈이 오면 얼어붙을까봐 너 나 할 것 없이 연탄재를 들고 나와 빙판길에 뿌렸던 때를 회상하는데, 용팔 씨는 그건 모두가 가난했으니까 서로 비교하거나 질투할 게 없었던 거지 특별히 인심이 좋아서가 아니라며 딴지를 걸고 있어요.
저 역시 옛날 사람인가봐요. 시대가 바뀌었고, 인심이 변했다는 것을 눈 오는 날에 느꼈거든요. 골목길이 사라지고, 이웃의 개념이 희박해지니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집앞 거리에 눈이 쌓여도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게 되었어요. 연탄길이 까마득한 추억으로 잊혀진 것 같아요. 온몸을 불태워 주변을 따뜻하게 해준 연탄은 다 타버린 뒤에도 빙판길에 뿌려져 미끄러지지 말라며 제몸을 내어주는데... 연탄하면 자동적으로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르면서, 이철환 작가님의 <연탄길>이 생각났어요.
이번 소설에서는 부모를 잃은 남매에게 짜장면을 공짜로 내어주는 일화가 등장하지만 감동의 거품을 완전히 거둬내고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어요. 용팔 씨와 영선 씨 부부가 나누는 솔직한 대화와 그들의 행동을 보면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모질게 굴다가도 어느새 다정한, 딱히 선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우리들의 모습을 닮아 있어요. 특히 용팔 씨의 이중적인 면은 무척 흥미로웠어요. 말투는 거칠지만 속내는 여린, 겉보기엔 그저 중년의 아저씨지만 책을 좋아해서 독서모임을 하고 틈틈이 생각나는 문장을 수첩에 적어가며 소설을 쓰고 있는 예비작가라는 것. 그래서 용팔 씨가 단골 손님이자 독서모임으로 친해진 정 선생과의 대화를 즐거워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책을 매개로 하여 자유롭게 지식과 생각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보면 어쩐지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만큼 작가님이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대목들이 있어요.
"나라 밖에 적이 없고 나라 안에 근심이 없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맹자는 말했다지만, 요즘 대한민국은 너무 소란스럽지 않아?"
"소란스럽다는 건 그만큼의 자유가 있다는 뜻인지도 몰라요. 서로 적대하는 두 세력이 서로를 깔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턱대고 상대를 깔보면 상대의 실체를 못봅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의 이해관계에 따라 혹은 신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고,
반대의 목소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혁명이 반혁명이 되는 것은 반대의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목소리가 있어야 혁명은 시작되고, 반대의 목소리가 없을 때 혁명은 반혁명이 됩니다."
"그래도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 보편타당성......"
용팔이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상식에 대한 기준이 다르니까 문제지요. ... " (125-126p)
가겟세를 올리려는 악덕 건물주 최대출은 용팔 씨네 '고래반점'을 비롯한 세입자들 앞에서는 갑질을 해대면서 국회의원 앞에서는 굽신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용팔 씨의 맏아들 동현의 담임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하라는 잔소리 뒤에 공부 못하면 쓰레기가 된다는 막말을 떠들어대고 있고요. 참으로 못난 어른들의 모습이 소설 속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 실재한다는 사실이 씁쓸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돈과 권력으로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나쁜 놈들을 싸악 혼내주고 싶지만... 과연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기 안의 선량한 마음을 키워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용팔 씨처럼 선뜻 나서지 못한 용기가 어둠 속에 감춰진 빛인지도.
어둠은 어둠이 아니었다. 어둠이 감추고 있는 빛의 실체가 있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그것을 '어둠의 빛'이라 명명했다.
캄캄한 시간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오직 어둠을 통해서만 인도되는 빛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107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