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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ㅣ 트리플 4
임국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평점 :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는 임국영 작가님의 첫 번째 소설집이에요.
세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는 두 가지가 떠올랐어요. 유년 시절의 친구와 만화, 이 조합은 찰떡이라서 도저히 별개로는 생각할 수 없어요.
사연은 다르지만 어릴 때 추억이라서 뭔가 뭉클한 감정이 생겼던 것 같아요. 아니, 묘한 기분이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싸악 도려낸 듯, 잊고 있던 것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서 좋으면서도 싫었거든요. 기억에서 잠시 사라졌던 것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잊은 게 아니라 잊기로 했던 것, 그래도 잊을 수 없는 것.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에서는 수진과 만경의 이야기가 등장해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둘은 친구가 아니에요.
수진의 오빠와 만경의 형이 절친인데, 만경의 형이 만경을 데리고 수진 남매의 집에 자주 놀러왔어요. 만경의 형과 수진의 오빠가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동안, 수진과 만경은 거실에서 TV 시청을 했는데, 수진은 늘 투니버스를 봤어요. 투니버스는 유료 케이블의 만화 채널이에요. 정규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들로 꽉 채워진 어린이들의 꿈의 채널.
워낙 말수가 없는 만경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조용히 TV만 봤어요. 그때 만경은 활달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수진을 주인공이라고 여겼어요. 만화영화 속에 나올 법한 생동감 있는 캐릭터처럼 보였기 때문에 완벽하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수진에 대한 만경의 환상이 와르르 무너진 건...
시간이 흘러 수진과 만경은 어른이 되었어요. 그때 이후로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은 각자의 세계를 살고 있어요. 모든 어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투니버스 세계를 넘어온 아이들이 아닐까요. 여전히 아이라는 걸 숨긴 채 살아가는 어른들,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
<코인 노래방에서>는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예요.
주인공 '나'가 연인과 함께 코인 노래방에 갔다가 중학교 시절 정우라는 친구에 대한 은밀한 관계를 고백하는 이야기예요.
과연 둘의 관계는 사랑일까, 아니면 우정일까요. 지금 연인과는 결혼할 사이인데 친구 같고, 과거의 정우는 같은 반 친구인데 연인 같아요.
"있잖아. 나는 너한테 어떤 사람이야?" (73p)
문득 코인 노래방이 힌트처럼 느껴졌어요.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주저없이 말해주면 돼요. 동전을 넣은 코인 노래방 기계처럼 그대를 위한 사랑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어요.
<추억은 보글보글>은 오락실에서 만난 원경과 도진의 이야기예요.
오락실 게임 <보글보글>의 엔딩 크레딧에는 다음의 메시지가 나타난대요. 한 번도 100번째 최종 스테이지에 도달해본 적이 없으니 난생처음 알게 된 사실이에요.
Now, You Found the Most
Important Magic in the World
It's "LOVE" δ "FRIENDSHIP"
But, It Was Not a True Ending
(79-80p)
서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했어도 각자의 기억은 다르네요. 나에겐 사랑이, 너에겐 우정일 수도... 그때 몰랐어도 세월이 흘러 추억이 되니 선명하게 보이네요. 원경과 도진, 만경과 수진, 연인과 나.
<보글보글>의 마지막 문장까지 확인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인생이 오락 게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차하면 리셋할 수 있으니.
하지만 리셋되는 인생도 그리 행복할 것 같진 않아요. 더 이상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게 지금부터라도 정신차려야겠구나, 두 친구를 보면서 느꼈어요.
임국영 작가님에게 이 소설은 "우주 너머 다른 시공간에서 반짝이고 있을 당신에게 보내는 열렬한 신호"라고 하네요. 머나먼 과거로부터 날아온 빛, 그 별빛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 안에 수많은 시그널을 발견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