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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평점 :
김훈 작가님의 소설 <개>를 처음 만났어요.
원래 2005년에 출간된 작품인데, 그때의 작품 그대로가 아닌 손보아서 새로 펴냈다고 하니 놀랐어요.
어찌보면 다시 쓰는 일이 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러한 수고로움이 독자를 위한 정성이기에 놀라움은 곧 감동이었어요.
이전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초판 서문의 한 문장이 마음 한 켠을 울리네요.
"...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고통 속에서 여전히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 2005년 여름에 김훈 (10p)
김훈 작가님의 작품을 전부 읽은 건 아니지만 한 편만 읽어봐도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투박한 듯 원초적인 날 것의 느낌.
<개>의 주인공은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진돗개 '보리'예요. 바로 그 보리의 시점에서 인간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어요. 인간들에게 보리는 그저 멍멍 짖어대는 개일뿐이지만 보리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어요. 이유 없이 짖는 게 아니라 개의 언어로 말하는 거라고, 쓸데 없이 핥는 게 아니라 호감의 표시라는 걸 인간들은 정말 몰라주는 것 같아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말로 소통하지만 종종 오해와 다툼이 생기곤 해요. 하물며 인간과 개 사이는 오죽할까요. 안타깝게도 일방적인 오해와 폭력을 행사하는 건 인간이고, 당하는 쪽은 개라는 사실이에요. '보리'는 주인님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원망하는 일 없이 순응하며 기쁘게 살아가요. 다만 같은 개끼리 거슬리는 경우는 있어요. 천방지축 함부로 나대는 악돌이 같은 녀석은 저보다 약해보이면 인간이든 개든 가리지 않고 우악스럽게 짖어대요. 묘하게 비슷한 부류의 인간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럴 땐 '개 같은 x'보다는 '악돌이 같은 x'라고 해야 적절한 표현일 것 같아요. 개라고 해서 다 똑같은 개가 아닌데, 인간들은 너무 개를 얕잡아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각종 욕설에 등장하는 개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에요. 솔직히 인간들을 욕하려면 그냥 인간 같지 않다고 말하면 될 것이지, 개를 빗대는 건 개 입장에서 굉장히 기분 나쁠 것 같아요.
주인공 보리는 가장 개답게 짖을 줄 알고, 주인님을 알아보는 똑똑한 개예요.
진짜 개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으나, 보리를 통해서 개에게 빙의된 듯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어릴 때 명절마다 시골 큰집에 내려갔는데, 한밤중이 되면 어둠이 내려앉듯 소리마저 잠잠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러다가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연달아 합창하듯 짖어대는 소리에 깜짝 놀랐고, 늘 궁금했어요. 자기들끼리 나누는 대화인가, 아니면 심심해서 짖어대는 건가...
보리가 그 이유를 알려주네요.
"밤중에 달을 쳐다보고 짖는 개는 슬픈 꿈을 꾸는 개다.
이런 개들은 달을 향해 목을 곧게 세우고 우우우우 짖는다.
짖는 소리가 아니라 울음에 가깝다." (115p)
개들의 슬픔은 전염병처럼 번지기 때문에 달밤에 개 한 마리가 울면, 그 울음소리가 또 울음을 불러오고, 슬픔을 일깨워서 온 동네 개들이 울음을 잇대어가며 울고 또 우는 거라고 하네요. 그 울음의 대상이 달이었다니, 그 울음의 본질이 슬픔이었다니 어쩐지 개의 마음이 낯설지가 않아요. 닿을 수 없는 먼 곳을 향해 울고 또 우는 개의 마음처럼, 우리 역시 세상을 향해 울부짖을 때가 있으니까요.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
보리가 짖어대는 소리가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원하는 그곳에 닿기를, 보리의 마음이 되어 바라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