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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 - 고전문학, 회화, 신화로 만나는 리얼 지옥 가이드
김태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평점 :
지옥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늘 궁금했어요.
정말 지옥이 존재할까요. 다들 현실이 지옥 같다고 떠들지만 누가 알겠어요, 진짜 지옥이 어떤 곳인지.
그런데 그 지옥을 알려준다고 하네요.
바로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에서 말이죠.
여기서 보게 될 지옥은 고전문학, 신화, 회화에 등장하는 지옥을 의미해요.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그곳을 어쩜 이리도 생생하게 그려냈는지,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불교 경전《지장보살본원경》을 보면 지장보살은 깨달음을 얻고도 지옥을 선택해 환생하여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고자 했고, 그리스 신화나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은 지옥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 가운데 지옥 여행의 백미는 단테의《신곡》인 것 같아요. 단테와 단테의 안내자 베르길리우스는 지옥 여행을 하다가 오디세우스를 만나게 되고, 그때 오디세우스는 굉장히 멋진 말을 남겼어요. 다음은 김운찬 선생이 번역한 <지옥편> 제26곡의 일부라고 하네요.
"(세상의 끝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거부하지 마라.
그대들의 타고난 천성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짐승처럼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성과 지식을 따르기 위함이었으니." (55p)
저자는 이 내용을 서경식 선생의 번역으로도 들려주고 있어요.
"그대들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태어났도다." (56p)
여기서 반전은 오디세우스가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는 점이에요. 그런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인 줄도 모르고 잠시 감탄 모드에 빠지고 말았네요. 사실 오디세우스의 말 만큼이나 인상적인 일화가 있어요. 아우슈비츠에 갇혔던 이탈리아 지식인 프리모 레비는 죽어가는 프랑스인 동료가 아무 시라도 들려달라는 부탁에, 바로 이 부분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들려줬다고 해요. 먼 훗날 레비는 자신도 이 시를 처음 듣는 것처럼 신의 음성과도 같았다고 회고했대요. 안타까운 건 레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거예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지 40여 년이 지난 뒤에 말이죠. 너무 소름돋는 대목이에요. 무엇이 그를 절망에 빠뜨렸을까요. 수용소보다 더 지옥 같은 세상이라면...
참으로 아이러니해요.
지옥 또는 저승을 끔찍하게 묘사할수록 현실의 고통은 견딜만한 것이었는데, 막상 현실이 지옥 그 자체가 되는 순간 남은 건 파멸뿐... 그러니 인간에겐 현실보다 더 잔혹하고 살벌한 지옥이 필요했던 건 아닐런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라서 무엇을 상상하든 현실을 벗어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흥미로운 점은 지옥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뿐만이 아니라 삼단 콤보 지옥을 갖춘 헬조선에 대한 내용이에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즉 연애 지옥, 입시 지옥, 종교 지옥이라는 한국의 현실이 팬데믹의 시대를 거치면서 살 만한 곳으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이 상황을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우리만 헬조선이 아니라 전 세계가 헬이었다는 거니까요. 왠지 파랑새의 결말 같은 기분이 드네요. 열심히 지옥 여행을 다녔는데 정신 차려보니 원래 여기가 지옥이었더라.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각자 자신의 답일 거라고 생각해요. 부디 그 답이 구원의 길이었으면 좋겠네요.
